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도 순정만화 4
나카무라 아스미코 지음 / 시리얼(학산문화사) / 2018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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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9.5







 철도와 순정만화의 조합이라니, 상당히 취향탈 것 같지만 가독성이나 완급 조절, 매력적인 캐릭터까지 뭐 하나 빠지는 구석 없는 작품이었다. 나카무라 아스미코가 순정만화, 그것도 BL로 유명한 작가던데 다행히(?) 이 작품은 BL이거나 BL을 암시하는 장면은 없었다. 그렇지만 작품을 다 읽고 나니 이 작가가 그리는 BL이라면 거부감 없이 볼 수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확실히 순정만화로 일가견이 있는 작가답게 캐릭터들의 연애 감정이나 천천히 서로의 마음을 확인하고 다가가는 과정이 알콩달콩하니 재밌었다. 후기에서 밝히길 작가는 철도를 타고 덜컹덜컹거리며 가까워지는 사람들의 모습이란 컨셉으로 만화를 그렸다고 한다.

 후기의 말이 끼워맞추기인 감이 없잖지만;; 저 정도면 뻔뻔한 축에도 들지 않는다. 아무튼 1권은 철도를 소재로 한 순정만화 단편집이고 2권부터 4권까지는 1권에서 단편으로만 등장했던 아코와 코다이라의 연애를 그린다. 개인적으로 1권의 다양한 캐릭터들의 향연이나 작가의 다채로운 스토리텔링이 더 좋았기에 2권부터 장편으로 전환된 게 아쉬웠지만 그래봤자 종이 한 장 정도의 아쉬움에 불과하다. 단편이든 장편이든 작가가 잘 그려서 도대체가 아쉬울 새가 없이 책장이 바삐 넘어갔다.


 제목에서 철도가 들어가긴 하지만 엄밀히 말해 철도는 그렇게 중요한 소재는 아니다. 대체할 수 있다면 얼마든지 대체할 수 있는 이 철도란 소재는 작가가 좋아해서 작품에 녹여낸 듯하다. 그렇다고 해서 녹여낸 부분들이 어색하지 않다. 꼭 <에키벤>처럼 대놓고 철도를 컨셉으로 잡지 않아도 철도는 충분히 매력적인 소재란 걸 느끼게도 해줬다. 특히 철도에 빠삭한 작가의 디테일 넘치는 묘사들은 현장감을 느끼게 해줬는데 작가와 비슷한 취향의 일본 독자였다면 - 특히 도쿄 사람이라면 - 이 부분만으로 충분히 먹혀들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내용이나 완성도에 대해선 조금도 왈가왈부할 수 없을 정도로 깔끔하게 뽑혀서 더 덧붙일 말이 없다. 캐릭터들이 다 사랑스럽고 그림체도 개성적이며 호감형인데다 결말도 여운이 있는 등 이 정도면 완벽하다고 느꼈다. 다만, 지금부터 말할 부분은 1권부터 4권까지 한 번에 읽은 나한텐 해당되지 않는데, 작품의 규모나 전개 속도에 비해 연재와 단행본 출간 시기가 너무 길어서 만약 내가 1화가 연재되던 때부터 읽은 독자였으면 기다리다 지치지 않았을까 싶다. 뭐, 결말까지 한 번에 읽은 나한테 해당되지 않긴 하지만 그래도 다음 이야기를 기다리는 심정이 어떤 마음인지 알아 어쩐지 남의 일처럼 느껴지지 않았다.


 작가의 다른 작품도 궁금해졌다. 위에서는 이 작가라면 BL도 나쁘지 않을 것 같다고 했지만... 굳이 BL을 먼저 골라 읽을 필요는 없으니 다른 장르의 작품부터 먼저 읽을 것 같다. 아직 BL에 대한 내성이 없어서 이 점은 어쩔 수가 없다;; <브로크백 마운틴> 같은 작품이라면 얼마든지 환영이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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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린 머리에게 물어봐 - The Gorgon's Look ㅣ 블랙 앤 화이트 시리즈 20
노리즈키 린타로 지음, 최고은 옮김 / 비채 / 2010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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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3







 <잘린 머리에게 물어봐>는 제목이 상당히 자극적인 것과 달리 담백하면서 현학적인 추리소설이다. 고뇌하는 추리소설가라 불리는 노리즈키 린타로의 몇 안 되는 장편소설이며 출간 당시 여러 문학상과 랭킹에서 상당히 선전하거나 대체로 1위를 석권했던 대표작이다. 우리나라에는 분량이 두꺼워서 그런지, 제목이 너무 자극적이라서 그런지 화제가 덜 됐고 작가의 다른 작품 <요리코를 위해>가 더 유명하다. 나는 작가의 작품을 이 작품으로 처음 접해서 그런가 <잘린 머리에게 물어봐>야말로 노리즈키 린타로의 정수가 잘 담겨있다고 특별시하고 싶다. 다시 읽어보니 더욱 그렇게 느껴졌다.

 이 작품은 정확히 절반이 넘어가는 시점에서 본격적으로 시동이 걸리는 상당히 느릿느릿한 전개가 일품인 작품이다. 오랫동안 은거했던 유명 조각가의 복귀작은 공개 전부터 세간의 관심을 불러일으키는데, 대중에 공개되기 전에 조각상의 머리가 잘려나가는 불길한 사건이 발생한다. 그도 그럴 것이 그 조각은 조각가의 딸을 모델로 만든 것이므로... 이야기는 사건 관계자와 우연히 접점이 있던 주인공 노리즈키 린타로가 조각상 머리의 행방을 찾으며 전개되는데 이 탐정역에 해당하는 주인공의 탐문 방식이며 활약이 기존 추리소설 속 탐정들의 모습과는 사뭇 다르다.


 노리즈키 린타로는 상술했듯 고뇌하는 작가로 알려졌는데, 추리소설의 철학적 의미나 현실성에 대한 평론을 많이 저술했고 실제 자신이 쓴 소설에도 이러한 고민을 많이 반영시키다 보니 붙은 별명이다. 그래서 그런지 작가 본인과 똑같은 이름과 직업을 가진 주인공 노리즈키 린타로는 홈즈나 코난, 김전일처럼 비정상적일 정도로 천재적인 추리력의 소유자로 등장하지 않는다. 작가가 엘러리 퀸의 영향을 많이 받았다고 하던데, 엘러리 퀸이 만든 엘러리 퀸이 그렇듯 노리즈키 린타로의 노리즈키 린타로도 - 슬슬 혀에 쥐가 날 것 같다... - 여러 가능성 있는 추리를 늘어놓다가 소거법을 동원하며 사건의 윤곽을 가다듬는다. 그런데 가끔 추리의 대전제가 잘못된 경우도 있어 완전히 헛다리를 짚는 경우도 허다한데 이와 같은 탐정의 실수는 단번에 백발백중으로 사건을 해결하던 탐정들의 모습과는 확연히 달라 뭔가 어설프면서도 신선한 느낌을 선사한다.

 얼핏 들었을 때 시행착오가 끊이지 않는 탐정이란 설정이 신선할 순 있어도 매력적이진 않게 보일 것이다. 개인적으론 탐정이 사건을 해결하긴 하지만 불완전한 인간이란 한계 때문에 사건을 미연에 방지하지 못한다는 점이 꽤 매력적으로 다가왔다. 특히 이번 작품 같은 경우엔 이미 누군가가 죽은 뒤에 탐정이 개입한 것이 아닌 아직 사건이 현재진행형일 때 개입한 것이라 이 비극이 더욱 두드러졌다. 아마 이 부분 때문에 호불호가 갈릴 듯한데, 그림으로 그린 듯한 천재 탐정이 사건을 해결하는 이야기가 시원스러운 한편으로 동화 같은 측면도 있다고 생각하는 나로선 현실과 맞닿은 노리즈키 린타로의 세계관이 아무래도 더 매력적으로 다가왔다.


 이 작품에선 추리소설과 탐정의 존재에 대한 작가의 고뇌만큼이나 돋보이는 것이 있다. 작품의 중요 소재인 조각에 대한 작가의 어마어마한 공부량과 작품에 절묘하게 녹여낸 부분이다. 비단 조각만 아니라 사진, 산부인과학 등 작가가 작품의 디테일에 필요한 모든 설정을 상당히 연구하며 녹여낸 흔적이 보였는데 이 부분이 흡사 기시 유스케를 연상시킬 정도였다. 아무튼 조각에 대한 이해를 바탕으로 진행하는 작품이기 때문에 그에 걸맞은 분량의 설명이 가미되다 보니 자연스레 작품의 분량이 길어졌는데 이 부분에서 난색을 표하는 독자가 많다. 이 작품을 재밌게 읽은 독자들도 설명 때문에 사건의 시동이 늦게 걸리는 점에 대해서 불만을 토로하는데 나 역시 마찬가지다. 10년 전에 이 작품으로 작가를 처음 접하는 과거의 나도 그렇고 지금의 나 역시도 미술에 관심이 있었으니 망정이지... 그래도 나중에 곱씹어보면 버릴 만한 부분이 없다는 게 어딘가 싶다.

 조각상으로 예고했던 것처럼 참수된 목이 발견되면서부터 이야기는 본격적으로 박차를 가하게 되는데 몇몇 등장인물의 돌발 행동 때문에 사건이 필요이상으로 꼬여 주인공이랑 경찰이 속수무책으로 휘둘린다. 게다가 이번 사건의 경우엔 내막이나 발단에 여러 인물의 오해나 선입견이 크게 작용해 누구 한 명한테 책임을 물을 수 없을 정도로 복잡해진 것도 크게 한몫했다. 간단히 예로 들면 출생의 비밀이나 중상모략이 여러 인물을 거쳐 심각하게 와전되거나 오해를 불러일으켜 탐정이 추리를 함에 있어 크게 애를 먹었다.


 그래도 결국 범인을 잡고 사건도 해결하지만 어찌 보면 미연에 방지할 수 있었을 사건이라 씁쓸하기 그지없다. 금방 얘기했듯 누구 한 명한테 책임을 물을 수 없을 정도로 사건이 꼬였지만 사람인 이상 그만한 사건을 겪고 책임감을 떨쳐내기란 쉽지 않을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작가가 이야기를 만들고 결말을 내는 방식이 참 잔혹하기 짝이 없었는데 그래도 작가 나름대로 소신껏 집필한 터라 불만으로 번지진 않는다. 오히려 이 정도의 비극을 그려낸 게 존경스럽다고 해야겠다. 작가의 공부량이나 인과가 복잡한 사건을 논리적으로 풀어낸 스토리텔링도 충분히 존경스럽지만 이만한 비극을 의식적으로 소신 있게 그려낸다는 점이야말로 다른 추리소설가들과 차별화되는 지점이 아닌가 싶다.

 한때 노리즈키 린타로의 작품이 잘 번연되더니 요새는 통 소식이 없다. 가급적 이 작가의 책은 다 소장하고 두고두고 읽으려고 하는데... 데뷔작인 <밀폐교실>부터 읽고 싶은 작품이 수두룩하던데 언젠간 이 작품이 다 소개되리라 바라마지않는다. 만약 전부 소개된다면 다시 한 번 시간 순서대로 읽어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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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스콰이어 Esquire C형 2020.10 (표지 : 카이) - 주요기사 : 카이 ㅣ 에스콰이어 2020년 10월호
에스콰이어 편집부 지음 / 허스트중앙(Hearst-Joongang) / 2020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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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포엠 기사가 있다고 해서 처음 구매합니다~
오래 기다렸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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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봇 교사 1 ㅣ 아름다운 청소년 21
이희준 지음 / 별숲 / 2020년 4월
평점 :
절판


9.5







 인공지능 로봇이 인간성을 배우고, 인간들도 그 로봇을 통해 인간성이 무엇인지 깨닫는다는 스토리는 식상하다면 식상하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식상하다고 해서 쓰기 쉬운 이야기는 아니다. 저자 이력이 양천구 토박이고 장르 소설과 영화에 심취했으며 자신이 좋아하는 장르들의 장점을 모아 썼다는 게 전부인 이 이희준 작가의 데뷔작은 일견 식상하고 어설플 수도 있었을 이야기를 패기 있게 써내려갔다. 등단도 하지 않고 집필 경력이 밝혀지지 않은 신인이 이런 소재로 이만한 작품을 써내다니, 그 패기와 재능이 부럽기 그지없었다.

 '추리, SF, 스릴러를 융합한 새로운 소설의 탄생!'이라고 책 뒤에 소개됐던데, 엄밀히 말해 비슷한 소재를 쓴 기성 작품들과 비교하면 그렇게 새로운 스타일의 소설은 아니고 위에서 말했듯 식상한 부분도 없잖았다. 아무래도 이 책이 청소년 독자를 대상으로 한 출판사에서 펴냈다 보니 상대적으로 독서 경험이 적은 어린 독자를 대상으로 저런 소개 문구를 쓴 것 같은데, 중요한 건 딱히 독서 경험이 적다고도 어리다고도 할 수 없는 내가 읽기에도 이 작품은 충분히 재밌었다는 것이다. '새로운 소설의 탄생!'이라는 문구에 현혹된 탓인지 기대만큼 압도적으로 새롭진 않았지만, 그래도 읽는 내내 청소년 독자를 비롯해 성인 독자들도 아우를 수 있는 깊이와 잠재력이 있는 작품이지 않은가 하고 감탄을 금치 못했다.


 개인적으로 되게 높이 평가하고 싶은 부분은 바로 생동감 있는 캐릭터 설정이다. 최종 보스의 정체나 동기가 다소 시시하고 평면적이었던 걸 제외하면 로봇 교사 가우스나 가우스가 가르치는 보충반 학생들, 인간 교사 최인규, 그리고 누명을 쓴 가우스를 추적하는 선유한 할머니 등의 캐릭터의 개성과 존재감은 압권이었다. 특히 아직 학창 시절을 보낸지 얼마 되지 않은 작가라 그런지 학생들과 교사가 구사하는 언어들이 상당히 생동감 넘쳤는데 나도 작가와 세대 차이가 얼마 나지 않아서 이 부분이 무척 반갑게 읽혔다. 간혹 청소년 독자를 대상으로 쓴 글이라도 작가가 나이가 너무 많아 작중 청소년들이 구사하는 언어가 옛스러운 경우가 있는데 그때마다 묘한 괴리감을 느꼈던 것에 비해 이 책의 인물들의 대사는 정말 찰지게 읽혔다. 꼭 쿠엔틴 타란티노처럼 욕도 가감없이 구사하고 쓰잘데기 없는 드립도 끊이질 않아 호불호가 갈릴 것 같지만 내가 보기엔 그만큼 작가가 즐기면서 쓰고 있는 느낌을 받아 나도 모르게 킥킥거리면서 읽었던 것 같다.

 단, 문제가 있다면 학생들에 비해 어른 캐릭터, 노인 캐릭터의 대사는 어색한 부분이 있었는데 이는 아직 작가가 다양한 연령대와 직업의 인물을 그려보지 못한 경험 부족이 드러나는 부분이겠다. 또 학생들이 쏟아내는 로봇 관련 드립의 태반이 터미네이터나 트랜스포머와 관련됐는데 지금 봐도 철 지난 작품들이 대부분이라 드립의 적중률과 무관하게 거슬렸다. 작품의 시간대가 못해도 지금보다 몇 십 년 뒤일 걸 생각하면 학생들이 자기들 기준으로 옛날 영화로 드립을 친다는 게 더더욱 이질감이 든다. 그도 그럴 것이 인간을 가르칠 수 있는 성능의 로봇은 물론이고 그 로봇을 학교로 배정시킬 정도의 사회 제도는 - 반발하는 사람들이 적잖지만. - 엊그제 터미네이터를 관람한 세대의 사람들이 만들 만한 것이 아니잖은가. 터미네이터 관련 드립이 한두 번 나왔으면 모르겠는데 주기적으로 나오다 보니 작가가 흥을 주체하지 못해 리얼리티를 놓치고 있어 자제를 하는 게 어떨까 생각했다.


 뭐, 그래봤자 이 작품의 너무나 많은 장점을 생각하면 위의 아쉬움들은 나의 일방적인 트집에 지나지 않을 것이다. 사고하는 과정이 사람 같았던 가우스는 로봇 교사로 만들어질 때 사람을 잘 이해할 수 있고 잘 동화될 수 있게끔 프로그래밍이 됐기에 그리 어색하지 않다는 것, 아이들이 학교에서부터 깨닫게 되는 사회의 부조리를 가우스도 같이 깨달으면서 인간성과 감정을 습득하고 돌발 행동을 보이는 것, 누명을 쓰고서 진범을 찾아갈 때 로봇의 성능을 최대한으로 발휘해 인간이 범접할 수 없는 추리력을 선보이는 것 - 셜록 홈즈가 연상됐다. 역시 그는 사람이 아니었다... - 등 개연성 있는 전개가 일품이었다.

 일전에 <가위남>에 대해 포스팅할 때 추리소설은 저마다 크든 작든 선입견에 도전하는 공통점이 있다는 말을 했는데 그 말은 이 작품에도 해당됐다. 로봇 교사와 그 교사의 제자들이 협동을 펼쳐 진범을 쫓는 전개는 익히 예상이 됐지만 피살된 학생의 할머니가 자신의 손자를 죽였다는 가우스를 뒤쫓는 전개는 충격적이었다. 그 전개와 캐릭터성을 황당하지 않게 묘사한 것과 피해자의 유가족 중에 특히 할머니는 연약하게 울기만 할 것이란 선입견을 깨부순 게 그렇게 인상적일 수 없었다. 비록 선유한 할머니의 개입이나 활약이 작중 전개에 있어서 예상치 못한 변수로 작용하진 않았지만, 사건이 완전히 해결된 뒤에 로봇 교사 가우스가 학교를 넘어 진정한 교사로 거듭나는 일련의 전개며 감정선엔 그녀의 존재감이 큰 영향을 끼쳤을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선유한 할머니를 비롯해 최인규나 학생들까지 누구 하나 버릴 캐릭터가 없었다.


 캐릭터를 비롯해 이 작품은 거의 모든 요소가 뭐 하나 버릴 것 없이 준수하고 어색함 없이 어울렸다. 로봇의 추리는 인간이 흉내낼 수 없어서 경이로움을 선사했고 차량이 동원된 추격 장면이나 후반부의 격투 장면들은 쫄깃쫄깃한 긴장감과 쾌감을 안겨줬다. 로봇을 소재로 한 SF적인 상상과 통찰도 재밌었는데, 누누이 말했듯 로봇이 인간성을 배우는 것 자체는 아주 신선하진 않았지만 그 과정을 교사와 학생의 관계를 통해 깊이 있고 어색함 없이 그려내 주제의식이 효과적으로 와 닿았다. 그런데 여기서 나는 다시 한 번 트집 아닌 트집을 잡아야겠다. 이 작품의 제목이 로봇 '교사' 대신 로봇 '선생'이었다면 더 좋았을 것 같다.

 가우스가 태어난 연도를 생각하면 학생보다 어려서 어떻게 선생이라 부를 수 있겠냐 싶겠지만, 교사라는 호칭이 단순히 직함을 가리키는 것에 비해 선생은 보다 존경심이 포함된 단어인 것 같아 작중 가우스와 학생들의 유대감을 설명할 때 더 어울리는 단어라고 본다. 게다가 결말까지 생각해보면 먼저 살았다는 의미의 선생이란 단어가 그리 틀린 말이 아니게 된다는 걸 생각하면... 아까도 말했듯 트집이지만 뭔가 아쉬웠다.


 작가는 완전 초짜고 소재도 쉽지 않고 여러 장르가 혼합됐고 분량도 길어서 솔직히 읽기 전엔 불안했지만 놀랍게도 그 모든 불안함을 완전히 떨쳐낸 작품이었다. 등단이나 신인상 시스템 없이 주목을 받기 어려운 우리나라 문단에서 이 작품의 가능성을 알아보고 출간해준 출판사의 결정에 절로 박수가 나온다. 이 작가가 이후에도 작품 활동을 이어갈지, 어쩔 것인지 알 수 없지만 이만한 작품을 쓴 사람이라면 앞으로 더 멋진 작품 활동을 선보이리라. 작가의 다음 작품을 기대해마지않는다.

하지만 슬프게도 어른들이 가장 요구하는 게 바로 그것이었다. 앉아서, 인내하는 것. 물론 학생들이 그걸 견디지 못하는 건 학생들 탓이 아니었다. 아이들은 로봇으로 태어나지 않은 잘못밖에 없었다. 갑자기 현석이가 예전에 선생님은 공부를 안 해도 수능에서 만점을 받을 수 있겠다고 한 말이 떠올랐다. 생각해 보니 정말 그렇군. 내 머리는 인터넷과 연결되어 있고 난 완벽한 암기력과 인내심이 있잖아? 아무래도 뭔가 반대로 된 것 같다. 그는 교사가 아니라 학생으로 태어났어야 했다. - 1권 262~263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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폴리스 ㅣ 형사 해리 홀레 시리즈 10
요 네스뵈 지음, 문희경 옮김 / 비채 / 2019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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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3







 전작 <팬텀>에서 상당히 충격적인 형태로 결말이 나버려서 후속작을 읽을 수밖에 없었다. 만약 그렇게 결말이 나지 않았다면 이 시리즈를 계속 읽을지 조금은 고민했을지 모르겠다. 사실 <스노우맨>을 시작으로 '해리 홀레' 시리즈를 꾸준히 챙겨볼 것을 속으로 다짐하긴 했지만, 난 그리 충실한 팬이 아닌지 <팬텀>을 읽을 때는 잠시 흔들렸었다. 전작들에 비해 산만한 전개와 윤곽이 잘 잡히지 않는 스토리 라인 때문에 괜히 두껍기만 한 책이란 인상을 받았는데 당시엔 내가 컨디션이 좋지 않았나 하고 넘어갔지만 <폴리스>까지 읽으니 생각이 바뀌었다.

 <폴리스>는 전개 양상이 전편보다 산만하고 윤곽이 잘 잡히지 않았지만, 그것만으로 내 팬심에 위배되는 말을 담을 리는 없을 것이다. 이렇게까지 실망한 데엔 전편의 비정한 결말을 어떻게 풀어낼지 한껏 기대하게 만들어놓고, 막상 본편에선 그 결말을 다소 흐지부지한 방식으로 봉합해버린 탓이 크다. 어째 안 하느니만도 못한 느낌을 안겨줬는데... 아마 이 책을 읽는 사람은 어지간하면 전편도 읽은 사람일 테지만, 혹여 그렇지 않은 사람이 있을까 대놓고 말은 못하겠지만 아무튼 요 네스뵈가 펼친 일종의 서술 트릭이나 반전은 생각할수록 허무했다. 솔직히 말하자면 내가 이걸 읽으려고 후속작을 집어들었나 싶었다.


 억지스럽긴 해도 이야기를 긍정적인 방향으로 선회한 건 독자들의 심리적 저항감을 배려하기 위해서였을까, 아니면 작가가 더는 해리의 불행을 감당할 수 없었던 걸까, 그게 아니라면 시리즈를 억지로 이어가기 위해서 급하게 수정한 걸까. 나는 셋 다 맞는 얘기라 생각한다. 덕분에 경찰 대학 교수로 일하는 해리의 모습을 엿볼 수 있던 건 재밌었다. 그리고 개인적으로 시리즈를 억지로 이어가려 모습은 응원하지 않지만 어쨌든 팬의 입장에서 앞으로 나올 작품을 계속 찾아볼 것 같다. <폴리스>는 <팬텀>보다 더 실망스러웠지만 그렇다고 후속작 <목마름>을 외면할 것 같진 않다.

 내가 이 책을 다시 읽는다면 어떨지 모르겠는데, 일단 지금으로선 전편에 비해 훨씬 완성도가 떨어지는 작품이라 생각한다. 시리즈의 전개 스타일에 너무 익숙해진 탓인지 범인의 정체도 너무 뻔하고 그 범인이 취한 행동도 하나하나 따져보면 당위성이 확 와 닿지 않는다. 작가는 작중에서 해리의 입을 빌려 '범인이 안도감을 얻을 거라 믿고 저지른 살인이 꼭 합리적이지 않다'고 말하는데 이 말은 독자를 위한 말이라기보단 작가 본인을 위해서 한 말처럼 들렸다. 마치 <테넷>에서 '이해하지 말고 느껴라'고 놀란 감독이 각본을 쓴 것처럼 이 작품도 일견 그럴싸해 보이지만 이 분량과 복잡한 플롯이 과연 적절했는가 누가 묻는다면 꿀 먹은 벙어리가 될 수밖에 없다.


 아까 위에서도 말했지만 이 책을 읽는 독자 중 과연 시리즈의 팬이 아닌 사람이 몇이나 될지 모르겠다. 적어도 '해리 홀레' 시리즈를 한두 작품 이상 접한 독자들이 <폴리스>까지 읽을 듯한데, 그래서 그런지 혹시 작가가 쓰면서 팬심에 기댄 게 아닌가 하고 비관적인 생각이 들었다. 팬서비스적인 요소도 충실하고 작품의 결말도 전에 없이 행복해서 보기 좋았지만, 오히려 전편보다 더 비극적이고 찝찝한 면도 있어 이 부분에 대해 깊이 있게 묘사하지 못한 작가가 예전처럼 존경스럽게 비춰지지 않았다. 경찰 연쇄살인마가 등장한 건 신선했고 해리 주변 인물의 이야기에 집중한 것도 흥미로웠지만 막상 경찰에 대한 작가의 통찰이나 이후 해리가 펼치는 행보는 기대에 미치지 못했다.

 해리가 일체의 수사 협조도 거절하려는 모습이나 행복에 익숙하지 않아 혼란을 겪는 심리 묘사는 꽤나 신박했지만 해리가 수사에 본격적으로 가담한 뒤부터의 전개는 거의 예측대로라 긴장감이 조성되지 않았다. 심지어 카타르시스가 제대로 느껴지지 않았는데, 문득 <스노우맨>에서 '좋은 이야기는 연이는 성공이 아니라, 처절한 실패에서 나온다'는 구절이 떠올랐다. 그 구절대로 해리가 꼭 처절할 필요는 없더라도 행복한 결말을 쟁취하기 위해 어느 정도 대가를 지불한다는 식의 장면이 있었다면 지금보다 덜 찝찝하고 쾌감 넘쳤으리라 본다.


 어쩌면 행복한 장면을 그리는 한편으로 독자에게 찝찝함을 주려는 게 작가의 의도였는지 모르겠다. 어쩌면 다음 편을 읽으면 이 작품에서의 흐지부지한 봉합이며 떡밥이 제대로 나비효과를 불러일으킬지 모르니 섣부른 예단은 금물이긴 하다. 아마 그런 이유에서라도 다음 작품 <목마름>을 읽게 될 것 같다. 하지만 슬슬 기대보단 걱정이 된다.

 듣자하니 노르웨이 본토엔 <목마름>말고도 시리즈의 후속작이 한두 편 더 출간됐다는데, 이렇게 길어지다가 시리즈 전체의 인상이 점점 하락하진 않을지 불안해지기 시작한 것이다. '박수칠 때 떠나라'는 말이 괜히 있겠는가. 영원히 승승장구하는 시리즈가 현실적으로 쉽지 않다는 걸 알기에 시리즈의 장기화가 마냥 기대되진 않는다. 세상에, 내가 '해리 홀레' 시리즈를 두고 이런 말을 하다니.

‘왜‘라는 질문의 답은 ‘어떻게‘를 알아내지 못하는 한 무의미하다는 겁니다. 그 반대도 마찬가지고요. - 225p




하지만 살인을 저지르고 실망한다는 것이, 범인이 안도감을 얻을 거라고 믿고 저지른 살인이 합리적이지 못하다는 의미는 아닙니다. 하지만 복수는 상상 속에서 더 달콤한 법이죠. - 227p




그러니 자네가 느끼는 증오의 어머니는 사랑이야. 증오가 아니라고. 자네가 무슨 짓이든 하고 싶게 만들고 그 손으로 죄를 짓게 만드는 힘은. - 393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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