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카와가 중간자론을 발표한 것은 1934년 11월로, 당시 그의 나이는 불과 스물여덟 살이었다. 그리고 이 중간자론은 이듬해 <소립자의 상호작용에 대해>라는 영어 논문으로 세상에 알려졌다. 새삼 거론할 필요도 없지만, 중간자론이란 원자핵을 이루는 양자와 중성자 사이에 '중간자'라는 입자가 존재하여 이것이 양자와 중성자 사이를 오가며 강한 상호 작용(강력)의 원인이 된다는 것이다. 유카와는 이 중간자가 전자의 약 200배의 질량을 가졌다고 추정했는데, 중간자라는 명칭은 그 질량이 대략 전자와 중성자(혹은 양자)의 중간 정도였기에 붙여진 것이다.


전자, 뮤온, 타우, 전자 중성미자, 유온 중성미자, 타우 중성미자 등 여섯 종류로 거의 굳어진 렙톤을 제외하고, 이미 수백 종류에 달한 바리온과 메존을 과연 '소립자'라고 부를 수 있을 것인가 하는 의문이 자연스럽게 등장했다. 바리온과 메존의 근저에는 그것을 구성하는 더 작은 입자들, 다시 말해 기본 입자들이 존재하지 않을까? 이러한 의문은 1962년 머리 겔 만과 조지 츠바이크 등에 의해 쿼크 모형이라는 새로운 이론으로 구체화 되기에 이르렀다. 이 이론에 따르면 바리온과 메존의 근저에 '쿼크'라는 것이 있는데, 3개의 쿼크(u,d,s)가 결합하여 바리온을 이루고, 쿼크와 반쿼크가 결합하여 메존을 이룬다. 


대상을 관측하려는 행위는 많은 가능성들 중에서 하나를 선택하는 것을 의미했다.


전자는 모든 물질 안에 존재하는데, 대부분의 경우 원자핵과 결합하여 원자를 이루고 있다. 그런데 동이나 철 같은 금속 안에서는 전자의 일부가 원자핵의 속박에서 해방되어 (즉 자유전자가 되어) 자유롭게 돌아다니고 있다고 여겨진다. 그리고 전압을 걸면 철사 속의 무수한 자유전자가 음극에서 양극으로 달려간다. 이것을 전류라고 본다. 이 전자를 금속 밖으로 끄집어낼 수도 있다. 예를 들어 펌프로 유리관 안의 공기를 빼내 고도의 진공 상태를 만들고, 그 안에 삽입해 놓은 전극 사이에 이른바 진공방전을 행하면 음극으로부터 일종의 방사선이 나온다. 이것을 '음극선'이라고 부르는데, 그 정체는 전자와 같다. 역사적으로 보면 음극선의 정체를 연구하다가 거꾸로 전자의 존재가 실증되었다. 


중간자는 지상의 물질 안에는 존재하지 않는다. 또 이것을 실험실 안에서 만들어내는 것도 오늘날에는 아직 불가능하다. 그러나 우주선 안에는 이것이 매우 많이 포함되어 있다. 우주선이란 지구 밖으로부터 오는 투과력이 강한 방사선이다.  


나는 메이지 40년(1907년)에 도쿄에서 태어났는데, 이듬해 아버지(오가와 타쿠지)가 교토제국대학에 부임한 이후, 1932년 봄까지 20년 넘게 교토에서 계속 지냈다. 아버지의 전공은 지질학과 지리학이었는데, 그 연구벽은 고고학, 중국학에서부터 서화, 검도, 바둑에 이르기까지 광범위하여 서재나 마당은 물론 거실에서 현관까지 온갖 종류의 책들이 엄청나게 쌓여 있었다. 넓은 집만을 찾아 이사를 다녔지만 책은 점점 늘어날 뿐이어서 가족들은 언제나 그것들을 정리하는데 골머리를 앓아야 했다. 그런 집에서 자란 나는 자연스럽게 책에 친숙해졌고, 여러 가지 책을 손에 잡히는 대로 읽었다. 그것이 훗날 내게 어떤 영향을 미쳤는지 정확히는 알 수 없다. 하지만 읽는 것과 생각하는 것, 그리고 쓰는 것이 지금까지 내게 중요한 일이 된 것은 아마 그런 이유 때문일 것이다. 


나는 중성자와 양자 간의 상호작용이 전자의 교환에 의해 일어난다는 하이젠베르크의 생각을 어떻게든 수학적으로 표현하려고 시도했다. 그리고 중성자와 양자 간의 전이가 전자의 '장'에 대한 '원'이 된다는 가정을 도입했다. 그 결과 '핵력'과 같은 것이 나오기는 했지만, 그 유효거리가 너무 길 뿐만 아니라 전자가 페르미 통계를 만족한다는 사실이 중대한 장애가 되어, 그 이상의 이론을 발전시킬 수 없었다. ... 나는 혼자 아랫목을 맴돌며 핵력의 문제를 집중적으로 생각하고 있었다. 그 결과 다소 불면증에 걸린 것처럼 낮에는 뭔가 머리가 멍한 상태였다. 대신 밤이 되면 좀처럼 잠을 잘 수 없는데다가 머리가 점점 맑아져 이런 저런 생각들이 떠올랐다. 아침이 되면 잊어버릴까봐 머리맡에 노트를 준비해두고, 생각이 정리되는 대로 일어나서 적어놓곤 했다. 그러나 신기하게도 그 당시에는 기발하다고 생각했던 것도 다음날 아침에 읽어보면 시시한 것들인 경우가 많았다. 그런 일들을 반복하고 있을 때, 평소와는 달리 핵장의 구상이 명료한 형태를 띄게 되었다. 


오늘날의 물리학이 이론과 실험으로 나누어져 있는 것은 어쩔 수 없는 분업이기 때문에 될 수 있는 한 양쪽 모두에 정통하도록 노력해야 한다는 것을 항상 절실히 느끼고 있다. 


일년 내내 바쁘게 살았음에도 불구하고, 아버지는 매우 많은 취미를 갖고 있었다. 취미와 전공의 경계가 명확하지 않을 정도였다.


아버지는 두 분 모두 양자였고, 본가뿐만 아니라 양가로부터도 큰 도움을 받지 못한 채 거의 혼자의 힘으로 자신들의 업적을 이루었다. 그것과 비교하면, 나는 정말 행복했다. 그리고 나에게는 그런 만큼 나라와 세상을 위해 더욱 힘써야 할 의무가 있다는 것을 통감한다.


자연과학이에 관한 서적은 '무엇'이라는 대상의 해명에 중심을 두고 독자가 이것을 완독하여 필요한 지식을 얻게 된다면 그것으로 목적의 대부분은 이루어진다. 그런 의미에서 그것들이 많든 적든 교과서 풍으로 쓰여져 있는 것은 당연한데, 특별한 목적없이 단순히 교양을 얻으려는 막연한 기분으로 읽는 사람들에게는 그 것이 반드시 적합하지 않는 경우가 많다. ... 이것은 우선 과학지식의 보급이 여전히 충분하지 않기 때문에 독자들에게 많은 예비지식을 요구하기란 곤란하고, 따라서 자연스럽게 초보적인 부분에 많은 지면을 소비할 수 밖에 없는 이유 때문일 것이다.


감정은 현재 안에서 과거를 살고자 한다. 기억은 과거를 개별적으로 재현한다. ... 과거는 내버려두면 도망가 버린다. 사람은 기억과 감정에 의해 이것을 잡아둔다.


"근대과학의 특징은 그 실증성에 있다. 자연법칙이란 자연현상을 기술하는 것이지 그것을 설명하는 것이 아니다"라는 점이 저자(<원자 물리학 개론>기쿠치 세이지)의 신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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