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동자들이여, 자각하라. 

당신은 노동자다. 


연일 터지는 동료 노동자의 사고를 접한다. <근로기준법>을 맞추지도 않고, 허가 받지도 않은

작업장에서, 비좁은 터전 속에서 출퇴근을 일삼는 노동 계급들은 과연 무엇을 알고 있는가. 

노동자라는 자각이 현실임에도 노동자는 자본가들 앞에서 경쟁과 수발을 자처하고 있으니 

노조의 침묵과 공백은 여전하고, 또 비난을 받는다. 가입에 대한 권유는 강요가 됐으며, 

노동 개선에서는 모두들 둔할 뿐이다. 외국에서는 노조는 많지만 노동자는 없다고 한다.

우리말로는 쭉정이 빠지도록 모두 빼먹었기 때문이다. 그래도 성이 차지는 않는 모양새다.  

 

정부는 노동 계급을 탄압하기 위한 온갖 묘수를 부리면서도 노조 파괴 공작에 힘써왔다. 

산림을 지우고, 살림을 파괴한다.  

차기 들어설 정부도 또 다른 탄압과 경제 위기와 상승과 하락이라는 회유로부터 배우지 못한 노동 계급을 설득하고자 애쓴다. 노총들의 자료와 통계에서도 노동자는 빠졌다. 비대한 두뇌만 클 뿐이다. 

아무도 노동 조합에 대한 역할과 투쟁을 고민하지 않는다. 

사연은 중요하지만 당신들의 하소연은 이제는 그만두시라.  

우리는 바로 학자에게 공물하는 통계와 데이터 따위가 아니라! 

바로 노동 계급이 요구하는 더 많은 통계와 자료가 절실하다. 

과연 펜만 굴리는 우리의 전문가들은 얼마나 객관적이던가! 

과연 얼마나 더 많은 착취라는 증거가 필요하실까! 


자본가들에게는 주어진 일만 잘 처리하면 아무 일도 없을테니까. 

조용히 주는 돈만 벌면 침묵하기로 약속했으니까. 

그리고 노동자들은 서로를 경쟁하고 또 속인다. 


어느덧 취업과 퇴사라는 불안한 자유에서도 청년 노동자들에게도 과연 여가는 있던가. 

당연한 듯 행동하는 의식들은 모두 이념과 사상에만 몰두하다, 

죽은 노동자를 시체 더미 위로 버리고는 만다. 


우리는 간부들끼리 함께하는 것이 아니다. 바로 노동자와 함께한다. 

우리는 늘 농촌 뿐만 아니라 노동에서도 함께해왔고, 또 함께할 것이다.

<뼈 아픈 후회>란 바로 그런 것이다. 

내가 죽인 칼이 바로 자신에게 되돌아오는 그 순간에도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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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출현한 뒤로 공산당은 유령같이 출몰했다. 그리고 유령 사냥을 벌이는 온갖 몰이꾼들은 갖은 술수를 다해서 무고한 공산주의자들을 옥살이로 집어넣었다. 수 많은 공산 국가들에서도 안정적일 줄 알았던 독재란, 치명적으로 미화된 우상 숭배에 불과했던 흔적들이고, 신흥 재벌들은 곧 부르주아지들로, 자본주의라는 경제 조직에서도 깊숙하게 반공을 내세우고, 멸공을 부르짖는다. 


우리들은 민주주의로부터 자유인들에게도 적이고, 또한 사냥감이다. 정당을 내세워도, 돌아오는 대답이란 전체주의와 독재라는 말이고, 허울이란 그저 실속 없는 정책들, 여전히 유통 거래 되는 상품과 화폐에서 자본 거래라는 노동 뿐이다. 우리는 일하고, 쉬고, 편한 곳에서 마음껏 지낼 수 있고, 좋은 것이 있다면 나누고자 했다. 그러나 자본주의는 허락하지 않는다. 종교의 희생과 노력을 강조한다.    


사람들은 아직도 공산주의를 미화하거나, 제국주의를 찬양한다. 돈이 없으면 무엇도 살 수 없으니까. 일하지 않으면 먹지도 못하니까. 그러나 우리는 돈이 없어 죽었고, 일할 수 없어 굶었다. 얌전한 고기를 먹고 돈 벌 수 있기 때문에 사회를 이루고 노동을 한다. 그리고 노조마저 공산주의라는 사상과 이념을 버렸다. 모두 정부와 정치인만 없으면 아무런 문제가 없을 것이라고 단념했다. 그러나 좌우 투쟁은 꾸준했다. 모두들 자본주의 아래에서 마르크스와 엥겔스를 몽상가로 무시했다. 또한 자본가들은 <자본론>을 아는 척하면서도 정작 희대의 쓸모 없는 불쏘시개로 만들었다.  


프루동의 일당들은 국가를 두려워한다. 그리고 혼란을 즐겼고, 파시스트는 공산주의자를 색출한다. 우리는 언제나 맞서지도, 때로는 내세우지도 않았어도 뒤에서는 얻어맞았다. 공산 국가에서도 우리를 무시한다. 우리는 늘 역사에서 당하기만 한다. 언제나 뒤에서 노력해도, 결과는 부르주아지와 자본가들이 모두 차지하는 체제이자 빼앗은 틀이다.  


그마저도 사치인 우리는 또 말한다. 

먼저 맞서는 사람이 죽고. 비겁한 사람이 도리어 멀쩡하냐고. 

왜 작은 나라는 아직도 쪼개졌냐고. 

리는 전광판이나 현수막에서 전단 광고 따위가 아니라 우리의 구호와 예술을 볼 수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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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일 사회민주주의의 반군국주의 과업

 

 

반애국적인 반군국주의는 독일에서 알맞은 토양을 찾지는 못했고 앞으로도 찾을 순 없을 것이다. 그러나 노동자들에게 국제적인 연대를 소개하고 프롤레타리아의 해방적인 투쟁을 목적으로 나라들의 평화를 전파하면서 독일 사회민주주의의 선전은 더욱 더 단계적으로 스며들어야 할 것이다. 위에서 논의했던 반군국주의 강령의 요구는 반론을 제기할 수 없는 적절한 기반도 끌어올린다.

 

널리 알리자면 자국에서 모든 해로운 군국주의의 많은 분파들을 평상 시에도 더욱 감지할 수 있으며 더 큰 곤란과도 싸워나가야 할 것이며 그러므로 군국주의에서 계급전쟁적 성격은 더욱 두드러지며 주요한 타격을 개시할 장소는 국내와 국제적인 상황에 따라서도 그때마다 결정할 것이다.

 

독일에서 무슨 모양과 방법으로든 선전을 완성하거나 소개해보든지 군대 내에서 선전을 개시하는 문제는 법적인 한계도 지켜야한다는 건 당연하게 전제해야 하고, 미리 거부하는게 좋다.

 

독일 사회민주주의는 군국주의를 고발하는 자료수집에 관해서는 충분하게 조사하진 않았다. 군 예산, 부차적인 군사적인 부담들의 증가와 군대의 평화적인 발판에 대해서만 더 자세하게 조사했다. 군사적인 부담들과 세금 정책 및 보호 간의 연관들도 면밀한 조사도 기다리고 있고, 무엇보다도 부족한 조사로는 군인들의 학대, 군사적 정의의 착취, 군인들의 자살, 군대 내 위생 상태, 복무 중 발생한 피해, 임금 및 연금 조건만이 아니라 군인들의 고용에서 임금 삭감과 이에 관한 군단의 법령과 파업 파괴자로도 동원하는 군인, 게다가 파업에서 군사적인 개입과 무장한 경찰, 군사적인 거부운동 제도 때문에 발생한 쓰러진 피해자, 정치적 행동에 따른 군사적인 개입, 사회정치적이고 정치적인 투쟁에서 군사회 이용, 다른 나라의 모든 영토에 군국주의, 해군적인 군국주의와 식민지적인 군국주의들로부터 특히 경제적이고 정치적인 투쟁에 군국주의는 착취한다. 반대하는 군국주의 청년회에 관한 자료에 대한 지식도 부족하고, 반군국주의 운동에 대립하는 관습의 자료도 적절한 순서로 정리하지도 않았다.

 

이 모든 자료들은 정기적으로 수집하고, 엄선하고 대조해보면서 체계적으로 이뤄내야하며, 일반적인 반대운동도 연관해서 보면 부수적인 문제로 다룰 수는 없다.

 

물론 이런 자료는 우선 일반적인 반대운동, 의회와 언론, 일반적으로 분류해볼 수 있는 전단지들과 회담들에 사용해야한다. 그러나 반군국주의에 직접적으로 분명한 목적과 확실한 방향을 향해서 특히 중요한 인구의 기층에도 침투해 비옥하게 해야한다. 우선 군 복무에 의무가 있는 젊은 사람들만의 문제로만 다루는게 아니라 반군국주의를 젊은 사람들에게 교육하고자 특히 부모들, 특히 여성들에게도 발휘해볼 수도 있다. 또한 젊은 노동자와 실습생들에게 작용을 가하는 나이든 노동자에 대한 문제도 이런 추세에 최대한 활용하는게 좋다. 마지막으로, 군사회 맞선 투쟁은 더욱 활발하고 정기적으로 지속해야한다.

반대운동은 군사적인 불복종만으로는 직간접적으로 어디에서도 호소할 순 없지만 군국주의에서 본질과 계급투쟁에서 군국주의의 역할에 대해서도 분명하게 한다면 목적에 완전하게 도달할 수 있을 것이고, 사람들에게 상반적인 자질과 행동들을 효과적으로 전면에 내세울 수 있다면 군국주의에 맞서는 분노와 증오감도 부를 수 있다.

 

법적인 한계에서 젊은 사회주의 기관들도 선전에 주요한 전달자들이어야 하며, 의문의 여지도 없지만 계급의식을 조성해서 군국주의 혹은 군국주의자들을 침식하게 해야한다.

 

젊은 사회주의자 사회들은 반군국주의 정신도 더욱 퍼져나가게 해야하고 책자, 전단지, 강연, 강의과정들로부터 젊은 사람들도 알아볼 수 있게 적절한 지침과 형태로도 전달해볼 수 있다.

축제와 예술적인 흥미들도 같은 목적으로도 활용해볼 수도 있고 사회적인 구성원들을 반군국주의적인 선전자로도 다시 전수받을 수 있다. 청년 사회주의 기관들은 같은 또래의 동급생들 사이에서 입소문으로도 소개하고, 출판물을 퍼뜨리면서 가족, 친구나 친척, 작업장, 공장에서도 지반을 갖출 수 있다.

 

젊은 사회주의 기관은 반대운동을 자체로 회원들에게만 한정하지 말고 할 수 있는 한 멀리서도 확장할 수 있어야한다. 젊은 노동자의 전반적인 대중에게도 호소할 수 있어야한다. 또한 위에서 언급했던 나이든 노동자들에게도 흥미를 끌게할 수 있어야한다. 언론, 전단지, 책자, 정기적인 회담, 공개적인 강연, 예술적인 흥미, 축제의 매체로부터 체계적으로 작업해보는게 좋고 일반적으로 젊은 사람들만이 아니라 성년들에게도 젊은 반군국주의적인 사회주의자들의 반대운동으로부터 설득해볼 수 있다. 훈련병들을 배웅해주거나 분류할 수 있는 모든 시위운동들도 동일한 목적을 제공하는데 수용할 수 있어야한다.

 

추가적으로 당은 지금까지 군인들의 문제를 더욱 체계적인 단계로도 다룰 수 있어야하며 비임관한 장교들도 자신들의 자료로 적극적으로 전달해야하고 의회에서 그들의 물질적이고 사회적인 관계1)도 얽혀있기 때문에 법적으로 예외적이지 않는 한에서 이들에게 사회적인 동의도 구하려고 노력한다.

 

퇴역 군인들로 특수한 군사회를 설립하는 벨기에의 관습과 네덜란드 사회가 군사회에 반대하는 특수한 과업을 독일에서는 권할 수는 없고 일반적인 정치와 노동조합 기관들에서도 충분하다.

 

다른 나라들에서 발생한 사건을 둘러보면 우리가 할 수 있는게 얼마나 더 많이 남아있는지도 알 수 있고 위에서 언급한 강령을 살펴보면 당도 반군국주의 영역에서도 수 많은 작업을 해왔고 본분을 다하는데 이제 막 시작했을 뿐이다. 반군사주의 선전에 대해선 어느 정도 초기적인 단계에 있다.

 

현재로선 이 모든 다방면의 과업을 중심적으로 처리하지 않는다는 건 분명하며, 중앙에서도 이를 나서서 조절하고 미래적인 목적으로 삼아야 한다는 사실 또한 분명하다. 이를 위해선 중앙위원회의 설립도 필수적으로 보여진다. 그래야만 모든 합법적으로 할 수 있는 반대운동들이 신중한 주의를 기울이면서 활용할 수 있기 때문이다. 반군국주의 선전은 넓은 그물망처럼 전국적으로도 덮어낼 수 있다. 젊은 프롤레타리아들은 계급의식과 군국주의에 대한 원한도 체계적으로 채울 수 있다. 이런 반대운동은 젊은 프롤레타리아들의 마음을 따뜻하게하고 젊은 열의를 불러 일깨우고자 한다. 프롤레타리아 청년은 사회민주주의, 사회민주주의적인 반군국주의에 일원이다. 모두가 자신의 본분을 다할 수 있다면 반드시 성취해낼 수 있다. 혈기가 있던 사람은 군대에 있다.

 

참조

 

1. 임금, 식사, 의복, 숙소, 처우의 조건들을 개선하고, 복무하는데 있어 덜 힘들게 하고 학대에도 맞서 싸우며, 징계, 처벌, 불평 제기 군사적인 재판 등으로부터 법률도 개혁하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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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일에서 반군국주의와 독일 사회민주주의

 

독일 사회민주주의 강령과 국제 사회주의, 적지만 마르크스주의 학교를 대상으로 한 정치적 힘의 점령, 자본주의적인 소수독재제 대 프롤레타리아트들의 힘들 간에 사회적인 상관관계를 철폐하고, 민주적인 프롤레타리아 힘들의 상호관계로 잠정적으로 대체하면서 이는 우선 자본주의에서 소수독재제의 권력에서 가장 중요한 조각인 자본주의적인 군국주의의 철폐도 포함한다.

 

최적의 강령은 특수한 방식으로 군국주의 물음을 다루고, 군국주의와 관련한 특수한 문제와 특수한 목적들을 결정하면서 특수한 반군국주의 선전에 대한 모든 반론들도 원칙적으로 충족한다. “수비적으로 장비들을 착용하는 보편적 훈련을 요구한다. 상비군들을 민병대로 대체한다. 전쟁과 평화에 대한 결정은 사람들로 대신한다. 중재로부터 모든 국제적인 분쟁들도 해결한다.” 그래서 이 강령은 현재와도 가까운 미래에 대한 분명하게 공상적인 견해도 거부하며, 직접적으로 군국주의에도 맞서지만 분류할 수 있는 모든 전쟁을 위한 태세에도 맞서며 자본주의로부터, 정치적이고 국가적인 반동으로부터 유발한 전쟁만이 아니라 모든 전쟁에 참가하고 관여하는 걸 원칙적으로 거부하며 전쟁에 맞서 싸울 뿐만이 아니라 공상적인 방식을 거부하고 실제로도 일어날 수 있는 전쟁과 그로 인한 결과들에도 맞서 싸운다. 그래서 독일 사회민주주의는, 모든 외국의 정당에서 대부분은 압도적이고 심지어 프랑스 정당에서도 헤르베적인 의미에서 반애국적이거나 크로포트킨적으로 반국가적인 건 아니지만, 계급 전쟁의 성격의 결과를 따라서 함께 비애국적이라고 할 수 있다.

 

프롤레타리아 사회민주주의 당을 반론도 없이 무조건적으로 적이라는게 당연시한다면 자국에서는 군국주의의 찬칼를 위한 적, 한 마디로 적이며 가장 중요한 과업들 중 하나로는 그 뿌리와 가지를 뜯어야한다. 1900년 파리 회담의 결정을 실행하고자 지금까지도 독일에서는 무슨 일이 일어났는가? 사회민주주의에 실력있는 지도자들도 독일에서 특수한 반군국주의 선전을 개시하려는 시도에는 반복적으로 저항해왔으며, 독일 사회민주당만큼 전 세계에서 군국주의에 싸우는 사회민주당은 없다고 말한다. 여기에는 대부분 진실이 있다. 독일 의회가 현존한 이래로 독일 사회민주주의는 군국주의에 게 무자비하고 끊임없는 수준으로 비판했으며, 의회와 언론에서 모든 내용들과 오용들과 사회민주주의는 군국주의를 기소하는 방대한 양의 자료도 수집했으며, 그리고 끈질긴 끈기로 전반적인 반대운동의 일환으로 군국주의에 맞서는 투쟁을 수행해왔다. 이에 당은 옹호도 찬사도 필요하진 않은 경의로, 행위들이 이를 대신한다. 그리고 아직은 대규모로 발생한 문제도 보완해야 한다. 우리는 지금까지 전개한 반군국주의는 싸우는데도 성공적이었고 이 투쟁를 형성하는데 일치하는 목적을 추구하면서도 전혀 부인하지도 않았고 그리고 분류하자면 투쟁이 미래에도 절대적으로 필수적이고 매우 유익하면서도 성공적이라는데에는 반론을 제기하지 않는다. 하지만 그렇다고 아직은 문제를 해결한 건 아니다. 반군국주의 선전의 가장 필수적인 부분인 젊은 사람들의 교육적인 문제도 간과할 순 없다.

 

 

물론 전반적인 반대운동은 사람들의 눈을 뜨게하고 모든 반자본주의자와 사회민주당원들도 자체로 가장 의지할 수 있는 훌륭한 반군국주의자다. 그리고 일반적인 계몽적인 노력도 반군국주의적인 편견에 대한 모든 의혹을 해결해주지만 일반적인 반대운동으로는 아직 누구에게 호소할 수 있겠는가? 이는 성인 노동자, 남성과 여성의 척도를 정당하고 필연적으로 잘라낼 수 있지만 우리는 성인 프롤레타리아만이 아니라 프롤레타리아인 어린이들, 프롤레타리아인 젊은 사람들과도 함께하고자 한다

 

젊은 사람들사람들은 어린시절이 있었고 미래도 있다.”

 

 

여기에 이어서 부모들도 자녀였으며 자녀들도 부모를 이루는 젊은 사람들도 있다!

 

 

모든 경우에 한 가정의 부모들도 자신들의 능력에 따라 자녀에게도 사회민주주적인 정신을 스며주지 않는 한 비참한 사회민주주의자로 남을 것이며, 자녀들도 사회민주주주의자로도 자라날 수 있다. 또한 프롤레타리아의 젊은 사람들이 성장할 수 있는 경제적, 사회적, 정치적인 조건의 작용과 부모들의 영향도 함께 작용한다는 견해와도 일치하며, 가장 중요하고 동시에 가장 명백한 반대운동과 계몽적인 수단을 이루기도 하며, 당 활동으로부터 영향을 줄 수 없고 원칙적으로 무시해야한다는 반동적인 부분의 모든 시도들도 쉽게 지워버릴 수 있고 자본주의는 어린이들의 정신을 교활한 방식으로 붙잡는다. 그러나 이 주제만을 다룰 수는 없지만 위에서 언급한 사고의 경향을 분명하게 살펴보면 현재에 반대운동이 어디에서 실패하고 있는지를 보여줄 수 있고 보다 더 크고 지속적으로 실패하는데 있는 시급한 해결책도 요구할 수 있다.

 

모든 사회민주주의자는 자신의 자녀도 사회민주주의자로 자라난다”, 할 수 있는 한 최선을 다하지만 이는 우선 심각한 결점이다. 시간과 선의가 주어지더라도 일반적으로 교육적인 과제를 아는 사람은 몇 명이고, 사회민주주의적인 프롤레타리아들은 얼마나될까? 아무리 좋은 의지가 있더라도 교육에 필요한 시간을 가지지도 못하고, 필요한 지식들도 얼마나 가질 수 있을까? 대부분은 계급의식이 있는 아버지가 발휘하는 교육적인 작용보다 계몽적으로는 후퇴하고 있는 여성과 다른 가족구성원들이 아쉽지만 더욱 큰 영향력을 미친다. 당이 의무를 다하고자 한다면 젊은 사람들을 전반적인 방식으로 교육한 후에 노력하여 가정적인 교육도 함께할 준비를 마쳐야만 한다. 특히 반군국주의적 편견을 가질 수밖에 없는 젊은 사람들 가운데서도 부분적으로 특수한 반대운동도 지속하고 있다.

 

한 발 더 나아가서 프롤레타리아 중에서 정말로 계몽한 사회민주주의자들은 몇 명이나 될까? 사회민주주의적인 비판의 원리들과 사회민주주적인 포부에 대해 이들 스스로가 다른 사람들도 계몽할 수 있을 정도로 알릴 수 있는가? 그리고 평화적인 시기에 얼마나 많은 프롤레타리아가 헌신할 준비를 마치고 꾸준하고 끊임없이, 날마다 지속적으로, 기꺼이 어렵더라도 부지런하게 교육적인 노력을 할 수 있을까? 그리고 부분적으로만 아는 사람, 더욱 알아간 사람, 덜 알은 사람, 그리고 막대한 숫자로 미적지근한 사람들도 포함한다면 말이다. 얼마나 많은 프롤레타리아들이 여전히도 사회민주주의에 대해 얼마나 문외한가! 여기에 가장 좋은 프롤레타리아 싹으로 가득찬 거대한 벌판이 있으며, 심지어 측량조차 할 수 없고 성인 프롤레타리아트가 퇴보한 부분들까지도 우리들에게 넘어올 때까지 재배를 미룰 수 없는 벌판들이다. 물론 계몽한 부모들의 자녀들에게 작용을 미치는 건 더 쉬우며 할 수 없는 건 아니기 때문에 젊은 프롤레타리아의 괴로운 부분을 위해서도 노력할 의무가 있다.

 

그러므로 젊은 사람들 가운데 반대운동이 필요하다는 건 의문의 여지가 없고 이런 반대운동으로 인해서 대상에 따라 서로다른 생활의 조건들과 조화를 이루며 기본적으로 상이한 방법으로 작업해야하며, 젊은 사람들의 서로다른 견해, 서로다른 성향과 서로다른 성격은 세부적으로 다루어야한다는 추론을 따르며, 일반적인 반대운동과 나란하게 특수한 부분을 부여해야하며 적어도 어느 정도는 특수한 단체들의 손에 맡기는게 좋으며. 당이 직면한 문제들과 결정적인 투쟁들도 더욱 가까워져 오면서 반대운동은 너무 광범위하고 파생하는 많은 결과들을 가져오며 분업할 필요를 더욱 더 강조하며, 상대적이더라도, 상대적으로 어려운 처지에 놓인 분업도 우리는 전혀 모른체하지 않는다.

 

 

이제 한 걸음 더 전진한다면 반군국주의 반대운동은 젊은사람들 내에서 반대운동 가운데 매우 특수하고 독특한 역할을 해준다. 젊은 사람을 교육해보고자 한다면 사회민주주의에 도달하기 어려운 계급들에게 자주 호소해야 하며, 프롤레타리아인 젊은 사람들을 더욱 포용하기 위해선 교육적으로 일반적인 노력보다 훨씬 더 멀리 퍼져나가야 하며, 일반적으로 노동자들의 교육적인 시설, 교육적인 과정, 강연 과정들에서 자주 접할 수는 없고 젊은 사람들에게 저작을 정기적으로 읽도록 접할 수도 없다. 또한 반군국주의 반대운동은 나이가 들면서는 교육에 대한 전반적인 노력들과 거의 접촉할 수 없기에 젊은 프롤레타리아들에게 호소하는게 좋다. 그렇다, 17세에서 21세 사이에 젊은 사람들이 적절한 대상이다. 교육에 대한 전반적인 노력들보다 훨씬 더 선전적인 성격도 띠고 있다. 이런 반대운동을 형성하고자 한다면 적어도 어느 정도는 후자의 교육적인 형태에서는 벗어나는게 좋으며, 또한 특수한 위험들도 있기 때문에 분류하자면 일반적인 분투들과는 결합하지 않는게 좋으며 한편으로 이런 일반적인 분투들보다 더 어렵지 않게하는 건 무조건적으로도 필요하고 불신을 초래하지 않고자 하며 또 한편으로는 모든 함정들을 잘 알고 특수하게 전수받은 사람들의 안내에 따라 반군국주의 반대운동을 괴롭힐 수 있는 위험을 최대한 피하고자 단계적으로 조치를 취하는게 좋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반군국주의 자료의 예로 군인들의 학대, 군사적인 정의 등은 너무 방대하고 흩어져 있기 때문에 이 모든 자료를 최대한으로 활용하고자 한다면 단순하게 세분화하고 분업하는게 필요하다. 그리고 이를 활용할 뿐만이 아니라 편집하고 엄선해서 모양을 갖추어야한다.

 

반군국주의 반대운동은 성인들 가운데서도 더욱 세부적으로도 효과적일 수 있다는걸 보여주는 바로 마지막 주장이다.

 

그러므로 보답을 줄 수 있는 충분한 작업의 기회도 있다!

 

그리고 독일에서 헌신한 반군국주의 반대운동으로부터 반군국주의를 발전하면서 지금까지 성취했던 성공들은 무엇이 있는가?

 

 

확실히 독일군들의 대부분은 붉다”. 독일 국가 내 정당 무리들을 한 눈에 흘긋봐도 상태를 잘 보여준다. 그리고 당연한 사실로 여기는 근거로 제국 연합의 유명한 수장인 폰 리베르트 중장(Lieutenant General von Lieber)사회민주주의의 발전과 독일 군대에 미친 작용이라는 흥미로운 화제의 책을 쓰고자 펜을 들었다. 지금은 사회민주당 배신자인 심지어 막스 로렌츠(Max Lorenz)조차도 무력감 때문에 경멸하고 있으며, 그의 고백에 따라 한때는 헌신적이었던 신봉자를 불태우고 있고, 폰 아이히혼 장군(General von Eichhorn)1906년 가을에 군대에 반사회민주주의적인 훈련교육을 신봉하도록 도입하고자 했다. 확실히 독일 유권자들의 3분의 1은 즉 25세 이상의 독일 남성 유권자들은 1903년 독일의회 선거에서 거의 사회민주주의에 투표한 건 사실이며 물론, 적어도 당분간은 사회민주주의가 나이든 계급들보다 젊은 계급들가운데서 더 강력한 지지를 얻는다는 건 전반적으로도 사실일 수 있다. 그러나 이 비율이 21-22살의 계급들이라서 좋은지에 대한 여부는 의문스럽다 또한 이런 젊은 사람들이 일반적으로 확신이 단단한 요소에는 전혀 속하지 않는다는 걸 매우 분명하게 해야하고, 그리고 사회민주주주의에 투표를 던지거나 실제로 사회민주당원으로 활동하는 건 굉장한 차이가 있으며 혹은 군대 내에 반군국주의의 여파로 뒤따른 모든 개인적인 위험에도 마주할 준비를 마쳐야한다. 심지어는 심리”, “제안”, “피의 논리로 다른 지면에서도 다뤘지만, 규율을 무너뜨릴 수 있거나 강력하게 기여하는 요인일 수 있으며, 계산적으로도 군대의 3분의 1이라도 이런 영적이고 도덕적인 정신적인 상태로 유지할 수 없게하거나 적어도 자국의 적에 맞서, 노동운동에 맞서, 쿠데타로, 폭력적이고 위헌적인 행동으로 고용도 어렵게 한다는데는 의문의 여지가 없다.

 

특히 전쟁을 위해 예비군과 예비역을을 동원하는 경우에는 군국주의에 더 부정적일 수 있는 건 사실이다. 190610, 보르베르트(Vorwaerts)의 한 군사적 협력자는 전쟁 시 소집한 예비역들과 예비군 병사들 가운데 지목하면서 이 경우에는 전체 군대의 대략 5분의 4를 이루며 적어도 100만 명은 여전히 군국주의적인 의미에서도 의지할 수 없다고 간주할 수 있다고 했으며 분명하게, 이에 대해서도 비판적인 태도를 취하고 심지어 군국주의적인 대중의 제안”, 또한 집단적인 정신병을 인정하면서도 숨길 수는 없다. 그리고 지휘권을 가진 군국주의적인 당국의 제안은 여기서도 군사적인 부역자들의 계산에도 큰 흠집을 낼 수 있다.

 

여기서 달성했던 건 노동운동 내에서도 전반적인 선전의 수단들로부터 성취할 수 있었다. 미래의 군인들에게도 특히 호소하면서도 지금까지는 독일 사회민주주의의 선전가의 활동으로 이뤄낸 건 거의 드물며, 잘 알려진 군 복무 의무자들을 위한 안내서”(Guide to Those Liable to Military Service) 외에도 1906년 여름에 당 집행위원회가 발행했던 전단지는 이보다 적절한 건 알지 못할 정도이며 두 출판물 모두 군대에 복무하는 사람들에게 적합한 법률적인 조항만을 다루고 있다. 진화가 도움을 줄 수 있는 건 사실이지만, 모든 걸 저절로 이뤄질 수 있다는 건 사실이 아니며 분류하자면 이런 정적주의와 운명론은 역사적인 유물론의 의미에서 심각한 실수라는 건 사실이며, 모든 선전의 뒷처리들도 마찬가지고 일반적인 반대운동만이 아니라 특수한 반군국주의 선전도 정당할 수 있지만 독일 내 반군국주의 선전을 보다 신속하고 적극적으로 개선해야하는 건 사실이다. 독일 남부에 젊은 수비대는 용감하게 문제의 실질적인 해결책을 모색한 공로도 있으며, 물론 작은 시작에 불과할 수도 있지만 곧 이어질 것이고, 목적이 어렵다면 곧바로 활동적인 지원도 찾아봐야 한다. 독일에서도 무정부주의적인 반군국주의 싹들이 자라나기 시작했다.

 

그리고 우리는 독일에 사회민주주의도 독일 노동운동의 새로운 인터내셔널의 핵심이자 정예부대인가?”라는 질문도 계속 던지고 있으며, 지나치게 조심하거나 확신하지도 않으며 문제를 밤늦게까지 씨름하고 해결하는 걸 좋아하기 때문에 부족하게 무장했지만 모든 힘과 전투적인 방법으로 최대한 발휘하며, 세계대전이나 러시아 개입1)이라는 사실과도 마주했으며 어느 정도는 피해낼 수 있었지만, 그리고 독일 사회민주주의도 여기에 책임져야하는가?

 

그리고 마침내, 독일 노동자들은 반군국주의 선전의 시야에도 떠오른 경찰의 노동자 대학살에 충분하게 박차를 가할 준비도 되지 않았는가?

 

이대로 둘 순 없기에 독일 사회민주주의는 군국주의도 평화를 바란다면, 전쟁을 준비하라!(si vis pacem, para bellum!)고 말을 내뱉도록 허용할 수 없고 눈감을 수도 없으며

 

프롤레타리아트에 대한 위험한 군국주의를 닿는 한 미리 줄여보고자 서둘러 반군국주의 선전을 개시하라!

 

그리고 분류하자면 독일에서 선전은 특히 어려운 건 사실이지만 그렇다고 뒤로 미룰만한 이유도 없으며 반대로, 오히려 가속하여 전진하고자 하는 동기여야한다.

 

독일 프롤레타리아가 고통스러워하는 자국의 정치적인 상황은 자포자기할만큼 절박해졌으며 독일 프롤레타리아트가 활동할 시기도 이제 충분히 무르익었다.

 

참조

 

1. 이런 희한한 사태가 발생할 수도 있다는 건 의문의 여지가 없으나 1906114일 독일의회에서 부엘로우(Buelow) 왕자가 발표한 이후에도 의심스러운 건 줄지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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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수한 반군국주의 선전을 위한 요구

 

 

 

 

반드시 군국주의는 내부에서 자멸하고 분열하는 많은 병균들을 품고 있으며 틀림없이 전반적인 자본주의 문화에도 서로를 산산조각낼 수 있는 모순적인 요소들도 많이 내포하며 그 중에선 작지 않게는 과학적, 예술적, 윤리적인 진형의 경향들도 군국주의에 맹공격을 가할 수 있다. 이를테면, 짐플리치시무스(Simplicissimus) 저작을 훼손하는 활동도 결코 과소평가할 순 없다.1) 크롬웰(Cromwell)의 역사관에서 1790년 프랑스와 1806년 독일의 역사는 얼마나 군국주의 체제가 더럽고 썩어서 그 자신도 무너지는지를 잘 알려준다. 물론 착상의 일종으로 사람들과 국가 권력 가운데 모든 피비린내 나는 분쟁들에서 고유한 혈액의 심리가 활발하고 강력해지면서 혈액의 최면술이나 심지어는 안드레예프가 언급한 세력들의 상관관계를 결정적으로 뒤집을 수 있는 피의 논리가 바로 있다. 이 모든 건 그 자체로는 유기적인 분열 과정의 일부로 선전의 필요에 대한 물음과 아무런 연관은 없으며, 자본주의에서 모든 서로다른 생활의 모습들도 마찬가지이다. 이 모든 걸 훌륭한 반대운동들의 틈새와도 잘 연관할 수 있어야한다.

 

군국주의에서 특수한 위험을 보여줄 수 있으며 프롤레타리아트는 최종적으로 이빨을 드러내고 무장한 도둑과 마주하고 있으며, “돈이냐 목숨이냐”(la bourse ou la vie)지만 돈이고 목숨이고!”(la bourse et la vie) 심지어 도둑의 도덕도 앞선다. 군국주의는 미래에 큰 위험일 뿐만이 아니라 심지어는 타격하지 않더라도 현재에도 실재한다. 군국주의는 경제적인 생활에도 희생적인 제물만이 아니라 문화적인 발전에도 흡혈귀이고 계급들로 모으는 주된 거짓말쟁이다. 군국주의는 또한 프롤레타리아트에게 정치적이고 경제적인 운동을 형성하는 계급투쟁의 전술들에서 마지막 비밀이자 공개적인 규제자이기도 하다. 모든 중요한 물음들도 자본주의의 잔혹한 권력으로 주된 기반인 군국주의로부터 결정한다. 군국주의는 반국주의 활동들도 무력화할 수 있으며, 군국주의는 무더위 속의 태풍이 엄습하고 방해하면서 당 활동은 부진해지고 의회주의는 더욱 더 나태해진다.

 

군국주의의 약해지게 하는 건 할 수 있는 한으로 평화롭고 유기적으로 발전하거나 적어도 할 수 있는 한으로 무력적 충돌도 제한하고 무엇보다도 정치적인 생활과 당 투쟁으로 신선한 생활에도 활력을 불어넣는다는 걸 의미한다. 군국주의에 맞서 무자비하고 체계적으로 싸워온 결과로 당은 튼튼해지고 혁명적인 정신으로 스며들면서 혁명적인 정신에도 활력을 돋구는 원천이다.

 

이 모든 걸 이루는데 필요한 군국주의와 싸우는데만이 아니라 특수한 방식으로도 싸워나간다. 이런 많은 파생한 결과들을 가지는 위험한 구조는 대담하고 대규모로도 강력하게 다뤄야만 대처할 수 있고 군국주의에 부합하는 행위도 구석구석 도처에서도 지칠 줄도 모르고 많은 파생한 결과들도 여전히 주목받는다. 군국주의에 맞서 싸우는데 흔한 류로 반대운동의 위험한 여건보다 더욱 탄력적이고 적합한 특수한 행동을 취하도록 강요한다. 독일에서는 대다수 사람들이 이런 개념에 맞서고자 싸우고 있으며 지금도 노력하고 있으며, 마지못해 이겨낸 모든 의심과 염려를 불식하고자 여성과 젊은 사람들에게도 특수한 선전도 펼친다. 농업 노동자들 가운데서도 반대운동만이 아니라 개별적인 수공예품들로 노동조합 선전도 세부적으로 다루었으며 마침내, 다른 나라들에서도 성공적으로 해낸 반군국주의 선전도 짚어볼 수 있으며 아마도 만하임에서 부결했던 114개의 동의안에도 빠르게는 시일 내에 기본적인 발상에 대한 문제도 전반적으로 알아낼 것이다.

 

분류하자면 이런 행동은 1900년 국제 회담에서 만장일치로 해결해서 잘 알려진 독일 사회민주주의의 의무이기도 하다.

 

이런 특수한 선전에 대한 요구가 군국주의에게 역사적은 아닌 무정부주의적인 개념과 전혀 관련은 없다. 우리는 자본주의 아래에서도 군국주의가 무슨 역할을 하고 있는지도 가장 분명하게 의식하며 잘 알고 있고 물론 우리는 군국주의는 자본주의의 일부에만 불과하기 때문에 자본주의보다 우위에 있는 수준에 놓는 먼 발상도 전혀 가지지 않는다. 보다 정확하게 말하자면, 자본주의에서도 특히나 해롭고 위험한 삶의 표시이다. 자본주의에 대한 우리의 전반적인 반대운동은 형태도 구체적으로 띠면서 자본주의적인 삶의 표시에도 직접적으로 맞선다. 우리는 반군국주의 세력과 함께 싸우면서도 흔한 정치 투쟁과는 별개로 한계를 지적할 수 있으며, 즉 반자본주의적이고 반군국주의적이며, 노동조합 투쟁과 협동조합과 교육적인 투쟁도 함께하면서 나란하기를 바란다.2)

 

반군국주의는 역사적으로 본래 이론적인 일반론에서도 중요하고 효과적이고 실천적인 운동으로도 성장한다면, 반군국주의는 모든 곳에서도 자라날 수 있으며, 연대한 민병대의 군대를 사용하면서도 자국의 적에 맞서면서 함께하는 건 물론이고, 국가들이 특수한 반군국주의 선전에 맞선다는 건 단 하나의 중요한 근거도 없다. 지금까지도 이런 군대 투입들을 실제로도 사전에 방지할 수 있었으며, 또는 너무 오래 전에 발생해서 사람들의 의식에서 사라지기도 했다. 불을 질러 타오른 후에도 불을 두려워하지 않는 건 언제나 사회민주주의가 자부할 수 있었다. 반대로 역사와 사회학, 비슷한 정당들의 경험들에서도 배우고 미래를 멀리 내다볼 수 있었으며, 그리고 이런 경험으로 훨씬 나은 전진을 할 수 있었다. 역사, 사회학, 이런 경험은 반군국주의에 대해서 참으로 분명하게 피력하며. 시기적으로도 무르익었다.

 

참조

 

1. 폰 제플린 소장(Major General von Zepelin)<교차로>(Kreuzzeitung), 19061223일 자에서 이 위험을 세부적으로 기록했다.

 

2. 위에서 특수한 반군국주의 선전이 필요한 추가적인 이유로는 P.165에서부터 이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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