맨 먼저 자신을 존경하는 것부터 시작하라. 아직 아무것도 하지 않은 자신을, 아직 아무런 실적도 이루지 못한 자신을 인간으로서 존경하는 것이다. 


스스로가 한심하게 여겨지고 사람에 대한 증오심이 느껴질 때에는 자신이 지쳐 있다는 신호라 여기고 그저 충분한 휴식을 취하라. 그것이 스스로를 위한 최선의 배려다. 


주변이나 세상에서 일어나는 수많은 일마다 고개를 들이밀면 결국에는 공허해질 뿐이다. ... 우리의 인생은 세상의 모든 일들을 보고 들을 수 있을 만큼 오래도록 이어지지 않는다. 젊은 시절, 자신이 관계할 방향을 착실히 파악하고 그것에 전념하면 훨씬 현명하고 충실한 자신의 인생을 살아갈 수 있다. 


더 기뻐하라. 사소한 일이라도 한껏 기뻐하라. 기뻐하면 기분이 좋아질 뿐 아니라, 몸의 면역력도 강화된다. ... 마음이 이끄는 대로 어린아이처럼 기뻐하라. ... 인생을 기뻐하라. 즐겁게 살아가라.


함께 침묵하는 것은 멋진 일이다. 더 멋진 일은 함께 웃는 것이다. 두 사람 이상이 함께 동일한 체험을 하고, 함께 감동하고 울고 웃으며 같은 시간을 함께 살아간다는 것은 너무도 멋진 일이다.


즐거움이라는 것은 언제나 어설픈 지식을 가진 자의 손아귀에 있다. ... 시작한 지 얼마 되지 않은 취미는 언제나 변함없이, 참을 수 없을 만큼 굉장한 즐거움을 선사한다. 그렇기 때문에 사람은 배울 수 있다. 다 자란 어른일지라도 '배움'의 즐거움을 통하여 그 무언가의 달인이 될 수 있다. 


한정된 시간 속에서 무언가를 하는 이상, 불필요한 것들을 벗어나 말끔히 털어버리지 않으면 안 된다. 그러나 무엇을 버릴 것인가에 대하여 고민할 필요는 없다. 마치 노랗게 변한 잎이 나무에서 떨어져 사라지듯이, 당신이 열심히 행동하는 동안 불필요한 것은 저절로 멀어지기 때문이다. 그렇게 우리의 몸음 더욱 가벼워지고 목표한 높은 곳으로 한 걸음 더 나아간다.


지금 이 인생을 다시 한 번 완전히 똑같이 살아도 좋다는 마음으로 살라.


자신의 의견을 정당화하기 위해 이렇다 저렇다 논하지도 말라. 그것은 오히려 많은 사람들에게 불신감을 불러일으킬 수 있다. 자신의 의견을 관철시키고 싶다면 일단은 단언하라.


그것이 사물이든 인간이든 마찬가지다. 이미 손에 넣어 익숙해졌기에 싫증이 난다. 그러나 그것은 자기 자신에게 싫증나 있는 것이다. 손에 넣은 것이 자기 안에서 변하지 않기에 질린다. ... 인간으로서 끊임없이 성장하는 사람은 계속적으로 변화하기에 똑같은 사물을 가지고 있어도 조금도 싫증을 느끼지 않는다. 


지루함을 느끼는 자는 높은 감성으로 활발한 활동을 추구하려는 정신을 가지고 있기에, 뜻밖에 주어진 시간에 지루함을 느낀다. 


친구와 많은 이야기를 나눠라. 여러 가지에 대하여 이야기하라. ... 자신이 이야기한 것은 자신이 믿길 원하는 구체적인 어떤 것이다. 가슴을 열고 허심탄회하게 친구와 이야기를 나눔으로써 자신이 무엇을 어떻게 생각하고 있는지가 명확히 보인다. 또한 누군가를 친구로 삼는다는 것은 자신이 그 친구 안에 존경할 만한 그 무엇, 인간으로서 어떤 동경을 품고 있음을 뜻한다. 


자신과 친구에 대해서는 늘 성실하라. 적에 대해서는 용기를 가져라. 패자에 대해서는 관용을 베풀어라. 그 밖의 모든 경우에 대해서는 언제나 예의를 지켜라.


친해지면 상대의 개인적인 영역에까지 성큼 발을 들여놓아도 된다고 생각하는 종류의 인간과는 결코 교제하지 마라. 그런 사람은 가족처럼 사귄다는 것을 빌미로 결국 상대를 자신의 지배 아래, 영향력 아래 두려고 하기 때문이다. 교우관계에서도 서로를 혼동하지 않는 주의와 배려는 중요하다. 그것이 이루어지지 않으면 친구로 지낼 수 없다. 


늘 민감하고 날카로울 필요는 없다. 특히 사람과의 교제에서는 상대의 어떤 행위나 사고의 동기를 이미 파악했을지라도 모르는 척 행동하는 일종의 거짓 둔감이 필요하다. 


자신에 대하여 생리적 혐오를 가진 상대에게 아무리 정중하게 대해도, 그 자리에서 자신에 대한 생각이 달라지지는 않는다. 결국에는 도리어 무례한 놈이라 여겨질 뿐이다. 반드시 모든 이로부터 사랑받아야 한다고 생각지 말라. 이러한 때에는 무리하게 애쓰지 말고, 평소의 자세로 담담히 지내는 것이 최선이다.


살아 있는 물고기를 손에 넣기 위해서는 밖으로 나가 스스로 낚아 올려야 한다. 마찬가지로 자신의 의견을 가지기 위해서는 스스로 자신의 생각을 깊이 파고들어 언어화하지 않으면 안 된다. 


악인에게 공통점이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는가? 그들의 공통점이란 자신을 증오한다는 것이다. ... 그들이 자기 자신을 미워하지 않고 스스로를 사랑할 수 있도록 우리가 관심을 기울여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악은 급속도로 세상에 만연하게 될 것이다.


너무 과한 선물을 하면 상대는 고마워하지 않는다. 부담스러운 짐을 받았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선물은 마음이라고 하지만, 적당하지 않으면 상대를 난처하게 만들 뿐이다. 


타인을 이렇다 저렇다 판단하지 말 것. 타인을 평가하지도 말 것. 타인에 대한 소문도 입에 담지 말 것. 그 사람을 이렇다 저렇다 하는 생각도 애당초 하지 말 것. 


논리적이고 설득력 있는 문장을 쓰기 위해 문장의 기술을 아무리 배웠다고 해도 논리적인 글을 쓸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자신의 표현이나 문장을 개선하기 위해서는, 기술을 배우기 이전에 자신의 머릿속을 개선하는 일이 우선이다. 


악과 독이 존재하기에 사람은 극복할 기회와 힘을 얻고, 이 세상을 살아갈 수 있을 만큼 강하게 단련된다.


사랑한다는 것은 자신과 비슷한 자를 찾거나 슬픔을 나누는 것도 아니며, 자신을 사랑하는 사람을 기꺼이 받아들이는 것도 아니다. 사랑한다는 것은 자신과는 완전히 정반대의 삶을 사는 사람을 그 상태 그대로, 자신과는 반대의 감성을 가진 사람을 그 감성 그대로 기뻐하는 것이다. ... 두 사람 모두 그대로 기뻐하는 것이 사랑이다. 


사랑은 영원한 꽃다발을 들고 우매할 만큼 아낌없이 사랑하지 않고는 견딜 수 없는 것이다. 그 상대가 누구든 사랑할 가치가 없는 자일지라도, 불공정한 인간일지라도, 사랑을 주어도 절대 감사 따윈 하지 않을 사람일지라도. 비는 선인의 위에도 악인의 위에도 차별하지 않고 내린다. 사랑도 그와 같아서 상대를 선택하지 않고 온몸을 적시고 만다. 


행위는 약속할 수 있다. 그러나 감각은 약속할 수 없다. 왜냐하면 감각은 의지의 힘으로는 움직일 수 없는 것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영원히 사랑한다는 약속은 불가능한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사랑은 감각만이 아니다. 사랑의 본질은 사랑한다는 행위 그 자체이기 때문이다. 


당신은 연인을 원하는가. 좋은 사람이 나타나기만을 기다리고 있는가. 자신을 깊이 사랑해 줄 사람을 원하고 있는가. 이것은 실로 잘난 척의 최절정이라고 말할 수 있다. 


결혼에 발을 들여놓을 것인지 말 것인지를 망설이고 있다면 차분히 자신에게 질문을 던져 보라. 자신은 상대와 여든이 되어도, 아흔이 되어도 여전히 즐겁게 이야기를 나눌 수 있을까? 오랜 결혼생활 동안 많은 일들이 일어난다. 그러나 그것들은 모두 순간적인 것이며 어느 사이엔가 세월 뒤로 흘러간다. 그러나 둘이서 끊임없이 대화를 나누는 일은 결혼생활의 대부분을 차지하고 노년이 될수록 대화 시간은 길어진다. 


우리가 읽어야 할 책이란 다음과 같은 것이다. 읽기 전과 읽은 후 세상이 완전히 달리 보이는 책. 우리들을 이 세상의 저편으로 데려다 주는 책. 읽는 것만으로도 우리의 마음이 맑게 정화되는 듯 느껴지는 책. 새로운 지혜와 용기를 선사하는 책. 사랑과 미에 대한 새로운 인식. 새로운 관점을 안겨주는 책. 


어떤 일이 불합리하다는 것이 그것을 폐지해 버리는 최우선적인 이유가 되지는 않는다. 불합리하기에 오히려 그 같은 일을 필요로 하는 첫 번째 조건이 되는 경우도 있기 때문이다. 


모든 좋은 것은 멀리 돌아가는 길을 통해 목적에 다다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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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름달에게1>


너는 

나만의 것은 아니면서

모든 이의 것

모든 이의 것이면서

나만의 것


만지면

물소리가 날 것 같은


세상엔 이렇듯

흠도 티도 없는 아름다움이 있음을

비로소 너를 보고 안다

달이여


내가 살아서

너를 보는 날들이

얼마만큼이나 될까?




<보름달에게2>

...

내가 죽으면

너처럼 부드러운 침묵의 달로

사랑하는 이들의 가슴에

한 번씩 떠오르고 싶다



<낡은 구두>


내가 걸어다닌 수많은 장소를

그는 알고 있겠지

내가 만나 본 수많은 이들의 모습도

아마 기억하고 있겠지


나의 말과 행동을 지켜 보던 그는

내가 쓴 시간의 증인

비스듬히 닳아 버린 뒤축처럼

고르지 못해 부끄럽던 나의 날들도

그는 알고 있겠지


언제나 편안하고 참을성 많던

한 켤레의 낡은 구두

이제는 더 신을 수 없게 되었어도

선뜻 내다 버릴 수가 없다


몇 년 동안 나와 함께 다니며

슬픔에도 기쁨에도 정들었던 친구

묵묵히 나의 삶을 받쳐 준

고마운 그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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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식에 화가 들어 있는 경우가 있다. ... 우리는 농부들이 가축을 더 인간적인 방식으로 기르는 데 도움을 주도록 노력을 해야 한다. 우리는 또 유기적으로 길러진 채소를 사 먹어야 한다. 값이 더 비싸지만, 적게 먹으면 된다. 우리는 적게 먹는 법을 배워야 한다.


먹는다는 것 자체가 하나의 깊은 수련이다. 나는 음식을 한 입 한 입 아주 천천히 즐기면서 먹는다. 그 음식을 자각하고, 내가 지금 음식을 먹고 있다는 사실을 자각한다. 우리는 이런 행동을 수련을 통해서 익힐 수 있다. 무엇보다도 음식을 즐기면서 아주 신중하게 씹어서 먹어야 한다. 그리고 이따금 쉬어가면서 같이 앉은 사람들과 얘기를 나누면 더욱 즐거워질 것이다. 아무 근심걱정도 하지 않고 편안한 마음으로 앉아서 천천히 음식을 음미하면 그 시간이 참으로 놀랍다는 기분이 들기도 한다. 


과식을 하게 만드는 주범이 바로 눈이다. 우리는 눈이 원하는 만큼 먹을 필요가 없다. ... 우리의 눈은 위보다 더 크다. 


어떤 사람이 나의 마음을 아프게 해서 화가 치밀었을 때는 자신의 마음을 돌아보고, 자신의 화를 세심하게 보살펴야 한다. 그에게 무슨 말을 하거나 행동을 해서는 안 된다. 화가 치밀어오른 상태에서 섣불리 말하거나 행동하게 되면 그 사람과의 관계가 더욱 악화될 뿐이다. 


화내는 것도 습관이다. 그 연결고리를 끊어라.


다른 사람의 고통을 이해할 때 우리는 그를 응징하려는 생각을 버리고, 오히려 돕고자 하는 마음을 가질 수 있다. 


사랑하는 사람과 평화회담을 시작하라. "여보, 이제까지는 우리가 서로에게 고통을 주었어. 당신도 나도 우리는 화의 희생자였어. 우리는 서로를 지옥으로 만들었던 거야. 이제 나는 달라지고 싶어. 난 우리가 서로 동지가 되기를 원해. 동지가 되어서 서로를 보호해주고, 함께 수련을 하고, 서로 힘을 합쳐서 우리 마음속의 화를 깨끗이 풀어냈으면 좋겠어. 이제부터는 당신도 나도 자각을 실천해서 제대로 한번 살아봤으면 좋겠어. 여보, 당신 도움이 필요해. 당신의 협력이 필요해. 당신이 없으면 난 성공할 수 없어." 비단 아내뿐만이 아니라 아들이나 딸에게도 이 같은 말을 할 수 있을 것이다. 이것이 깨달음이다. 이것이 사랑이다. 


나를 화나게 한 사람에게 맞대응을 하지 않는다고 해서 화를 감추거나 피해서는 안 된다. 내가 지금 화가 나서 고통을 당하고 있다는 사실을 타인에게 알려주어야 한다. ... 그러나 말을 아주 차분하고 침착하게 해야 한다. ..."여보, 나 지금 마음이 아파. 당신이 그걸 알아주었으면 좋겠어. 여보, 난 최선을 다하고 있어. 나는 당신뿐만 아니라 어느 누구도 탓하지 않으려고 애쓰고 있어. 우리는 아주 가까운 사이이고, 서로 돕겠다고 다짐했기 때문에, 나는 지금 당신에게 꼭 도움을 청해야 한다고 생각해. 내가 이 아픔에서 벗어나려면 당신이 꼭 나를 도와줘야 해."


상대방의 화가 당장 풀어지기를 기대하지 마라. 화는 살아 있는 생명체다. 화가 일어나면, 다시 가라앉을 때까지는 시간이 걸린다. ... 타인을 사랑하고자 한다면 먼저 인내를 배워야 한다. 


부부는 둘이서 하나로 살기로 다짐을 한 사이다. 부부는 행복도 고통도 나눌 것이라고 진심으로 맹세를 했다. 그러므로 어느 쪽이 다른 쪽에게 서로의 관계를 새롭게 하기 위한 도움을 청하는 것은 그 맹세의 연속일 뿐이다. 


사랑의 말이 우리를 구해줄 것이다. 연민의 정으로 귀를 기울이는 것이 우리를 구해줄 것이다. 그것은 우리가 실현할 수 있는 기적이다. 우리에겐 그럴 능력이 충분히 있다.


"주여, 저들을 용서하소서. 저들은 저희가 하는 일을 모르나이다."라고 예수는 기도했다. 어떤 사람이 범행을 저질러서 타인들에게 큰 고통을 안겨주는 것은 자신이 무슨 짓을 하고 있는지를 깨닫지 못했기 때문이다.


호흡은 우리 몸의 일부다. 우리가 무언가를 두려워하거나 화가 났을 때 호흡의 질이 크게 떨어진다. 숨이 짧아지고, 소리가 나고, 호흡이 평화롭게 이루어지지 않는다. 그러나 의식적으로 숨을 들이쉬고 내쉼으로써 호흡을 안정시키면, 불과 몇 분 만에 호흡의 질이 한결 나아진다. 호흡이 가벼워지고, 소리가 나지 않고, 훨씬 더 조화롭게 이루어진다. 그리고 마음도 진정되기 시작한다. 명상과 마찬가지로 호흡도 하나의 기술이다.


인생에서 '관계'보다 중요한 건 없다. 


관계를 시작할 때는 서로가 천국에 사는 것 같은 기분이었다. 서로 깊이 사랑했고, 더없이 행복했다. 이제는 서로를 전혀 사랑하지 않는 것 같고, 서로를 버린 것 같다. 서로가 또 다른 사람을 찾고 있는 것도 같다. 천국이 지옥으로 변했고, 그 지옥에서 벗어날 수가 없다. 그 지옥은 도대체 어디서 왔는가? 우리의 등을 떠밀어서 지옥으로 몰아넣고 가둔 사람이 있었던가? 아니다. 그 지옥은 우리의 마음이 만들어낸 것이다. 우리의 관념과 그릇된 판단이 만들어낸 것이다. 그러므로 그 지옥을 깨뜨려서 우리를 자유롭게 할 수 있는 것은 바로 우리의 마음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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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리가 사람을 만든다.


모두를 만족시킬 해결책은 없습니다. 올바른 판단이라 확신한다면 비난을 두려워해서는 안 됩니다.


한류와 난류가 만나는 곳이 황금어장이다. 자연의 생태계와 마찬가지로 인간 세상도 다양성이 중요하다. 서로 다른 이질적인 문화가 만날 때 창조적인 힘이 커진다.


로마시대의 철학자 세네카는 "어려우니까 감히 손을 못 대는 것이 아니라 과감하게 손을 못 대니까 어려워지는 것"이라고 했다. 


"재능이 뛰어난 사람은 숨어 있어도 마치 주머니 속의 송곳 끝(낭중지추)이 밖으로 나오듯이 남에 눈에 드러나는 법이다."


맥아더가 자신의 회고록에서 태평양전쟁 당시 사실상 니미츠의 공을 모두 자기 공으로 돌린 데 대해 니미츠는 "그는 기억력이 아주 좋네"라고 말했다. 니미츠는 절대 동료에게 부정적인 평을 하는 법이 없었다. 니미치는 개성이 강한 장군들을 잘 조율하면서 전쟁을 승리로 이끌어 '장군들의 장군'이라는 닉네임을 얻었다. 니미츠가 평생 좌우명으로 삼은 것은 친할아버지가 해준 말이었다. "최선을 다하고 걱정 따위는 하지 말아라."


말은 짧고 적게 할수록 무게가 실립니다.


공자가 채나라고 가던 중에 식량이 떨어져 7일 동안이나 굶게 되었다. 공자는 한 마을 입구에 도착해 잠시 쉬는 도중 피곤함에 지쳐 깜빡 잠이 들고 말았다. 잠결에 어디선가 밥 냄새가 풍겨와 눈을 뜨게 되었다. 나가 보니 제자 안회가 밥을 짓고 있었다. 그런데 그 순간 안회가 밥솥에서 밥 한 술을 떠먹는 것이 아닌가. 아무리 배가 고팠기로서니 어찌 스승보다 먼저 밥을 떠먹는단 말인가. 공자는 괘씸한 생각이 들었지만 전혀 내색하지 않고 안회를 불러 말했다. "방금 내가 선잠에 꿈을 꾸었는데 돌아가신 아버님이 나타나셨다. 지금 네가 지은 밥으로 조상님들께 먼저 제사를 드리고 싶구나." 그 말을 들은 안회는 정색을 하며 이렇게 대답했다. "저 밥으로는 아니 되옵니다. 스승님께 드리려고 마을에서 쌀을 얻어다 밥을 지었는데 솥뚜껑을 여는 순간 천장에서 그을음이 떨어졌습니다. 스승님께 그냥 드릴 수도 없고 버리기도 아까워서 제가 그 부분만 조금 떠먹었습니다. 저 밥은 스승님께서 그냥 드시고, 제가 다시 쌀을 구해와 제사를 드리는 것이 좋겠습니다." 공자는 이 말을 듣고 자신의 경솔함을 부끄러워하며 이렇게 탄식했다. "예전의 나는 나의 눈을 믿었다. 그러나 나의 눈도 완전히 믿을 것이 못되는구나. 예전의 나는 나의 머리를 믿었다. 그러나 나의 머리도 완전히 믿을 것이 못되는구나. 한 사람을 이해한다는 것은 진정 어려운 일이다."


이승한 홈플러스 회장은 "탁월한 리더는 대개 단기간의 높은 재무적 성과를 만들지만, 위대한 리더는 기업이 지속적으로 성장할 수 있는 기업문화와 시스템을 남긴다"고 했다. 


사람은 누구나 살아가면서 고통을 받는다. 우선 태어나서 늙고 병들고 죽는 생로병사의 네 가지 고통이 있다. 이와 더불어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 있지 못하고 헤어져야 하는 고통인 애별리고가 있다. 다시는 만나고 싶지 않을 만큼 미워하는 사람을 만나 함께 있어야 하는 원증회고의 고통도 있다. 너무나 갖고 싶지만 갖지 못하는 고통인 구부득고와 몸의 감각기관이 욕심을 부려 만들어내는 고통인 오성원고가 있다. 불가에서는 이 여덟 가지 고통을 팔고라고 한다. 여기서 오온이란 눈, 귀, 코, 입, 몸의 다섯 가지를 말한다. 이익이 되는 것만 보고 듣고 맡고 먹고 취하려고 하는 욕심을 지칭한다. 욕심이 고통을 낳고 욕심이 악행을 불러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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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카와가 중간자론을 발표한 것은 1934년 11월로, 당시 그의 나이는 불과 스물여덟 살이었다. 그리고 이 중간자론은 이듬해 <소립자의 상호작용에 대해>라는 영어 논문으로 세상에 알려졌다. 새삼 거론할 필요도 없지만, 중간자론이란 원자핵을 이루는 양자와 중성자 사이에 '중간자'라는 입자가 존재하여 이것이 양자와 중성자 사이를 오가며 강한 상호 작용(강력)의 원인이 된다는 것이다. 유카와는 이 중간자가 전자의 약 200배의 질량을 가졌다고 추정했는데, 중간자라는 명칭은 그 질량이 대략 전자와 중성자(혹은 양자)의 중간 정도였기에 붙여진 것이다.


전자, 뮤온, 타우, 전자 중성미자, 유온 중성미자, 타우 중성미자 등 여섯 종류로 거의 굳어진 렙톤을 제외하고, 이미 수백 종류에 달한 바리온과 메존을 과연 '소립자'라고 부를 수 있을 것인가 하는 의문이 자연스럽게 등장했다. 바리온과 메존의 근저에는 그것을 구성하는 더 작은 입자들, 다시 말해 기본 입자들이 존재하지 않을까? 이러한 의문은 1962년 머리 겔 만과 조지 츠바이크 등에 의해 쿼크 모형이라는 새로운 이론으로 구체화 되기에 이르렀다. 이 이론에 따르면 바리온과 메존의 근저에 '쿼크'라는 것이 있는데, 3개의 쿼크(u,d,s)가 결합하여 바리온을 이루고, 쿼크와 반쿼크가 결합하여 메존을 이룬다. 


대상을 관측하려는 행위는 많은 가능성들 중에서 하나를 선택하는 것을 의미했다.


전자는 모든 물질 안에 존재하는데, 대부분의 경우 원자핵과 결합하여 원자를 이루고 있다. 그런데 동이나 철 같은 금속 안에서는 전자의 일부가 원자핵의 속박에서 해방되어 (즉 자유전자가 되어) 자유롭게 돌아다니고 있다고 여겨진다. 그리고 전압을 걸면 철사 속의 무수한 자유전자가 음극에서 양극으로 달려간다. 이것을 전류라고 본다. 이 전자를 금속 밖으로 끄집어낼 수도 있다. 예를 들어 펌프로 유리관 안의 공기를 빼내 고도의 진공 상태를 만들고, 그 안에 삽입해 놓은 전극 사이에 이른바 진공방전을 행하면 음극으로부터 일종의 방사선이 나온다. 이것을 '음극선'이라고 부르는데, 그 정체는 전자와 같다. 역사적으로 보면 음극선의 정체를 연구하다가 거꾸로 전자의 존재가 실증되었다. 


중간자는 지상의 물질 안에는 존재하지 않는다. 또 이것을 실험실 안에서 만들어내는 것도 오늘날에는 아직 불가능하다. 그러나 우주선 안에는 이것이 매우 많이 포함되어 있다. 우주선이란 지구 밖으로부터 오는 투과력이 강한 방사선이다.  


나는 메이지 40년(1907년)에 도쿄에서 태어났는데, 이듬해 아버지(오가와 타쿠지)가 교토제국대학에 부임한 이후, 1932년 봄까지 20년 넘게 교토에서 계속 지냈다. 아버지의 전공은 지질학과 지리학이었는데, 그 연구벽은 고고학, 중국학에서부터 서화, 검도, 바둑에 이르기까지 광범위하여 서재나 마당은 물론 거실에서 현관까지 온갖 종류의 책들이 엄청나게 쌓여 있었다. 넓은 집만을 찾아 이사를 다녔지만 책은 점점 늘어날 뿐이어서 가족들은 언제나 그것들을 정리하는데 골머리를 앓아야 했다. 그런 집에서 자란 나는 자연스럽게 책에 친숙해졌고, 여러 가지 책을 손에 잡히는 대로 읽었다. 그것이 훗날 내게 어떤 영향을 미쳤는지 정확히는 알 수 없다. 하지만 읽는 것과 생각하는 것, 그리고 쓰는 것이 지금까지 내게 중요한 일이 된 것은 아마 그런 이유 때문일 것이다. 


나는 중성자와 양자 간의 상호작용이 전자의 교환에 의해 일어난다는 하이젠베르크의 생각을 어떻게든 수학적으로 표현하려고 시도했다. 그리고 중성자와 양자 간의 전이가 전자의 '장'에 대한 '원'이 된다는 가정을 도입했다. 그 결과 '핵력'과 같은 것이 나오기는 했지만, 그 유효거리가 너무 길 뿐만 아니라 전자가 페르미 통계를 만족한다는 사실이 중대한 장애가 되어, 그 이상의 이론을 발전시킬 수 없었다. ... 나는 혼자 아랫목을 맴돌며 핵력의 문제를 집중적으로 생각하고 있었다. 그 결과 다소 불면증에 걸린 것처럼 낮에는 뭔가 머리가 멍한 상태였다. 대신 밤이 되면 좀처럼 잠을 잘 수 없는데다가 머리가 점점 맑아져 이런 저런 생각들이 떠올랐다. 아침이 되면 잊어버릴까봐 머리맡에 노트를 준비해두고, 생각이 정리되는 대로 일어나서 적어놓곤 했다. 그러나 신기하게도 그 당시에는 기발하다고 생각했던 것도 다음날 아침에 읽어보면 시시한 것들인 경우가 많았다. 그런 일들을 반복하고 있을 때, 평소와는 달리 핵장의 구상이 명료한 형태를 띄게 되었다. 


오늘날의 물리학이 이론과 실험으로 나누어져 있는 것은 어쩔 수 없는 분업이기 때문에 될 수 있는 한 양쪽 모두에 정통하도록 노력해야 한다는 것을 항상 절실히 느끼고 있다. 


일년 내내 바쁘게 살았음에도 불구하고, 아버지는 매우 많은 취미를 갖고 있었다. 취미와 전공의 경계가 명확하지 않을 정도였다.


아버지는 두 분 모두 양자였고, 본가뿐만 아니라 양가로부터도 큰 도움을 받지 못한 채 거의 혼자의 힘으로 자신들의 업적을 이루었다. 그것과 비교하면, 나는 정말 행복했다. 그리고 나에게는 그런 만큼 나라와 세상을 위해 더욱 힘써야 할 의무가 있다는 것을 통감한다.


자연과학이에 관한 서적은 '무엇'이라는 대상의 해명에 중심을 두고 독자가 이것을 완독하여 필요한 지식을 얻게 된다면 그것으로 목적의 대부분은 이루어진다. 그런 의미에서 그것들이 많든 적든 교과서 풍으로 쓰여져 있는 것은 당연한데, 특별한 목적없이 단순히 교양을 얻으려는 막연한 기분으로 읽는 사람들에게는 그 것이 반드시 적합하지 않는 경우가 많다. ... 이것은 우선 과학지식의 보급이 여전히 충분하지 않기 때문에 독자들에게 많은 예비지식을 요구하기란 곤란하고, 따라서 자연스럽게 초보적인 부분에 많은 지면을 소비할 수 밖에 없는 이유 때문일 것이다.


감정은 현재 안에서 과거를 살고자 한다. 기억은 과거를 개별적으로 재현한다. ... 과거는 내버려두면 도망가 버린다. 사람은 기억과 감정에 의해 이것을 잡아둔다.


"근대과학의 특징은 그 실증성에 있다. 자연법칙이란 자연현상을 기술하는 것이지 그것을 설명하는 것이 아니다"라는 점이 저자(<원자 물리학 개론>기쿠치 세이지)의 신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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