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모두 별이야 ㅣ 시공 청소년 문학 34
웬디 매스 지음, 장현주 옮김 / 시공사 / 2009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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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8.3 






 이 작품의 원제는 'Every soul a star'이다. 한국 제목이나 원제나 큰 차이는 없는데 나는 개인적으로 원제를 좀 더 좋아한다. 우리 모두라고 칭하는 것보다 영혼이라고 개개인을 칭하는 게 더 존중하는 느낌이 들어서 말이다. 아무튼 이 소설은 <망고가 있던 자리>로 데뷔한 작가 웬디 매스의 작품으로 일식 캠프에서 벌어지는 세 주인공의 성장담을 그리고 있다. 아, 참고로 여기서 일식은 일본 요리가 아닌 천문학적 현상을 가리킨다. 혹시나 해서. 

 찾아보니까 일식을 볼 수 있는 장소를 몇 십 년 뒤, 멀게는 백 년 넘게 뒤라고 하더라도 꽤 정교하게 예측이 가능하다고 한다. 관심 있는 사람들은 검색해보시길. 천문학에 관심이 많은 사람들은 일식을 볼 수 있는 장소를 정확히 파악해 거의 십 년 전부터 미리 대기하기도 한다는데 이 작품의 주인공 중 한 명인 앨리의 부모님이 딱 그런 사람들이었다. 아무리 그래도 자식들까지 데리고 숲에 캠프장을 세워 기다린다는 게 좋게 말하면 대단한 거고 나쁘게 말하면 정상은 아닌 건데 앨리는 부모의 의도가 좋게 풀려 천문학 소녀로 구김살 없이 자라게 된다. 


 오지나 다름없는 일식 캠프장에 드디어 고대하던 일식을 보러 사람들이 몰려오면서 이야기는 본격적으로 시작된다. 개중에는 이 작품의 나머지 두 주인공도 포함됐는데 한 명은 과학자 부모를 둬서 선택의 여지 없이 캠프장으로 이사를 온 모델 지망생 브리와 다른 한 명은 과학 보충 수업을 캠프장 봉사로 대체하려는 자존감 낮은 남학생 잭이다. <우리 모두 별이야>에선 천문학을 사랑하는 사람을 제외한 모든 사람들에게 불편한 장소인 캠프장을 배경으로 그곳에서 거의 평생을 자랐기에 앞으로도 떠나고 싶지 않은 앨리, 앨리와 반대로 캠프장을 하루 빨리 떠나고 싶은 브리, 그리고 무사히 캠프장 봉사를 마치고 싶은 잭과 그밖에 여러 아이들이 얽혀서 일식을 기다리며 자기 자신에 솔직해지고 자신의 꿈과 미래를 보다 낙관적으로 그려나가는 성장담이 병렬식으로 펼쳐진다. 

 한 명의 주인공도 아닌 세 명의 주인공이라니까 산만하다 느껴질 수 있겠지만 실제로 읽다 보면 지루할 만하면 시점이 바뀌고 캐릭터간 캐미도 좋고 다들 개성적이라 오히려 괜찮은 선택이었다는 생각이 든다. 앨리 이야기에선 천문학적인 이야기와 함께 세상 물정에 어두워 캠프장 밖을 두려워하는 이야기, 브리 이야기에선 가족 중에서 유독 꾸미는 것이나 보여지는 것에 관심이 많은 사춘기 소녀가 캠프장에서 좀처럼 적응하지 못하다 자신이 줄곧 '너드'하다 여겨진 천문학의 매력에 빠져드는 이야기가, 잭 이야기에선 자존감이 낮은 아이가 친구도 사귀고 여러 사건을 겪으며 활동적인 아이로 변해가는 이야기가 주를 이루고 있다. 솔직히 이 작품에서 일식은 하나의 계기일 뿐 결국 그 계기 덕에 서로 다른 개성의 아이들이 모여 자신의 개성과 매력을 발견하는 것에 초점이 가있어 나처럼 천문학에 관심이 별로 없는 독자들도 흥미롭게 읽을 수 있는 요소가 많았다. 물론 일식의 웅장하고 신비로운 매력에 대해서도 충분히 어필하는 책인 만큼 읽으면서 언젠가 일식을 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긴 했지만, 그게 어디 쉬워야 말이지... 


 10년이 지나 이 작품을 다시 읽으니 주인공 세 명이 부모 의지대로 거주지가 바뀌거나 성격이 형성된 것 같아 내심 부모 자식 사이의 불합리한 관계란 것에 대해 생각해보게 됐다. 앨리와 브리의 부모들은 그저 자기 자식을 자신의 눈이 닿는 위치에서 최대한 보호하고 싶어했을 뿐이지만 문제는 경우에 따라 그것 또한 폭력일 수도 있는 것이, 앨리나 브리의 경우 잘 풀렸기에 망정이지 극단적인 환경 변화가 사람에게, 그것도 아이들에게 어떤 영향을 미칠지 미지수이기에 부모가 아이들과 상의 없이 자신들의 꿈을 위해 거주지를 척척 바꾸는 게 그리 바람직하게 여겨지진 않았다. 당연히 악의는 없었겠지만 말이다... 유일하게 잭은 이 경우에 해당이 안 되지만 이 아이가 자존감이 떨어지는 것도 부모가 형과 동생을 알게 모르게 비교하며 키운 탓도 있어서 이들 부모라고 더 낫다고 하진 못하겠다. 

 그렇다 보니 사람이 자기 자신의 개성을 인정하고 자존감을 세우는 건 본인의 힘으로 해결해야 하는 일이란 생각이 들지 않을 수 없었다. 때론 부모의 의도완 달리 그들이 전혀 도움이 안 되거나 역효과를 낼 때도 있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이들은 자라면서 타인의 도움 못지않게 본인들 스스로의 노력과 그 노력을 유발하는 계기가 어떤 형태로든 필요하다는 게 내가 이 소설을 읽으면서 얻은 교훈이다. 그렇게 자신이 처한 환경과 주어진 조건에도 불구하고 제대로 성장해나간다면 사람들이 이렇게 말해줄 것이다. 시작은 꼬였지만 그래도 잘 풀려서 다행이라고. 

인생은 짧아. 그렇지만 넓거든. - 233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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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래바람 ㅣ 진구 시리즈 4
도진기 지음 / 시공사 / 2017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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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5 






 도진기 작가의 작품 중 유일하게 완독하지 못할 뻔한 작품이다. 진구의 과거가 드러나는 작품이라기에 기대하고 책장을 펼쳤는데 도입부부터 중반부까지 지루하고 식상하기 이를 데 없어 결국 한 번 포기했었다. 하지만 아무리 그래도 도진기 작가인데 이대로 포기하기엔 뭔가 아쉬워 시간을 두고 다시 읽었는데... 여지없이 중반부까진 지루했지만 그 이후로 속도가 붙어 완독에 성공했다. 그리고 처음으로 작가의 작품 중 괜히 읽었다는 생각을 하고 있는 중이다. 

 진구와 그의 학창 시절 친구 연부의 묘한 관계와 둘 사이를 멀어지게 한 과거의 충격적인 비밀이 드러나는 작품인데 과연 작품의 설정이 모두 적절했는지는 난 잘 모르겠다. 적절한지 아닌지를 막론하고 일단 대기업 회장이 자기 아들의 여자친구한테 너희 집안과 우리 집안은 급이 안 맞다며 퇴짜를 놓는다는 전개부터 신선함과는 거리가 멀었고 진구의 과거가 드러나는 중국 사막 탐사 부분은 뜬금없을 뿐더러 지루한 나머지 작가의 팬이 아니라면 도저히 버티기가 힘들 정도였다. 솔직히 시리즈의 네 번째 작품인 만큼 이 책을 읽는 예상 독자들은 작가의 열렬한 팬일 가능성이 높을 텐데, 설마 팬들을 믿고서 이토록 안일하게 설정과 전개를 짠 건 아닌지 의심까지 했다. 


 사실 마냥 안일하다고 깎아내리긴 힘든 것이, 사막 탐사에 관한 공들인 묘사나 모래를 통해 작품의 분위기를 더하려는 건 작가에게 있어 새로운 시도였고 관련 자료를 참고하는 등 노력하며 집필했다는 것이 느껴졌기 때문이다. 지루하다고는 했지만 오히려 이 부분이 가장 흥미로웠다고 말할 독자도 있을 것이다. 그런데 문제는 이 부분의 뜬금없음이나 지루함 보단 이러한 진구와 연부의 과거가 후반부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가 하는 것이다. 후반부의 반전은 나름대로 충격적이지만 그 반전의 내용을 생각해보면 이 작품이 전체적으로 전혀 상관 없는 부분만 묘사하고 있다는 탄식이 나오지 않을 수 없었다. 

 작가의 이전 작품들이 어느 정도 공정한 추리소설이었던 것과 다르게 <모래바람>은 상당히 불공정했다. 일종의 서술트릭 때문이 아니라 - 말이 나와서 말인데 범인의 비중도 너무 아쉽다. 가장 많은 비중을 할애해야 하는 인물이 아니었는지... - 범죄를 공모하거나 가담하는 인물들의 행동의 개연성을 전부 '바로 그 사람다운 행동', '그 사람의 자존심이 허락하지 않아 그렇게 행동할 수밖에 없었던 것'이라고 말하며 설명을 퉁치니 독자가 상상을 발휘할 여지가 적었다. 그렇다 보니 진구나 연부 등 여러 캐릭터들이 무슨 정신 세계를 갖고 있지는 알겠는데 내가 머릿속에서 능동적으로 구상해가며 캐릭터성이 구축된 느낌이 아니라 작가가 필사적으로 주입한 느낌이라 이래저래 정이 가지 않았다. 


 다 떠나서 추리소설적으로 대단히 재미없는 소설인 것이 이 작품의 가장 실망스런 부분이었다. 까놓고 말해 반전은 놀랍기는커녕 황당할 뿐이고 진구가 어렸을 적에 발휘한 트릭이나 그로 인해 죄책감을 갖게 됐다는 것 등이 이론으로나 그럴싸하지 이야기의 처절함을 강조하기엔 사막이라는 배경이나 손 안 대고 살인하는 트릭이나 하는 것들이 너무 과한 측면이 있어 현실감이 떨어졌다. 가뜩이나 이야기의 중심이 되는 상 씨 일가가 너무 볼품없고 재미없는 캐릭터들인 나머지 몰입이 되지 않았고 또 연부도 생각보다 분위기가 있지도 않고 대단히 악랄하지도 않고 그렇다고 딱히 두뇌 플레이에 특출난 것도 아니라 이 캐릭터가 뭘 하든 딱히 관심이 가지 않는 것도 문제였다. 

 이 작가가 필력이 왜 이렇게 떨어졌지? 데뷔작만 해도 재기 넘쳤고 가독성도 대박이었고 결말까지 완벽했는데... 점점히 필력이 떨어진다는 느낌은 받았지만 이 작품은 뭐랄까, 쓰고 싶어서 썼다기 보다 빨리 뭔가 써야 하니까 꾸역꾸역 스토리를 토해낸 느낌이라 전반적으로 구성이나 마무리까지 깔끔하지 못했다. 개인적으로 이 시리즈는 '어둠의 변호사' 시리즈보다 좋아했는데 갑자기 네 번째 작품이 너무 수준 미달의 옥의 티라서 시리즈 전체에 대한 좋은 이미지까지 한 순간에 무너져버렸다. 다섯 번째 작품이 벌써 출간됐던데 그 작품도 별로 기대되지 않을 지경이다. 읽긴 읽을 텐데 그 작품도 별로일까봐 지금으로선 솔직히 불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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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곡은 들리지 않는다
마루야마 마사키 지음, 최은지 옮김 / 황금가지 / 2021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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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3 






 


 전편을 읽었을 때 후속작이 나오긴 나오겠구나 하고 생각은 했지만 정말 이렇게 빨리 출간될지 몰랐다. 소재의 특성상 일본 추리소설 팬들도 잘 모르는 시리즈일 텐데 이렇게 농인의 인권을 다루는 독특한 추리소설 시리즈의 후속작을 만나볼 수 있는 건 대단히 감격스러운 일이다. 그런데 우리나라가 언제부터 농인의 인권에 관심이 많았지? 웹툰 <나는 귀머거리다>를 접한 이후로 개인적으로 농인이 등장하는 소설이나 영화를 종종 찾아봤지만 그래도 결코 대중적인 이야기는 아니라고 생각했는데... 시대가 변하고 있는 중이긴 한가 보다. 그렇지 않아도 작가 후기에서 인권 단체 쪽으로부터 압도적인 지지를 받으며 집필 중임을 엿볼 수 있었다. 1편 <데프 보이스>를 쓸 때만 하더라도 아는 농인이 없었다는데 지금은 완전히 달라졌다고 한다. 

 그래서 그런 걸까, <통곡은 들리지 않는다>는 전편에 비해 인권에 대한 이야길 더 많이 해 추리소설이 아닌 다른 장르로 노선을 선회한 느낌이다. 아무래도 상관 없는 일인 것이 농인의 인권도 인권이지만 어쨌든 수화 통역사 아라이의 이야기가 궁금해 후속작을 읽는 것이기도 해 장르는 크게 중요치 않다. 아라이가 능동적이든 수동적이든 이야기 속에서 주도적인 역할을 하지 못하든 그의 독특한 배경에서 비롯된 시선이 있기에 이 시리즈는 얼마든지 특별하게 다가올 수 있기 때문이다. 



 '통곡은 들리지 않는다' 


 상당히 비극적이지만 농인에겐 무척 일상적인 일을 다루고 있다. 치료를 받아야 하는 농인들이 의료 전문 통역의 도움 없이는 제대로 된 진료를 받기 힘들어 벌어지는 일들, 의료계 종사자들이나 통역사를 알선하는 사람들이 직업 의식이나 장애인 인식이 결여돼 농인의 고충을 이해하며 그들과 소통하려는 노력을 하지 않는 무신경함을 날카롭게 지적한다. 특히 의료계 종사자들이 농인을 다른 환자와 지나치게 똑같이 대해 - 그들은 119 전화도 걸기 힘든데 - 지금 사회가 농인을 위한 배려가 있는 사회라 보기엔 인프라나 인식 등 여러 면에서 아직 부족하단 걸 아라이의 시선으로 적잖이 엿볼 수 있었다. 

 사회적인 문제 못지않게 아라이 개인적으로도 앞으로 힘든 일이 벌어질 것을 예견하는 요소가 이 첫 수록작에서만 두 가지 나온다. 첫 번째는 아라이의 조카인 쓰카사가 농인임에도 일반 학교에 들어가려다 현실적인 문제로 벽에 부딪쳐 엇나가게 된 이야기, 그리고 아라이와 미유키 사이에 딸이 태어나는데 그 아이가 농인이라는 것이다. 전편에서부터 자녀를 갖길 거부했던 것이 바로 태어날 아이가 농인일 것 같아서였는데 어떻게 보면 아라이의 우려가 현실이 된 것이다. 



 '쿨 사일런트' 


 이번 수록작에선 딸에게 어렸을 때부터 보청기를 끼울 것인지 아니면 농인으로서 관련 학교에 보낼 것인지 논의하는 아라이와 미유키의 부부의 고뇌와 아라이가 농인 모델 HAL과 일을 같이 하게 되면서 벌어지는 일들을 다루고 있다. 전자에선 전편에서 '농인이라도 자기 자식이라면 굴하지 않고 키울 것'이라고 아라이에게 말한 미유키가 정작 농인인 딸이 태어나자 부모로서 심각히 고민하는 모습을 통해 현실은 결코 녹록지 않음을, 특히 장애인 자녀를 둔 부모는 다른 부모보다 고민이 곱절로 든다는 걸 보고서 아라이가 결혼이나 아이 갖는 것을 그토록 망설였으며 왜 매사에 거릴 두며 살았는지 비로소 와 닿게 됐다. 확실히 현실은 만만하지 않다. 

 농인 모델 HAL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그가 인기를 얻은 것은 당연히 외모의 덕도 크지만 그가 농인이기 때문도 크다. 아이러니하게도 그의 장애 사실은 어렸을 땐 우울한 기억을 가져다줬지만 모델 일을 하자마자 대중은 값싼 관심으로 하여금 그가 농인이란 것이 '쿨'하다며 판타지를 부여하기에 이른다. 참 엄청난 통찰력이 아닐 수 없는 것이, 실제로 일본 연예게에 비슷한 사례가 있었는지 모르겠지만, 실화든 아니든 간에 실제로 충분히 벌어지고도 남을 일이라 가장 가독성이 높았던 이야기였다. 농인이라 쿨하다고 관심을 가지면서 그의 수화나 구화가 조금이라도 쿨하지 않다 싶으면 자중하라고 하고, 그가 어떤 드라마에 농인 역할로 출연함에도 정작 농인의 정서를 반영하지 않는 캐릭터 설정에 심한 혼란을 유도하는 점 등이 예사롭지 않게 현실적인 묘사였던 나머지 나 또한 그런 식으로 장애인에게 이상한 환상을 품지 않았는지 되돌아보게 됐다. 



 '조용한 남자' 


 아라이와 미유키 부부가 자신의 딸 히토미를 어떻게 키울 것인지 정한 다음에 등장하게 된 이 수록작은 특이하게 아라이가 아닌 이즈모리 형사의 시점에서 전개된다. 그의 시선을 통해 아라이가 득녀한 뒤에 얼마나 많이 달라졌는지 간략히 엿볼 수 있었는데, 농인 가정에서 자란 아라이지만 농인 딸을 키우는 건 전혀 다른 일인지 가정에서의 스트레스가 이만저만이 아님을 간접적으로 느낄 수 있었다. 추측에 불과하지만 그가 신원 불명의 농인의 출신지를 알아내기 위해 시간을 조정해 발품을 팔았다는 것이 어느 정도 일탈을 위해서가 아닌가 싶었다. 비틀린 시선일는지 모르지만 마냥 인간애가 발동한 것으로는 보여지지 않았다. 

 물론 단지 일탈을 위해서 능동적으로 움직인 것은 아닐 것이다. 자신도 모르는 수화를 사용하는 농인의 죽음에 남다르게 반응하는 아라이는 이윽고 TV 속에서 찍힌 수화의 내용과 농인의 고향까지 알아낸다. 그렇게 된 이상 가만히 있을 수 없게 됐을 것이다. 소설에선 명확하게 설명하지 않지만, 위에서 얘기한 일탈하기 위해서 말고도 아라이는 농인 자녀가 나이 들어가며 어떤 삶을 살아갈까 이 질문의 답을 얻기 위해 길을 떠난 것처럼 보였다. 부모로서 자기 자식을 사랑으로 키울 테지만 세상은 장애인인 자신의 딸을 어떻게 대할 것인가, 그 현실을 알고 있음에도 자신은 잘 키울 수 있을 것인가 하는 아라이의 불안함 내지는 모종의 각오가 느껴지기도 했던 이야기였다. 



 '법정의 웅성거림' 


 이 이야기에선 크게 두 가지 에피소드가 나오는데 모두 쌓아온 긴장감에 비해 싱겁게 해소돼 마지막 수록작치고 아쉽게 읽혔다. 쓰카사와의 해묵은 감정이 이런 식으로 해소돼도 되나, 좀 더 극적인 전개가 있어야 하지 않았을까 싶을 정도로 첫 수록작에서의 불길한 암시가 무색해지고 말았고, 회사에서 자신이 장애인이라고 직장 내 따돌림을 했다고 고소한 농인의 이야기는 말 그대로 현재 농인의 처우나 농인에 대한 사회의 부족한 인식을 지적했을 뿐 정작 해당 농인이 무슨 심정으로 회사를 다녔고 고소를 하기에 이르렀는지에 대한 과정은 피상적으로 그려진 감이 있어 묘하게 와 닿지 않았다. 반대로 고소를 당하는 입장도 좀 묘사했더라면 - 가령 그들이 고소 내용을 결코 받아들이지 못하겠다는 강경한 태도만 보여도 이야기는 훨씬 긴박감 넘쳤을 것이다. - 보다 현실감 있게 다가왔을 텐데... 마지막 수록작은 정보 전달의 성향이 강해서 만족도가 네 편의 수록작 중 가장 떨어졌다. 

 오히려 미유키가 자신의 농인 딸 히토미를 바라보는 시선이 여러모로 복합적으로 보이는 것이 - 혼자만 수화를 가장 못하니까... - 이 시리즈의 후속작을 기대하게 만드는 요소였다. 아마 후속작이 나올 듯한데 그렇다면 히토미와 언니 미와, 아라이와 미유키 부부 이렇게 4인 가족의 이야기가 주를 이루지 않을까 싶다. 히토미 입장에선 자신이 태어나기 전부터 가족 모두가 수화를 할 줄 알아 어떻게 보면 천운을 타고 났다고 해야겠지만, 그건 히토미의 입장일 뿐이고 현실을 같이 살아야 하는 가족들의 입장은 다를 수 있으니 이들 사이에 균열이 나면 어떻게 날 것이고 또 그 균열을 어떻게 잘 봉합할는지 역시 궁금하다. 전편을 읽을 때만 해도 후속작이 더 나올지 반신반의했었지만 이렇게 3편까지 읽으니 4편도 나오고도 남을 것 같다. 부디 내 기대가 빗나가지 않길 바란다. 

어떤 분야든, ‘들림‘과 ‘들리지 않음‘의 장벽을 넘어 세상을 향해 자신의 언어로 자기 생각을 남김없이 전하고 정당하게 평가받는, 그런 누군가가 언젠가는 반드시 나타난다. - 139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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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0일간의 남미 일주
최민석 지음 / 해냄 / 2020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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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2 






 제목 그대로 소설가 최민석의 40일간의 남미 일주를 그린 이 여행 에세이는 지금 같은 시국엔 부러움을 넘어 질투를 유발할 뿐이었다. 글감을 위해 여행을 떠날 수도 있던 지난날의 낭만적인 분위기가 한껏 풍겨 잠깐이나마 지금 시국의 분위기를 잊을 수 있었다. 한 가지 아쉬웠던 게 있다면 이 책에 수록된 글들은 코로나 한참 이전에 작성됐지만, 책 자체는 한창 코로나가 터지고 난 뒤란 것인데, 이 두 시기의 극명한 차이를 작가가 강조하며 지난날을 그리워하거나 추억하는 어조가 들어갔으면 어땠을까 싶다. 보아하니 여행을 꽤 좋아하는 작가인 것 같은데, 김영하 작가의 <여행의 이유>를 읽었을 때도 느낀 거지만 이런 여행을 좋아하는 작가들이 코로나로 인해 여행을 가고 싶어도 갈 수 없는 시국을 어떻게 여길는지 참으로 궁금하다. 

 작가가 후기에서 밝히듯 사실 이 책은 '일주'라고 부르기엔 남미를 수박 겉 핥기 수준으로 다녀온 감이 없잖다. 40일이 길다면 길다고 할 수 있지만 가는 데만 이틀 가까이 걸리는 남미인 데다 거리가 거리인 지라 두 번 가기 힘든 만큼 40일은 고작 40일에 불과하다고 할 수 있겠다. 작가는 위트 있게 사전에 있는 여러 해석을 뒤지고 뒤져서 비록 자신이 40일밖에 다녀오지 않았지만 이동한 동선이나 비행기로 그 위를 날아간 동선을 합치면 일단 일주는 했다면서 여행의 마무리로 인한 아쉬움을 달래는 듯했다. 특히 여행 막바지에 이렇게나 일이 꼬일 수 있을까 싶을 만큼 대환장 파티가 펼쳐졌는데 이를 유쾌하게 받아들이며 정신 승리하는 작가의 마음가짐이 참으로 부러웠다. 


 보통 해외 여행은 돈이 많이 들어가는 만큼 기껏 멀리 갔는데 일정이 잘 풀리지 않거나 막상 갔는데 기대에 못 미치면 소위 말하는 가성비가 떨어진단 생각에 내가 괜히 시간과 돈을 들여 이 고생을 하면서 왔나 하고 한껏 비관주의에 빠져들기 마련이다. 여행지에 대한 기대가 크면 클수록, 이 여행을 위해 잠시 거리를 둔 현실의 고달픔이 더욱 고달플수록 여행의 힘듦을 선뜻 받아들이기 힘들어진다. 어쩌면 내가 이 책을 읽으면서 가장 부러웠던 건 작가 스스로 말하길 본인이 안 풀리는 작가라지만 어쨌든 등단하고 일거리가 끊이지 않는 작가라는 것, 무려 40일간 남미의 여섯 나라를 방문한 것보다 여행지에서 작가가 보인 대범한 모습인지 모르겠다. 내가 사는 동안 남미 중 어느 곳이라도 방문해볼 수 있을까 싶지만, 만약 간다면 이 작가처럼 설렁설렁 다닐 수 있을까? 나라면 배탈이 난 시점에서 여행 중에 이 무슨 추태냐며 자괴감에 빠졌을 것이다. 

 멕시코, 콜롬비아, 페루, 칠레, 아르헨티나, 브라질 총 여섯 나라 중 개인적으로 나도 언젠가 가보고 싶다고 생각한 곳은 페루의 리마와 쿠스코, 그리고 아르헨티나의 부에노스아이레스였다. 작가의 묘사에 따르면 리마는 해안 절벽 끄트머리에 세워진 기이한 도시고, 쿠스코는 남미의 스페인 식민지였던 국가 중 유일하게 스페인이 정복하지 못한 최후의 요새라 원주민이 많이 사는 이색적인 도시고, 부에노스아이레스는 스페인어로 '좋은 분위기'인 것처럼 탱고와 낭만이 넘치는 도시인 것 같아 직접 방문해보고 싶어졌다. 누가 소설가 아니랄까봐 여행기치고 사진이 많지 않았는데, 거기에 한 술 더 떠서 유명 관광지가 아닌 숙소와 일반적인 카페나 바, 심지어 거리나 택시에서 보고 들은 에피소드를 주로 썼기에 여행지로서의 피상적인 모습이 아닌 실제로 사람이 사는 공간임을 엿볼 수 있어 어딘지 새롭게 읽혔다. 


 하지만 반대로 말하면 너무 전형적이지 않은 전개로 여행기가 진행되다 보니 눈길을 확 잡아끄는 맛이 없고, 대부분 숙소에서의 황당한 에피소드나 배탈이 나 약국을 들락거린 에피소드인 지라 실질적인 여행 정보를 얻기엔 부족함이 있는 여행기였다. 간간이 그 나라의 역사나 상식, 그 나라를 배경으로 한 영화에 대해 설명하지만 그것도 체계적이고 주기적으로 나오는 게 아닌 터라 전반적으로 가독성이 뒤로 갈수록 떨어지는 편이었다. 대체로 글에 설명이 너무 많으면 가독성이 떨어지는 법이지만 설명이 너무 적어도 가독성이 떨어지긴 마찬가지란 건 간만에 느꼈다. 작가의 다른 여행기 <베를린 일기>는 어떠려나? 

 기대가 큰 탓이었는지 생각보다 남미의 이모저모보단 작가가 어떤 사람이었는지가 더 잘 기억에 남았던, 나름대로 독특하다면 독특했던 여행기였다. 어쨌든 작가의 다른 책도 읽어보고 싶어졌다. 여행기나 소설도 궁금해졌다. 작가는 스스로 잘 안 풀리는 작가라고 했지만 이렇게 긴 여행을 갈 수 있을 정도면 벌이가 그렇게 시원찮은 건 아닌 것 같다. 글을 써서 여행 경비를 마련하고, 게다가 다음 글감을 얻으라면서 본의 아니게 여행을 권할 만한 편집자가 붙을 정도니 자조하듯 말한 것에 비해 번듯하고 능력이 출중한 작가가 아닐까 싶다. 뭐, 다른 책도 직접 읽어봐야 알 일일 테지만 말이다. 

왜 이런 작가들이 변기를 전시했던 마르셀 뒤샹 이름의 ‘ㅁ‘자만큼도 안 알려졌을까.

슬프지만, 뉴욕 태생이 아니기 때문이다. 런던 출신이 아니고, 파리 출신이 아니고, 미국인이 아니고, 유럽인이 아니고, 멕시코인으로 태어나 여전히 멕시코인으로서 멕시코에서 살아가기 때문이다. 한국에서 한국에서 소설가로 살아가는 나로서는 제1세계로만 편중된 예술 시장의 관심을 한탄할 수도 있다. 하지만, 현대 미술관에서의 경험은 오히려 더 겸손해져야 한다는 것을 내게 때리듯 알려줬다. 이처럼 훌륭한 예술가들도 알려지지 않았는데, 나는 이들에 훨씬 못 미치지 않는가. - 49~50p



선생님. 오늘도 정신 승리 하신 거예요?

믿기 어려우시겠지만, 오늘은 진심입니다. 이런 자세로 지내면 어디에서도 지낼 만할 것 같아서요.

정신 승리 맞네요. - 298p



실은, 이게 지난 10년간 내가 작가로서 해온 것이다. 항상 수평선을 향해 간다고 여기고 한 발씩 내디뎠는데, 언제나 제자리였다. 수평선 부근에는 만나본 적도 없는 사람들이 햇빛을 즐기며 여유롭게 ‘물 위에 떠 있는 삶‘을 즐기는 것처럼 보였다. 그런 관념에서 헤어나와 주변을 보니, 정작 파도에 맞서서 앞으로 가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남녀노소 모두가 파도의 힘 탓에 제 몸이 백사장까지 떠밀려 오는 걸 즐기고 있었다. - 390~391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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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항하는 지성, 고야
박홍규 지음 / 푸른들녘 / 2020년 9월
평점 :
품절


8.4 







 고야를 수식하는 말은 많다. 대표적으로 괴물을 그린 화가, 시대의 어둠을 그린 화가이며 몇몇 사람들에겐 시대의 어둠을 그리긴 했으나 자신의 안위를 생각해 불이익을 받지 않을 시점, 그러니까 사건이 다 끝난 다음에 뒷북치는 비겁하면서 평범하디 평범한 사람으로 평가받기도 한다. 내가 봤을 땐 고야는 인맥 관리가 매우 출중한 사람이다. 그가 당대 사람 중에서 유난히 천수를 누렸던 것도 - 청각도 잃고 말년은 쓸쓸했지만 - 자기 관리가 철저했던 것으로 추측된다. 종교 재판에 회부돼 몇 번이고 처형당할 뻔했으나 자신을 지지해주는 후원자 덕분에 비극을 면한 걸 보면 이 사람의 인망까진 아니더라도 인맥의 중요함을 엿볼 수 있다. 애당초 이 사람은 궁정 화가다. 제아무리 반항적인 심상의 소유자였다 하더라도 기본적인 정치력이 없었다면 진즉에 낙오돼 훗날 역사의 한 획을 긋는 그림들을 남기지 못했을 것이다. 

 그런 면에서 클림트와 비슷한 측면이 있는 것 같다. 처음 사람들에게 인정 받을 땐 주류에 통할 만한 가장 대중적인 화풍을 가졌으나 정작 그들의 대표작은 그렇게 명성을 얻고 나름대로 자신의 의지를 자유롭게 관철할 수 있게 된 다음에 탄생하게 됐다는 점이 특히 말이다. 예술가에게 있어 자신의 스타일이 처음부터 대중에게 사랑받으며 작품 활동을 승승장구 이어나가는 것처럼 바라 마지않는 일은 없겠으나 냉정하게 말하면 꿈 속에서도 쉽지 않은 일이다. 원인과 결과를 다르게 해석한 것이지만... - 고야나 클림트나 철저히 계획해서 대중적인 그림으로 커리어를 쌓은 게 아니라 새로움을 추구하다 오늘날에 알려진 대표작을 그리게 된 것이니까. - 아무튼 고야는 대기만성이란 말이 어울릴 정도로 대표작들을 말년에 그렸다고 한다. 그래서 그런 걸까, 이 책 <저항하는 지성, 고야>는 초반보다 단연 후반부가 더욱 흥미롭게 읽혔다. 


 초반엔 뜬금없이 스페인의 이모저모를 살펴보다가 고야의 생애로 들어가게 되는데 이 부분은 너무나 지루했다. 이전에 <두 개의 스페인>을 읽어서 새롭게 읽히는 내용이 없었다. 하지만 지루할지언정 중요한 부분이었다. 고야만큼 스페인의 역사와 따로 놓고 볼 수 있는 화가는 또 없으니까. 격변의 시기의 스페인을 고스란히 겪은 고야는 그야말로 '해가 지지 않는 나라'의 몰락을 온몸으로 체험했으니 시간을 들여 스페인이라는 나라의 역사를 짚어볼 필요가 있었다. 고야가 대단히 대중과 소통하며 사회 비판적인 그림이나 삽화를 그렸는지는 이 책을 읽는 것만으로는 완벽히 와 닿지 않았지만, 적어도 고야가 스페인 왕실의 이중성과 무능함을 가까이서 봐온 인물인 만큼 그처럼 신랄한 비판을 그림 속에 녹여내는 게 가능했다고 본다. 

 개인적으로 고야가 살아온 당대 스페인의 역사가 흥미진진한 것에 비해 고야의 생애 자체는 큰 고락 없이 심심하게 비쳐졌다. 고흐나 내가 좋아하는 뭉크, 아니면 외설적인 그림을 그린 혐의로 철창 신세를 질 뻔한 후배 화가 쉴레에 비하면 생애 전반적으로 부와 명예를 골고루 얻은 풍족한 삶을 산 화가라고 생각한다. 스페인을 비롯해 이베리아 반도 전체가 프랑스에 의해 초토화됐을 때 보인 행보가 이른바 친프랑스적인 인물이라 해석될 여지도 있기에 마냥 긍정적인 면모만 있는 인물도 아닌 것 같다. 서두에서 말했듯 기회주의자 내지는 인간적인 인물인 것 같아 괴물보다 평범하디 평범한 인간에 가깝지 않나 싶다. 이런 평범함이야말로 후대 사람들을 매료시키는 측면도 있지만, 그래도 평범한 면모 때문에 작가가 '저항하는 지성'이라 치켜세우는 것이 그렇게 잘 받아들여지지 않는 것도 사실이다. '저항하는 지성'이란 것도 후대의 해석일 뿐 정말 고야가 당시에 그림으로써 대단한 변혁을 추구했던 건 아닌 것 같으니까. 


 저자의 이름은 익히 들어왔고 꽤 다방면에서 저술 활동을 펼치는 사람인 것도 알고 있지만, 이 책의 경우 저자가 고야의 생애를 되짚어 가기 보단 저자가 결론을 마음 속에 정한 뒤 자문자답하듯 확신하는 문체 때문에 - 그렇다 보니 고야를 다룬 홋타 요시에의 책의 내용을 수시로 비판하던데, 비판의 내용은 몰라도 비판의 양은 좀 과한 감이 있었다. 어쩐지 그 책도 읽고 싶어졌다. - 글의 내용이 그다지 눈에 들어오지 않았다. 한 화가의 생을 다룬 책이 대개 그런 법이지만 작가도 책에서 고야의 생애 순간 순간을 너무 과대 해석하며 오늘날 우리가 고야의 생애를 봐야 할 이유를 계속 강조한다. 

 하지만 정작 강조한 것만 기억이 나지 왜 강조를 했는지는 별로 기억에 남지 않았다. 정말 미안한 얘기지만 특정 구절에선 이 작가가 깨시민이 아닌가 싶을 정도로 독자들을 내려다보는 뉘앙스도 어렴풋이 받아 다루는 내용에 비해 호감이 가지 않았는데... 이런 경우가 전에도 있었던가? 흔치 않은 경우라 어떤 의미에선 신선하기까지 했다. 참으로 달갑지 않은 신선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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