폴리스 형사 해리 홀레 시리즈 10
요 네스뵈 지음, 문희경 옮김 / 비채 / 2019년 7월
평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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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3







 전작 <팬텀>에서 상당히 충격적인 형태로 결말이 나버려서 후속작을 읽을 수밖에 없었다. 만약 그렇게 결말이 나지 않았다면 이 시리즈를 계속 읽을지 조금은 고민했을지 모르겠다. 사실 <스노우맨>을 시작으로 '해리 홀레' 시리즈를 꾸준히 챙겨볼 것을 속으로 다짐하긴 했지만, 난 그리 충실한 팬이 아닌지 <팬텀>을 읽을 때는 잠시 흔들렸었다. 전작들에 비해 산만한 전개와 윤곽이 잘 잡히지 않는 스토리 라인 때문에 괜히 두껍기만 한 책이란 인상을 받았는데 당시엔 내가 컨디션이 좋지 않았나 하고 넘어갔지만 <폴리스>까지 읽으니 생각이 바뀌었다.

 <폴리스>는 전개 양상이 전편보다 산만하고 윤곽이 잘 잡히지 않았지만, 그것만으로 내 팬심에 위배되는 말을 담을 리는 없을 것이다. 이렇게까지 실망한 데엔 전편의 비정한 결말을 어떻게 풀어낼지 한껏 기대하게 만들어놓고, 막상 본편에선 그 결말을 다소 흐지부지한 방식으로 봉합해버린 탓이 크다. 어째 안 하느니만도 못한 느낌을 안겨줬는데... 아마 이 책을 읽는 사람은 어지간하면 전편도 읽은 사람일 테지만, 혹여 그렇지 않은 사람이 있을까 대놓고 말은 못하겠지만 아무튼 요 네스뵈가 펼친 일종의 서술 트릭이나 반전은 생각할수록 허무했다. 솔직히 말하자면 내가 이걸 읽으려고 후속작을 집어들었나 싶었다.


 억지스럽긴 해도 이야기를 긍정적인 방향으로 선회한 건 독자들의 심리적 저항감을 배려하기 위해서였을까, 아니면 작가가 더는 해리의 불행을 감당할 수 없었던 걸까, 그게 아니라면 시리즈를 억지로 이어가기 위해서 급하게 수정한 걸까. 나는 셋 다 맞는 얘기라 생각한다. 덕분에 경찰 대학 교수로 일하는 해리의 모습을 엿볼 수 있던 건 재밌었다. 그리고 개인적으로 시리즈를 억지로 이어가려 모습은 응원하지 않지만 어쨌든 팬의 입장에서 앞으로 나올 작품을 계속 찾아볼 것 같다. <폴리스>는 <팬텀>보다 더 실망스러웠지만 그렇다고 후속작 <목마름>을 외면할 것 같진 않다.

 내가 이 책을 다시 읽는다면 어떨지 모르겠는데, 일단 지금으로선 전편에 비해 훨씬 완성도가 떨어지는 작품이라 생각한다. 시리즈의 전개 스타일에 너무 익숙해진 탓인지 범인의 정체도 너무 뻔하고 그 범인이 취한 행동도 하나하나 따져보면 당위성이 확 와 닿지 않는다. 작가는 작중에서 해리의 입을 빌려 '범인이 안도감을 얻을 거라 믿고 저지른 살인이 꼭 합리적이지 않다'고 말하는데 이 말은 독자를 위한 말이라기보단 작가 본인을 위해서 한 말처럼 들렸다. 마치 <테넷>에서 '이해하지 말고 느껴라'고 놀란 감독이 각본을 쓴 것처럼 이 작품도 일견 그럴싸해 보이지만 이 분량과 복잡한 플롯이 과연 적절했는가 누가 묻는다면 꿀 먹은 벙어리가 될 수밖에 없다.


 아까 위에서도 말했지만 이 책을 읽는 독자 중 과연 시리즈의 팬이 아닌 사람이 몇이나 될지 모르겠다. 적어도 '해리 홀레' 시리즈를 한두 작품 이상 접한 독자들이 <폴리스>까지 읽을 듯한데, 그래서 그런지 혹시 작가가 쓰면서 팬심에 기댄 게 아닌가 하고 비관적인 생각이 들었다. 팬서비스적인 요소도 충실하고 작품의 결말도 전에 없이 행복해서 보기 좋았지만, 오히려 전편보다 더 비극적이고 찝찝한 면도 있어 이 부분에 대해 깊이 있게 묘사하지 못한 작가가 예전처럼 존경스럽게 비춰지지 않았다. 경찰 연쇄살인마가 등장한 건 신선했고 해리 주변 인물의 이야기에 집중한 것도 흥미로웠지만 막상 경찰에 대한 작가의 통찰이나 이후 해리가 펼치는 행보는 기대에 미치지 못했다.

 해리가 일체의 수사 협조도 거절하려는 모습이나 행복에 익숙하지 않아 혼란을 겪는 심리 묘사는 꽤나 신박했지만 해리가 수사에 본격적으로 가담한 뒤부터의 전개는 거의 예측대로라 긴장감이 조성되지 않았다. 심지어 카타르시스가 제대로 느껴지지 않았는데, 문득 <스노우맨>에서 '좋은 이야기는 연이는 성공이 아니라, 처절한 실패에서 나온다'는 구절이 떠올랐다. 그 구절대로 해리가 꼭 처절할 필요는 없더라도 행복한 결말을 쟁취하기 위해 어느 정도 대가를 지불한다는 식의 장면이 있었다면 지금보다 덜 찝찝하고 쾌감 넘쳤으리라 본다.


 어쩌면 행복한 장면을 그리는 한편으로 독자에게 찝찝함을 주려는 게 작가의 의도였는지 모르겠다. 어쩌면 다음 편을 읽으면 이 작품에서의 흐지부지한 봉합이며 떡밥이 제대로 나비효과를 불러일으킬지 모르니 섣부른 예단은 금물이긴 하다. 아마 그런 이유에서라도 다음 작품 <목마름>을 읽게 될 것 같다. 하지만 슬슬 기대보단 걱정이 된다.

 듣자하니 노르웨이 본토엔 <목마름>말고도 시리즈의 후속작이 한두 편 더 출간됐다는데, 이렇게 길어지다가 시리즈 전체의 인상이 점점 하락하진 않을지 불안해지기 시작한 것이다. '박수칠 때 떠나라'는 말이 괜히 있겠는가. 영원히 승승장구하는 시리즈가 현실적으로 쉽지 않다는 걸 알기에 시리즈의 장기화가 마냥 기대되진 않는다. 세상에, 내가 '해리 홀레' 시리즈를 두고 이런 말을 하다니.

‘왜‘라는 질문의 답은 ‘어떻게‘를 알아내지 못하는 한 무의미하다는 겁니다. 그 반대도 마찬가지고요. - 225p




하지만 살인을 저지르고 실망한다는 것이, 범인이 안도감을 얻을 거라고 믿고 저지른 살인이 합리적이지 못하다는 의미는 아닙니다. 하지만 복수는 상상 속에서 더 달콤한 법이죠. - 227p




그러니 자네가 느끼는 증오의 어머니는 사랑이야. 증오가 아니라고. 자네가 무슨 짓이든 하고 싶게 만들고 그 손으로 죄를 짓게 만드는 힘은. - 393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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