떠도는 자의 노래

...

아니, 이미 이 세상에 오기 전 저 세상 끝에 

무엇인가를 나는 놓고 왔는지도 모른다

쓸쓸한 나룻가에 누군가를 버리고 왔는지도 모른다

저 세상에 가서도 다시 이세상에

버리고 간 것을 찾겠다고 헤매고 다닐는지도 모른다


하산


언제부턴가 나는 

산을 오르며 얻은 온갖 것들을

하나하나 버리기 시작했다

평생에 걸려 모은 모든 것들을

머리와 몸에서 훌훌 털어버리기 시작했다

...



갈대-신경림


언제부턴가 갈대는 속으로

조용히 울고 있었다.

그런 어느 밤이었을 것이다. 갈대는

그의 온몸이 흔들리고 있는 것을 알았다.


바람도 달빛도 아닌 것.

갈대는 저를 흔드는 것이 제 조용한 울음인 것을

까맣게 몰랐다.

-산다는 것은 속으로 이렇게

조용히 울고 있는 것이란 것을

그는 몰랐다.



밤차,신림(원주 지나서 있는 치악산 아래의 작은 산역)에서-신경림 


세상은 온통

크고 높은 목소리만이 덮여

어느 것이 참이고

어느 것이 거짓인 줄을 

가릴 수 없는 세월이 많다

밤차를 탄다

산바람 엉키는 간이역에 내리면

감나무에 매달린 새파란 그믐달

비로소 크고 높은 목소리

귓가에서 걷히면서

작고 낮은 참목소리

서서히 들리기 시작한다

속삭임처럼 흐느낌처럼

멀리서 가까이서 들리기 시작한다



목계장터-신경림


하늘은 날더러 구름이 되라 하고

땅은 날더러 바람이 되라 하네

청룡 흑룡 흩어져 비 개인 나루

잡초나 일깨우는 잔바람이 되라네

뱃길이라 서울 사흘 목례나루에 

아흐레 나흘 찾아 박사분 파는

가을볕도 서러운 방물장수 되라네

산은 날더러 들꽃이 되라 하고

강은 날더러 잔돌이 되라 하네

산서리 맵차거든 풀 속에 얼굴 묻고

물여울 모질거든 바우 뒤에 붙으라네

민물 새우 끊어넘는 토방 툇마루

석삼년에 한 이레쯤 천치로 변해

짐 부리고 앉아 쉬는 떠돌이가 되라네

하늘은 날더러 바람이 되라 하고

산은 날더러 잔돌이 되라 하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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