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상 수상을 축하합니다 - 세계 8대 문학상에 대한 지적인 수다
도코 고지 외 지음, 송태욱 옮김 / 현암사 / 2017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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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7.6






 항상 기대에 미친다고 할 수 없지만 언제나 '무슨무슨 상 수상작'이라는 타이틀은 책을 고를 때 꽤 중요한 기준이 아닐 수 없다. 아마 나만 그런 건 아니리라. 하지만 특별히 선호하는 문학상은 없다. 유서 깊은 문학상일수록 항상 그 상의 이름에 걸맞지 않는 예외가 있을 거라 생각하기 때문이다.

 아무튼 그럼에도 항상 무슨 문학상이건 간에 새로 수상작이 발표되면 관심이 가고 평소 이름을 많이 들었던 작가가 타기라도 하면 '드디어' 라며 내 일 못지않게 반가워하기도 한다. 책이나 작가에 대해서 얘기하는 건 즐거운 일인데 거기다 문학상은 좋은 얘깃거리이기까지 하니까 늘 수상 소식에 관심이 간다.


 이 책은 일본의 번역가, 소설가, 시인, 비교문학자, 문학 교수, 서평가, 자유기고가 등이 문학상에 대한 대담집으로 읽기 전부터 적잖이 흥미로울 것으로 예상했다. 예상과는 살짝 다르게 내가 거의 모르는 작가와 작품을 얘기하니 그렇게 흥미진진하지 않았는데 의외의 작품이 화두에 올라 나름 재미가 쏠쏠하기도 했다. 부끄럽게도 책에서 다뤄지는 문학상 중에 나오키상, 아쿠타가와상만 조금 읽어봤고 나머지 노벨문학상, 부커상, 공쿠르상, 퓰리처상, 카프카상, 예루살렘상은 많이 접하지 못해서 그만큼 낯설었는데 그래도 이번에 몇몇 책을 전문가들한테 추천을 받았다고 생각하면 꽤 의미 있는 시간이었다고 할 수 있다. 그나저나 설마 나오키상 얘기할 때 후나도 요이치의 <무지개 골짜기의 5월>에 대해 얘기할 줄이야.

 처음 노벨문학상에 대해 얘기할 때도 그렇고 '비정상회담'에서 소설가 김영하 씨가 얘기하기도 했지만 특정 문학상이 세계 모든 문학의 기준이 될 수 없는 것 같다. 사람들 취향은 천차만별이고 하물며 나라별 취향이나 소설을 볼 때의 주안점도 다 다를 수밖에 없다. 소위 이름난 문학상들은 다 유럽 및 서구 기준에 맞는 작품이 수상하며 그 기준에 맞지 않았다고 해서 특정 작품을 무가치하다고 여겨서는 안 될 것이다.


 매년 수상 시기가 가까워지면 한국 문학은 언제 이런 상을 받느냐 하는 식의 기사가 나오는데 이 책을 읽으니 그런 기사가 참 부질없게 느껴졌다. 문학상은 역시 훌륭하고 명예롭거니와 독서가들 사이에서 재밌는 얘깃거리긴 하나 책을 고르는 절대적인 척도까진 아니기 때문이다. 오히려 그 상을 진작에 받아야 할 작가가 못 받는 경우도 더러 있는 것처럼 문학상에도 아쉬운 부분이 있을 수 있다. 어쩌면 문학상의 권위를 너무 인정할수록 그에 비례하게 인정받지 못하는 작가들이 늘어나는 게 아닐까. 그렇다면 역시 문학상은 재미로 들여다볼 기준으로 여기는 게 제일 좋을 듯하다.

다만 드라마의 탐정은 범인이라든가 동기 등 해명하려는 것이 분명히 밝혀지지만, 소설은 지금 자신이 해명하려는 것이 무엇인지 잘 모릅니다. 불모지요. 하지만 왠지 불모가 아니면 안 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합니다. - 197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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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두운 범람
와카타케 나나미 지음, 서혜영 옮김 / 엘릭시르 / 2017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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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1






 후기를 쓸 때면 아무래도 내 취향을 우선하게 되는데 간혹 내 취향과는 무관하게 그 작품, 아니면 그 작가 자체만으로 존중하고 싶은 경우도 있는 법이다. 와카타케 나나미의 작품은 아쉽게도 내 취향과는 맞지 않지만 한편으로 존중해주고 싶은 작품이기도 하다. 그 짤막하고 건조한 작풍이 유독 나에겐 난독증을 유발할 만큼 맞지 않지만 그럼에도 확고하면서 묘한 끌림이 있어 작가의 작품을 제법 기대하며 읽어왔다.

 <어두운 범람>은 일본추리작가협회상(단편부문) 수상작인 표제작을 포함한 5편이 수록된 단편집이면서 <의뢰인이 죽었다> 이후로 오랜만에 출간된 '하무라 아키라' 시리즈의 신작이다. 시리즈의 장편인 <나쁜 토끼>란 작품이 계속 출간 소식이 없어서 이 캐릭터를 평생 못 만나리라 생각했는데 이렇게 볼 수 있게 돼서 적잖이 반가웠다. 그 캐릭터는 일상 미스터리 작가가 구현할 수 있는 최상의 캐릭터성을 보유한 하드보일드 탐정이라 내심 그의 활약을 볼 수 있다는 게 무척 기대됐다.


 너무 기대했기 때문인 걸까? 최근 나는 이렇게 단편집을 접할 때마다 꼭 표제작만 재밌게 읽고마는 경우가 왕왕 있다. 표제작이거나 수상작이라고 했을 때 내가 무의식적으로 더 정독하기 때문인 걸까? 차라리 그런 거라면 좋으련만... 이 책의 5편의 수록작 중에 표제작 '어두운 범람'만이 인상적이었다. 처음 실린 '파리 남자'는 무난했고 다른 분들이 자주 거론하는 '광취'는 그저 그랬다. 나한텐 왜 그렇게 가독성이 떨어졌는지 모르겠네.

 읽으면서 작품들의 연결성이 떨어진다는 느낌을 받았는데, 아니나 다를까 작가의 일본추리작가협회상 수상을 기념하기 위해 기획된 책이라 급하게 모인 작품들이었다고 작가 후기에 적혀있었다. 그렇다 해도... 같은 시리즈의 <네 탓이야>나 <의뢰인은 죽었다> 같은 걸 생각했던 터라 읽기 전에 품었던 기대가 무색하게 실망할 수밖에 없었다.


 '어두운 범람'은 이름값을 했던 작품이었다. 도무지 정상 참작의 여지가 없어 담당 변호사조차 극형을 면할 수 없으리라 장담하는 범죄자에게 한 여자가 팬레터를 보낸다. 이 형용불가한 편지에는 일말의 이해불가한 오싹함이 풍겨지는데 하무라 아키라는 변호사의 의뢰에 따라 편지의 주인인 여자를 찾아나선다. 그러다 편지의 이면에 숨겨진 생각지 못한 비밀이 밝혀지는데...

 와카타케 나나미는 단편에 일가견이 있는 작가라고 하는데 추리소설은 모름지기 단편이 가장 효과적이라고 생각하는 나지만 그 말에 전적으로 동의하긴 좀 꺼려진다. 취향과 관점의 차이를 존중하는 한편으로 이 작가의 작품의 주안점은 분위기나 예상치 못한 전개에 있어서 '추리소설'에 집중하면 기대완 사뭇 다른 모습에 실망할 수도 있다는 게 내 솔직한 의견이다. 하지만 중요한 건 재밌으면 그만이라는 것이고 이 작가의 작품도 호불호는 갈릴 수 있으나 일정 수준 이상의 재미가 있기에 역시 읽어볼 만하다는 것을 강조하고 싶다. 이 작가도 내공이 꽤 있으니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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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인장의 살인 ㅣ 시인장의 살인
이마무라 마사히로 지음, 김은모 옮김 / 엘릭시르 / 2018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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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9







 이 책의 최고 반전은 제목에 들어가는 시인屍人의 뜻이다. 난 또 그 시인詩人인 줄 알았는데 설마 시체인 사람을 뜻할 줄은;; 찾아봤더니 우리나라에도 그렇고 일본에도 없는 단어였다. 작가가 만든 단어였나 보다. 뭐라 그러는 게 아니라, 참 잘 지은 제목이고 단어가 아닐 수 없다. 실로 교묘하게 작품의 핵심 키워드를 숨기지 않았는가. 그러면서도 흥미있는 제목이고.

 작가의 데뷔작인 동시에 아유카와 데쓰야상 수상작, 본격미스터리대상 수상작, 이 미스터리가 대단하다 best 1위에 선정되는 등 작년 일본 추리소설계에 커다란 파장을 일으킨 작품이라 그런지 우리나라에 빨리 번역 출간됐다. 너무 화려한 한편으로 혹시 빛 좋은 개살구가 아닐까 싶었는데... 그도 그럴 것이 시놉시스만 봤을 때는 전형적인 추리소설일 것만 같기 때문이다. 방학을 맞아 산장에 놀러간 일행이 무슨 연유로 거기 갇히게 되고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연쇄적으로 살인도 발생한다. 이 모든 미스터리를 무엇보다 논리적으로 풀어나간다는 게 작품의 개요인데 이렇게 내용을 숨기고 써놨으니 의심을 하지 않을 수가 있나. 어떻게 보면 이 책의 홍보는 수상 경력으로 반 이상 해먹은 감이 있다.


 어쨌거나 저쨌거나 이 책에 대한 사람들 평은 대체로 비슷한 것 같다. 좀비들의 습격으로 인해 형성된 클로즈드 서클이란 설정이 독특하고 연쇄 살인과 트릭 역시 좀비란 요소가 중요하게 작용해 역시 참신하다는 게 중론이다. 다만 초반에 대놓고 추리소설의 클리셰를 비꼬는 것이 패기가 있었던 것이 무색하게 막판에 나오는 범인의 동기가 진부하거나 트릭의 미묘한 불완전함이 깬다는 등 화려한 수상 경력에 비하면 퀄리티가 미치지 못한다는 것도 독자들의 일치하는 의견이다.

 나 역시 위의 의견과 거의 비슷하게 느꼈다. 그래도 몇 마디 거들자면, 일단 초반의 패기 있는 클리셰 비틀기를 뒤집는 전형적인 범인상, 동기 등은 나쁘지 않았다. 오히려 문제는 따로 있는데 그건 후에 얘기할 테고, 초반의 설정과 전개가 허를 찌르는 만큼 후반부가 고전적인 면을 보이는 게 나름 균형이 맞았다고 본다. 한결같이 독특한 것도 좋겠지만 이 작품으로 말할 것 같으면 이 정도만 해도 괜찮았다. 트릭의 불완전함도 마찬가지다. 이 문제도 밑에서 얘기할 어떤 문제와 일맥상통한데, 누가 뭐라 하더라도 좀비 설정을 특수하게 잘 살려서 - 좀비가 에워싼 산장 속에서 등장인물들이 침착해 보이는 게 옥의 티라면 티겠지만 - 그럴싸하게 만든 건 높이 평가해야 한다. 이런 설정은 정말 도전이고 작가는 충분히 잘 풀어냈으니까. 또 좀비 자체는 식상할 수 있어도 클로즈드 서클에 써먹기엔 꽤 신선한 소재였으니까 말이다.


 이 작품의 큰 문제는 캐릭터에 대한 묘사다. 비단 범인에 국한된 게 아니다. 왓슨 역을 맡은 주인공이나 탐정도 그렇다. 탐정 캐릭터는 약간 노리고 만든 특징이 보이긴 했지만 그래도 이 정도면 애교로 넘어갈 수 있다 치더라도 범인과 주인공의 심리 묘사가 미흡한 건 아쉬웠다. 범인이 살인을 결심하게 된 계기가 너무 드문드문 묘사됐고 결정적인 계기는 너무 쌩뚱맞아 복선으로 치기도 애매할 정도다. 이런 부분만 잘 썼더라도 트릭의 불완전함 같은 문제는 범인이 머리에 문제가 있다는 식으로 이해할 수라도 있었을 텐데... 아쉽긴 아쉽다.

 주인공의 심리 묘사는 더욱 아쉬웠다. 주인공은 어떤 사건으로 인해 도덕적으로 예민한 구석이 있는데 그에 대한 암시나 설명이 적고 뜬금없어서 그의 행동이 꽤나 중요한 역할을 함에도 불구하고 독자 입장에선 설득이 잘 되지 않았다. 1인칭 시점인 만큼 심리 묘사에 용이한 캐릭터였는데 가장 중요한 지점이 덜 묘사됐다는 것이야말로 이 작품의 패착이란 생각이 들었다.


 더도 덜도 말고 가볍게 읽기엔 적당했다. 초반에 추리소설이라면 으레 이럴 것이란 예상을 벗어나는 전개, 그리고 좀비로 에워싼 산장이란 설정에만 주목하면 절대 나쁘지 않은 작품이다. 하지만 그 이상을 기대하면 곤란하다. 하물며 각종 수상 기록에 주목하고 읽으면 더 곤란하다. 주목해야 할 부분은 이 작품이 작가의 데뷔작이라는 것이다. 작년에 다른 작품이 다 별로였나... 이런 생각은 하면 안 되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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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남자고, 페미니스트입니다
최승범 지음 / 생각의힘 / 2018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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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8







 페미니즘 도서를 자주는 아니지만 종종 찾아 읽는데 이렇게 남자가 쓴 책은 처음 읽어봤다. 사실 페미니즘이 세간의 인식과는 달리 남성에게도 대단히 이로운 터라 이런 책이 나올 때도 됐는데 왜 나오지 않는 걸까 싶었던 터라 존재 자체가 반가웠던 책이다. 작가는 현직 남고의 국어 교사이자 학생들이나 주변 교사에게도 조심스럽고 은근하게 페미니즘을 전파하는 페미니스트로 자신이 가르치는 학생만큼은 페미니즘을 올바르게 입문하게끔 교편을 잡았던 포부를 책의 형태로 넓히게 됐다고 한다. 여자가 썼느니 남자가 썼느니 하면서 성별의 구분이 큰 의미가 있을까 싶지만, 단언컨대 지금까지 읽은 페미니즘 도서 중 가장 뜻깊고 술술 읽힌 책이었다.

 작가가 페미니즘이나 젠더 감성에 깨기 시작한 계기가 평소 내가 생각한 부분과 크게 비슷해 동질감을 느꼈다.

 착한 아빠가 되기는 쉽고 나쁜 엄마 되기도 쉽다. 집안일 까딱 않고 가끔 유모차 끌고 동네 한 바퀴 돌아도, 명절에 한 번 설거지를 해도 사람들은 착한 아빠라고 부르지만 회사에 가사에 육아에 많은 일을 도맡다가 어쩌다 깜빡 잠이 들어 애가 감기에 들거나 회사에서 퇴근이라도 늦게 하면 나쁜 엄마 꼬리표가 바로 붙는다. 작가는 30대 중반의 남성으로 작가 본인의 이야기로 하여금 내용을 전개시키는데 어째 사례들이 하나같이 낯설지가 않았다. 한 가정 안에서 남녀의 불평등이 가정 안에서 끝날까? 그럴 리가, 우리는 가정에서의 남녀 차별은 극히 작은 일면에 지나지 않고 시대, 장소를 막론하고 퍼져있기 마련인 걸 간과해선 안 된다.


 이 책이 반갑고 유익했던 이유는 남자에게 왜 페미니즘이 필요한가에 대해 효과적이고 타당하게 역설하기 때문이다. 비단 남자는 진짜 페미니스트일 수 없다고 말하는 여성분들이 있는 걸로 아는데 그들의 논리는 이렇다. 남자의 태생적인 측면 때문에 진정으로 여성의 아픔에 공감하지 못할 것이라는 것. 하지만 모든 남자가 반드시 한 사람의 어머니이자 여자의 자식인 이상 절대적으로 여성과 무관한 삶을 살 수는 없다. 결국 남자도 남자 나름이기에 상술한 가정의 남녀 차별도 당연하게 받아들이는 사람도 있는 반면 작가처럼 불합리함을 느껴 자체적으로 페미니즘을 공부하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시작은 어떨지 몰라도 결과적으로 페미니즘은 남자에게도 매우 이롭다는 게 이 책의 주된 논지다. 가부장적인 가치관은 남자 입장에서도 결코 달갑기만 한 것이 아니다. 책의 표현을 그대로 빌리자면 페미니즘은 남성이 힘과 용기, 의지와 절제로 대표되는 견고하고 좁은 틀에서 벗어나 우는 남자, 말 많은 남자, 힘없는 남자도 괜찮다고 말한다. 군대 가라 떠밀고 데이트 비용과 집 장만의 부담을 주고 아담한 키나 작은 성기가 남성적이지 못하다는 이유로 주눅 들게 만드는 가부장제와 사뭇 다르다. 그런 연유로라도 모든 남성은 페미니즘에 관심을 가져볼 만하다. 페미니즘은 성별을 떠나 객관적이고 합리적인 시선을 늘 갖추고자 하기 때문이다.


 남자가 페미니즘을 공부한다고 하면 다소 낯설게 바라보는 게 우리의 현실이다. 나만 하더라도 '남자가 어떻게 여자의 편을 드느냐'고 질문을 받은 적이 있다. 페미니즘이 여성의 전유물이라는 그들의 단정이야 그렇다 쳐도 확실히 남자 페미니스트가 그리 환영받지 못하는 존재임은 분명한 것 같다. 어떻게 보면 태생적인 한계 때문에 페미니즘에 있어 알게 모르게 오류를 범할 여지가 있다고 볼 수 있고 시대의 흐름에 편승하려는 위선이나 여성에게 얄팍하게나마 환영 받으려는 술수로도 비춰지는 것도 같다.

 <저는 남자고, 페미니스트입니다>는 이런 맥락에서도 꽤 조곤조곤하고 겸손하게, 그러나 소신껏 입장을 밝히고 있다. 책의 제목에 페미니스트보다 남자가 먼저 들어가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남자니까, 모르니까 배워야 한다면서 가르침을 청해야 한다고 말한다. 또 남자들은 아무래도 같은 남자의 말을 더 경청하는 경향이 있어서 자기 같은 남성 페미니스트의 역할도 중요하며 - 실제로 나 또한 이 책을 읽는 내내 일말의 거부감도 들지 않았다. - 아무리 당사자가 옳다고 여긴다 하더라도 불특정 다수인 상대방에겐 그저 공허하고 드세게 들릴 수 있는 페미니즘도 서서히, 그리고 자연스럽게 얘기해야 효과적이라면서 실제로 교육자로서 실천하고 있다고 강조한다.


 교육자라서 그런가, 그만큼 내공이 있어서 그런 건지 책이 짧기도 했지만 정말 막힘 없이 술술 읽혔다. 작가의 말대로 같은 남자가 쓴 글이라서 감정 이입이 더 잘 이뤄진 덕분일까. 그렇게 이해하고 넘어가기엔 작가의 글이 남자한테만 잘 읽히는 글은 또 아닐 것 같다. 물론 이 책이 남자 독자를 대상으로 썼겠지만...

 불과 4월에 출간된 책이 6월에 5쇄를 찍은 것을 보면 이 책이 꽤 잘 팔리고 있음을 어렵지 않게 예상할 수 있다. 혹자가 '페미니즘은 돈이 된다' 라고 말하는 걸 별로 좋아하지 않지만 확실히 그냥 나온 말은 아닌 것 같다. 하지만 그럼에도 단순히 요즘의 경향이 페미니즘이기 때문에 이 책이 잘 팔린 것이라고 치부하고 싶진 않다. 마찬가지로 남자로서 페미니즘을 얘기하는 게 퍽 부담스러웠을 작가가 부던히 노력한 결과가 이 책에 고스란히 담겨있기 때문이다. 때문에 이 책은, 페미니즘은 일시적인 유행이 아니라 우리들의 미래라고 말하는 나에게 있어 언제나, 어디에서나 읽혀야 할 책이라는 생각까지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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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명탐정이 태어났다 ㅣ 블랙펜 클럽 BLACK PEN CLUB 13
우타노 쇼고 지음, 현정수 옮김 / 문학동네 / 2010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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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4







 막 찾아 읽진 않지만 한번 읽으면 빠져나오기 힘든 게 본격 추리소설인 것 같다. 본격 추리소설 자체가 공식이나 클리셰 투성이인 장르라 식상할 것 같지만 그래도 막상 접하면 작품마다 다 다르다. 본격이라는 틀 안에서의 변주란 정말이지 읽기 유쾌한 구석이 있다.

 이 책은 우타노 쇼고가 본격 추리소설의 테마 중 하나인 클로즈드 서클을 본인만의 스타일로 다룬 작품집이다. 8년 만에 두 번째로 읽으니까 이 작가의 개성이 그야말로 '냉소'와 '로망', 두 단어로 규정할 수 있지 않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대표작인 <벚꽃지는 계절에 그대를 그리워하네>이나 '밀실살인게임' 시리즈에서도 그런 느낌이 나지만 이렇게 3개의 단편- 정확히는 거의 중편에 달하는 분량 - 을 읽을 때도 느껴지니 생각 이상으로 본인만의 세계가 확고한 작가인 것 같다.



 '그리고 명탐정이 태어났다'


 표제작이 가장 재밌지 않다는 걸 보여주는 작품. 뒤에 수록된 두 작품보다 나중에 써진 것으로 알고 있는데 급하게 써서 그랬는지 추리보다 풍자의 요소가 짙었다. 때문에 추리소설과는 거리가 있지만 풍자하는 대상이 본격 추리소설과 거기에 등장하는 탐정들이라 제법 요긴하게 읽혔다. 한마디로 냉소적이기론 둘째 가라면 서러울 작품이었다. 돈만 밝히며 정의 구현에 관심조차 없는 탐정, 하지만 명탐정의 화신에 걸맞는 두뇌를 갖고 있는 탐정은 그 두뇌를 해선 안 되는 짓에 활용하고 만다. 앞에서 말했지만 추리소설적인 묘미는 떨어지나 추리소설을 코난이나 김전일 같은 작품부터 접한 사람이라면 굉장히 킥킥거리며 읽게 될 것이다. 제목도 참, 쓸데없이 멋있게 지었고...



 '생존자, 1명'


 사이비 종교의 신도 4명이 폭탄 테러를 저지르고 무인도로 피신한다. 하지만 그 섬에서 사람들이 하나 둘 시체로 발견되면서 펼쳐지는 불가사의한 연쇄살인극이 발생하는데... 범죄자란 신분 때문에 섬에서 구조 요청에 소극적일 수밖에 없는 상황에서 자꾸 사람들이 살해당한다는 게 좀처럼 이해가 되지 않아 읽는 내내 불길했고 마지막 범인의 정체나 결말은 범인만의 논리적인 광기 - 광기는 논리적일수록 무서운 법이다. - 가 제대로 드러나서 무서움이 배가됐던 작품이다. 범인의 계획의 마지막 부분이 도박이나 다름없다는 점은 좀 깼고 트릭의 난이도도 낮은 편이었지만 클로즈드 서클만의 분위기가 잘 살아났고 무엇보다 연출이 뛰어나서 상당히 흡입력 있었다. 8년 전에 처음 읽었을 땐 수록된 3작품 중 이 작품이 가장 재밌었다. 여담이지만 이 작품이 가장 본격적이라서 본 작품집에선 제일 이질적이기도 했다.



 '관이라는 이름의 낙원에서'


 8년 전엔 '생존자, 1명'이 제일 좋았다면 요번엔 이 작품이 제일 좋았다. 저택이나 섬 등 그런 환경이 고립되는 경우는 보통 자연재해인 경우가 많아 긴박감이 최고조를 찍는 연출이 많은데 이 '관이라는 이름의 낙원에서'는 그러한 연출과는 정반대다. 본격 추리소설하면 깜빡 죽는 부부가 자신들의 로망을 현실적이고 디테일하게, 그리고 스케일에 있어서도 타협이 없는 방식으로 실현해낸다. 이른바 서양식 저택에서 펼쳐진 살인극을 베이스로 연극을 해보자는 내용인데 대학 시절 추리소설 동아리에 소속된 친구들끼리 펼쳐지는 이 연극은 뜻밖의 감동을,  <벚꽃~>과는 결이 다르지만 이 작품도 로망과 아름다움을 선사해준다.

 표제작이 '냉소'를, 이 작품은 '로망'을 담아냈다고 생각하면 되는데 차이점은 전자는 추리소설적인 재미가 평범한 것에 비해 후자는 추리소설적으로도 걸출하단 것이다. 결코 그냥 나오지 않은 서술들 - 화자가 대놓고 강조하긴 하지만 - 에선 조형미가 느껴졌고 관의 특성에 맞는 물리적인 트릭 역시 기발했다. 이 맛에 본격추리를 읽는 것이라고 혼자 고개를 주억거릴 정도였다. 가히 중증에 가까운 추리소설 애호가의 모습은 처음엔 헛웃음이 다 나왔지만 이내 순수하게 존경하게 되니... 어떻게 보면 극단적이지만 이것도 참 좋은 인생이구나 라는 말이 절로 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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