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항하는 지성, 고야
박홍규 지음 / 푸른들녘 / 2020년 9월
평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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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4 







 고야를 수식하는 말은 많다. 대표적으로 괴물을 그린 화가, 시대의 어둠을 그린 화가이며 몇몇 사람들에겐 시대의 어둠을 그리긴 했으나 자신의 안위를 생각해 불이익을 받지 않을 시점, 그러니까 사건이 다 끝난 다음에 뒷북치는 비겁하면서 평범하디 평범한 사람으로 평가받기도 한다. 내가 봤을 땐 고야는 인맥 관리가 매우 출중한 사람이다. 그가 당대 사람 중에서 유난히 천수를 누렸던 것도 - 청각도 잃고 말년은 쓸쓸했지만 - 자기 관리가 철저했던 것으로 추측된다. 종교 재판에 회부돼 몇 번이고 처형당할 뻔했으나 자신을 지지해주는 후원자 덕분에 비극을 면한 걸 보면 이 사람의 인망까진 아니더라도 인맥의 중요함을 엿볼 수 있다. 애당초 이 사람은 궁정 화가다. 제아무리 반항적인 심상의 소유자였다 하더라도 기본적인 정치력이 없었다면 진즉에 낙오돼 훗날 역사의 한 획을 긋는 그림들을 남기지 못했을 것이다. 

 그런 면에서 클림트와 비슷한 측면이 있는 것 같다. 처음 사람들에게 인정 받을 땐 주류에 통할 만한 가장 대중적인 화풍을 가졌으나 정작 그들의 대표작은 그렇게 명성을 얻고 나름대로 자신의 의지를 자유롭게 관철할 수 있게 된 다음에 탄생하게 됐다는 점이 특히 말이다. 예술가에게 있어 자신의 스타일이 처음부터 대중에게 사랑받으며 작품 활동을 승승장구 이어나가는 것처럼 바라 마지않는 일은 없겠으나 냉정하게 말하면 꿈 속에서도 쉽지 않은 일이다. 원인과 결과를 다르게 해석한 것이지만... - 고야나 클림트나 철저히 계획해서 대중적인 그림으로 커리어를 쌓은 게 아니라 새로움을 추구하다 오늘날에 알려진 대표작을 그리게 된 것이니까. - 아무튼 고야는 대기만성이란 말이 어울릴 정도로 대표작들을 말년에 그렸다고 한다. 그래서 그런 걸까, 이 책 <저항하는 지성, 고야>는 초반보다 단연 후반부가 더욱 흥미롭게 읽혔다. 


 초반엔 뜬금없이 스페인의 이모저모를 살펴보다가 고야의 생애로 들어가게 되는데 이 부분은 너무나 지루했다. 이전에 <두 개의 스페인>을 읽어서 새롭게 읽히는 내용이 없었다. 하지만 지루할지언정 중요한 부분이었다. 고야만큼 스페인의 역사와 따로 놓고 볼 수 있는 화가는 또 없으니까. 격변의 시기의 스페인을 고스란히 겪은 고야는 그야말로 '해가 지지 않는 나라'의 몰락을 온몸으로 체험했으니 시간을 들여 스페인이라는 나라의 역사를 짚어볼 필요가 있었다. 고야가 대단히 대중과 소통하며 사회 비판적인 그림이나 삽화를 그렸는지는 이 책을 읽는 것만으로는 완벽히 와 닿지 않았지만, 적어도 고야가 스페인 왕실의 이중성과 무능함을 가까이서 봐온 인물인 만큼 그처럼 신랄한 비판을 그림 속에 녹여내는 게 가능했다고 본다. 

 개인적으로 고야가 살아온 당대 스페인의 역사가 흥미진진한 것에 비해 고야의 생애 자체는 큰 고락 없이 심심하게 비쳐졌다. 고흐나 내가 좋아하는 뭉크, 아니면 외설적인 그림을 그린 혐의로 철창 신세를 질 뻔한 후배 화가 쉴레에 비하면 생애 전반적으로 부와 명예를 골고루 얻은 풍족한 삶을 산 화가라고 생각한다. 스페인을 비롯해 이베리아 반도 전체가 프랑스에 의해 초토화됐을 때 보인 행보가 이른바 친프랑스적인 인물이라 해석될 여지도 있기에 마냥 긍정적인 면모만 있는 인물도 아닌 것 같다. 서두에서 말했듯 기회주의자 내지는 인간적인 인물인 것 같아 괴물보다 평범하디 평범한 인간에 가깝지 않나 싶다. 이런 평범함이야말로 후대 사람들을 매료시키는 측면도 있지만, 그래도 평범한 면모 때문에 작가가 '저항하는 지성'이라 치켜세우는 것이 그렇게 잘 받아들여지지 않는 것도 사실이다. '저항하는 지성'이란 것도 후대의 해석일 뿐 정말 고야가 당시에 그림으로써 대단한 변혁을 추구했던 건 아닌 것 같으니까. 


 저자의 이름은 익히 들어왔고 꽤 다방면에서 저술 활동을 펼치는 사람인 것도 알고 있지만, 이 책의 경우 저자가 고야의 생애를 되짚어 가기 보단 저자가 결론을 마음 속에 정한 뒤 자문자답하듯 확신하는 문체 때문에 - 그렇다 보니 고야를 다룬 홋타 요시에의 책의 내용을 수시로 비판하던데, 비판의 내용은 몰라도 비판의 양은 좀 과한 감이 있었다. 어쩐지 그 책도 읽고 싶어졌다. - 글의 내용이 그다지 눈에 들어오지 않았다. 한 화가의 생을 다룬 책이 대개 그런 법이지만 작가도 책에서 고야의 생애 순간 순간을 너무 과대 해석하며 오늘날 우리가 고야의 생애를 봐야 할 이유를 계속 강조한다. 

 하지만 정작 강조한 것만 기억이 나지 왜 강조를 했는지는 별로 기억에 남지 않았다. 정말 미안한 얘기지만 특정 구절에선 이 작가가 깨시민이 아닌가 싶을 정도로 독자들을 내려다보는 뉘앙스도 어렴풋이 받아 다루는 내용에 비해 호감이 가지 않았는데... 이런 경우가 전에도 있었던가? 흔치 않은 경우라 어떤 의미에선 신선하기까지 했다. 참으로 달갑지 않은 신선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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