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신의 7일 ㅣ 이사카 코타로 사신 시리즈
이사카 고타로 지음, 김소영 옮김 / 웅진지식하우스 / 2014년 7월
평점 :
절판


9.3






 스포일러 : 16% (마지막 문단)


 전편을 읽은 지 좀 돼서 기억이 가물가물했지만 내용이 이어지지 않고 캐릭터와 설정만 겹치는 정도니 감상에 지장은 없었다. '사신 치바' 시리즈는 치바라는 사신의 시선으로 인간의 생과 사, 그리고 운명을 관찰하기에 읽는 입장에서도 열광스럽지 않고 초연하게 되지만 자꾸 이야기를 따라가게 되는 희한한 작풍을 선보인다. 이런 작풍에서 언뜻 히어로 영화 <데드풀>이 떠올랐는데 사건의 주역이 어울리지 않게 시종 엉뚱함을 유지하거나 자신이 제3자임을 강조하려는 언동 때문에 그랬던 것 같다. 데드풀은 주인공임에도 제4의 벽을 넘는 기행을 일삼는 게 웃겼던 것이고 치바는 엄연히 제3자이고 본인도 그걸 잘 아는데 자꾸 주인공네한테 얼쩡거리는 게 웃긴다는 차이가 있지만 말이다.

 이렇게 이사카 코타로의 장기들이 빠짐없이 녹아든 작품은 오랜만에 읽었는데 개인적으로 지루한 전개 빼고는 전성기 시절의 모습이 많이 보여 읽으면서 점점 반가워졌던 작품이다. 암울한 상황에 어울리지 않게 나사 빠진 행동을 보이고 농담이나 따먹는 인물들, 그런 분위기에 익숙해질 무렵 다시금 상황을 상기시키는 무시무시한 사이코패스 - 작가의 데뷔작 <오듀본의 기도>에 나온 시로야마가 연상됐다. - 의 존재감, 지치지도 않고 집착하듯 강조되는 철학적인 주제의식과 명언... 뭐, 퍼즐식 구성은 말할 것도 없다. 사실상 이사카 코타로 스타일의 엔터테인먼트 소설이 또 한 편 나왔다고 생각하면 된다. 단, 책 뒷표지에 적힌 것처럼 <골든슬럼버>에 비할 만한 치밀한 플롯인지는 모르겠다. 나름 치밀했지만 지루함이 분명 있었기에. 치바가 작가가 만든 최강의 캐릭터란 것엔 이견이 없지만.


 각종 창작물에 나온 사신 중 치바와 가장 비슷한 유형의 캐릭터라고 하면 만화 <데스노트>의 류크가 떠오르는데 다른 사신에 비해 인간사에 관심이 있고 일도 부지런히 하는데 생각 이상으로 냉정해서 인간에게 깊이 공감하는 모습은 보이지 않는다는 것까지 무척 닮았다. 얼핏 애매모호해 보이는 이러한 존재감은 평소엔 유머러스하지만 중요한 순간엔 넘볼 수 없는 서늘함을 풍기는데 처음엔 이런 방관하는 태도가 뭐지 싶었지만 후반부로 갈수록 이야기의 진행이나 감동, 카타르시스를 묘사함에 있어서 대단히 뛰어난 설정이란 생각에 감탄을 금할 수 없었다. 알 듯하면서도 결국 예측을 벗어나는 언동은 사건을 필요 이상으로 꼬이게 하거나 아니면 허무하게 해결해버리는데 작중에서 치바의 목적은 어디까지나 해당 인간을 죽기 전 7일 동안 관찰하는 것뿐이기에 - 어차피 '가'로 보고해 해당 인간이 죽게 할 거지만 - 그가 범하는 돌발 행동이 등장인물이나 독자에게 그야말로 상당한 희로애락을 안겨준다.

 치바가 담당하는 인간은 천지가 개벽하는 일이 일어나지 않는 이상 결국 죽을 것이고 그 인간은 딸을 죽인 범인에게 복수하는 것만이 유일한 삶의 목표라서 결말이 뻔할 것이라고 생각할 수 있지만 이야기는 결코 쉽게 결말에 이르지 않는다. 이 부분에서 지루함과 경이로움을 동시에 느꼈는데, 여담이지만 작중에서 파스칼의 <팡세>와 와타나베 가즈오의 말이 - 에도 시대의 산킨교대와;; - 많이 인용돼서 지겨웠지만 결국 그 책을 읽어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인간의 원초적인 궁금증과 두려움인 죽음과 그 이전의 삶에 대해 사유할 기회가 생각보다 그리 많지 않은데 작품에서 하도 많이 언급돼 궁금해졌기 때문이다.


 독자는 물론이고 작가도 본인의 작품을 엔터테인먼트 소설로 규정하지만 본작에서 삶과 죽음에 대해 나누는 얘기들만 보면 여느 인문학 도서 못지않다는 생각이 들었다. '결국 죽음 그 자체가 무서운 것인가, 죽은 그 이후가 무서운 것인가, 죽음에 이르는 과정이 무서운 것인가' 를 고민해보기도 좋았고 때론 '죽지 않아도 그 이상의 고통이 존재한다면 그건 무엇이고 그렇다면 죽음이 정말로 두렵지 않을 수 있을까' 에 대해 생각하는 것도 좋았다. 솔직히 보편적인 주제긴 했지만 진지하게 몰입할 수 있게끔 최적의 상황과 설정이 마련됐기에 이 정도 수준까지 주제의식이 깊어지지 않았나 싶다.

 개인적으로, 약간 스포일러가 될 수 있지만 주인공을 괴롭힌 범인의 최후가 정말이지 죽음의 좋은 점을 역설한 나머지 - 이루 말할 수 없는 통쾌함은 덤이다. 아니, 끔찍한 건가? - 후회없는 삶이 무엇인지 생각하게 됐던 것과, 자식을 두고 먼저 영면에 든 주인공의 아버지가 놀이공원에서 유령의 집에 먼저 들어가는 것에 비유한 건 정말 마음에 들었다. 죽음에 대한 이런 발칙하고 유쾌한 시선은 작가의 개성과 직결돼서 작가의 다른 작품을 계속 찾게 되는 결정적인 이유일 것이다. 여름에 열렸던 작가 초청회가 기억나는데 그런 자리가 더 있으면 좋겠다. 이렇게 멋진 작품을 쓰는 작가와 그토록 짧게 대면한 게 정말 아쉽기 그지없다.



 p.s 이 시리즈는 매번 원제와 출간 제목이 다르다. 이 작품도 원제가 <사신의 부력>인데 부력이란 단어의 뜻이 바로 와 닿지도 않거니와 눈에 띄지도 않아서 바꾼 게 이해는 되지만 그렇다고 '7일'로 바꾼 건 좀 구리지 않았나 싶기도 하다. 게다가 부력이 작품 이해에 있어 빠질 수 없는 단어라 제목에서 빼버린 건 역시 아쉽다.

가정 따위 아무 의미도 없다. 그렇게 따지면 더 근원적인 후회, 즉 ‘태어나지 말았어야 했다‘는 고통으로 이어지게 된다. - 105p




인간이 할 수 있는 것은 자신을 통제하는 것이 아니라, 통제할 수 없다는 핑계를 생각해내는 것과 목표를 변경하는 것이다. - 231p




살벌한 시대에 살벌한 걸 표현하는 건 재미도 없고 아무렇지 않아. 어차피 만들 거면 그 반대가 차라리 낫지.

(중략)


정말로 재능 있는 사람이 쓰면 걸작이 되죠. 하지만 대부분 흉내만 낸 것들이에요. 기왕 흉내를 낼 거면 검은 바탕에 검은색 말고 다른 색으로 그림을 그리는 게 낫죠. - 291~292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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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코쿠를 걷는 여자
최상희 지음 / 푸른향기 / 2016년 10월
평점 :
절판


8.3







 내 버킷 리스트 중에 오헨로 순례길 완주가 있는데 아예 고생을 사서 하는 것이라서 과연 버킷 리스트라 함부로 말해도 되는 것인지 의문이 든다. 시코쿠에 있는 88개의 절을 돌면서 자연스레 섬도 한 바퀴 도는 그 순례길은 원래 코보 대사라는 승려가 불교의 가르침을 전하며 수행했던 발자취로 1,200년이 지난 오늘날에 와서도 셀 수 없는 사람이 각자의 염원을 담고 오르게 되는 길이기도 하다. 이 책의 저자도 부친과의 이별로 울적했던 마음을 달래기 위해 순례길에 오른 것이었데 꼭 그 정도의 영적 목표가 없는 내가 쉽게 입에 담을 만한 목표이긴 한 걸까? 그저 재미로, 걷는 걸 좋아한다며 여행 삼아 도전하기엔 고행도 보통 고행이 아닌 듯해서.

 책은 작가가 최초로 결원 - 88개소 사찰을 전부 도는 것. - 을 하던 중에 겪은 일, 만났던 사람들에 대해 일기 형식으로 쓴 에세이와 부록, 질의응답, 그리고 숙박업소 소개로 이뤄져있다. 오헨로 순례길에 오르는 사람이 전부 일어에 능통할 리도 없으니 아무래도 어디서 자는가 하는 것이 가장 큰 걱정일 텐데 그 심정을 잘 아는지 작가가 매우 실용적인 정보를 수록해줬다. 각 숙소의 위치나 종류, 인상, 가격, 식사가 맛있었던 여부, 기타의 조건 등 비경험자 입장에서 혹할 만한 자료라서 작가의 세심함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었다.


 작가는 2010년에 최초로 결원한 이후로 지금까지 6번을 더 했고 - 책의 출간일이 2년 전이니까 6번보다 많아졌을 것이다. 또 번외 결원까지 합하면... 모르긴 몰라도 장난 아니게 걸었다는 얘기다. - 순례길에 처음 오르는 사람을 안내하는 안내자 역할을 외국인 최초로 하게 됐고 그 외에도 시코쿠의 옛길을 복원하는 작업과 순례 표지판을 설치하는 등 활동 영역을 넓히는 등 가히 8년 전의 결원으로 인생이 바뀐 장본인이라 할 수 있다.

 어제 아는 형과 대화하면서 여행이 단순히 견문을 넓히는 것 이상의 기회를 잡을 수 있는 기회라는 얘기가 잠깐 오갔었는데 지금 생각하니 그 말에 아주 부합하는 주인공이 바로 작가가 아닐까 싶다. 이 작가의 경우 상업적인 목적으로 순례길에 오르거나 책을 쓴 건 아니지만 순례길에 오르기 전, 아버지와의 이별 말고도 가게도 잘 안 되는 등 인생이 순탄히 풀리지 않은 걸 떠올리면 이 오헨로 순례길이 작가의 인생에 있어서 터닝 포인트이자, 신의 한 수라 불러도 손색이 없을 것 같다. 나름 철저히 준비했음에도 반신반의했던 작가도 설마 본인의 인생이 이렇게 바뀌리라고 생각해보지 않았을 것이다.


 그런 측면에서 봤을 때 이 글 서두에 내가 이 순례길에 오르는 걸 버킷 리스트라고 말해도 되는지 걱정했던 건 너무나도 앞서 간 걱정이었는지 모르겠다. 순례길에 오르는 게 무슨 대단한 자격이 필요한 것도 아니고 그냥 의지가 동반되는 고생스런 길일 뿐이다. 각자가 무엇을 바라든 그 기나긴 걸음 속에서 대답을 해주는 건 길이나 걸음이 아닌 발을 움직이는 나 자신일 것이다. 걷고 있다 보면 변화를 맞이할 것인지, 아니면 계속 그대로일 지는 직접 걷지 않으면 장담할 수 없는 법이다.

 단순히 종교적 차원에서가 아니라 변화나 도전하는 차원에서, 마음 속 깊이 무언가를 염원하기 위해서, 때론 그 과정에서 대가 없는 친절을 경험하면서 - '오셋다이'를 가리키는데 시코쿠 사람들은 순례자들을 보면 음식값을 내주거나 집에서 재워주는 등의 대가 없는 친절을 베푼다고 한다. - 깨달음을 얻는 등 그 여정이 주는 효과는 쉽게 정의내리거나 넘겨짚을 수 없을 것이다. 작가의 글을 읽다보니 괜한 고민을 했던 스스로가 그렇게 답답할 수가 없었다.


 만약 진지하게 순례길에 오르려고 한다면 동기 부여나 정보 탐색 등의 이유로 이 책을 자주 찾아볼 듯하다. 8년 전엔 관련 책이 없어서 당황한 기억이 있었기에 이제 예비 순례자를 위해 직접 이 책을 썼을 터인 이 저자가 대단하고 고맙게 느껴졌다. 그렇게나 인생이 변화할 수 있다니, 무척이나 부럽고 탐이 나기도 했다.




https://blog.naver.com/jimesking/221185854072

 이건 관련 책에 대한 포스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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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지막 재즈 콘서트 ㅣ 시공 청소년 문학 18
조단 소넨블릭 지음, 김영선 옮김 / 시공사 / 2007년 8월
평점 :
품절


7.5






 꽤나 유쾌하게 시작하고 있지만 이 작품도 무거운 문제를 다루고 있다. 여러 복합적인 요인이 겹쳐 아무튼 술을 마시고 운전대를 잡아 마을을 질주하다 남의 집 정원에 들어가 겨우 잔디 도깨비 인형을 박살내버린 주인공의 처지가 우스꽝스럽긴 하지만 이는 엄연히 범죄다. 고작 도깨비 인형을 박살냈을 뿐이지만 결과가 좋았다고 그냥 넘아갈 수 있는 일이 아니다. 그래서 판사는 주인공에게 사회 봉사 100시간을 하라는 판결을 내리고 주인공은 당초 예상보다 많은 변화를 겪는데 자기 죄를 인정할 뿐더러 새로운 삶의 지표를 얻기에 이른다. 갱생이란 단어를 담기에 시종 가벼운 분위기가 일관되긴 하지만 그 진실됨과 설득력에 있어서 이래저래 성숙한 작품이라 하고 싶다.

 작가의 전작은 직전에 읽은 어떤 작품 때문에 형제애가 크게 와 닿지 않은 반면에 이 작품은 최근 소년의 갱생에 대한 이야길 접하고 난 다음에 읽어서 그런지 몰라도 생각보다 감동적으로 읽혔다. 거의 10면 만에 읽어서 문체나 여러 부분에서 처음 읽을 때만큼의 신선함은 없었지만 - 심지어 반전은 뻔했고 - 100시간 봉사를 하는 주인공 알렉스와 그런 알렉스가 요양원에서 담당하게 된 괴짜 할아버지 솔로몬과의 유대 및 캐미가 워낙 찰져서 심심치 않게 몰입할 수 있었다.


 아무래도 작가의 작품들의 특징이라고 하면 음악을 빼놓을 수 없겠는데 개인적으로 전작에서의 드럼이란 요소가 어디까지나 수단에 불과했단 인상을 지우기 힘들었던 것에 비해 이 작품에선 재즈 기타가 수단 그 이상의 소재라서 인상적이었다. 괴짜 할아버지 솔로몬도 왕년에 주름 잡던 재즈 기타리스트였고 이 '우연'한 만남으로 인해 둘이 가까워졌고 알게 모르게 알렉스가 자기 잘못을 인정하고 가족이나 친구와의 인연을 소중히 하게 되는 역할도 겸하고 있어서 전반적으로 이야기가 전작 이상으로 탄탄하게 읽혔다. 뭐, 연주를 통해 카타르시스가 극대화되는 건 더 말할 것도 없고.

 무려 10년도 더 전에 읽은 작품을 읽는 게 솔직히 걱정되는 일이었지만 책을 읽는 게 단순히 그 작품 하나만 읽는다기 보단 현재 내가 처한 상황이나 갖고 있는 생각에 따라 감상이 천차만별로 달라지기도 하는 것이라 지레 겁먹었던 것 같다. 과거에 재밌게 읽은 작품을 지금은 시큰둥하게 읽히는 게 어쩔 수 없는 동시에 또 씁쓸한 일이기도 하지만 그럼에도 두 번 읽기를 포기할 수 없는 건 위에서 말한 점말곤 다른 이유는 없을 것이다. 어쨌든 옛날에 읽은 책을 또 읽는 건 그 나름대로 의미가 있는 일이니까.

언젠가 너도 진짜로 사과할 때는 중간에 ‘하지만‘이라는 단어가 나오지 않는다는 것을 알게 될 거다. - 145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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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인출산
무라타 사야카 지음, 이영미 옮김 / 현대문학 / 2018년 1월
평점 :
절판


7.7






 최근 쓰려고 하는 소설 때문에 참고 삼아 읽었는데 생각보다 충격적이라 멘탈이 살짝 흔들렸다. <편의점 인간> 때도 이상한 작가라고 생각했지만 이 작품에 비하면 그 작품을 쓸 때는 그나마 정상이었다는 생각도 든다. 작가 본인이 인정하듯 이상하기 짝이 없는 소설만 실린 소설집이었는데 이것 참... 대단하긴 하다. 솔직히 어떤 의미에선 좀 감탄했다.



 '살인출산'


 표제작이자 중편으로 200페이지 되는 책에서 60%가 넘는 분량을 차지한, 이 소설집의 인상을 실질적으로 담당하는 작품이기도 하다. 약 100년 뒤의 미래를 배경으로 '10명을 출산하면 사람을 한 명 죽일 수 있는 세상'에서 벌어지는 이야기다. 그 세상은 완벽한 피임이 이뤄져 성 관계는 애정 행위일 뿐, 더 이상 어떤 우발적인 임신과 출산이 발생하지 않아서 인구는 현저히 줄어들었다. 아기는 인공 수정으로 낳을 수밖에 없어서 그 세계는 대리모의 역할을 - 남자도 인공 자궁을 통해 수행할 수 있다. - 사람들이 자원하게끔 저런 법률을 만들었다고 한다.

 사람을 낳은 사람만이 다른 사람을 죽일 기회를 가진다, 이런 논리가 합리적이고 실로 명예로운 것으로 여겨지는 가상의 미래는 우리 상식을 아득히 초월해 약간 역겹지만 나름의 논리가 있어 흥미롭기도 했다. 작가가 밝히기를 기존 우리들의 세상과 전혀 다른 사고를 가진 세상을 통해 상식과 평범의 전복을 꾀하면서 진정 상식과 평범이란 무엇인가 독자 스스로 반문하게끔 하는 게 작품을 쓴 이유라고 했다. 엄연히 디스토피아지만 원래 디스토피아가 작가가 말한 측면으로 읽기에 대단히 좋은 설정이라 나 역시 무리없이 읽어나갔는데... 지금 시점에서 비정상적인 사회의 사람들 사이에서도 비정상적으로 여겨지는 인물이 등장함으로써 그나마 소설에 품고 있는 호감마저 다 날아가버렸다.


 출산을 10번 한다는 게 말은 쉽지만 최소 10년은 걸리는 일이다. 사산의 경우엔 카운트하지 않기 때문에 실제로 더 걸릴 수 있는데, 여기서 궁금한 건 출산을 자원한 사람들에겐 이렇게 오랜 시간 동안 살의를 유지시킬, 그 정도로 죽이고 싶은 사람이 있단 말인가 하는 것이었다. 아이러니하게도 이러한 출산자 - 작중 용어 - 들이 명예로운 일을 하고 있음에도 가족들은 가까이 다가가지 못하는데 이유는 출산자가 죽이고 싶어 하는 사람이 혹시 자기일까봐;;

 주인공의 언니도 약간 비슷한 취급을 당했는데 아기를 10명 낳고서 죽이고 싶다고 지목하는 사람이 정말 가관이었다. 여기서부터 국가적 차원에서 용인돼 지목한 사람을 죽이는 장면까지는 가히 19세 미만 구독 불가 딱지가 붙고도 남을 만했다. 수위의 문제도 있지만 정말 그 세계 기준에 맞춰 살인 장면을 명예롭거니와 - 죽이는 사람은 물론 죽는 사람까지도! - 아름답게 묘사하는 방식이 소름 끼쳤다. 게다가 살인의 이유며 주인공의 선택은 아까 말했듯이 그 세계 기준에서도 일반적이지 않아 불쾌감만 남을 수밖에 없었다. 혹시 자연스런 상상력과 세계관의 SF를 기대하고 읽는 사람이라면 이 소설은 읽기 전에 한번 고려해보는 것이 좋다. 엄밀히 말하면 자연스런 상상력과 세계관과는 거리가 머니까.

 그나저나 이 작품이 왜 센스오브젠더상 '저출산대책특별상'을 수상했는지 모르겠다. 어, 어딜 봐서...?



 '트리플'


 이후 수록된 작품은 다 짧아서 사실 작품보단 콩트나 소설 형태의 설정집이라고 부르고 싶은데 일단 '트리플'의 경우엔 박현욱의 <아내가 결혼했다>가 떠올랐다. 그 작품도 세 명의 결혼 생활을 장편의 형식을 빌려서도 완벽히 그려내지 못했는데 '트리플'은 너무 많은 부분에서 특유의 논리를 비약시켜 당최 설득이 되지 않았다. 인간의 본성에 다수와 연애하고 싶은 욕망이 있다는 건 둘째 치더라도 그런 연애 방식이 유행하게 된 계기나 실제로 만나서 연애하는 과정이 생각만큼 당위성이 부족한 탓이다. 그냥 작중 핵심 등장인물 셋의 좀처럼 와 닿지 않는 애정 행각 정도로만 인식되기만 할 뿐이었다. 그리고 무엇보다 흥미롭지도 않은 게 문제였다. 내가 이해를 돕기 위해 <아내가 결혼했다>를 언급한 게 창피할 정도로.



 '청결한 결혼'


 이 작품은 비교적 평범했다. 성 관계를 전혀 하지 않는 부부가 어느 정도 일반화된 세상이 나오는데 어떻게 보면 파격적이지만 현 시점에서도 충분히 있을 만해서 그다지 참신하진 않았다. 물론 아기를 가지고 싶어 굳이 성 관계 없이 아기를 만드는 방법을 모색하다 열거되는 기상천외한 방법이나 각자의 성적 취향을 알게 되는 장면 등은 작가답게 가감없이 그려져서 재밌었지만.



 '여명'


 4페이지도 안 되는 작품. 자살 외엔 죽을 수 있는 방법이 없어 결국 셀프 자살이 유행하는 세계를 배경으로 하고 있다. 주인공이 남들 눈에 띄지 않게 죽을 장소를 찾아 약을 먹고 죽는다는 내용인데 분량이 너무 짧아 감상이 남고 자시고도 없었다. 성의가 없는 거 아닌가 하는 게 내 솔직한 심정이다.

당신이 옳다고 여기는 세상을 믿고 싶으면, 당신이 옳지 않다고 여기는 세상을 믿는 사람을 용서할 수밖에 없어요. - 90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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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스 플라이트 ㅣ 오늘의 젊은 작가 20
박민정 지음 / 민음사 / 2018년 7월
평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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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2






 아무래도 생판 모르는 작가도 아닌 무려 교수님의 책을 읽는다는 게 제법 부담스런 일이었지만 그런 사적인 감정을 배제하고도 너무 멋들어진 소설이라 새삼 내가 참 대단한 분에게 소설을 배웠다는 생각이 들었다. 비록 한 학기 동안이었지만 정말 영광스럽기 그지없다. 나도 이렇게 쓰고 싶은데.

 한 승무원의 자살에서 시작되는 소설은 내 예상과는 사뭇 다르면서도 어느 정도 짐작이 가는 형태로 나아갔다. 승무원이 자살했다고 하면 요즘 말이 많은 항공사의 내부 상황에 지친 탓이라고 넘겨 짚기 마련인데 작품은 보다 근원적인 차원에서, 그리고 도의적인 차원에서 자살의 이유를 찾는다. 일찍이 젋은 작가상을 수상한 <세실, 주희>에서도 우리들의 심리 기저에 녹아든 민감한 감정선을 파고들었던 작가님이기에 - 교수님이라고 부르고 싶지만 이제부턴 작가님이라 부른다. - 충분히 짐작된 작풍이었으나 장편의 규모에 맞춰 깊이와 범위가 확장된 느낌이 강했다. 적잖은 수의 등장인물들의 시선과 다각도에서 보는 여러 사건들은 분명치 않지만 자살한 승무원 유나로 하여금 왜 그런 선택을 했는지 유추할 수 있게 해줬다.


 소설을 읽으면서 놀랐던 건 승무원이나 항공사에 대한 묘사보다 사실감 넘쳤던 군인과 군대에 관한 묘사였다. 어떤 때는 남성 작가가 썼다고 헷갈릴 만큼 군대 문화의 핵심을 잘 건드렸는데 일부 피상적인 묘사로 흐를 법도 한 설정이, 가부장적이고 딸에게 무관심했던 못난 아빠를 표현하기에 더없이 상징적이어서 쉬운 소재가 또 군인인 터라 외려 불안했던 설정이 생각 이상으로 잘 구현됐다며 감탄했었다. 작중 나오는 군대는 공군이고 장교와 그의 운전병이라는 위치와 보직의 사람들을 묘사해서 상대적으로 많은 설명이 필요치 않긴 했으나 그럼에도 서사적으로 매우 긴밀하게 연관된 소재라 묘사에 있어 부족함 없이 공을 들였다는 생각이 들었다. 유서 속에서 유나가 말을 거는 상대가 아버지인 만큼 생전에 아버지가 크나큰 영향을 끼쳤으리라 예상할 수 있겠는데 둘의 연결 고리가 꽤나 자연스럽게 다가왔다.

 책 말미에 달린 해석에서와 달리 난 이 작품의 구성이 그렇게 특기할 만하다고 생각하진 않는다. 나처럼 추리소설을 좀 읽어본 독자라면 이런 구성이 가장 효과적이며 대안이 없다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하지만 특기할 만하지 않다고 감탄스럽지 않다는 얘긴 결코 아니다. 유나의 동창들의 시선과 이야기가 개인적으로 인상이 흐릿했던 것을 제한다면 유나의 과거를 살펴보는 작품은 꽤나 성과를 거두었다고 할 수 있다. 만약에 나라면 정말 항공사에 대해서만 얘기했거나 이렇게 근원적인 얘기를 하더라도 어린 시절부터 자살하기 직전까지 시간 순서를 순차적으로 진행시켰을 텐데 <미스 플라이트>는 상당히 복잡하고 불규칙하게 시점과 시간을 넘나든다. 그렇다고 이야기의 전체상이 헷갈리지도 않는다. 이건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사람에 따라서는 작품의 내용만을 두고 용케 장편으로 길게도 썼다고 생각할 수 있겠는데 내 경우엔 아이러니하게도 생각보다 일찍 결말이 나오는 걸 보고 그런 말이 나왔다. 이렇게 끝낼 것이었다면 너무 길게 쓴 것 아닌가 하고. 문득 강의 시간에 교수님이 '단편의 매력은 해피엔딩인지 새드엔딩인지 무슨 엔딩인지 모를 애매모호한 결말'이라고 말씀하신 게 기억나서 내심 길이만 긴 단편이란 생각까지 들었다. 소재나 이야기 자체의 규모완 달리 간혹 분량이 어울리지 않는 경우가 있는데 <미스 플라이트>도 그런 경우가 아닌가 하고. 하지만 그렇게 단정을 짓기 약간 애매하다.

 유나의 복합적인 심정을 내가 미약하나마 파악한 바에 따르면 유나는 가히 일본인에 버금갈 수준의 속죄 의식을 갖고 있는 인물이다. 얼핏 옆에서 보기엔 '왜 저런 상황에서 제3자인 본인이 불편해하고 죄송해하지?' 싶을 정도로 본인의 서사 이상으로 타인의 서사에 간접적으로도 많은 영향을 받는다. 유나의 이런 특성은 가족에게마저도 무심했던 아버지 정근에 대한 반발심의 발로일 수 있다. 혹은 선천적으로 몸 쓰는 일에 취약했다는 묘사가 있어 자연스레 타인의 아픔에 쉽게 공감하는 특성으로 이어진 것으로 해석할 수도 있다.


 아무튼 그와 같은 유나의 특성은 처음부터 끝까지 한결같이 특별히 반전을 맞이하는 일도 없이 정해진 수순대로 유나의 자살로써 정리되는데 이러한 결말에 독자마다 의견이 분분할 듯하다. 처음 이 결말을 접한 나는 위에서 말했듯 허무함을 느꼈지만 가만 생각하니 내가 이 작품을 아직까지도 추리소설적인 잣대로 보고 있다는 것에 부끄러움을 느끼지 않을 수 없었다. 엄밀히 말해 이 소설은 추리소설적 기법인 추적의 요소가 가미되긴 했으나 그 요소를 사용함으로써 추리소설을 지향하는 소설은 아니다. 이 소설은 흥미롭고 스릴 넘치는 심리 소설인데 내가 너무 과도한 의미를 부여했던 듯하다. 이건 분명 나의 실책이었다.

 본격적이고 정통 문학에 취약한 독자라서 함정에 빠졌을 뿐, 소설 자체만으로 보면 서사적으로 깊이가 더해져 기승전결이 뚜렷한 작품이었다. 만약 장편의 분량이 아니었다면 이렇게 많은 등장인물이 나와서 유나에 대해 얘기할 수 있을까 싶었다. 작가님의 후기를 읽어보니 작가로서 첫 장편 집필이었다는데 단순히 장/단편의 차이가 분량뿐 아니라 깊이까지 들 수 있다면 가히 괄목한 결과물이 나왔다고도 생각이 든다. 개인적으로 굉장한 수작이라 생각됐던 <세실, 주희>보다 인상적이었는데 여담이지만 저번 달에 장편을 쓸 때 이 작품을 참고했더라면 참 좋았겠다는 아쉬움도 적잖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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