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와의 애착 관계는 결국 시간에 비례하는지 모르겠다. 함께 보내는 시간이 쌓일수록 아이가 좋아하는 것도 더 알게 되었고, 싫어하는 것들이 꽤나 나를 닮았다는 것도 알게 되었다. ... 나는 서서히 아빠라는 이름에 물들어간다.


엄마는 늘 불안하다. 엄마였던 적이 없기 때문에 지금의 엄마로서 최선을 다할 뿐이다.


여자의 관심사는 엄마의 관심사로 모두 바뀌었지만 그래도 

내게 와 줘서 고마워!


네가 목을 들었을 때, 너의 손톱을 깎았을 때, 첫발을 디뎠을 때, 엄마라고 불렀을 때, 처음의 그 뭉클함이란...

시간이 지나 그 처음들이, 익숙함에 희석될 것 같아도

첫 등교를 할테고, 첫 여자 친구를 보여 줄 테고, 언젠가 첫아기를 안겨 주겠지.

지루할 틈이 없겠다. 그렇게 우리에겐 평생 모든게 처음일 테니.


내가 집으로 출근하는 건지 회사로 퇴근하는 건지 매일매일 반복되는 지금의 일상 속에서

어제와 오늘이 크게 달라 보이지 않아도 너는 매일매일 달라지고 있다.


첫걸음마를 기다리던 게 엊그제 같은데...

혼자 밥을 먹고, 화장실을 가고, 여전히 모든게 신기하고 기특하면서도

언젠가는 내 품에 안겨 놀던 지금이 그립겠지?

부모가 된다는 것은 다가올 그리움을 견뎌 낼 준비를 하는 것.


비록 우리의 처음은 엇갈렸지만, 

함께 산책하듯 걷다 보면, 언젠가 발이 맞을 날이 오겠지.


육아는 끝이 없다.

그래서 지금 아내에게 필요한 건, 마침표가 아니라 쉼표


여행의 궁극적인 목적이 도착이 아니라 과정이듯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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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이터를 삭제할 수 있다는 생각은 완전히 착각이다. 유실된 파일이나 삭제된 이메일, 지워진 문자 등은 최소한의 노력만으로도 복구가 가능하다. 컴퓨터에서 데이터가 지워지는 일은 좀처럼 드물다. 운영 시스템은 다른 것을 저장할 공간이 필요할 때까지 파일의 콘텐츠를 그대로 보관하면서 내부 디렉터리에서 파일목록만을 지워버리는 경향이 있기 때문이다. (심지어 파일이 덮어쓰기가 됐더라도 디스크 기억장치의 자성때문에 가끔은 원래 콘텐츠의 일부를 복구할 수 있다. 컴퓨터 전문가들은 이렇게 지워도 남는 데이터를 '잔존 데이터 data remanence'라고 부른다.)


정보란 스스로 자유로워지고 싶어하는 속성이 있기 때문에, 나중에 법정에서 상기되고 싶지 않거나 신문 1면에 인쇄되어 나오길 원하지 않는 것이라면 기록해서는 안 된다는 말이 있다.


연결성은 국가의 힘을 강화시키면서 국가가 좋은 위치에서 은밀하게 시민의 데이터를 캐낼수 있게 해주는 한편, 뉴스의 확산을 통제하는 국가의 능력을 위축시킨다. 


독재자가 수집할 수 있는 가장 중요한 데이터 형식은 페이스북 게시물이나 트위터 댓글이 아니라 바이오메트릭(사람마다 가진 고유한 물리적 생물학적 특성을 통해 신원 파악에 활용할 수 있는 정보)정보다. 지문, 사진, DNA 판독결과 등이 모두 오늘날의 흔한 바이오메트릭 정보다. 


오늘날의 얼굴인식 시스템은 사람들의 눈, 코, 입을 집중적으로 관찰하여 양미간 사이의 정확한 간격 같은 얼굴 이미지의 핵심적인 면들을 묘사해주는 숫자 집합인 '특징 벡터'를 추출한다. (결국 디지털 이미지는 숫자에 불과하다는 사실을 명심하라.) 이 숫자들은 수많은 얼굴이 담겨있는 거대한 데이터베이스에 입력되어 맞는 얼굴을 찾아낸다. 


이란에서는 지난 2009년 대선 때 개혁적인 성향의 녹색운동이 공개 탄압을 받은 후, 통신장비 공급업체인 에릭슨이나 노키아지멘스네트웍스같은 서양 기업이 이란 정부와 거리를 두려고 했다. 이 공백을 틈타, 중국의 최대 통신사인 화웨이가 정부의 통제를 받는 이 거대한 이란 모바일 시장을 장악하고 지배할 수 있는 기회를 거머쥐었다. 화웨이 이전의 서양 기업들은 민주주의 활동을 탄압하는 이란 정부에 제품을 판매하는 것에 대해 자국에서조차 반발에 직면했다. 반면 화웨이는 친독재적인 성향을 보이며 활발하게 자사 제품을 홍보했다. <월스트리트 저널>보도에 따르면 화웨이는 법 집행을 위해 필요한 위치기반 추적 장치 같은 제품이나 검열에 우호적인 모바일 뉴스서비스 같은 것들도 거리낌 없이 팔았다. 


디도스 공격은 일반적으로 공격 기계들로 이루어진 대규모 분산 네트워크를 통해 일어난다. 종종 자신의 컴퓨터가 이런 식으로 조종되고 있다는 사실을 전혀 모르는 일반 사용자들의 컴퓨터가 해킹되어 여기에 동원되기도 한다. 영어로 표기할 때 도스 공격에 비해 디도스DDos 공격에 D가 하나 더 붙는 이유는, 분산 공격을 한다는 뜻을 나타내기 위해 이름 'distributed'의 앞글자 'D'를 하나 더 붙였기 때문이다. 


가까운 미래는 분명 혁명적인 움직임으로 가득 찰 것이다. 그리고 많은 국가에서 모바일과 인터넷 보급률이 올라가 군중을 동원하거나 물자를 분배하는 등 몇몇 전술적인 노력을 펼치기가 더욱 쉬워질 것이다. 하지만 혁명적인 움직임이 늘어나더라도, 혁명이 완전히 실현되어 기존에 정권을 잡은 세력이 혁신적으로 바뀌는 일은 더 줄어들 것이다. 오래 가는 리더가 많지 않을 것이고, 사안에 따라 정부가 요령있게 대응하면서, 2010년 말 시작된 아랍 혁명에 맞먹는 엄청난 규모의 변화는 여지없이 차단될 것이다. ... 강력한 근대 기술이 혁명의 성공 확률을 크게 높여줄 수는 있어도, 기적을 만들어 줄 수는 없는 법이다. 


어느 곳에서든 잔혹행위에 관한 정보(이야기, 동영상, 사진, 트위터 등)에 접근할 수 있게 되면서, 마치 우리가 아주 이례적으로 폭력적인 시대에 사는 것처럼 보이곤 한다. ... 많은 갈등이 생겨난 게 아니라, 그 갈등이 눈에 더 잘 띄게 되었을 뿐이다. 


화해는 원래 더디고 고통스럽다. 이러한 특성은 인터넷 기술로 없어지지 않을 것이고, 또 그래서도 안 된다. 공개적인 범죄 사실 인정, 판결과 처벌, 용서의 제스처가 갈등에서 벗어나는 사회에 카타르시스를 선사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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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쓰기는 생각하기이며 글쓰기 기술을 몸에 익히면 생각하는 기술이 몸에 배게 된다. 쓰기라는 표현 과정은 생각하는 방법이다." - 고가 후미타케 <작가의 문장수업>


"나는 앤이 한 말을 노트에 적기 시작했다. 앤이 한 말을 '듣기만 했을 때'와 그녀에게 들은 말을 '노트에 적었을 때'의 차이는 컸다. 그 차이만큼이 내겐 기적의 크기다." - 백영옥 <빨강머리 앤이 하는 말>


무언가를 글로 쓴다는 것은 막연하던 것을 구체화하는 효과가 있다. 그리고 그것에 대해 깊이 생각하고 그로 인해 깨달음을 얻기도 하며 그렇게 깨달은 것을 자기 내면에 각인시킬 수도 있다. 글쓰기가 일상에 대한 생각을 바꾸고, 관점을 바꾸며, 인생에 극적인 변화를 불러오기도 하는 것이다.


"글쓰기는 정신을 강하게 한다. 매일 아령을 들면 날이 갈수록 팔의 근육이 단단해지고 두꺼워지듯이 매일 글쓰기를 하면 정신에도 힘이 붙고 근육이 붙어 단단해진다. 정신이 단단해지면 매사에 자신감이 생기고 사소한 일에 흔들리지 않게 된다."-이은대 <내가 글을 쓰는 이유>


"글쓰기게 투신할 최소 시간 확보하기. 글을 쓰고 싶다는 이들에게 일상의 구조 조정을 권한다. 회사 다니면서 돈도 벌고 친구 만나서 술도 마시고 드라마도 보고 잠도 푹 자고 글도 쓰기는 웬만해선 어렵다. 쥐고 있는 것을 놓아야 그 손으로 다른 것을 잡을 수 있다." - 은유 <쓰기의 말들>


"다작이 중요하다. 다작을 해야 그 과정에서 많이 공부하고, 많이 배우고, 실수하면서 다듬어지고 실력도 쌓인다. 바로 양질전환의 원리다. 지식 발전의 형태는 선형적이 아니라 별 발전이 없는 것처럼 보이다 어느 순간 폭발적으로 늘어난다. 모든 게 그렇다. 기타를 치는 것도, 운동하는 것도, 책을 읽고 쓰는 것도 그렇다. 피카소는 2만 점이 넘는 작품, 아인슈타인은 240편의 논문, 바흐는 매주 한 편씩 칸타타를 작곡했고, 에디슨은 무려 1,039개의 특허를 신청했다. 그렇기 때문에 고수들은 좋은 작품 못지않게 형편없는 작품도 많이 만들었다." -한근태 <일생에 한번은 고수를 만나라>


"그렇다면 모닝 페이지란 무엇일까? 간단히 말해 매일 아침 의식의 흐름을 3쪽 정도 적어가는 것이다. "어휴, 또 아침이 시작되었군. 정말 쓸 말이 없다. ..." 모닝 페이지는 저급하게 말하면 두뇌의 배수로라고 부를 수 있다. 그것이 모닝 페이지가 하는 커다란 역할 가운데 하나이기 때문이다."-줄리아 카메론, <아티스트 웨이>


노벨문학상을 수상한 작가 토니 모리슨은 이렇게 말했다. "당신이 정말 읽고 싶은 책이 아직 써지지 않았다면, 그것을 써야 할 사람은 당신이다"


'생각하고 쓰기'보다 '쓰면서 생각하기'에 익숙해져야 한다. 


좋은 소재가 생각나면 빨리 손가락을 움직여 문장으로 만들어 내야 한다. 그것을 다듬는 것은 다 써놓고 해도 늦지 않다. 아예 나중에 읽으면서 다시 정리한다는 생각으로 써야 한다. 철자가 틀려도 다시 돌아가 쓰지 말고 그대로 이어가야 한다. 글을 쓰는 순간 중요한 것은 지금 떠오른 생각을 모두 옮겨 놓는 것이지 잘 쓴 문장을 만드는 게 아니기 때문이다.


"플로베르는 속도가 느린 작가였지만 아주 많은 작품을 남겼다. 거의 매일, 오랜 시간 썼기 때문이다. 그가 가까이한 표어는 고대부터 학자들에게 널리 알려진 것이다. Nulla dies sine linea, 즉 "한 줄도 쓰지 않는 날은 없다." - 롤프 베른하르트 에시히 <글쓰기의 기쁨>


역설적이게도 글을 쓰기 전에 생각이 많아지면 글을 쓰지 못한다. 아예 시작하기가 두렵다. 그럴 때마다 두 눈을 질끈 감고 생각 없는 기계처럼 글쓰기를 시작해보자.


"직업적으로 글을 쓰는 다수의 사람들이 아마도 그렇듯이 나는 쓰면서 사물을 생각한다. 생각한 것을 문장으로 만드는 것이 아니고, 문장을 지어 나가면서 사물을 생각한다. 쓴다고 하는 작업을 통해서 사고를 형성해 나간다."-무라카미 하루키 <달리기를  말할 때 내가 하고 싶은 이야기>


"모든 초고는 쓰레기다." 책을 쓰는 이들이 깊이 새기고 있는 헤밍웨이의 말이다. 초고는 무조건 엉성하고 엉망일 수밖에 없다. 이 말을 한 헤밍웨이도 <노인과 바다>를 200번 정도 고쳐 썼다고 알려져 있다.


"재미로 쓰라. 자기를 위해! 작가가 그 과정을 즐기지 못한다면, 어떤 독자가 그 결과물을 즐기겠는가."-로버타 진 브라이언트 <누구나 글을 잘 쓸 수 있다>


"무엇을 쓰든 짧게 써라. 그러면 읽힐 것이다. 명료하게 써라. 그러면 이해될 것이다. 그림같이 써라. 그러면 기억 속에 머물 것이다."-조지프 풀리처


"운동은 그 양과 강도에 상관없이 신경전달물질의 분비를 촉진한다. 운동을 시작하면 뇌는 곧바로 신경전달물질을 쏟아낸다. 굳이 러너스하이를 경험할 정도로 오래 달리지 않아도 누구나 운동 후에 상쾌한 기분을 느낀 경험이 있을 것이다. 이는 몸을 활발히 움직이는 동안 뇌 속에서 신경전달 물질이 활발히 분비되기 때문이다."-박수현 <웰니스>


만나는 사람이 바뀌면 생각도 의식도 바뀐다. 전문가를 만나면 전문가와 같은 생각을 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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떠도는 자의 노래

...

아니, 이미 이 세상에 오기 전 저 세상 끝에 

무엇인가를 나는 놓고 왔는지도 모른다

쓸쓸한 나룻가에 누군가를 버리고 왔는지도 모른다

저 세상에 가서도 다시 이세상에

버리고 간 것을 찾겠다고 헤매고 다닐는지도 모른다


하산


언제부턴가 나는 

산을 오르며 얻은 온갖 것들을

하나하나 버리기 시작했다

평생에 걸려 모은 모든 것들을

머리와 몸에서 훌훌 털어버리기 시작했다

...



갈대-신경림


언제부턴가 갈대는 속으로

조용히 울고 있었다.

그런 어느 밤이었을 것이다. 갈대는

그의 온몸이 흔들리고 있는 것을 알았다.


바람도 달빛도 아닌 것.

갈대는 저를 흔드는 것이 제 조용한 울음인 것을

까맣게 몰랐다.

-산다는 것은 속으로 이렇게

조용히 울고 있는 것이란 것을

그는 몰랐다.



밤차,신림(원주 지나서 있는 치악산 아래의 작은 산역)에서-신경림 


세상은 온통

크고 높은 목소리만이 덮여

어느 것이 참이고

어느 것이 거짓인 줄을 

가릴 수 없는 세월이 많다

밤차를 탄다

산바람 엉키는 간이역에 내리면

감나무에 매달린 새파란 그믐달

비로소 크고 높은 목소리

귓가에서 걷히면서

작고 낮은 참목소리

서서히 들리기 시작한다

속삭임처럼 흐느낌처럼

멀리서 가까이서 들리기 시작한다



목계장터-신경림


하늘은 날더러 구름이 되라 하고

땅은 날더러 바람이 되라 하네

청룡 흑룡 흩어져 비 개인 나루

잡초나 일깨우는 잔바람이 되라네

뱃길이라 서울 사흘 목례나루에 

아흐레 나흘 찾아 박사분 파는

가을볕도 서러운 방물장수 되라네

산은 날더러 들꽃이 되라 하고

강은 날더러 잔돌이 되라 하네

산서리 맵차거든 풀 속에 얼굴 묻고

물여울 모질거든 바우 뒤에 붙으라네

민물 새우 끊어넘는 토방 툇마루

석삼년에 한 이레쯤 천치로 변해

짐 부리고 앉아 쉬는 떠돌이가 되라네

하늘은 날더러 바람이 되라 하고

산은 날더러 잔돌이 되라 하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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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울 우화>


사랑하지 말아야겠다고 마음먹었지만 뜻대로 되지 않았듯이, 영원히 사랑하려고 했지만 뜻대로 되지 않았을 뿐이다.


벽에 붙어 있는 설경이 아름다운 달려, 오늘 날짜에 동그라미가 표시되어 있었다. 뭐지? 생각이 안 난다. 가끔씩 찾아오는 이 아득한 상실감이 겁이 난다.


네가 날으는 곳까지/나는 날으지 못한다/너는 집을 떠나서 돌아오지만/나는 집을 떠나면 돌아오지 못한다/... 저녁이 오면/너는 들녘에서 돌아와/모든 슬픔을 꿀로 만든다. "일곱 번도 넘게 읽으니까 네가 오더군" 판화 곁의 액자 속에 담긴 시구에서 눈길을 떼자, 창규가 웃는다.


그가 고개를 숙인다. 끝에 닿았다고 체념을 하고 나면 어느 구석에서 작은 희망이 솟아오르곤 했다. 부질없는 일인 줄, 곧 다시 처음보다 더 나빠지고 말 줄 알면서도 나는 그 희망을 버리지 못했다.


창규에겐 이제 더 들킬 것도 없다. 그래서인가? 창규에게 따뜻할 수 없는 것은.


분명 삶에는 기습이 있다. 헤어 나오려고 온몸을 부술수록 더 깊은 수렁 속으로 빠져 드는지도 모른다.


편지를 쓰려고 마음먹었을 때 지수는 누구보다 깨끗해졌지만, 내게 고백을 했으므로 함구하고 있을 때보다 더 조급하고 불안하리라. 일등을 해보고 싶어 책을 가져 간 건 훔친게 아니라 감춘 거지. 


나를 바래다 주는 길목 어느 집의 따뜻한 불빛이 새어 나오는 어둠 속에서 그가 말했었지. 널 사랑해, 어떡하지?


사람은 누구나 다 외로운 것이고, 그것은 다른 형태로 바꿀 수 없는 무서운 것이다. 언제부터 그런 생각이 들었는지는 정확히 모르지만 어떤 상처가 깊숙이 자리잡을 때부터였을 거야. 외로움 앞엔 무엇으로부터도 안전할 수 없어. 말줄임표의 까만 점이 여섯 개쯤 찍혀 있는 맨 끝에 그녀는 사랑밖에, 라고 쓰고 있었다. 외로움은 무서울 뿐 아니라 깊이 들어가면 길을 잃어버리게 되는건 아닐까? 어느 길로 들어왔느지 입구, 출구를 전혀 찾을 수 없고 버려졌다는 슬픔에 사로잡히고 말지. 


자기의 이야기를 많이 한다 해서 상대방과 가까워진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마음을 털고 나면 빈자리에 이상한 우수가 깃들인다는 걸 알고 있다. 뒤끝으로 남는 허전함은 쉽게 지워지지 않는다는 것도. 그런데 여자에게 자꾸 내 이야기를 하고 싶어진다. 무엇일까? 여자에게 얘기하고 싶은 이유는?... 살붙이에게나 느낌 직한 이 본능적인 친밀감은 어디서부터 시작된 것일까?


작은 노인이 나의 몇 배나 돼 보인다. 칠십 년을 넘게 살아 낸 기다림에 지치지 않는 노인의 의지 때문이리라. 



<지붕과 고양이>


-너를 보면 힘이 솟아... 억울한 생각들을 잊게 하는 힘을 가졌어. 넌.



<밤길>


"잠깐밖에 안 돼." 그렇게 말했던 것도 같다. 내가 그때 그렇게 발음하지 않았기를 지금 나는 원한다. 그랬다면 이숙에게 외로움을 더 가중시켰을 테니까... 그리고 정말 그리고... 잠깐밖에 안 된다는 것이 영원히 안 되는 것으로 되어 버렸으니까. 


여자는 별을 품듯 아기를 품고 있다.


"...밤에 내리는 눈을 보면 어린 시절을 보냈던 방의 창문이 떠올라요. 그때는 날마다 밤이... 왜 그렇게 무서웠던지. 밤만 되면 빨리 날이 밝기를 눈뜨고 앉아서 기다렸죠. 아침이 되면 눈이 쌓였다고 밖은 한참 소란스러운데 난 그렇지 않았어요. 그 시절, 겨울에 눈은 나 몰래 내린 적이 없었거든요. 날이 빨리 밝기를 기다리다가 눈이 내리기 시작하는 걸 지켜 봤고 어쩐지 그런 밤만 무섭지 않았어요."


"그를 잃고... 어렸을 때 밤을 무서워했던 그때로 되돌아간 것 같아요. 그는 나에게 아주 잘했어요. 나는 결혼 전에 한 사람과 헤어졌고... 그가 그이보다 못하다고 생각했었죠... 사실 나는... 그래요 나는 다람 사람을 나만큼 사랑해 본 적이 없었을 거예요. 그가 있어서 불행하거나 외롭지는 않다고 생각했을 뿐이었어요... 그를 잃지 않았다면 나는 지금도 나만 사랑하면서... 무서워요. 하느님이 마치 나에게 무엇을 깨우쳐 주기 위해 그를 데려간 것만 같아서."


"...나는 말예요. 이제야 저녁때마다 그가 집으로 돌아오기를 기다려요. 그는 이젠 올 수 없는데 말예요... 세상의 모든 남자들이 그와 같거나 비슷하다고 생각했는데 아니에요. 그만이 내 사람이었어요. ... 아세요? 내 마음... 이제야 나는 그과 진짜 사랑하며, 기쁨을 느끼며 살 수 있을 것 같은데... 그가 살아 있기만 하다면...그의 조끼를 만들고... 살았을 때 그가 원한 것처럼 그에게 내 무릎도 내주고... 기다리고 사랑하는 데 나를 다 바치겠어요... 그가 살아 있었다면 내가 이런 생각을 할 수 있었을까요? 아닐 거예요. 나는 나만 사랑마며 그저 그런 날들이 흘러간다고 짜증을 내고 있을 뿐일 테죠." 말하는 동안 입술은 건조해졌지만 여자는 가끔 미소짓고 목소리의 평정도 잃지 않는다. "그의 죽음과 내 마음을 맞바꾼 것만 같아요."


"...사고는 버스를 타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났어요... 그래서인가 봐요... 저물녘이면은요... 그가 꼭 집으로 오고 있는 중인 것만 같거든요... 그 생각에 친정집에 더 있을 수가 없어요... 빨리 가야 한다 빨리... 그가 와 있을지도 모르는데... 나를 찾고 있는 그의 모습이... 찾다가 ... 찾다가 ... 실망해 방바닥에 털썩 주저앉는 그의 모습이 ... 터무니 없지요? 그는 안 오지요?"


<황성옛터>


추억만을 가지고 얼마나 한 사람을 질기게 사랑할 수 있는지를 보여 주려고 작정한 사람처럼, 한없이 그녀를 밀쳐 내는 아버지를 볼 때마다 은선은 세상에 헛발을 딛는 듯 아득했다. 그 세월이면 익숙해지기라도 할텐데 매번 그 아득함은 새로운 구덩이를 보여 주며 멀미를 동반한다. 피해 의식인가? 그날 이후 스물 일곱이 된 지금도 어쩌다 우연한 아버지의 시선이 자신에게 오래 머물면... 차라리 너와 바뀌었더라면...아버지가 그 생각 하시는 건 아닌가 그녀는 귀밑이 붉어진다. 


니 맘쓸까 말 안 헐라고 했제이... 말 안 하려고 하는 것이 더 마음쓰인다는 것을 어머니는 모를까?


<성일>


습관이란 감정을 바꿔 놓기도 하는 모양이었다. 처음엔, 뭐 이런 사람이, 했던 것이 엽서가 갑자기 뚝 끊기자 무슨 일이 생긴 것은 아닐까? 궁금해졌으니까. 


<어떤 실종>


단 한 사람이라도 그를 다 알기란 불가능한 것인지 모른다. 관심과 애정이 적어서가 아니라 사람이 갖고 있는 복잡함과 미묘함이 너무 깊어서.  


눈송이는 세상을 하얗게 덮어야 할, 꼭 그래야 할 일이 있는 듯이 어느 집 창문 약간 홈진 데까지 찾아가서 쌓였다.


<밤고기>


엉겁결에 내뱉은 양희의 말은 누구에게도 반응을 못 일으키고 저 혼자 떠돌다가 스러졌다.


<강물이 될 때까지>


"그와 결혼을 한다고?" 그녀는 흠칫 당황했다. 한다고? 해진의 목소리 톤이 그녀의 신경을 충분히 긴장시켰다. "더는 참을 수 없어. 너 그와 결혼하면 난 죽고 말테야!" "..." "난 그를 포기 못 해, 절대로!" ... 해진이가 그를? 그녀는 갑자기 세상이 생경스러웠다. 어쩌면 나는 까마득히 ... 그렇게 그에 대해 예민했었는데. 그녀는 자주 눈을 질끈 감아 버렸다. 해진이 그 곁에 그렇게 바싹 있으리라고는, 그녀는 하염없이 아득했다. 해진은 정말 그에 대한 애정, 그에 대한 노여움을 수면제로 대변했다. 그건 동물적이야, 위협이라고. 해진을 향해 화를 내면서도 해진의 소동이 미수에 그쳤음을 다행스러워하는 그녀의 이면에는, 해진의 존재감보다도 얼결에 그녀에게 지워질 평생 상처를 떠맡지 않아도 된다는 안도감이 섞여 있기도 했다. 의식을 되찾은 해진의 첫마디는, 그는 나에게도 다정했어, 였다. 울고 있는, 소리도 안 내고 주룩주룩 눈물을 흘리는 그녀를 두고 나오면서, 결국 그녀는 복도 의자에 철버덕 주저앉아 버렸다. ... 서로 친구라는 것을 오랫동안 괴로워한 끝이어서였을까? 해진은 정직했고 대담했다. 정직한 건 힘이라는 걸, 설득력이라는 걸 그녀는 해진을 통해 알았다. 


병가를 떠나는 그녀를 앞에 두고 그는 위험스럽게 이어지고 있던 침묵을 먼저 깨뜨렸다. "어쩌겠어...?" 그녀는 그때야 그가 복잡한 것을 싫어했었다는 것을 생각해 냈다. 여자에 대한 그의 의식은 간단하고, 가볍고, 유희적이었음을, 사뿐사뿐하기조차 했었다는 것을. 그랬다. 그는 해진의 말대로 분명 순간 순간 해진에게 가볍게 다정했으리라. 무의식적인 것도 같은 산만하고 유혹적인 눈빛을 해진과도 교환했으리라. 처음으로 그에 대한 저항이 솟아올라 그녀는 퉁박스럽게 그의 말을 되돌려주었다. 내가 물을 소리예요? 어쩌시겠어요?


"... 해진과는 어쩔 수 없어 ... 한 번도 나를 놓아준 적이 없지... 무안을 줘도 ... 떼놓아도 ... 본 척을 안 해도 ... 금방 내 곁에 와 버려." 그의 짧은 인중에 짜증기가 역력히 고이는 것을 보며 거짓말하지마세요. 하마터면 소리칠 뻔했다. 당신은 주춤거렸죠. 나를 바래다 주면서 해진에게도 섭섭한 작별 인사를 몰래 나눴죠. 당신은 내게 그랬던 것처럼 해진으로 하여금 당신을 사랑하지 않을 수 없게 했을 거예요. 아쉬운 듯 여운을 남기고 가능성을 줬을 거야. 그리곤 모른 척 외면해서 속을 태우고 ... 비겁하지만 탓할 순 없는 일이라는 것 알아요. 알아. 그게 바로 당신이니까. 발음되지 못한 말들이 속에서 아우성 쳐서 그녀는 혀 끝을 깨물었다.


광기야, 해진의 소동을 포기 상태에 이른 사람의 무분별한 광기일 뿐이라고, 외면하고 싶은 마음 저편에 또 하나의 마음이 대립하고 있었다. 그를 위해서 하고 싶지 않은 일이 해진의 인생에선 없을 것이라는, 죽음과 생을 거의 똑같이 내놓을 대상으로 해진이 그를 정하고 있다는 것을, 그녀는 밀어낼 수가 없었다. 


그에 대한 결정은 이미 되어 있었는데도 그 결정을 피해 보려 했던 것은 그에 대한 미련이 아니었다. 그와의 온갖 습관을 깨뜨려야 한다는 것도, 그가 빠져 나간 그 텅 빔 속에 혼자 남게 되리라는 것도 아니었다. 그의 시간 한켠에 애매하게 섞여 있느라, 세상과 문을 닫아 버린 그 몇 해 동안의 자신과 마주서는 것에 겁을 먹은 것이었다. 아무 정열도 없었던 자신, 어떤 세계에도 통틀어 내줄 수 없었던 자신을 만날 일이 두렵고 고통스러워서였다.  


<조용한 비명>


"우리들은 이제 서로에게 아무런 울림을 주지 못하죠?"


운명처럼 느껴졌던 모든 좋았던 순간들이, 또 운명처럼 느껴지며 나쁜 순간들로 돌변해 있다.


<외딴방>


가끔 나는 기억이 안 난다. 어떤 부분, 그냥 지나칠 만도 한 어떤 부분을 너무나 상세하게 기억하고 있는가 하면, 그냥 누구나 당연히 자연스럽게 기억나야 할 부분은 볕 좋은 날 양지처럼 텅 비어 있다. 


"어마, 내 정신 좀 봐 ... 나 시골 집에 좀 며칠 다녀올 거야... 깜박 잊고 문에 열쇠를 안 채웠네. 니가 저녁에 가서 좀 채워 줄래..."

...

그녀는 돌아오지 않았고 남자는 문을 부쉈다. 냄새 때문에. 기다림 때문에.

...

아이를 떼라 했지요. 헤어지자는 게 아니라 아직은... 아직은... 그러나 그 말이 그녀를, 너무나 그리워 지금 가슴이 쥐어 뜯기는 것 같은 희재 언니를, 구더기밥이 되게 했다는 생각은 들지 않는다. 그녀의 희미한 웃음이.. 한 줌이나 될까 한 허리가... 유품으로 나온 백 몇십 만원의 저축액이... 그 남자는 아이를 떼라, 했고... 나는 희미하게 웃고 있는, 어쩌면 그때는 희미하게 울고 있었을지도 모를 그녀를 안에 두고, 그 선반 위 육 개월도 채 못 신은 학생화를 안에 두고... 열쇠를 채웠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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