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 나쁜 세계사 - 엠마 메리어트
'역사란 당시 그곳에 없었던 사람들이 말하는, 일어나지 않았던 사건들에 대한 거짓말 모음이다. - 조지 산타야나
실제로 어느 사건을 놓고 목격자 10명에게 사건의 실체를 물어보면 10명 모두에게서 서로 다른 대답을 듣게 되는 경우도 많다. 그러니 과거의 역사적 사건을 놓고 어떤 일이 일어났다고 말하기란 쉽지 않다. 특히 수십 년, 수백 년 세월의 간극이 있는 경우에는 사건에 대한 해석 자체가 불가능할 수도 있다.
역사에 대한 해석도 따지고 보면 우리가 믿고 싶은 것에 불과한 것일 수 있다.
역사 역시 인생처럼 복잡하고 미묘하다. 그럼에도 과거를 단순화하고 우리의 선입견에 맞도록 포장한다. 역사에서 자주 발견되는 오류다. 역사적 인물을 정해 놓은 캐릭터에 맞춰 영웅 아니면 악당이라는 식으로 구분한다. 그러나 역사에 등장하는 인물도 실제 있었던 인물이다. 그러니 당연히 우리들처럼 선한 면과 악한 면을 동시에 갖고 있었을 것이다.
역사를 신화화하는 것도 동화처럼 크게 해로울 것은 없다. 하지만 그 신화가 정치적 무기로 쓰일 때는 재앙을 초래할 수도 있다. 압제정권이 과거를 아예 창조할 수도 있고 구미에 맞게 왜곡할 수도 있다. 선전 전문가들과 정치인들이 역사 속 신화를 이용해 권력에 정당성을 부여하거나 정권의 권위를 강조하는 데 악용할 수도 있다.
실제 서부는 영화에서 보여주는 무법천지와는 한참 차이가 있었다. 최근 연구 결과에 따르면 개척민 사회에서의 범죄율은 상대적으로 더 낮았다. 빅토리아시대의 영국 런던에서 총에 맞아 죽을 확률보다도 낮았다고 한다. ... 주로 카우보이를 총잡이로 알고 있지만 실제 총을 살 수 있었던 카우보이는 거의 없었다고 한다. 당시 최신식 콜트 권총 한 자루를 사려면 카우보이 평균 월급 아홉 달치를 모아야 했다. ... 와일드 웨스트를 소재로 다룬 할리우드 영화는 전 세계 수백 만 명의 영화팬을 사로잡았고 출판업계와 엔터테인먼트 산업을 부흥시켰다. 하지만 아메리카 원주민을 비롯해 서부에 대한 이미지를 철저히 왜곡시킨 것도 분명하다.
미국을 대표하는 정치제도인 민주주의는 제헌 헌법을 근거로 하고 있는 만큼 제헌 헌법을 만들었던 미국 건국의 주역들은 당연히 민주주의 원칙에 근거한 나라를 세우려고 했을 것이라고 사람들은 생각한다. 하지만 벤자민 프랭클린과 조지 워싱턴 등 미국 건국의 주역들은 하나 같이 민주주의를 반대했을 뿐만 아니라 민주주의 자체를 불신했다. ... 대다수의 건국의 주역들은 직접적으로 국민의 정치 참여를 제한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헌법에서도 '민주적'인 부분을 한정했으며 어느 정도 이상의 재산을 보유한 상류층이 다스리는 나라의 건설을 꿈꿨다. ... 미국의 독립 선언문에 민주주의라는 용어는 보이지 않는다. ... 제헌 헌법이 만들어진 이후 미국 헌법은 지금까지 모두 27차례의 개헌 과정을 거치면서 더욱 정교해지고 민주화가 이뤄졌다. 헌법 개정을 통해 미국은 건국의 주역들이 만들었던 민주주의에 대한 각종 제한과 규제조항을 풀어야 했다.
일반적으로 매독은 크리스토퍼 콜럼버스 일행이 유럽에 퍼뜨렸다고 알려져 있다. 1492년의 역사적인 아메리카 대륙항해 기간 동안 콜럼버스의 선원이 당시 유럽인들에게는 익숙하지 않았던 성병인 매독에 걸렸고 이듬해 유럽에 이를 퍼뜨렸다는 것이다. ... 유럽에 만연된 매독이 콜럼버스 일행이 유럽에 매독을 옮겼다고 단언할 수는 없다. 유럽에는 이미 1세기 무렵부터 매독이 있었다는 증거가 새롭게 발견되고 있기 때문이다.
제2차 세계대전 때의 유대인 학살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것이 아우슈비츠와 강제 수용소다. ...아우슈비츠의 잔학상이 널리 알려진 것은 생존자들이 아우슈비츠에서 겪었던 공포의 경험을 생생하게 증언했기 때문이다. 이에 반해 라인하르트 집단 학살 수용소가 세상에 덜 알려진 것은 잔학상을 증언해 줄 생존자들초차 남아있지 않았기 때문이다. ... 아우슈비츠와 나치 독일의 강제 수용소에서 일어나 잔혹 행위는 전체 유대인의 학살 과정에서 일어났던 잔혹 행위 중에서 일부분에 지나지 않는다.
"무솔리니 시절에 기차만큼은 적어도 정해진 시간에 맞춰 도착했다." 기차가 연착을 하면 이탈리아 사람들은 이렇게 불평했다. 잔인한 독재자라도 잘한 일이 있다며 변호할 때 주로 쓰는 말이기도 하다. 과연 그럴까? ... <무솔리니>를 쓴 작가 피터 네빌은 무솔리니가 정권을 잡으면서 철도 시스템이 상당 부분 개선되긴 했다고 말한다. ... 하지만 대부분은 무솔리니 정권 이전 정부에서 추진했던 시스템 개선 작업의 결실을 무솔리니 정부가 누렸다. ... 이탈리아 기차가 정확하게 운행된다는 고정관념은 이탈리아 파시스트 정권이 만든 선전의 결과라고 봐야한다. 무솔리니 정부는 이탈리아 국민들에게 파시즘이 자유주의와 민주주의에 비해 우월하다는 인식을 심어주기 위해 선전에 몰두했다.
1930년대 미국의 대공항과 관련해 후버 대통령은 무기력했던 반면 후임인 루스벨트 대통령은 뉴딜정책으로 알려진 다양한 경제 개혁을 실시하는 등 정면으로 맞서 싸우며 대공황을 극복한 것으로 알려져있다. ... 겉으로 보기에 루스벨트의 뉴딜정책의 효과는 인상적이었다. 빈민들에게, 스스로 자립할 수 없는 영세민들에게 엄청난 도움을 제공했다. 수많은 도로를 건설했고 학교를 세웠으며 공공 건축물을 지었다. 또 정부정책에 대한 국민적 관심을 높이는 데도 기여했다. 하지만 뉴딜정책 중 많은 부분은 정상적인 시장을 왜곡시키는 작용을 했고 민간 부문의 경제 회복을 저해하는 작용을 했다.
대통령이 되기 전부터 링컨은 자신이 윤리적으로 노예제도에 반대한다는 입장을 자주 밝혔다. 하지만 링컨은 연설 대상에 따라 인종문제에 대한 자신의 입장을 수시로 바꿨다. 어떤 때는 노예제도를 악마와 같은 제도라며 맹렬하게 비난했고 또 다른 경우에는 흑인에 대한 백인의 우월성을 강조하기도 했다. ... 링컨의 공개적인 목표는 미국 연방제도를 유지하는 것이었다. 노예해방은 우선 목표가 아니었다.
제1차 세계대전에서 미국은 전쟁이 끝나갈 무렵에 참전했기 때문에 연합국의 승리에 별다른 기여를 하지 못했다는 것이 일반적인 평가다. 유럽의 분쟁에 개입하기를 꺼리다가 뒤늦게 전쟁에 뛰어들었기 때문에 서부 전선이 승리하는 데 실질적인 도움이 되지 못했고 대신 전후 처리 과정에 깊숙이 개입해 전리품만 챙겼다는 비판을 들었다. ... 영국 작가 고든 코리간은 그의 저서 <진흙탕, 피, 그리고 헛소리>에서 이렇게 주장했다. "미국이 직접 참전하기 이전에도 미국의 산업과 미국 정부의 지원으로 영국이 전쟁을 지속할 수 있었다. 물론 미국의 지원이 없었더라도 영국이 승리했을 수 있다. 하지만 훨씬 오랜 세월과 훨씬 많은 생명을 잃어야 했을 것이다."... 제1차 세계대전 승리에 기여한 미국의 공헌은 결정적이었다. 전쟁물자의 보급과 재정적 지원, 그리고 최종적으로는 병력까지 파병함으로써 연합군이 전쟁을 지속할 수 있었고 최종적으로 승리할 수 있었다.
이 무렵 영국에는 여성 운동가들의 폭력적인 행동에 대해 부정적인 여론이 형성되기 시작했다. 언론은 운동가들의 폭력 행위를 급진적이며 비정상적인 행동으로 보도했다. 그렇기 때문에 투표권을 부여할 만큼 여성들을 실뢰할 수 없다는 여론까지 생겼다. ... 일부 여성 운동가들의 극단적인 행동 때문에 여성들도 투표권을 행사해야 한다는 주장에 동조했던 의원 중에는 태도를 바꾸는 사람도 생겼다. ... 여성의 참정권 확보를 위해 여성 운동가들이 적극적으로 활동한 것이 여성들의 권리를 인식시키는 데 크게 기여한 것은 부정할 수 없다. 그렇지만 여성에 대한 차별을 없애는 데 결정적으로 기여한 것은 제1차 세계대전과 민주주의가 확산된 결과라고 봐야할 것이다.
최초의 증기기관은 제임스 와트의 발명품이 아니다. 따지고 보면 최초의 증기기관은 고대 그리스인이 만든 수증기를 이용하는 원시장비라고도 할 수 있다. 단, 제임스 와트가 최초의 발명자가 아니라고 해서 와트의 역할을 과소평가할 수는 없다. 증기기관을 효율적으로 개량해 산업혁명을 촉발시키는 데 있어 제임스 와트가 결정적인 역할을 했기 때문이다.
가톨릭교회에서는 지동설에 대한 믿음을 꺾지 않는 갈릴레오를 단죄하기 위해 늙은 갈릴레오를 어두운 감방에 가두고 고문을 했으며 갈릴레오는 마지막에 억지로 유죄를 인정하면서도 "그래도 지구는 돈다"고 중얼거린 것으로 알려져 있다. '갈릴레오 사건'은 과학적 이성과 종교적 맹신 사이의 갈등, 그리고 중세 가톨릭교회가 저지를 압제의 전형적인 사례로 자주 인용된다. ... 갈릴레오는 종교적인 인물이었다. 비록 자신의 과학적 견해를 놓고 논쟁이 벌어지기는 했지만 과학과 종교가 배치되는 것이 아니라 서로 조화를 이룰 수 있다고 믿었던 사람이었다. 결론적으로 갈릴레오는 가톨릭교회에 의해 처형당한 것이 아니었다. 갈릴레오의 명예를 깎아내리는 데 열심이었던 동료 과학자들에게 희생당했을 뿐이다. 가톨릭교회로부터 유죄판결을 받기는 했지만 남은 인생을 어두운 감방에서 갇혀 지냈던 것도 아니었다. 가택 연금 상태로 교외에 있는 자신의 별장에서 지내면서 편하게 생활했다. 그리고 그곳에서 갈릴레오는 자신의 남긴 걸작, <두 개의 새로운 과학에 관한 증명>을 집필하며 남은 일생을 보냈다.
3월 17일은 성 패트릭의 날이다. 서구의 많은 사람들이 이날이 되면 초록색 복장과 장식을 하고 아일랜드의 축제를 즐긴다. 성 패트릭은 대표적인 아일랜드의 성직자였기 때문에 많은 사람들이 그를 아일랜드 사람일 것이라고 생각하지만 사실은 아일랜드 출신이 아니다. 그는 영국 출신이다. ... 아일랜드에는 뱀이 없다. 전설에 의하면 성 패트릭이 모조리 바다로 쫓아 버렸기 때문이다. 사순절 기간에 뱀이 성 패트릭을 물려고 했던 것에 대한 벌칙이었다고 한다. .. 물론 전설이고 신화다. 성 패트릭이 뱀을 쫓아내기 훨씬 이전에도 아일랜드에는 뱀이 살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