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는 남자고, 페미니스트입니다
최승범 지음 / 생각의힘 / 2018년 4월
평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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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8







 페미니즘 도서를 자주는 아니지만 종종 찾아 읽는데 이렇게 남자가 쓴 책은 처음 읽어봤다. 사실 페미니즘이 세간의 인식과는 달리 남성에게도 대단히 이로운 터라 이런 책이 나올 때도 됐는데 왜 나오지 않는 걸까 싶었던 터라 존재 자체가 반가웠던 책이다. 작가는 현직 남고의 국어 교사이자 학생들이나 주변 교사에게도 조심스럽고 은근하게 페미니즘을 전파하는 페미니스트로 자신이 가르치는 학생만큼은 페미니즘을 올바르게 입문하게끔 교편을 잡았던 포부를 책의 형태로 넓히게 됐다고 한다. 여자가 썼느니 남자가 썼느니 하면서 성별의 구분이 큰 의미가 있을까 싶지만, 단언컨대 지금까지 읽은 페미니즘 도서 중 가장 뜻깊고 술술 읽힌 책이었다.

 작가가 페미니즘이나 젠더 감성에 깨기 시작한 계기가 평소 내가 생각한 부분과 크게 비슷해 동질감을 느꼈다.

 착한 아빠가 되기는 쉽고 나쁜 엄마 되기도 쉽다. 집안일 까딱 않고 가끔 유모차 끌고 동네 한 바퀴 돌아도, 명절에 한 번 설거지를 해도 사람들은 착한 아빠라고 부르지만 회사에 가사에 육아에 많은 일을 도맡다가 어쩌다 깜빡 잠이 들어 애가 감기에 들거나 회사에서 퇴근이라도 늦게 하면 나쁜 엄마 꼬리표가 바로 붙는다. 작가는 30대 중반의 남성으로 작가 본인의 이야기로 하여금 내용을 전개시키는데 어째 사례들이 하나같이 낯설지가 않았다. 한 가정 안에서 남녀의 불평등이 가정 안에서 끝날까? 그럴 리가, 우리는 가정에서의 남녀 차별은 극히 작은 일면에 지나지 않고 시대, 장소를 막론하고 퍼져있기 마련인 걸 간과해선 안 된다.


 이 책이 반갑고 유익했던 이유는 남자에게 왜 페미니즘이 필요한가에 대해 효과적이고 타당하게 역설하기 때문이다. 비단 남자는 진짜 페미니스트일 수 없다고 말하는 여성분들이 있는 걸로 아는데 그들의 논리는 이렇다. 남자의 태생적인 측면 때문에 진정으로 여성의 아픔에 공감하지 못할 것이라는 것. 하지만 모든 남자가 반드시 한 사람의 어머니이자 여자의 자식인 이상 절대적으로 여성과 무관한 삶을 살 수는 없다. 결국 남자도 남자 나름이기에 상술한 가정의 남녀 차별도 당연하게 받아들이는 사람도 있는 반면 작가처럼 불합리함을 느껴 자체적으로 페미니즘을 공부하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시작은 어떨지 몰라도 결과적으로 페미니즘은 남자에게도 매우 이롭다는 게 이 책의 주된 논지다. 가부장적인 가치관은 남자 입장에서도 결코 달갑기만 한 것이 아니다. 책의 표현을 그대로 빌리자면 페미니즘은 남성이 힘과 용기, 의지와 절제로 대표되는 견고하고 좁은 틀에서 벗어나 우는 남자, 말 많은 남자, 힘없는 남자도 괜찮다고 말한다. 군대 가라 떠밀고 데이트 비용과 집 장만의 부담을 주고 아담한 키나 작은 성기가 남성적이지 못하다는 이유로 주눅 들게 만드는 가부장제와 사뭇 다르다. 그런 연유로라도 모든 남성은 페미니즘에 관심을 가져볼 만하다. 페미니즘은 성별을 떠나 객관적이고 합리적인 시선을 늘 갖추고자 하기 때문이다.


 남자가 페미니즘을 공부한다고 하면 다소 낯설게 바라보는 게 우리의 현실이다. 나만 하더라도 '남자가 어떻게 여자의 편을 드느냐'고 질문을 받은 적이 있다. 페미니즘이 여성의 전유물이라는 그들의 단정이야 그렇다 쳐도 확실히 남자 페미니스트가 그리 환영받지 못하는 존재임은 분명한 것 같다. 어떻게 보면 태생적인 한계 때문에 페미니즘에 있어 알게 모르게 오류를 범할 여지가 있다고 볼 수 있고 시대의 흐름에 편승하려는 위선이나 여성에게 얄팍하게나마 환영 받으려는 술수로도 비춰지는 것도 같다.

 <저는 남자고, 페미니스트입니다>는 이런 맥락에서도 꽤 조곤조곤하고 겸손하게, 그러나 소신껏 입장을 밝히고 있다. 책의 제목에 페미니스트보다 남자가 먼저 들어가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남자니까, 모르니까 배워야 한다면서 가르침을 청해야 한다고 말한다. 또 남자들은 아무래도 같은 남자의 말을 더 경청하는 경향이 있어서 자기 같은 남성 페미니스트의 역할도 중요하며 - 실제로 나 또한 이 책을 읽는 내내 일말의 거부감도 들지 않았다. - 아무리 당사자가 옳다고 여긴다 하더라도 불특정 다수인 상대방에겐 그저 공허하고 드세게 들릴 수 있는 페미니즘도 서서히, 그리고 자연스럽게 얘기해야 효과적이라면서 실제로 교육자로서 실천하고 있다고 강조한다.


 교육자라서 그런가, 그만큼 내공이 있어서 그런 건지 책이 짧기도 했지만 정말 막힘 없이 술술 읽혔다. 작가의 말대로 같은 남자가 쓴 글이라서 감정 이입이 더 잘 이뤄진 덕분일까. 그렇게 이해하고 넘어가기엔 작가의 글이 남자한테만 잘 읽히는 글은 또 아닐 것 같다. 물론 이 책이 남자 독자를 대상으로 썼겠지만...

 불과 4월에 출간된 책이 6월에 5쇄를 찍은 것을 보면 이 책이 꽤 잘 팔리고 있음을 어렵지 않게 예상할 수 있다. 혹자가 '페미니즘은 돈이 된다' 라고 말하는 걸 별로 좋아하지 않지만 확실히 그냥 나온 말은 아닌 것 같다. 하지만 그럼에도 단순히 요즘의 경향이 페미니즘이기 때문에 이 책이 잘 팔린 것이라고 치부하고 싶진 않다. 마찬가지로 남자로서 페미니즘을 얘기하는 게 퍽 부담스러웠을 작가가 부던히 노력한 결과가 이 책에 고스란히 담겨있기 때문이다. 때문에 이 책은, 페미니즘은 일시적인 유행이 아니라 우리들의 미래라고 말하는 나에게 있어 언제나, 어디에서나 읽혀야 할 책이라는 생각까지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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