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고 청탁에 연연해 하지 않고 끊임없이 쓰고 또 썼던, 그 시절이 아니면 발산할 수 없는 파워가 그때의 내게 있었습니다. 청탁도 받지 않는 일에 죽어라고 매달리는 20대만큼 숭고한 시기는 없습니다. 


책을 전혀 읽지 않는 사람은 아무리 유명작가라도 '저 사람은 신인인가?'하고 생각하게 되는 것이지요. 그 사람의 20대는 아무도 돌아보지 않습니다. 그리고는 '어느날 갑자기 혜성처럼 나타나다'라는 표현을 쓰는 것이지요. 그것은 그 사람의 20대를 모르기 때문입니다. ... 무시당하는 20대에 최선을 다해 노력한 사람만이 이윽고 '어느날 갑자기 혜성처럼 나타나는 것'입니다. 


나는 대학 4년을 하루도 빼놓지 않고, 매일 밤 그렇게 원고와 씨름을 했습니다. ... 나는 밤을 새우고 또 새워 아무도 봐주지 않는 원고를 쓴 것입니다. 


아름다움을 생각하면, 인간은 누구나 아름답게 됩니다.


사랑이란 타인에 대한 배려이자 자기 자신에 대한 배려입니다.


세상에 눈을 뜨게 만들어 주는 사람은 누구나 스승입니다.


인간은 하루에 얼마만큼의 말을 해야 한다는, 일정량이 정해져 있다고 합니다. 그것이 부족하면 혼잣말을 하게 됩니다. 이런 식으로 하는 혼잣말이 그 사람의 인생에 얼마나 중요한지 모른다고 심리학자들은 말합니다. 그것은 내면에 있는 자신과의 대화이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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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정지둔-김수영


조용한 시절은 돌아오지 않았다

그 대신 사랑이 생기었다

굵다란 사랑

누가 있어 나를 본다면은

이것은 확실히 우스운 이야깃거리다

다리 밑에 물이 흐르고

나의 시절은 좁다

사랑은 고독이라고 내가 나에게

재긍정하는 것이

또한 우스운 일일 것이다


조용한 시절 대신

나의 백골이 생기었다

생활의 백골

누가 있어 나를 본다면은

이것은 확실히 무서운 이야깃거리다

다리 밑에 물이 마르고

나의 몸도 없어지고

나의 그림자도 달아난다

나는 나에게 대답할 것이 없어져도

쓸쓸하지 않았다


생활무한

고난돌기

백골의복

삼복염천거래

나의 시절은 태양 속에

나의 사랑도 태양 속에

일식을 하고

첩첩이 무서운 주야

애정은 나뭇잎처럼

기어코 떨어졌으면서

나의 손 위에서 신음한다

가야만 하는 사람의 이별을

기다리는 것처럼

생활은 열도를 측량할 수 없고

나의 노래는 물방울처럼

땅속으로 향하여 들어갈 것

애정지둔



<김수영 전집1 시> 김수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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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나라의 장난 - 김수영


팽이가 돈다

어린아해이고 어른이고 살아가는 것이 신기로워

물끄러미 보고 있기를 좋아하는 나의 너무 큰 눈 앞에서

아해가 팽이를 돌린다

살림을 사는 아해들도 아름다웁듯이

노는 아해도 아름다워 보인다고 생각하면서

손님으로 온 나는 이 집 주인과의 이야기도 잊어버리고

또 한번 팽이를 돌려주었으면 하고 원하는 것이다

도회 안에서 쫓겨다니는 듯이 사는

나의 일이며

어느 소설보다도 신기로운 나의 생활이며

모두 다 내던지고

점잖이 앉은 나의 나이와 나이가 준 나의 무게를 생각하면서

정말 속임 없는 눈으로

지금 팽이가 도는 것을 본다

그러면 팽이가 까맣게 변하여 서서 있는 것이다

누구 집을 가보아도 나 사는 곳보다는 여유가 있고

바쁘지도 않으니

마치 별세계같이 보인다

팽이가 돈다


팽이가 돈다

팽이 밑바닥에 끈을 돌려 매이니 이상하고

손가락 사이에 끈을 한끝 잡고 방바닥에 내어던지니

소리없이 회색빛으로 도는 것이

오래 보지 못한 달나라의 장난 같다

팽이가 돈다

팽이가 돌면서 나를 울린다

제트기 벽화 밑의 나보다 더 뚱뚱한 주인 앞에서

나는 결코 울어야 할 사람은 아니며

영원히 나 자신을 고쳐가야 할 운명과 사명에 놓여 있는 이 밤에

나는 한사코 방심조차 하여서는 아니 될 터인데

팽이는 나를 비웃는 듯이 돌고 있다

비행기 프로펠러보다는 팽이가 기억이 멀고

강한 것보다는 약한 것이 더 많은 나의 착한 마음이기에

팽이는 지금 수천 년의 성인과 같이

내 앞에서 돈다

생각하면 서러운 것인데

너도 나도 스스로 도는 힘을 위하여

공통된 그 무엇을 위하여 울어서는 아니 된다는 듯이

서서 돌고 있는 것인가


팽이가 돈다

팽이가 돈다









<김수영 전집 1 시> 김수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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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술가이며 정신의학자인 프랭클 박사는 크고 작은 많은 고통을 겪고 있는 자기의 환자들에게 가끔, "어째서 자살을 하지 않았습니까?"하고 묻는다. ... 프랭클 박사는 이러한 대답에서 심리요법에 관한 지침을 종종 발견할 수 있었다. 그리하여 그와 같이 조각난 삶의 가느다란 실오라기를 의미와 책임의 확고한 유형으로 짜 만드는 것이 프랭클 박사가 스스로 창안한 현대의 '실존적 분석'과 '로고데라피'의 목적이요 추구하는 바다. ... 프랭클은 즐겨 니체의 말을 인용한다. "살아야 할 이유를 아는 사람은 거의 어떠한 상태에서도 견뎌낼 수 있다." -서문, 고든 W. 앨포트


만약 지금 그 누가 있어서 사람은 어떠한 환경에도 적응할 수 있다는 도스토예프스키의 인간에 대한 평범한 정의의 진실성을 우리에게 물어 온다면 우리는 기꺼이 다음과 같이 대답할 것이다. "그렇다. 사람은 어떠한 환경에도 적응할 수 있다. 그러나 우리가 어떻게 적응했는가는 묻지 말아 달라."


절망이 자살을 보류시킨다. 


레싱은 다음과 같이 말한 적이 있다. "이 세상에는 이성을 반드시 잃게 하는 일들이 있는가 하면, 아무것도 잃을 게 없는 일들도 있다." 비정상적인 상황에 대해 비정상적인 반응을 일으키는 것이 정상적인 행위이다. 심지어 우리 정신과 의사들도 비정상적인 상황에 처한 사람의 반응을 기대한다. 


죄수는 참담한 광경에도 이제는 눈 한 번 깜박이지 않았다. 이제 그의 감정은 무디어졌고, 그래서 냉담하게 지켜볼 수 있었다. 


나는 그를 깨우려고 했다. 그리고 그의 몸을 흔들어 깨우려고 손을 뻗쳤으나 내가 하려던 짓에 오히려 내가 놀라 갑자기 손을 거두고 말았다. 그 순간 나는 한 가지 사실을 절실하게 의식했다. 그 사실은 아무리 무서운 꿈이라도 우리를 에워싸고 있는 수용소의 현실보다 더 고약하지는 않다는 것이다. 이와 같은 생각이 들자 나는 뻗쳤던 손을 거두지 않을 수 없었다. 


로고데라피는 보다 미래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다시 말하면 환자가 장래에 실천(혹은 충족)되어야 할 임무와 의미에 중점을 두고 있다는 것이다. 


'로고스(logos)'는 '의미'를 뜻하는 그리스어이다. 


정신건강을 위해서는 어느 정도의 긴장이 필요하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즉 사람이 이미 성취한 것과 앞으로 달성해야 할 것 사이의 긴장, 혹은 현재 어떤 사람인가 하는 것과 미래에 어떤 사람이 될 것인가의 사이에서 차이에서 오는 긴장 등이 그것이다. 이러한 긴장은 인간이 타고난 것이며, 그렇기 때문에 정신적 안정에 필요불가결한 요소이다. 


과잉된 의욕, 또는 내가 부르고자 하는 '과다한 의욕'은 특히 성적 신경증에서 관찰될 수 있다. 남자가 자기의 성적 능력을 과시하려고 하면 할수록, 또 여자가 오르가슴을 체험하려고 노력하면 할수록 그들의 성공률은 반대로 적어지게 마련이다. 쾌락은 그저 부수적인 결과나 부산물이어야 하며, 또 반드시 그대로 유지되어야 한다. 그렇지 않고 쾌락 그 자체에 목적을 두게 되면 그 정도에 따라 망쳐지게 되고 결단나게 될 것이다.


그는 땀을 많이 흘리는 데 대한 공포때문에 나와 상담하러 온 것이었다. 그가 발한증이 터지리라고 예상하기만 하면 어김없이 발한작용을 촉진시키기에 충분했다. 이 순환형성을 제거하기 위해서 나는 다음과 같이 환자에게 충고했다. 땀이 다시 나려고 할 경우에 그가 얼마나 흘릴 수 있는가를 사람들에게 여유있게 보여주기 위해 작정하라고. 한 주일이 지난 후 그는 보고하러 다시 나를 찾아왔다. ... "지난 번 나는 한 쿼터밖에 땀을 흘리지 못했는데 이제는 적어도 열 쿼터는 흘려야지." 그 결과 그는 이미 땀 공포증으로 4년이나 고통을 겪었는데 지금은 단 한번의 치료로 일주일도 안되어 영원히 그 공포에서 벗어났다. 


역설적인 의도는 불면증의 경우에도 적용될 수 있다. 잠을 이루지 못하는 데 대한 공포는 잠을 자야겠다는 과잉된 의도와는 반대로 환자가 잠을 잘 수 없는 결과를 초래한 것이다. 이러한 특별한 공포를 극복하기 위해서는 잠을 자려고 노력하지 말라고 나는 종종 환자에게 충고한다. 다시 말하면 잠을 자야겠다는 과잉 의도는 잠을 이룰수 없을 것이라는 예측 불안에서 생겨난 것이므로 잠들지 않으려는 역설적인 의도로 바꿔야 한다는 것이다. 


신앙과 희망, 그리고 사랑은 '의지(will)'로 성립되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단순히 지휘로서 성립될 수 없다. 나는 믿으려고 '의지'할 수 없고, 희망하려고 '의지'할 수 없으며, 사랑하려고 '의지'할 수 없다. 그리고 나는 절대로 의지하려고 '의지'할 수 없는 것이다.


라 로슈푸코는 이별이 사랑에 미치는 영향에 관하여 언급한 적이 있다. 그 말을 의역한다면, 큰 불꽃이 강풍에 더욱 거세어지는 반면 조그만 불꽃은 그로 인해 꺼져버리는 것처럼 강한 신앙은 곤경과 재난에 의해 더욱 굳건해지는 반면 연약한 믿음은 그로 인해 약화된다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빈이란 땅에서 부각된 심리요법 학파에 각기 한 가지씩의 미덕을 할당해 주고 싶은 마음을 금할 수 없다. 용기라는 미덕은 아들러 학파에게 적합하다. ... 또 하나의 미덕은 프로이트 학파의 정신분석, 즉 그 객관성에 맞는다고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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슬픔을 위하여 - 정호승


슬픔을 위하여

슬픔을 이야기하지 말라.

오히려 슬픔의 새벽에 관하여 말하라.

첫아리를 사산한 그 여인에 대하여 기도하고

불빛 없는 창문을 두드리다 돌아간 

그 청년의 애인을 위하여 기도하라.

슬픔을 기다리며 사는 사람들의

새벽은 언제나 별들로 가득하다.

나는 오늘 새벽, 슬픔으로 가는 길을 홀로 걸으며

평등과 화해에 대하여 기도하다가

슬픔이 눈물이 아니라 칼이라는 것을 알았다.

이제 저 새벽별이 질 때까지

슬픔의 상처를 어루만지지 말라.

우리가 슬픔을 사랑하기까지는

슬픔이 우리를 완성하기까지는

슬픔으로 가는 새벽길을 걸으며 기도하라.

슬픔의 어머니를 만나 기도하라.









<슬픔이 기쁨에게> 정호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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