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러 성비에 대한 노동 임금에 대한 문제는 이미 거론하기도 했고. 또 그러한 지적들마저도 취약한 문제를 안고 있으므로. 우리는 주로 재벌 기업들에 대한 자본가 구도에 대해서만 비판하고자 한다. 여기서 층위를 다루지는 않고자 한다. 왜냐하면 층위는 계급 구도를 무력화하게 만들거나, 혹은 당면한 민주 문제나, 단편적인 운동 요구로만 그치기 때문이다. 여러 매체에서도 보이는 정보들에 대해서는 우선 모두 틀렸다는 전제로부터 새롭게 자본주의에 대한 물음에서부터 작업을 더욱 개시하고자 한다. 수정주의는 특히 노동 임금에 대한 결정이 주가 조작으로부터 결부됐다는 식으로 접근하기도 했지만, 실제로는 더욱 심화됐기 때문이다. 이를테면, 그들은 국방부 지출을 늘리고자, 여러 위원회 설립을 추가로 건설하고자 하거나, 아니면 세금 지출에 대해서 다른 곳에서 끌어다모으는 방식으로 낭비하고 있다고 지적할 수 있다.
역대 정부들에 대해서도 부르주아적인 시각을 가진 채로, 동일한 교육을 받거나, 교정되어 왔다는 점을 감안한다면, 모든 정부들의 결정들은, 노동 계급들과는 동일할 수도 없고, 또 그래서도 안된다고 본다. 그러나 우리는 혁명 정부를 추구한다. 또한 지배 권력에 대한 일시적인 도전이 아니라 매우 장기적인, 그러니까 길고 꾸준한 프롤레타리아트 혁명 정부를 바라고 있기 때문이다. 기나긴 선거 제도로부터, 너무나 많은 시간들을 기다려오기도 했다. 여러 경제적인 분위기에 따라 일시적으로는 성장세를 보이다가도, 정작 노동계급들에 대한 생활과는 무관하지 않다는 점을 증명하는 건, 바로 혁명에 대한 연구가들에게 꼭 필요한 일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마르크스, <자본론>을 적용해야하는 곳이라면, 어디에서든 꼭 필수한 일이다.
그러나 우리는 자본 주가가 떨어지고 있다고 보고, 경제 사정들도 매우 힘들어졌다고 판단한다. 노동 생산에 비해서, 노동력을 제공할 수 있는 인원들도 턱 없이 줄어들었고, 그에 반해서, 그렇다고 혁명에 참가할 수 있는 구성원들도 매우 소수라는 점에서, 우리는 최대한으로, 정부에 대해 폭로할 수 있는 일이라면, 그렇게 해야만 한다고 믿는다. 따라서 우리에게 여러 경제적인 동향이나, 시사적인 방향이란, 바로 프롤레타리아트와 연계해서, 또 노동계급들에 대한 의식을 무산 프롤레타리아트에게 혁명으로까지 확장할 수 있다는 한에서 제기한다. 자본주의는 붕괴하도록 만들 수 있다면, 그리고 힘쓸 수 있다면, 닿는 한 부수는 쪽이 더욱 옳다. 그리고 현행법으로 제어한다면, 무력으로도 사용할 줄 알아야만 한다고 보는 쪽이다. 그러므로 일반 매체에서만 제기하는 여러 미약한 논쟁들은 힘도 약하고, 또 없다고 보기 때문에, 우리는 실천할 수 있는 지식을 연구하는 지역 혁명가들에게 의존한다. 그러므로 자본주의에서 발생할 수 있는 같은 문제에 대해서는 갈등이나 혼란으로 문제를 더욱 복잡하게만 만드는게 아니라, 프롤레타리아라는 본질을 파악하고 또 꾸준하게 제기해야만 한다고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