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보석을 좋아하는 것이 아니라, 보석으로 몸을 치장하는 여자의 생활을 좋아하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보석을 사는 여자의 생활과 보석을 선물받는 여자의 생활을


우리는 둘 다 열아홉 살이었고, 아직 어린아이였다. 그리고 야만적인 사랑을 했다. 야만적인, 자신의 전 존재로 서로에게 부딪치는, 과거도 미래도 미련없이 내던지는. 쥰세이는 내가 처음으로 섹스를 한 남자는 아니었지만, 이런 식의 표현이 허용된다면, 진심으로 몸을 허락한-모든 것을 허락한-첫 남자다. 처음이고 그리고 유일한. 어디를 가든 함께였다. 따로 떨어져 있어도 함께였다.


아무 것도 하지 않음의 나쁜 점은, 기억이 뒤로 흐르지 않는다는 것이다. 내가 꼼짝않고 있으면 기억도 꼼짝않는다.


사람이 있을 곳이란, 누군가의 가슴속밖에 없는 것이란다.


사람은, 그 사람의 인생이 있는 곳으로 돌아가는 것이 아니다. 그 사람이 있는 장소에, 인생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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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생을 살면서 정말로 중요한 일은 많지 않다는 점을 자각해야 한다. 나머지는 설령 그 순간에는 중요하고 대단해 보일지 몰라도 결국에는 퇴색된다. 


잔신의 분야에서 앞서 가려면 어디에 있어야 가장 많이 배울 수 있을지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유한 계급론>에서 베블런은 지배 계급이 일반 국민들로부터 자신들을 구별하고 부자들이 자신의 우월성을 주장하기 위해 사용하는 사회 방정식의 개요를 설명했다. 베블런은 다음과 같이 기록했다. "단지 부나 권력을 유지하는 것은 사람들의 존경을 얻고 그것을 유지하는 데 충분하지 않다. 부와 권력이 명확하게 입증되어야 한다. 존경심은 증거물을 바탕으로 나오기 때문이다. 부의 증거는 자신이 얼마나 중요한 인물인지를 다른 사람에게 각인시키고 그 인식을 유지 및 상기시키기 위해 사용될 뿐만 아니라 자기 만족감을 고취하고 유지하는 데 쓰인다." ... 사치는 부자들이 가난한 사람들은 할 수 없는 일을 할 자원이 풍부하다는 것을 보여주기 위한 방법이다. 베블런은 다음과 같이 실랄하게 지적한다. "재화든 용역이든 인간의 생명이든 소비자의 평판을 효과적으로 수정하기 위해서는 사치품을 위한 지출이 반드시 필요하다는 명백한 암시가 과시적 지출의 진화 과정 전반을 통해 흐른다. 높은 평판을 얻으려면 낭비가 필수적이다."


틸버그 대학의 롭 넬리슨과 매라인 마이어스는 명품옷의 사회적 효과에 대한 일련의 실험에서 유명 디자이너의 최고급 옷을 입었을 때 직장 추천서를 훨씬 더 많이 받고, 자선모금에서 기부금을 더 많이 모을 수 있으며, 상금이 걸린 게임에서 더 많은 도움을 얻는다는 것을 목격했다. 


비싼 옷과 보석류에는 미와 스타일을 추구한다는 사회적 핑계가 있고, 스포츠카와 고도계가 달린 고가의 손목시계는 스릴을 만끽하는 도구라고 정당화할 수 있다. 그러나 돈뭉치를 자랑하는 행동을 정당화할 만한 핑계는 존재하지 않는다. 


기술은 우리의 몸을 변화시킨다. 비디오 게임과 휴대전화의 사용이 한때는 그저 물건을 잡기에 편리한 보조 부위였던 엄지손가락을 진화시켜서 이제는 가장 능수능란한 손가락으로 변화시킨 경우가 그렇다.


미래학자인 앨빈 토플러는 '너무 짧은 기간 동안 너무 많은 변화'를 경험할 때 오는 심리적 영향을 '미래 충격'이라고 불렀다. 이것은 현대를 사는 지구상의 모든 이들이 일생에 걸쳐 경험하게 되는 현상이다. 


케빈 켈리는 그의 저서 <기술의 충격>에서 ... "아미시들의 종교적 신념의 바탕은 '세상에서 살되 세상에 속하지 말라'는 원칙이다. 따라서 그들은 가능한 많은 면에서 구별되게 살아야 하는 것이다."


나는 마이크로소프트가 불법 복제의 덕을 본다고 말하고 싶다. 매출액은 비교적 적더라도 중국인들이 제품과 플랫폼을 수용함으로써 이 회사 상품을 사용하는 문화를 만들어냈기 때문이다. 해적판은 인식을 고취하는 홍보 역할을 한다. 특히나 컴퓨터 운영체계처럼 일반 사용자들이 기술적으로 이해하기 힘든 상품이라면 그 가치는 더 크다. 컴퓨터 운영체계를 배우는데 투자하게 되는 시간, 돈, 정신력은 그것이 진품이든 모조품이든 상관없이 다른 종류의 운영체계를 수용하는 데 있어서 장벽이 된다. 소비자들이 비록 진품을 만든 회사의 매상을 올려주지는 않지만 제품에 대한 소비자 충성도를 높일 수 있다. 그래서 마이크로소프트 같은 회사로서는 해적판을 사는 소비자들을 나중에 온라인으로 판매하는 서비스든 같은 회사의 연관 제품이든 실제로 매출을 올려주는 소비자들로 만들 수 있는 좋은 기회를 얻는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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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정코칭은 감정을 있는 그대로 자연스럽게 이해하고 받아들이되, 감정을 표현하는 방식인 행동에는 명확한 한계를 두고, 그 안에서 좀더 바람직한 방향으로 이끌어주는 것입니다. 이것이 감정코칭의 핵심입니다.


감정은 자연스러운 삶의 일부입니다. 추운 날도 있고, 더운 날도 있고, 비 오는 날도 있고, 해가 쨍쨍 나는 날도 있듯이, 여러 감정도 자연스러운 삶의 일부입니다. 다양한 감정들이 있고, 어는 감정이 좋고 나쁜 게 아닙니다. 교사나 부모가 아이들의 감정을 꾸짖거나 부정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너 왜 화를 내?" "넌 지금 슬픈 게 아냐."그러면 아이는 자신이 나쁜 사람이라고 생각하거나, 거부당하고 미움을 받는다고 믿어 자존감이 낮아집니다. 감정은 자연스러운 현상으로 있는 그대로 받아들여야 하지만, 감정과 행동은 다릅니다. 화가 난다고 해서 누구를 때리거나 물건을 던지거나 욕을 하는 건 행동입니다. 감정 자체는 날씨처럼, 색깔처럼 자연스러운 현상이지만, 그런 기분을 느낀다고 해서 아무렇게나 행동해도 되는 건 아닙니다. 감정코칭에서는 욕을 하거나 대들거나 폭력을 쓰거나 하는 행동에 대해서는 한계를 지어주고, 그 한계 안에서 좀더 바람직한 행동으로 선도해줍니다. 


뇌과학이 연구되기 전에, 특히 청소년기에 전두엽이 완성되지 않는다는 연구가 이루어지지 전에는 많은 어른들이 오해를 했습니다. 체격이 크고 성숙해 보이는 청소년은 판단도 어른만큼 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죠. 그래서 청소년들의 이해할 수 없는 언행을 사춘기의 의도적인 사악함으로 해석하는 경우도 많았습니다. 전두엽은 초등학교 4~5학년 때쯤 가완성이 되어 책을 읽고, 숙제를 하고, 거짓말하며 안 된다는 것을 알고, 부모의 말을 듣는 등의 일이 가능해집니다. 그러다가 빠르면 5~6학년, 늦어도 중학교 1~2학년 때 사춘기에 접어들면서 전두엽이 대대적인 리모델링에 들어갑니다. 그래서 이성적으로 행동하거나 논리적으로 사고하기가 힘들어집니다. ... 사춘기에는 뇌세포의 회질이 일 년 사이에 두 배나 증가하는데, 경험을 하는 뇌세포는 강화되어 남고, 경험하지 않는 뇌세포는 소멸됩니다. 


사춘기에는 세로토닌이 아동기나 성인기보다 40퍼센트 적게 생성된다고 합니다. 그 결과 사춘기에는 감정의 기복이 무척 심해집니다. 10분 전에 여자 친구에게 좋아한다는 말을 듣고 하늘로 날아오를 듯한 기분이던 남자아이는 잠시 후 누군가에게 무슨 핀잔이라도 들으면 단 10분 만에 죽고 싶을 정도로 괴로운 기분이 됩니다. 이렇게 심한 감정의 기복이 사춘기에는 정상입니다. 수면이 굉장히 불규칙해지고 "우울해" "짜증나" 같은 말을 많이 하는 것 역시 세로토닌이 충분히 분비되지 않기 때문입니다. 특히 남자아이들이 더 심합니다. 사춘기 남자아이들 중에 화를 벌컥 내는 충동적인 아이들이 많은데, 이는 세로토닌이 적게 분비되기 때문입니다. 이 역시 정상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사춘기에는 뇌에서 연결망을 새롭게 하느라 무척 피곤합니다. 그래서 잡을 많이 자야 합니다. 뇌 속의 도로들이 경험했던 것이 잠을 자며 쉬는 동안 연결되고 기억되고 강화되는 등의 작용을 하기 때문입니다. 사춘기에는 평균 9시간 15분 정도는 자야하 한다고 합니다. 


사춘기에는 또한 수면패턴이 변화합니다. 사춘기 아이들의 수면 패턴이 어떻게 달라지는지 알기 위해 실험을 한 적이 있습니다. ... 그 결과 대다수의 사춘기 아이들은 새벽 2~3시가 되어야 자고 낮 12시쯤 깼습니다. 


청소년과 대화할 때 이성, 논리, 합리의 차원에서 다가가면 아이들은 거의 마음의 문을 닫아버립니다. 감정과 느낌의 차원에서 "지금 기분이 어때?"하고 접근해야 합니다. 평소 어른들에 대한 불신이 큰 학생들은 이럴때 "몰라요"라고 답할 수 있습니다. 그럴 때는 그냥 "기분을 잘 모르겠다는 말이네"하면 됩니다. 굳이 따져묻지 않는 게 좋습니다.


청소년들에게는 관리자의 역할을 하기보다 컨설턴트 역할을 해야 합니다. 학생들과 함께 생각하고, 좀더 큰 그림을 보여주고, 방향을 제시해 줄 수 있는 컨설턴트 역할을 해주면 관계가 돈독해질 수 있습니다.


화가 나고 불쾌하고 짜증이 나는 상태에서 잠시 멈추고 천천히 깊게 호흡하는 것입니다. 5초 동안 숨을 들이쉬고 5초 동안 숨을 내쉽니다. 천천히 '하나, 둘, 셋, 넷, 다섯!'까지 세는 속도로 숨을 천천히 고르게 들이쉬고, 다시 5초 동안 천천히 숨을 내쉬면 됩니다. 세 번 정도만 해도 마음과 몸이 편해집니다. 부정적인 감정으로 치닫던 몸상태가 중립으로 가기 시작합니다. 이때 심장호흡을 하면 훨씬 효과적입니다. 심장호흡은 심장으로 깨끗한 산소가 들어왔다가 나가는 걸 상상하며 호흡을 하는 것입니다.


감정코칭형 교사 부모들은 특히 아이들이 놀라거나 무서워하거나 슬퍼하거나 화를 내거나 하는 소위 부정적 감정을 강하게 보일 때가 좋은 기회라고 여깁니다. 아이가 자신의 감정을 제대로 이해하고 제대로 대처하도록 가르쳐줄 수 있는 좋은 기회이자, 부모나 교사를 의지하고 서로 신뢰하며 유대감을 키울 수 있는 좋은 기회라고 생각하죠. 그래서 아이의 감정에 대해 알기 위해 기꺼이 시간을 들입니다. "지금 어떤 일로 화가 났는지 얘기해 줄 수 있겠니?" 많이 슬퍼하는 것 같은데, 무슨 일이 있었는지 얘기해 줄 수 있어?" 하고 묻는 시간을 아깝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감정에 대해 훈계하거나 야단치거나 벌주지 않고 공감해 줍니다. ... 감정에 공감을 해주면 아이들은 '그런 감정을 느끼는 게 이상한 게 아니구나' '이 감정이 잘못된 건 아니구나'이렇게 자신에 대해 안도감이나 믿음을 갖게 되고, 부모도 그런 기분을 느껴봤다고 하니 부모에게 유대감이 느껴집니다. 감정에 공감해 준 다음에는 "이제 좀더 큰 그림에서 같이 생각해 볼까?" 하면서 대처방법이나 문제해결방법을 안내해 줍니다. 


감정코칭을 받으며 자란 청소년들입니다. 이들은 감정은 소중하고 믿을 만한 것이라고 배우며 자랍니다. 내 감정이 소중한 만큼 다른 사람의 감정도 소중하다고 생각합니다. 다양한 감정을 잘 알고 느낍니다. '이런 게 실망이라는 거구나' '이런 게 분노라는 거구나'하는 식으로 감정의 이름을 잘 알지요. 자신이 왜 그렇게 느끼는지를 이해하는 것입니다.


'감정에 대한 감정'이 초감정(meta-emotion)입니다. ... 자신의 초감정이 무엇인지 모르면 상대방의 감정을 제대로 읽어주지 못하고 받아들이기 힘듭니다.


가트맨 박사가 관찰해 보니 감정 조절을 잘 못하는 사람들은 감정을 아주 강하게 느끼는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화가 나도 아주 격분하고, 슬퍼도 너무 슬퍼서 죽고 싶을 정도입니다. 


'감정은 생각보다 빠르다'


가트맨 박사는 감정에 이름을 붙여주는 것은 '감정'이라는 문에 손잡이를 달아주는 것과 같다고 비유합니다. 문에 손잡이가 없으면 들어가거나 나가는 방법을 알 수가 없죠.


감정코칭이란 문제를 해결하는 기술이 아니라 긍정적이고 신뢰할 수 있는 인간관계를 형성하는 기술입니다. 즉, 문제를 해결해 나갈 수 있는 기본을 마련하는 것입니다.


기분이 우울하거나 불안할 때 운동은 정말 중요한 해결책입니다. 대단한 운동을 할 필요는 없습니다. 자기가 좋아하는 운동이면 아무거나 괜찮습니다. 가장 간편하고도 좋은 운동은 걷는 것입니다. 걸으면 뇌가 건강해집니다.


칙센트미하이 교수는 몰입의 즐거움에 빠지는 사람들은 외부적인 보상과 무관하게 자신이 좋아하는 일을 즐긴다는 것을 알아냈습니다. ... 외부적인 보상과 관계없이 마음에서 우러나서, 즉 '내적 동기'에 따라 즐거워서 하는 것입니다. 칙센트미하이 교수는 거기에 어떤 법칙이 있다는 걸 밝혀냈습니다. 사람들은 원래 뭘 배우는 걸 재미있어합니다. 배우는 방법이 잘못되어서 재미가 없거나 두렵거나 불안하거나 싫어하게 되는 것입니다.


무언가에 몰입할 수 있으려면 우선 뚜렷하고 구체적인 목표가 있어야 합니다. .. 두 번째로 즉각적인 피드백이 있어야 합니다.  세 번째는 자기 능력에 맞는 도전이 주어져야 합니다. ... 몰입할 수 있는 일을 아이들이 스스로 찾을 수도 있지만, 찾도록 도와주는 게 부모와 교사의 역할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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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축학을 잘 모르면서도 글짓기는 집짓기와 유사한 것이라 믿고 있다. 지면(紙面)이 곧 지면(地面)이어서, 나는 거기에 글을 짓는다. 건축을 위한 공정 혹은 준칙은 다음과 같다. 첫째, 인식을 생산해낼 것. 있을 만하고 또 있어야만 하는 건물이 지어져야 한다. 한 편의 글에 그런 자격을 부여해주는 것은 (취향이나 입장이 아니라) 인식이다. 둘째, 정확한 문장을 찾을 것. 건축에 적합한 자재를 찾듯이, 문장은 쓰는 것이 아니라 찾는 것이다. 특정한 인식을 가감 없이 실어 나르는 단 하나의 문장이 있다는 플로베르적인 가정을 나는 믿는다. 그런 문장은 한번 쓰이면 다른 문장으로 대체될 수 없다. 셋째, 공학적으로 배치할 것. 필요한 단락의 개수를 계산하고 각 단락에 들어가야 할 내용을 배분한다. 가급적 각 단락의 길이를 똑같이 맞추고 이를 쌓아 올린다. 이 시각적 균형은 사유의 구조적 균형을 반영한다. 이제 넘치는 것도 부족한 것도 없다. 한 단락도 더하거나 빼면 이 건축물은 무너진다.


타인의 슬픔에 대해 '이제는 지겹다'라고 말하는 것은 참혹한 짓이다. 그러니 평생 동안 해야 할 일이 하나 있다면 그것은 슬픔에 대한 공부일 것이다. - <눈먼 자들의 국가>


"우리가 스스로 야기한 상처에 대해서는 아무런 동정심을 느끼지 않는다는 것이다. 사람들은 자신이 야기하지 않은 고통 앞에서는 울 수 있어도 자신이 야기한 상처 앞에서는 목석같이 굴 것이다."(<사랑의 탄생>사이먼 메이) 이 말이 사실이라면 우리는 자신이 원인을 제공한 슬픔에 더 깊이 공감하게 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그 반대로 행동한다. 이 경우 타인의 슬픔은 내가 어떤 도덕적 자기만족을 느끼며 공감을 시도할 만한 그런 감정이 아니라, 오히려 나를 추궁하고 심문하는 감정이기 때문이다. 그 슬픔은 그것이 존재한다는 사실 그 자체만으로 나를 불편하게 할 것이다.


인간이 배울 만한 가장 소중한 것과 인간이 배우기 가장 어려운 것은 정확히 같다. 그것은 바로 타인의 슬픔이다.


최근 어느 글에 이런 문장을 쓴 적이 있다. "문학이 위로가 아니라 고문이라는 말도 옳은 말이지만 그럼에도 가끔은 문학이 위로가 될 수 있는 이유는 그것이 고통이 무엇인지를 아는 사람의 말이기 때문이고 고통받는 사람에게는 그런 사람의 말만이 진실하게 들리기 때문이다."


더 과감히 말하면, 위로받는다는 것은 이해받는다는 것이고, 이해란 곧 정확한 인식과 다른 것이 아니므로, 위로란 곧 인식이며 인식이 곧 위로다. 정확히 인식한 책만 정확히 위로할 수 있다. ... <슬픔의 위안> ... (론 마라스코와 브라이언 셔프)저자들은 "슬픔이 원기를 고갈시키는 것처럼, 감정 역시 에너지를 무척이나 소진시킨다는 점"을 지적한다. 많은 사람들이 내게 와서 따뜻한 위로를 건넨다. 그것은 고마운 일이므로 나는 좋은 감정으로 응대한다. 그러나 그 응대는 그 자체로 나의 감정적 자원을 크게 소모시키는 일이다. 그런 일들이 피곤하다고 느껴지면 고마워할 줄 모르는 나 자신에게 마음이 불편해져서 그것이 또 나를 갉아 먹는다. ... 저자들은 이렇게 말을 잇는다. 슬픔에 빠져 있지만 말고 외출도 하고 사람도 만나라고 말하는 이들의 헛소리에 신경 쓰지 말라고. 당신에게 절대적으로 필요한 것은 그저 아무 일도 안 하고 쉬는 것일 뿐이라고. 집안일도 남에게 맡겨버리고 필요하면 수면제도 먹으라고. ...


"이제 그는 한번 알게 되면 다시 원상태로 돌아갈 수 없는 한 가지 비밀을 알게 되었다. 그것은 가장 완벽한 사랑의 경우에서 조차 한 사람은 다른 사람보다 덜 깊게 사랑한다는 사실이었다. 똑같이 착한, 똑같이 재능을 타고난, 똑같이 아름다운 두 사람이 있을 수는 있지만, 상대를 똑같이 사랑하는 두 사람은 있을 수 없다."<산 루이스 레이의 다리>손턴 와일더


"이것은 아무리 힘껏 껴안아도 돌아다봐주지 않는 뒷모습이었습니다. 뭘 물어도 무슨 말을 해도 절대 돌아보지 않는 뒷모습이었습니다." <환상의 빛> 미야모토 테루


비트겐슈타인은 말했다. "세계가 어떻게 있느냐가 신비스러운 것이 아니라 세계가 있다는 것이 신비스러운 것이다." <논리 철학 논고>의 후반부다. 


<슬픈 짐승>모니카 마론 ... 어딘가에도 썼지만, '자신에게 전부인 하나를 위해, 그 하나를 제외한 전부를 포기하는' 이들의 이야기를 나는 당해내질 못한다. 


욕망의 본질(금기가 있는 곳에 위반이 있다)


"나는 늘 내가 쓴 글이 출간될 때쯤이면 내가 이 세상에 존재하지 않을 것처럼 글을 쓰고 싶어 했다." 이렇게 시작되는 소설 아니 에르노의 <집착>은 '고통'이라는 단어의 출현 빈도가 분량 대비 가장 높은 작품일 것이다. 모니카 마론의 <슬픈 짐승>은 근래 읽은 고통의 기록 중에서 가장 아름답다. "대부분의 젊은 사람들이 그렇듯 나도 젊었을 때는 젊은 나이에 죽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첫문장)


사고와 사건은 다르다. 예컨대 개가 사람을 무는 것이 사고이고 사람이 개를 무는 것이 사건이다. 이 둘의 차이는 무엇일까. 사고는 '처리'하는 것이고 사건은 '해석'하는 것이다. 


어딘가에 단편소설은 삶을 가로지르는 미세한 파열의 선 하나를 발견하는 것으로 이루어진다고 썼었다.


"만일 내가 우연히 그들 중 누군가가 얼마 전에 지독한 실연을 당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고 하자. 나는 몇 초 전까지만 해도 같은 하늘을 이고 살기조차 싫었던 그 인간을 내 집에 데려와 술을 대접하고 같은 천장 아래 재울 수도 있다. 심지어 술 냄새를 풍기는 그 인간의 입술에 부디 슬픈 꿈일랑 꾸지 말라고 굿나잇 키스까지 해줄 용의가 있다. ... 내가 별난 인간이어서 그런지 몰라도 나는 실연의 유대만큼 대책 없이 축축하고 뒤끝 없이 아리따운 유대를 상상할 수 없다. 


"휴전이 되고 집에서 결혼을 재촉했다. 나는 선을 보고 조건도 보고 마땅한 남자를 만나 약혼을 하고 청첩장을 찍었다. 마치 학교를 졸업하고 상급 학교로 진학을 하는 것처럼 나에게 그건 당연한 순서였다. 그 남자에게는 청첩장을 건네면서 그 사실을 처음으로 알렸다. 어떻게 이럴 수가 있냐고, 믿을 수 없다는 표정을 짓고 나서 별안간 격렬하게 흐느껴 울었다." 단편 '그 남자네 집'의 한 대목이다. 그리고 선생은 정확히 네 문장을 더 적는다. "나도 따라 울었다. 이별은 슬픈 것이니까. 나의 눈물에 거짓은 없었다. 그러나 졸업식 날 아무리 서럽게 우는 아이도 학교에 그냥 남아 있고 싶어 우는 건 아니다." <그리움을 위하여>박완서


세 가지를 따로 '구성의 3요소'라 부르는데 흔히 '인물 사건 배경'이라 외운다. 사실 정확한 순서는 '인물 배경 사건'이라야 한다. 특정 타입의 인물이 특정 배경 속에 던져질 때 특정 사건이 발생하는 게 소설이라는 세계다. 


사전의 '아포리즘(aphorism)'항목에는 "간결하고 기억하기 쉬운 형태로 말해지거나 쓰인 어떤 독창적인 생각"이라는 설명이 적혀 있다. 보통 '잠언'이라고 옮긴다. 히포크라테스의 <잠언집>이 최초의 용례라고 한다. 그 책의 첫 문장인 "인생은 짧고 예술은 길다"가 아포리즘의 전형을 만들었다.(많이 알려진 대로 이 번역은 오역이다. '인생은 짧고 의술은 길다'가 맞다.) 우리는 아포리즘의 대가들을 몇몇 알고 있다. 니체는 아포리즘을 철학적 사유의 한 무기로 끌어올렸다고 평가받는다. ...절망의 대가 에밀 시오랑 역시 실랄한 아포리스트다. 그의 책 <절망 끝에서>를 펼쳐보니 이런 구절에 밑줄이 그어져 있다. "지나치게 자신에게 관심을 기울이게 되면 필연적으로 자신을 터무니없이 사랑하거나 미워하게 된다." 여기에 한 사람을 더 추가한다면 그것은 마땅히 오스카 와일드여야 할 것이다. ..."사랑에 빠진 남자는 여자를 위해 모든 것을 다 할 수 있다. 단, 영원히 사랑하는 것만 빼고." 이런 문장은 일단 한번 듣고 나면 결코 잊을 수 없게 된다. 


시와 소설 두 부문에서 모두 퓰리처상을 받은 유일한 저자이기도 한 로버트 펜 워런은 <우리는 왜 소설을 읽는가?>라는 글에서 이런 대답을 했다. "소설은 우리에게 우리가 원하는 것만을 주지는 않는다. 더 중요한 것은, 소설이 우리에게, 우리가 원하는지조차 몰랐던 것들을 줄 수도 있을 거라는 사실이다."


<우리가 보낸 순간>의 말미에 소설가 김연수가 적어놓은 문장이다. 먼저 '쓰기'에 대해, "자신을 비난하지 않고 매일 쓴다고 해서 반드시 글을 잘 쓰게 된다고는 말할 수 없지만, 더 나은 인간이 된다는 사실만은 장담할 수 있다. ... 어떻게 쓰느냐에 따라 우리의 모습은 달라진다." 인간은 긍정적인 신호보다 부정적인 신호를 다섯 배 더 강하게 받아들인다는 것, 그러므로 한 번 비난을 받으면 다섯 번 칭찬을 받아야 마음이 원래 상태로 되돌아갈 수 있다는 것, 글을 쓰는 행위는 자신을 긍정하는 일인 것이어서 그 덕분에 우리 존재가 실제로 바뀔 수 있다는 것 등이 그의 체험적 결론이다. 


고통받는 사람들의 고통은 진부해지기는커녕 날마다 새롭다. 


운명을 결정하는 중요한 선택 앞에서 대다수는 자신에게 편안한 길을 택하며 그것을 비난받을 일이 못 된다. 그러나 세상에는 아주 드물게도 고통이 더 많은 쪽으로 가는 이상한 사람들이 있다. 물론 다른 이들도 열심히 살았을 것이다. 그러나 열심히 살아서 입신출세한 사람을 선망은 할 수 있어도 존경까지 할 필요는 없다. 나는 고통받는 사람들을 위해 스스로 그 고통을 함께하기로 결심한 사람, 타인의 고통을 덜어주려고 자신의 안락을 포기한 사람들만 존경한다.나는 우리의 대통령이 부디 존경할 만한 사람이었으면 좋겠다. ... 환상을 품고 있지는 않다. 누구도 완벽하지 않고 구세주가 될 수도 없을 것이다. 그러나 그가 살아온 삶이 오늘의 그를 믿게 한다. 타인의 고통을 함께 느끼는 능력과 그것을 차마 외면하지 못하는 능력 때문에 그렇게 살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그런 치명적인 능력을 가진 사람은 귀 기울일 것이다. 세월호 유가족들의 말을, 반값 임금에 혹사당하는 비정규직 노동자의 말을, 차별당하는 소수자의 말을. 그 고통을 알겠어서, 차마 도망칠 수 없어서, 무슨 일이라도 할 것이다.


요령이 필요하다. 한 작가에 대해 신속 정확하게 알고 싶으면 일단 세 권의 책을 읽으면 된다. 데뷔작, 대표작, 히트작, 데뷔작에는 한 작가의 문학적 유전자가 고스란히 들어 있기 때문에, 대표작에서는 그 작가의 역량의 최대치를 확인할 수 있기 때문에, 히트작은 그가 독자들과 형성한 공감대의 종류를 알려주기 때문에 읽을 가치가 있다. 


잘 쓴 것과 매혹적인 것은 확실히 같지가 않다.


자기 자신을 폭로하는 시 쓰기가 읽는 이의 눈살을 찌푸리게 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전율을 불러일으킬 수도 있다는 점을 입증한 사람이 바로 김수영입니다.


"그대는 이따금 그대가 제일 싫어하는 음식을 탐식하는 아이러니를 실천해보는 것도 좋을 것 같소. ... 그대 자신을 위조하는 것도 할 만한 일이오. ... 포즈가 부동자세에까지 고도화할 때 감정은 딱 공급을 정지합디다." <날개> 이상


당신이 한번 포기한 적 있는 대상은, 절대로 포기 못 할 대상이 다시는 될 수 없다. 그것을 포기할 때, 절대로 포기 못 하겠다는 그 마음까지 함께 포기한 것이므로. 그러므로 한번 포기한 대상을 다시 포기하는 일은 처음보다 훨씬 쉬워진다. 


휴대폰 덕분에 당신은 마침내 '글자'가 되었다. ... 그러면서 당신이 쉬워졌다.


타인의 생각이나 감정은 특별히 노력하지 않으면 알기 어렵다. 반면 나 자신의 생각과 감정은 언제나 생생하고 절박하며 현실적이다. 그래서 대체로 우리는 나를 중심에 놓고 세상을 해석한다.


모험을 앞두고 두려워하는 텔레마코스에게 멘토르(로 변장한 아테나)는 말한다. "걱정마라. 꼭 해야 할 말의 대부분은 네 스스로 생각할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미처 못다 말한 나머지는 신들께서 도와주실 것이다. 가자. 내가 너와 함께 가겠다."


인간의 내면이 얼마나 복잡한 것이며 타인의 진실이란 얼마나 섬세한 것인지를 편리하게 망각한 채로 행하는 모든 일은 그 자체로 '폭력'이다.


"뛰어난 작가는 모국어를 외국어처럼 사용한다."-프루스트


선택한다는 것은 포기한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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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작나무 


아무도 내가 말하는 것을 알 수가 없고

아무도 내가 말하지 않은 것을 말할 수 없다.

사랑은 침묵이다

...


나무는 자살을 꿈꾸지 않는다


여기 죽은 나무가 있다

누군가 소리쳐서 뒤돌아보니

그곳에 내가 쓰러져 있었다

물을 주면 살아날지도 몰라

누군가 다가가서 흔들어 본다

죽은 나무는 기척이 없다

나무는 자살을 꿈꾸지 않는다

그냥 잎을 버리고

죽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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