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F의 힘 - 미래의 최전선에서 보내온 대담한 통찰 10
고장원 지음 / 추수밭(청림출판) / 2017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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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7






 요번 학기엔 SF 수업을 듣는데 1주일 동안 그 수업 듣는 날만 기다릴 정도로 푹 빠졌다. 원래 SF는 내게 하나의 장르에 불과했지만 <백년법>을 읽은 이후로 관심이 가게 됐는데 그 수업을 들으면서 내가 알게 모르게 이 장르를 꽤나 좋아한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비록 내가 이공학적 사고나 상식은 많이 부족하지만 공상 과학 소설의 의의는 내가 이상적으로 생각하는 소설의 모습과 거의 같아서 앞으로도 틈틈이 찾아 읽노라고 다짐했다.

 그 다짐을 조금 더 공고히 해두고자, 그리고 요번 학기 수업의 예습 및 자체 보강을 위해


 작가가 서두에서 밝히길 책의 출간에 맞춰 재탕 - 돌려막기라고도 한다. ㅋ - 한 글이 있다고 한다. 그래서 그런지 조금씩 비슷한 내용이나 키워드가 반복되는 느낌이 있었다. SF에 대해 이야기하고자 작가가 나눈 챕터가 워낙 세부적이라 약간 겹치는 부분이 있었던 것 같은데 이는 다양한 이야기 보따리에 대한 경이감으로 번지니 조금도 거슬리지 않는다. 인공지능, 유전공학, 우주개발, 디스토피아, 외계인, 포스트 휴먼... 여러 SF 책과 영화, 만화, 우리나라 웹툰도 인용하는 글을 읽다보면 이 많은 걸 다 읽고 볼 수 있나 싶을 만큼 끝도 없이 언급돼서 나중에 읽을 책 리스트를 채우는 것에도 꽤 참고가 됐다.

 SF는 앞으로 다가올 미래를 상상하거나 가상의, 그리고 극단적인 상상을 가미한 세계관에서 변화할 우리의 가치관에 대해 얘기하는 장르라는 것으로 귀결되는 책이지만 분량은 제법 된다. 단 한 순간도 지루하지 않았다면 거짓말이겠지만 익히 알았던 이야기, 아직 상상이 미치지 않은 이야기 등 흥미를 끌거나 공감을 더해줄 내용이 대부분이라서 읽는 내내 유익한 시간을 보낼 수 있었다. 이제 입문서보다 다양한 작품을 읽어야지.

내일의 과학이 어디까지 가 있을지 누구도 장담할 수 없는 일이지만 그러한 과학이 어떻게 쓰이고 감시되어야 하는지는 과학소설을 즐겨 읽는 독자 여러분의 몫이다. - 42p




그만큼 오늘날의 사회는 석가모니나 예수가 살던 사회만큼 단순하지도 상대적으로 순수하지도 않다. 현대의 우리는 더 많이 의심하고 더 많이 가지려 한다. 과연 이러한 자들을 석가모니나 예수가 말씀의 힘으로 되돌릴 수 있을까? - 78p




현실 세계의 1984년이 조지 오웰의 <1984년>처럼 되지 않은 것은 바로 <1984년>과 같은 SF작품들의 시대를 앞선 경고가 있었기 때문이 아니겠는가. - 221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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컬러풀
에토 모리 지음, 이송희 옮김 / 문학수첩 리틀북 / 2004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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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3






 이 소설을 원작으로 한 동명의 애니메이션 영화를 봤다. 영화는 예상과 달리 염세주의적 가치관으로 풀어낸 세계관에 일차적으로 놀랐고 그 첫인상에 반하는 대단히 설득력이 있는 따뜻한 마무리가 이차적으로 놀라운 작품이었다. 당초 그 영화를 본 이유 중 하나가 모리 에토의 작품을 원작으로 했다는 점 때문이었는데 - 미야자키 아오이의 목소리 연기를 보고 싶다는 이유도 있었다. - 순서가 바뀐 것 같지만, 또 시간도 약간 흘렀지만 이렇게 원작 소설을 읽게 됐다. 가급적 사서 읽을 생각이었는데 절판 도서라 부득이하게 도서관에서 빌려 읽었다.

 내용은 벌써 두 번째 접하는 터라 책을 또 읽어야겠다는 생각까진 안 들었지만 만약 이 책을 구매해서 읽었더라면 선뜻 중고 서점에 팔기 망설였을 거란 생각이 든다. 밑에 링크로 첨부할 영화 포스팅의 점수를 보면 알겠지만 원작 소설이 좀 더 좋았다. 영화에선 아무래도 주인공에게 퍽 충격을 줬을 엄마와의 관계가 집중적으로 다뤄졌는데 소설은 엄마말고도 아빠, 형과의 관계도 다루고 있어 분량을 떠나 보다 균형감이 잡힌 느낌이었다. 지면에도 제약이 있다지만 영상 문학과 비교했을 때 생각하는 바를 거의 디테일하게 풀 수 있다는 점에선 아무래도 소설보다 빛을 발하는 장르는 또 없다고 한다. 영화를 본 게 약 2년 전이지만 두 매체의 차이가 분명히 느껴지는 걸 보고 새삼 소설의 장점이란 게 와 닿았다.


 전생에 큰 죄를 저질렀지만 '당첨'이 돼 다시 한 번 기회가 주어진 '나'. '나'는 천사 프라프라의 안내를 받아 다량의 수면제를 먹고 자살을 기도한 소년 마코토의 몸에 들어가게 된다. 처음엔 '나'는 왜 마코토는 자살을 했을까 의아스러웠지만 프라프라의 안내에 의해 평온한 것처럼 보인 마코토의 가족의 추한 모습을 알게 된다. 이후 '나'는 생전에 마코토도 미처 표현하지 못했을 극도의 반감을 숨기지 않는다. 제한된 시간 안에 마코토의 몸 안에 홈스테이하는 동안 전생의 죄를 기억해내야 윤회의 사이클로 들어갈 수 있는 처지인 '나'지만 마코토가 자살할 수밖에 없는 우울한 사정에 질려 '나' 역시 의욕이 도통 생기지 않는데...

 다른 사람의 몸으로 살아가는 기묘한 입장의 '나'는 의욕이 생기질 않는다. 아무래도 입장에서 오는 무기력함의 탓이 클 것이다. 타인의 삶이라 그런가, 애당초 윤회의 사이클이란 것도 뭔지 모르겠는데 삶의 의지라니, 무기력한 걸 넘어 당혹스럽지 않다면 그게 더 이상할 것이다. 하지만 '나'의 이런 한 발짝 떨어진 입장은 의외로 마코토의 삶의 순간 순간에 과감히 지르는 저돌성으로 발현되곤 하는데 기존 마코토의 행동거지완 달라 주변에 크고 작은 변화를 불러일으키게 된다. 물론 마코토에게도.


 작품의 제목은 한 가지 색깔로 정의될 수 없는 인생의 특징을 가리키는 말인데 이 말 자체는 인생의 진리라며 운운할 수도 없을 그냥 당연한 것이기 때문에 - 그것도 모르는 사람이 은근히 많지만. - 이번이라고 특별히 기억에 남거나 하진 않았다. 그보다 특기하고 싶은 것은 타인의 몸에 홈스테이하게 된 '나'라는 주인공인데 이거... 은근히 잘 만든 설정이구나 싶었다. 우리 모두 자신의 삶 속에선 겁을 내며 하고 싶은 것도 마음대로 하지 못하는데 타인의 몸으로 살게 되면 어떨까? 아마 조금은 부담이 덜한 처지라 이것 저것 해볼 수 있지 않을까? 어차피 수습은 자기가 하지 않을 것이라 생각하면 못할 게 없을 것 같다.

 소설의 설정이 처음엔 참 밑도 끝도 없다고 생각했는데 지금은 생각이 달라졌다. 작가는 아마 타인이 빙의돼 거침없이 살아가면 아이러니하게도 움츠렸을 때 놓친 걸 보게 된다는 점에 주목해 이런 소재를 쓴 것 같다. 이 기발한 설정의 심상찮은 주제는 어느 청소년 성장 소설을 찾아봐도 비슷한 예를 찾기 힘들 정도로 명확하고 특이한 주제라서 이렇게 아른거리는 것 같다. ...나 지금 스포일러 피하면서 말하고 있는 거 맞겠지? 아무튼 끝났다고 여겼을 때 시작된 기묘한 삶에 대한 이야기인 만큼 아이, 청소년은 물론이고 성인 독자에게도 남 얘기가 아닐 텐데 기회가 된다면 많은 사람들이 읽었으면 좋겠다. 어떻게 보면 성장 소설의 미덕을 고루 갖춘 작품이라 할 수 있으니.



https://blog.naver.com/jimesking/220813907516 


 이건 영화에 대한 포스팅.

때로는 눈앞이 캄캄해질 정도로 컬러풀한 저 세계.

그 극채색 소용돌이로 돌아가자.

거기서 모두와 더불어 온통 색깔 투성이가 되어 살아가자. 설령 그것이 무엇 때문인지 알 수 없다 하더라도...... - 241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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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지 - 랜덤하우스 히가시노 게이고 문학선
히가시노 게이고 지음, 권일영 옮김 / 랜덤하우스코리아 / 2010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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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7







 우리들의 미래는 지금보다 차별이 적어질 세상이 될 테지만, 애초에 차별이 그렇듯 우리들이 미처 인식하지도 못하는 차별의 피해자는 항상 있기 마련이다. 우리가 그런 피해자의 존재를 확인했을 때, 우린 차별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게 될까? 역시 차별은 없어져야 한다고 생각할까, 아니면 어쩌면 당연히 있어야 할 차별도 있는 법이라고 고갤 돌리게 될까?

 히가시노 게이고의 수많은 장점 중 하나로 확실한 주제의식의 사회파 추리소설을 쓰는 점을 많은 사람들이 꼽을 것 같다. 나 역시도 작가의 <붉은 손가락>을 읽고 크게 감명받은 독자다. 처음 읽은 작가의 작품은 <흑소소설>이란 블랙유머 단편집이었다. 그 책을 읽었을 땐 작가가 추리소설가인지 몰랐고 오히려 '히가시노 게이고는 역시 추리소설을 잘 쓴다'는 평을 듣고 의아하기도 했다. 그땐 아직 사회파 추리소설이 있는 것도 모르던 시절이었다.


 내가 아마 이 작품 <편지>로 히가시노 게이고를 처음 접했더라면 이 작가가 추리소설가란 걸 더더욱 의아했을 것만 같다. 사회파 추리소설이 아닌 그냥 사회파 소설인데 어찌나 잘 썼는지 마치 급소가 찔린 듯 눈물이 다 나온다. 히가시노 게이고의 다섯 번째 나오키상 후보작이기도 한데 드라마와 더불어 낙인 효과나 가해자의 가족 이야기를 잘 다룬 만큼 후보작에 그친 건 - 이미 다 지난 일이건만 - 참 아쉽기 그지없는 일이다. 그 다음 여섯 번째 후보작인 <용의자 X의 헌신>으로 드디어 빛을 보니 잘 됐다면 잘 된 거지만.

 뜻하지 않게 형이 강도 살인범으로 검거된 주인공 나오키는 이 세상을 홀로 살아가게 된다. 이때 나오키는 누구도 동정하지 않고 대놓고 미워하지도 않는 실로 애매한 처지에 놓인다. 하지만 인생의 중요한 순간마다 범죄자 형의 존재는 나오키의 발목을 잡는다. 아르바트이처에서, 밴드로 데뷔할 때, 여자친구와의 관계에서, 회사에서... 처음에 나오키는 한 달에 한 번 교도소에서 오는 형의 편지를 정독하지만 점차 제대로 읽지도 않고 버리는 등 형에 대한 시선이 변한다. 그러나 형이 자신의 대학 등록금을 마련하기 위해 범죄를 저질렀던 것인 만큼 쉽게 형제의 연을 끊지 못한다.


 히가시노 게이고의 작품이 가독성은 좋지만 문체는 좀 떨어지는 편이라는 게 중론인데 개인적으로 약간 틀린 말이라 생각한다. 히가시노 게이고는 딱 쓸 것만 쓰는 작가인 것 같다. 자신이 쓸 수 있는 선에서 효율적인 묘사를 통해 많은 걸 전달한다고 하면 너무 띄워주는 걸까? 다른 건 몰라도 이 작품에서의 주인공의 심리는 결코 부족하지 않게 묘사됐다. 누구에게 하소연할 수 없는 부당한 대우, 형이 범죄만 저지르지 않았으면 보다 행복해질 수 있었을 텐데 그렇지 못한 스스로의 처지에 비관하게 되고 표독스러워지다 이내 자신을 피하는 사람들과 사회에 불만을 품는 과정이 꽤나 설득력 있게 그려졌다. 특수한 경우가 아니라면 범죄자의 가족이란 인물에 이 정도로 감정 이입하지도 않았을 것을 생각하면 적잖은 생각 거리를 던짐과 동시에 문제 제기에 작가가 성공했음을 어떤 식으로라도 인정하지 않을 수 없다.

 단순히 문제 제기에 그쳤으면 어딘지 평범한 작품이 됐을 테지만 작가는 자신의 생각을 불어넣는다. 이 생각이 정답인가 아닌가 판단하는 건 독자의 몫일 텐데 워낙 답을 알 수 없는 문제라 퍽 의미 있는 일이라 할 수 있겠다. 작중 인물의 입을 빌려 작가는 주인공에게 사람들의 부당한 대우는 당연한 것이라고 한다. 형의 죄가 곧 동생의 죄가 되진 않지만 동생이 다른 사람보다 불편하게 살아감으로써 형은 자신의 죄를 보다 반성할 것 아닌가 하며, 그리고 사람들이 범죄와 관련되길 꺼려하는 건 당연하고 그런 그들에게 관용을 바란다는 것은 어리광에 불과하다는 등 주인공에게 결코 동정적인 말을 하지 않는다.


 이 작품의 강점은 위와 같이 마냥 동정적이지 않은 점을 들 수 있다. 다소 논란의 여지는 있겠으나 범죄자의 가족에게 할 말로써 현시점에서 가장 확고하고 적확한 조언이지 않을까? 우린 어지간하면 가해자의 가족의 처지에 대해선 생각하지 않는다. 만약 마주치더라도 피하기 마련이다. 물론 엄밀히 말해 그들은 범죄자가 아니다. 하지만 심정적으로 저도 모르게 차별하고 마는 것이다. 이때 일반적으론 차별은 무조건 나쁜 것이라고 사람들은 말하겠지만 이 작품은 냉혹하게도 사람의 마음을 고려했을 때 - 특히 피해자의 유가족을 생각한다면 - 우리들의 대우가 차별로 분류된다고 꼭 '나쁘다'고 말할 수 있는지 의문을 던진다.

 역자인 권일영 씨의 후기에서도 밝히듯 이건 정답이 있을 수 없는 문제다. 한 명이 입장을 분명히 하면 반드시 정반대의 입장을 표명하는 사람이 나와 토론이 불거지고도 남을 문제다. 결국 상황에 따라 달리 정의되는 것으로 합의점이 도출될 텐데 그만큼 민감한 문제라 당연한 일일 것이다. 중요한 건 어쨌든 이 작품은 생각할 일이 없던 질문을 우리에게 던졌고 작가 나름의 답이 제시됐지만 그렇다고 작가가 그 답을 절대 강요하지도 않는다 - 오히려 답을 내놓는 동시에 스스로 반론을 제기한다. - 는 것이다. 그렇기에 결말이 그렇게 급소에 찔린 듯 슬펐던 것이리라.


 작년에 읽은 <가시고기> 이후로 가장 슬펐던 소설이다. 이것도 신파라 할 수 있겠지만 작가가 쓴 어느 문장이 마음 속 깊은 곳에 있던 급소를 건드려 상당히 힘들었다. 특히 존 레논의 imagine이 중첩돼니 더욱 그랬다. 처음 읽을 때도 그랬는데 두 번째 읽을 때도 얄짤 없네, 정말. 다른 건 몰라도 imagine은 신의 한 수에 해당하는 장치였다. 존 레논이 말한 것처럼 우린 차별이 없는 세상을 꿈꾸지만 꼭 그렇지도 않은 현실 사이의 괴리감을 무척이나 서글프게 강조하니 말이다.

 이 작품은 인기에 힘입어 영화화됐는데 엔딩의 노래 장면이 만담하는 것으로 바뀌었다고 한다. 주인공의 꿈은 가수가 아닌 코미디언이고... 무슨 '짓'인지 잘 모르겠지만 그건 결국 영화를 보고 마저 말해야 할 것 같다. 영화도 조만간 봐야지.

자신이 지금 겪고 있는 곤경은 형이 저지른 죄에 대한 벌의 일부다. 범죄자는 자기 가족의 사회성까지도 죽일 각오를 해야 한다. - 319p




언제 어느 때나 정정당당한 게 자네들에게 정말로 힘든 선택일까? 나는 그렇게 생각 안 하네. 다시 말하면, 매우 선택하기 쉬운 길을 걷고 있다는 생각밖에 들지 않네. - 366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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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물어 가는 여름
아카이 미히로 지음, 박진세 옮김 / 피니스아프리카에 / 2013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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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8.0






 유괴, 공소 시효, 저널리즘... 삼박자가 두루 갖춰진 이 소설은 작가의 데뷔작이자 에도가와 란포상 수상작이기도 하다. 에도가와 란포상 수상작가들의 프로젝트 단편집을 읽은 게 기억나서 이렇게 작가의 대표작이자 데뷔작까지 읽게 됐다. 본래 기자로 활동한 전적을 활용한 전문성이 돋보인 작품이었다. 아마 기자로서의 경험이 이 작품을 구상하는 적잖은 동기를 제공했을 것이다. 기자라는 키워드가 이 작품과 그렇게 맞아떨여졌는지는 잘 모르겠지만.

 한 대형 신문사의 입사 예정자가 20년 전 유괴 사건의 범인의 딸이라는 잡지사의 기사가 세간에 나오게 된다. 기사의 해당 신문사는 자사의 기준에 아주 적합한 인재가 인권 침해는 물론이거니와 낙인 효과에 희생당해선 안 된다는 방침을 내세우며 20년 전 사건을 재조사하기에 이른다. 과거의 어느 사건 때문에 한직에 머물게 된 한 기자가 재조사를 하게 되는데 이면이랄 게 없어 보인 사건에 새로운 가능성이 발견되면서 결국 엄청난 반전이 드러나게 된다.


 상당히 인간미가 넘치는 작품이었다. 아무리 우수하다지만 아직 입사도 안 한 신입 사원을 위해 힘써주는 신문사 사장을 비롯해 악랄한 인간은 한 사람도 등장하지 않는다. 사건의 주범도 동정하게 되는 것 등 사람들이 일본 추리소설을 구가해온 이유를 집약적으로 보여주는, 그야말로 드라마가 강조된 이야기였다. 다만 작품의 주된 원동력이 의의는 좋지만 그 특성상 긴박감은 떨어져 가독성이 꽤나 떨어졌다. 괜히 긁어부스럼을 만들거나 없던 문제를 만드는 식의 성격은 아니지만 기본적으로 서사의 당위성은 아무래도 좀 약한 감이 있어 어쩔 수 없지만 아쉽지 않다고 할 수 없겠다.

 개인적으로 이 작품이 무척이나 뭉클한 특급 반전을 선보였다고 생각하는데 그와 동시에 느닷없지 않았나 하는 생각도 들었다. 그 반전을 위한 복선이 탁월했는가 아닌가 떠나서 너무 반전을 위한 반전이 아닌가 하는 의구심이 들었던 것이다. 이는 어쩌면 재독을 결심하게 만드는 요소가 될 순 있겠으나 분량에 비해 전개 자체가 상대적으로 길었던 것 같아 선뜻 재독하기엔 주저된다. 그래도 유괴란 소재를 잘 살렸으니 그 놀라움과 울컥함이 어디 가지 않는 거겠지.


 그 반전 때문에라도 기억에 남는 작품이었다. 내성이 없는 사람은 물론이거니와 그렇지 않은 사람도 관찰자적 서술 때문에 묘하게 울컥하는 느낌을 받을 것 같다. 신인 작가의 패기가 합쳐져 이것 저것 많이 들어간 작품인데 완벽하게 맞물리는 느낌은 덜하지만 그래도 작가가 의도했을 시너지 효과가 어느 정도 거둬지긴 했으니 유괴, 공소 시효, 저널리즘 중 하나라도 관심이 있는 분이라면 읽어도 무방할 것 같다. 물론 추리소설 데뷔작으로도 나쁘지 않다.


 p.s 여담이지만 차라리 유괴범의 딸이 주인공이면 어땠을까 싶다. 훨씬 괜찮았을 것 같은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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괜찮아, 보이는 게 전부는 아니야
잽 테르 하르 지음, 이미옥 옮김, 최수연 그림 / 궁리 / 2006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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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6






개인적으로 장애인이 나오는 소설을 좋아한다. 꼭 소설이 아니더라도 만화, 영화든 비중을 떠나 장애인 등장인물이 나오면 한번 더 눈길이 간다. 휠체어를 탄 장애인이 나온 일본 드라마 <뷰티풀 라이프>, 영화 <조제, 호랑이, 그리고 물고기>. 청각 장애인이 나오는 만화 <나는 귀머거리다>, 영화 <미라클 벨리에>, 소설 <데프 보이스>. 시각 장애인이 나오는 소설 <드래곤플라이>... 갑자기 시각 장애인이 나오는 작품이 더 안 떠오르는데, 이번에 읽은 이 작품 <괜찮아, 보이는 게 전부는 아니야>가 제목에서 알 수 있듯 이 세 번째 분류, 그러니까 시각 장애인 소설 중 가장 인상적인 작품이라 해도 과언이 아닐 것 같다.

 사고로 눈을 다쳐 시각을 상실한 주인공, 그의 눈 앞에 펼쳐진 건 다시는 볼 수 없는 현실과 막막한 앞날이다. 공부도 운동도 곧잘 해냈던 학급의 인기인이었는데 처지가 아주 딱하게 된 것이다. 소설은 이 후천적 시각 장애를 안게 된 소년을 통해 우리가 결코 상상할 수도 없고 상상하지도 않았던 재활하는 과정을 보여준다.


 누구도 겪고 싶지 않지만 누군가 겪을지 모를 일, 하필 그게 내가 된다면? 이 느닷없는 불행을 겪은 주인공은 환희와 절망 사이를 왔다 갔다 한다. 여기서 잠깐, 시각 장애를 무조건적으로 불행이라 치부하면 실례되는 말일 수 있다. 특히 선천적 시각 장애인들에게 말이다. 평생을 눈을 감았던 사람이 눈이 떠지자 집으로 가는 길을 잃고 다시 눈을 감으니 길을 잘 찾았더라는 얘기가 시사하는 바와 같이 장애가 곧 불행이라기 보다 한 사람의 개성일 수도 있으니 무작정 불행이라 말해선 안 될 것이다. 하지만 그 어떤 준비도 없이 시각 장애인이된 주인공에게는 어떨까? 이건 엄연히 불행이다. 점자 타이핑을 익힘에 있어 '한 번이라도 본다면 얼마나 좋을까!' 라던 주인공의 외침은 이 책을 '읽는' 우리에겐 상상도 할 수 없는 심연의 고통이 아닐 수 없다. 당장 책 읽는 것만 해도...

 제목에서 말하듯 이 작품은 본다는 게 우리가 생각하는 전부가 아님을 얘기한다. 물론 본다는 건 우리 삶에 있어 많은 부분을 차지하긴 한다. 소설가 김영하 씨가 방송에서 말하길 대부분의 사람들이 소설을 쓰면서 묘사를 할 때 주로 시각 정보에 많이 의존하고 - 예를 들어 어떻게 생겼고 무슨 색이고 어디로 움직인다, 이런 식으로. - 시각 장애인이자 재즈 하모니카 연주자인 전제덕 씨도 보이지 않아 처음 하모니카를 부를 때 어려움이 따랐다고 한다. 악보가 없이 청각만으론... 첫인상이라는 말도 보통 그 사람의 외양을 지칭하기도 하는 걸 생각하면 눈은 우리가 생각하는 그 이상의 역할을 한다고 볼 수 있다.


 만화 <나는 귀머거리다>에서 봤는데 작품 속에 장애인이 등장한다고 하면 청각 장애인은 주로 소통의 한계를 뛰어넘는 사랑을 강조하기 위해 로맨스물에 주로 등장 - 보진 않았지만 최근 아카데미 작품상을 받은 <셰이프 오브 워터>도 주인공이 비슷한 장애를 갖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 - 하고 시각 장애인은 보이지 않는 대신 다른 감각이 열려 만만찮은 전투력을 강조하기 위해 주로 배틀 만화에 - <은혼>의 니조, <원피스>의 후지토라가 대표적인 예다. - 등장한다고 한다. 감각에 대한 부분은 이 작품에서도 인상적으로 다뤄진다. 보지 못하는 대신 사람의 목소리를 통해 감정의 폭이 느껴지거나 전에 없는 상상력이 발휘되는 장면은 꽤나 감동적 - 일러스트레이터의 역할도 컸다. - 이었다.

 작가가 성장 소설에 일가견이 있는 분이던데 과연 피상적인 묘사는 커녕 오히려 전방위적인 통찰력이 있어 흥미롭기까지 했다. 시각 장애인의 불안한 심리와 더불어 가족 중에 시각 장애인이 생겼을 경우 가족 내에 부는 파장 또한 소홀히 다루지 않았다. 성장 소설의 수위에 맞게 좀 더 희망적이거나 혹은 갈등이 비교적 재빠르게 풀리는 경향은 있었지만 꽤 현실적인 묘사가 펼쳐졌다고 생각한다. 이런 묘사를 하기 위해선 상상력이나 통찰력을 넘는 소재에 대한 상당히 진지한 조사 정신도 요구될 텐데 작가는 문제 없이 잘 해내지 않았나 싶다.


 이 작품을 읽으면서 느낀 불만이 하나 있는데 그건 바로 주인공이 시각 장애인 학교에 들어가는 순간 이야기가 끝난 점이다. 여운 있는 엔딩이지만 어떻게 보면 시각 장애인 학교에 들어간 다음도 되게 중요한 만큼 딱 그 시점에서 끝난 건 너무 쌈빡하단 생각에 아쉬움을 감출 수 없었다... 그럼 너무 길었으려나. 너무 지리멸렬하거나.

 근래 읽은 소설 중 읽은 뒤 가장 가슴이 따뜻해지는 소설이었다. 좀처럼 겪을 수 없는 세계를 읽음으로써 공감 능력을 일깨워주는 역할로써도 훌륭한 책이었고 성장 소설로도 탁월했다. 성장 소설이라... 이 작품을 읽고서 어쩌면 우리가 성장 소설을 계속 읽어야 하는 이유는 우리가 어렸을 때 뭘 놓쳤는지 깨닫기 위함이 아닌가 싶었다. 책 하나로 인생이 크게 바뀌기는 쉽지 않으나 만약 이 작품을 더 어렸을 때 읽었더라면, 그런 생각을 하며 지금이라도 읽었음에 안도하며 책장을 덮었던 기억이 난다.


 p.s 여담이지만 생애 처음으로 읽은 네덜란드 소설이었다.

 p.s2 그나저나 인터넷 서점마다 저자 이름이 다르게 표기됐다. 잽 테르 하르, 얍 터르 하르... 나는 후자의 표기를 쓰기로 했다. 독일, 북유럽, 네덜란드는 j를 y발음으로 내는 걸 익히 봐온 터라. 예를 들면 '어서와, 한국은 처음이지?'에서도 심심찮게 봤지. 유세요, 얌실... ㅋ

그러니까 내 말은 죽음도 친구가 될 수 있으니까, 눈이 먼 것도 좋은 친구가 될 수 있다는 뜻이야. 나는 네가 살아가면서 실망하는 일이 있더라도 네 삶을 사랑하기 바라거든 - 62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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