지배 과학이라는 종교. 


일부 혁명가들은 줄곧 개인에 대한 신앙을 크게 가졌거나, 그러한 환경 속에서 자라왔음에도, 종교에 대한 믿음에 대해서는 일종의 거부하는 태도를 지녔다. 혁명 지도자로 한해서는 종교 당사자들과는 토론하기도 했었고, 주로 말 그대로, 믿음이나 신앙에 대한 교리에 대한 존중을 전제로 두고도 혁명 국가로부터 인민들로는 효과적으로 자신들에 대한 신념을 전파할 수 있다고 믿어왔다. 그러나 공산주의는 종교를 가진 일부 사람들로부터도 오랫동안 배척 당해 온 역사는 있었다. 바로 마르크스도 말했던 오래된 진리 때문이기도 하다. 민중들에게는 종교라는 아편으로부터도, 자신들이 가진 믿음을 행하고, 긍정적으로 전파할 수 있다고도 봤던 순교자, 선교자들마저도, 오랫동안 종교는 지배 체제만이 아니라, 관념적인 사상으로도, 숭고하고 또 복잡하게 이뤄졌다. 아무리 종교를 계급적으로 나눈다고 할지라도, 끝으로는 종교는 다음 지배 체제로도, 그리고 부르주아지를 제거하고는, 신화나, 전설로만 치부한다는 점에서도, 부르주아 역사관으로는 정치만큼 일부분으로 다뤄졌다. 그리고 아무리 세속주의만으로도 부르주아지들에 대한 종교라는 특성이 남아 있는 한, 그대로 유지하려는 성질은 있어왔기 때문이다.  


개인 숭배만큼이나, 지독한 혁명가들에 대한 숭배로도, 레닌은 <국가와 혁명>에서, 혁명가들은 죽어서도 초상화와 동상이라는 우상으로 남는다고 토로하고 지적했다. 무분별했던 부르주아 혁명가들도 마찬가지였다. 맨 처음부터 대중들은 우상에 대한 숭배를 벗 삼아, 프롤레타리아트를 기만하고는, 많은 오래된 사회주의 투쟁마저 종교화했다. 여기서 과학이란, 그들만의 사회주의를 전파하고자 만들어진 관념이었고, 또한 바로 지식인들의 머릿 속에서만 꾸며진 불합리한 이상향에 대한 믿음들로 모여진 색안경이자, 선입견들이었다. 부르주아지들은 종교적인 믿음으로는 투쟁도 강조해왔지만, 자본가들이 된 그들에게, 투쟁들에 대한 믿음마저, 혁명이라는 이상향으로만 색칠하고는 공상해왔고, 더불어 노동가들도 파괴해왔다.  


프롤레타리아트 무신론. 


러시아는 정교회가 있어왔다. 그리고 소비에트 때는 종교적인 활동을 인정하면서도, 특히 교회로부터 부정된 권위에 대해서도 많이 부정해왔다. 덕분에 노동 계급들은 더욱이나, 사상에 대한 교육으로는 종교를 보다 비판할 수 있었고, 혁명으로도 지위를 옮길 수 있도록 도왔다. 그러나 러시아를 보더라도, 현대 자본주의로는 러시아에서도 민족주의를 기반 삼거나 근거로 해서는 바로 정교회라는 종교를 기반으로, 세력을 넓혀나갔고, 지도자들도 해당 종교를 비단 교회만이 아니지만. 많은 대중 세력들로부터 지지 기반을 확보한 종교들은 정치에서도 진출하고, 가담하기 시작했다. 그들은 더욱 반동적이기만 한 비밀 교도나, 덕분에 이름도 듣지는 못했던 종교들도 많이 생겨날 수 있었다. 따라서 회의를 느낀 무신론에 비중들도 '반사적'으로는 늘어났다. 그러나 종교는 여전히 권위를 가지고 있고, 또한 프롤레타리아트들에게는 종교로부터 사유 재산에 대한 자유를 보장할 수 있다는 착각도 같이 전파한다. 따라서 바로 그들로는 '민주적인' 선택일지라도, 종교적인 범죄들도 정당화한 일도 비일비재하다고 한다. 다만 러시아 뿐 만은 아니겠다.  


물론 억압하거나, 억지로 금지한다고 해서 막상 종교에 빠진 사람들에게도, 같은 상태만으로는 사람들에게 심리적으로는, 도저히 중독된 말이기 때문에 설득할 수는 없겠다. 그러나 프롤레타리아트들로는 적어도 앞선 종교에 대한 부르주아들로부터 조직 기구에도 참가하고, 꿈마저 이룰 수 있다는 신성한 믿음과 교리들에 대한 각 신앙이라도, 프롤레타리아트들로는 활동에서도 소외하도록 만들고는, 제약을 걸도록 제동할 수는 있다. 이제는 부르주아지들에게도 '신성한' 마르크스에 대한 이론마저, '안전한' 지식인 종교가들로는 뒷받침할 수 있는 근거로도 쓰였을 뿐이었다. 마찬가지로, 그들로는 과학이라 믿는 종교라면, 우리는 모두 함께할 수도 없고, 또한 해석만으로 이뤄진 복잡한 논의들로부터도 그들의 선에서도 아쉽더라도, 끝내야만 옳다고 본다.  


사이비. 


앞서 말했지만, 사이비는 마르크스주의 앞에서도 붙을 수 있다. 

그러나 대체로는 그들만의 '전통'과 정통만을 강조하고자 쓰일 수 있으므로, 

분간하고자, 계란이 먼저냐, '달걀'이 먼저냐라면, 무의미하므로, 먼저 생략하겠다.  


아이들에게 산타가 있다고 늘 말해줄 순 없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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