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몬 Lemon
히가시노 게이고 지음 / 랜덤하우스코리아 / 2010년 1월
평점 :
구판절판


9.9







 재밌게 읽었던 책이 있다고 치자. 그럼 그 책에 대한 좋은 기억은 시간이 지날수록 마치 보정을 받은 듯 더욱 견고하게 자리잡는데 이는 다시 읽는 순간 산산이 부서지고 만다. 그 부서지는 정도 역시 시간이 지남에 따라 강할 수밖에 없는데 당연한 얘기지만 절대적인 얘기는 아니다. 오히려 시간이 지나 다시 읽어도 더욱 감탄하게 되는 경우도 있다.

 <레몬>은 요번에 홋카이도에 갈 때 들고 간 책이다. 도쿄, 하코다테, 삿포로, 아사히카와 등이 배경으로 나온다. 태반이 홋카이도에서 펼쳐지는 이야기인데 그 적절한 현장감에 의해 반가운 독서를 했다. 내용도 물론 좋았다. 8년 전에 처음 읽었을 때도 하루 만에 완독했었는데 그 정도는 아니지만 이번에도 역시 빠른 시간 안에 읽었다. 다른 걸 떠나서 이 작품이 탄생한 지 이제 거의 30년을 향해 간다니, 해묵은 SF 설정인지 모르지만 아직까지도 매우 유효한 설정이고 이야기가 아닌가 싶다.


 SF 메디컬 스릴러로 정의되는 이 작품의 원제는 <분신>으로 오해의 소지가 있고 너무 대놓고 내용을 말하는 감이 있어 번역가가 친히 제목을 <레몬>으로 바꿨는데 참 대담하고 초월적인 제목이 아닐 수 없다. 오히려 왜 원작자가 레몬에 착안을 두고 제목을 그리 짓지 않았는지 이해가 안 될 정도다. 레몬은 같은 DNA에 같은 모습을 가진 두 주인공 마리코와 후타바를 연결하는 아주 중요한 키워드라서 나 또한 제목을 그렇게 바꿨을 것 같다.

 이 작품은 히가시노 게이고의 작품 중에서도 단연 심리 묘사가 돋보이는 작품이다. 한 명도 아닌 두 명의 캐릭터가 각자 얼굴이 판박이라는 미스터리, 가족에 대한 미스터리와 마주한 이 두 개의 이야기는 구성적으로 아주 탁월했다. 두 인물의 성격이나 행보, 획득한 정보의 내용이 판이한데도 독자는 하나의 작품 안에서의 퍼즐을 맞춰나가는 데 문제가 없고 오히려 효율적으로 이야기가 전개돼 서스펜스가 됐든 SF가 됐든 몰입하기에 손색이 없었다. 더군다나 전혀 다른 두 주인공이 각자의 이야기의 주역일 때 보이는 존재감은 물론이고 조력자 포지션에 있는 캐릭터들도 입체적이고 매력적이라 흥미가 배가됐던 것 같다. 물론 흑막이 조여오는 긴장감과 막판에 밝혀지는 차가운 반전도 인상적이었다.


 작중 복제 인간의 원리에 대한 과학적 서술은 완벽하게 이해되지 않아도 어쨌든 복제 인간이 사회에 등장했을 때 발생할 혼란에 대한 상상이 충분히 그려져 작품의 고민에 십분 공감할 수 있었다. 인간이 신이 됐다고 착각했을 때 만들어선 안 될 무언가를 만든다면? 어떤 생물이라도 마찬가지겠지만 사람을 두고 실험을 한다면 그 혼란을 가늠하기 어려울 것이다. 무엇보다 당사자는 극심한 자기 혐오에 시달릴지 모른다.

 그런 의미에서 이 작품이 무엇보다 좋았던 이유는 매우 과학적인 이야기를 매우 인간적으로 접근한 것에 있다. 그저 태어났을 뿐인데 어마어마한 생물학적/윤리학적 논란을 갖고 태어난 두 주인공이 자신의 출생에 얽힌 비밀과 암투를 추적하는 내용이 무척 보편적이었고 타당한 감정선에 기반했던 것이다. 자신과 얼굴이 닮았다는 타인의 존재를 알았을 때 너 나 할 것 없이 자기가 오리지널이고 상대가 자기의 복제일 것이라 무의식적으로 반응하는데 그것이 부정당했을 때 터져버리는 상실감과 이윽고 솟아나는 유대감이 아주 설득력 있게 다가왔다. 그야말로 언젠가 복제 인간이 저도 몰랐던 자신의 비밀을 알았을 때 보일 법한 감정의 편린을 마치 예습한 것과 같았는데 읽는 내가 다 혼란스럽고 서글플 지경이었다.


 어쩌면 복제 인간이건 뭐건 그들이 사람으로서 살아감에 있어 그리 중요한 문제가 아닐지 모른다. 실제로 마리코와 후타바는 생김새와 레몬을 좋아하는 점은 판박이지만 기본적인 성격, 말투, 가치관은 완전히 다른 인간이지 않은가. 허나, 작중에서 드러난 복제 인간의 탄생 이유가 단순히 기술의 한계를 시험하는 것 이상 이하도 아니라서 섣불리 용인할 수 없었다. 어떠한 대의도 없이 흥미 위주로 훼손당해야 할 만큼 값싼 생명은 없기 때문이다. 설령 아직 태어나지 않았더라도, 우린 고민해야 한다. 돌이킬 수 없는 일은 그 역시 의미가 있을 수 있지만 - 그렇다고 마리코와 후타바가 잘못 태어난 건 아니다. 백번 양보해서 설령 그렇다고 해도 그게 마리코나 후타바의 잘못은 절대 아니다. - 말이다.

 압도적인 몰입감이 돋보이는 스토리는 느낌 있는 결말로 화룡점정이 되는데 드라마로도 나왔다니 도무지 안 찾아볼 수가 없다. 일부분에 있어선 원작을 초월했다고 하는데 이 이상 어떻게 원작을 초월할 수 있는지 궁금하다. 알았더라면 진작에 찾아봤을 텐데 이제라도 안 게 어딘가 싶다. 드라마로 아주 제격일 거라 생각했는데 현실화됐다니 기쁘기 그지없다. 그 드라마도 보고 작품에 대한 찬양을 계속 이어나가야겠다.

그렇지만 자신의 삶이 잘못되지 않았다고 단정적으로 말할 수 있는 사람이 이 세상에 있을까? 동시에 이런 생각도 했다. 자신이 누군가의 분신이 아니라고 자신 있게 말할 수 있는 사람이 있는 걸까, 하는. 오히려 누구나 자기 분신을 원하고 있는 게 아닐까? 그걸 발견하지 못해 사람들은 고독한 것이다. - 471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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핀란드의 마음 - 철학하는 외교관이 730일간 관찰한 핀란드 이야기
방민수 지음 / 책과나무 / 2016년 6월
평점 :
품절


8.7






 1년 조금 넘게 일한 알바처에서 내 기대를 상회하는 액수의 퇴직금을 받았다. 그로 인해 나는, 드디어, 북유럽 여행을 현실화하기로 했다. 그야말로 도전에 가까운 여행이라 위험할 순 있지만 '지금이 아니면 나중에 갈 수 있으리란' 보장이 없어서 빨리 비행기 표부터 끊기로 했다. 그런데 어느 나라로 가지? 여러 나라를 가기 보단 짧더라도 한 나라를 진득하게 구경하고 싶어 북유럽 4개국 노르웨이, 덴마크, 스웨덴, 그리고 핀란드에 대해 본격적으로 공부하기에 이르렀다. 이 책은 그 과정에서 읽게 된 책이다.

 730일간 핀란드에서 외교관으로 생활한 저자의 이 글은 꽤 유익했다. 어디 인터넷 서점에는 '핀란드로 떠날 짐을 꾸렸다면 가장 먼저 읽어야 할 책'이라 썼는데 꽤 타당한 말이 아닐 수 없다. 물론 전문적인 여행 서적과는 성격이 조금 다르지만 '철학하는 외교관'이라는 작가의 이명에 걸맞게 내용에 깊이가 있어 흥미진진하게 읽혔다. 한국인 입장에서 저 머나먼 핀란드란 나라를 수박 겉 핥기 그 이상으로 짐작할 수 있게 해주는 책이 아닐까 싶다.


 글 자체는 그렇게 일관적인 서사가 있는 것도 아니고 단지 핀란드에 관련한 여러 글들이 각각의 주제에 맞게 실려 있을 뿐이라 가볍고 핵심만 짚고 넘어가기에 좋았다. 핀란드의 전설이라 할 수 있는 칼레발라는 솔직히 처음 들었고 그 전설에서 말미암아 살펴보는 핀란드의 문화는 적잖이 신선했다. 너무 얘기를 깊게 하느라 삼천포로 빠지지 않고 딱 핀란드란 나라 자체에 대한 호기심을 자극하기에 아주 충분할 정도로 건드리고 빠진다. 그래서 한 번에 집중하고 읽어내려가기엔 글이 자꾸 바뀌니 구조적으로 봤을 땐 가독성이 떨어지는 감은 있었지만 어디까지나 구조적인 부분에 지나지 않는다. 저자가 외교관이기에 가질 법한 시선과 사유가 있기에 그것만으로도 의미가 남다른 책이었다. 지금 내 안에서 핀란드와 노르웨이가 꽤나 각축을 벌이고 있는데 만약 핀란드에 가게 된다면 이 책의 덕이 크다고 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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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아들이 죽었습니다 - 아들이 살해당한 후, 남은 가족의 끝나지 않은 고통을 추적한 충격 에세이
오쿠노 슈지 지음, 서영욱 옮김 / 웅진지식하우스 / 2008년 4월
평점 :
절판


8.9






 처음 이 책을 읽을 때 픽션인지 논픽션인지 구분이 안 갔다. 알게 모르게 잔인한 범죄를 다루는 소설을 많이 접했기 때문일까, 오히려 이 책에서 다뤄지는 사건이나 비극의 형질이 정말 현실에서 발생한 일이라곤 바로 와 닿지 않았다. 하지만 책 속의 사건은 엄연히 현실에서 벌어진 일이고 지금으로부터 무려 50년 전에 벌어졌음에도 당사자들의 상처가 치유될 길이 없어보여 가슴 한편이 답답했다. 10년 전에 출간된 책이지만 애석하게도 10년 뒤인 요즘이라고 크게 변한 게 없을 것 같기 때문이다.

 최근 일본에서 옴진리교 교주이자 사린가스의 주범이 사형당했다는 뉴스를 봤다. 진작 죽어야 했는데 너무 오래 살려뒀다는 말이 주위에서 들렸다. 사형제도는 이 책에서 중점적으로 다루는 내용과 약간 다른 개념의 주제이므로 나중에 기회가 있을 때 더 얘기할 텐데 어쨌든 우리네 현실엔 법이 종종 가해자나 피해자에게 대한 처우가 너무 불합리해 보이는 경우를 목격하곤 한다. 하나의 비극이 터졌을 때 국가적 차원에서 돈을 더 들여야 할 곳은 가해자의 인권이 아닌 피해자 유족에 대한 감정적 배려 쪽이 아닐까. 누구나 다 그렇게 생각함에도 '인권'을 내세운 법이란 가해자에게 온정적인 처우를 보이고 마는데 이는 결과적으로 인권주의자들에게 응석을 부리는 살인마들을 낳는 막장을 만들고 말았다.


 이 책은 저자가 1997년, 일본을 들썩거리게 한 사카키바라 사건 - 직접 찾아보길 바란다. 사건의 전말을 쫓다 보면 '일본엔 뭐 이런 미친 X이 많지?' 라는 편견이 생길지 모른다. - 을 접한 뒤 과거에도 유사한 사건이 있었음을 알고서 그 사건의 전말을 쫓는 논픽션이다. 소설이 아닌 본격적인 르포는 처음 읽는데 유가족 진술의 공백은 소설적 상상력으로 메꾸긴 했지만 그래도 전체적으로 의미가 남다른 내용이었다. 일본의 불합리한 사회 구조나 법에 대해 일침을 가하는 소설, 특히 사회파 추리소설이라는 장르를 통해 관련 이야기를 많이 접했지만 그래봤자 실제 사건을 모델로 한 가상의 사건일 뿐, 이렇게 실제 사건 자체를 다루는 책은 처음 읽었기 때문이다. 현실이 픽션보다 막장이란 것은 정치에 한정해서 말하면 씁쓸하지만 범죄에 대입시키면 참혹함과 처절함이 배가된다.

 아들이 동급생에게 살해당하고 심지어 진달래 꽃밭에서 참수된 채 발견돼 정신적 충격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유가족의 지난날, 그리고 아들을 살해한 소년 A가 미성년자란 이유로 소년원에 송치돼 교육을 받고 이후 3년만 있다 출소한 뒤 변호사가 되어 승승장구하는 잔인한 이야기가 담겨있는 책이다. 전자의 경우엔 정독하기에 가슴이 다 아플 정도로 처참하기 그지없었고 후자에선 괜히 누가 오해할까 헛웃음도 마음대로 짓지 못하는 아이러니한 충격이 가해졌다. '법적으로' 죄가 없어졌으며 심지어 법의 프로이기도 한 A에게 진정한 사죄를 요구할 수도, 기대할 수도 없는 울분이 적혀있는데......... 현실이란 왜 내가 생각하는 것보다 잔인하고 불합리한 것인가 하고 망연자실하지 않을 수 없었다.


 이 책은 출간 당시 일본 사횔 뒤흔들었고 '마음에 비수를 품고'라는 제목에 맞게 작가가 정말 비수를 품은 채 쓴 덕분에 문제의 소년 A는 네티즌들에 의해 신분이 까발려져 사무소는 문을 닫고 행방을 잠적한 등 사회적이고 도의적인 정의가 구현됐다고 한다. 이는 법을 따르지 않는 독선적인 정의가 폭주한 것이 아닌 정의를 대변하지 못하는 법의 잘못된 현재를 비꼬는 사건이라 할 수 있다.

 피해자에 대해 진중하고 사려 깊은 내용이었던 이 책이라고 사실 비판에서 자유로웠던 아니란다. 사건의 전말을 다룰 때 소년 A의 살의가 촉발된 계기를 소홀히 다룬 게 그 이유인데, 이지메에 대한 불만이 상대를 칼로 셀 수 없이 찌르고 끝내 참수시킨다는 비이성적이고 용서할 수 없는 형태로 터져버렸다지만 어떻게 보면 '가해자가 된 피해자'라고 볼 수 있어 그 부분에 대한 고민이 누락됐다는 게 아쉽다는 이유다. 1969년에 발생한 사건이라 추적하기 힘든 점도 있었겠지만 중립이야말로 르포에 가장 우선된다고 한다면 아쉬운 요소가 아닐 수 없겠다.


 하지만 감정이 있기에 그만큼 전달되는 것도 있었다. 시간이 해결할 것이라는 무책임한 말과 달리 아직도 아물지 못한 충격 속에 놓인 유가족들과 그런 유가족을 찾아뵙지도 않고 떳떳하게, 부끄러운 줄 모르고 법을 들먹이는 가해자의 관계를 제대로 역설하기 때문이다. 실로 전에 없는 울림을 전했다고 할 수 있었는데 위에서 말했듯 이 이야기가 과거가 아닌 현재에도 변함없을 것 같아서 남의 이야기라 생각하지 말고 가슴 속에 품고 살아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지 않다면 우린 언제까지고 불합리하게 살 수밖에 없을 것이다.

A는 히로시에게 물리적인 상처를 입혀 살해했지만, 그 가족에게도 정신적으로 깊은 상처를 입혔다. 그 상처는 30여 년이라는 세월이 흘러도 치유되지 않았다. A를 향한 원망이 사라진 것이 아니라 원망을 가슴에 품는 것조차 두려울 만큼 상처가 깊었던 것이다. - 229p




이를테면 범인 A와 만났을 때 내가 그보다 훨씬 인간답게, 또한 손가락질 받지 않는 삶을 살아왔다고 자부하면서 "뭐야, 이거. 상대할 만한 인간이 아니잖아?"라고 냉정하게 평할 수 있어야 비로소 결말이 나는 것이다. - 262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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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탐정의 탄생 ㅣ 바다로 간 달팽이 17
정명섭 지음 / 북멘토(도서출판) / 2015년 10월
평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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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1






 청소년 소설을 펴내는 문학 레이블에서 발간한 책인데 표지에 '연작탐정소설'이라 적혀있는 게 퍽 호기심을 자극했다. 아니나 다를까 탐정소설의 탈을 쓴 성장 소설 같은 게 아니라 내용 또한 정말로 탐정소설 그 자체였다. 탐정소설이 추리소설로 이름이 바뀐 지 오래된 것으로 알고 있다. 추리소설 초창기 땐 탐정이 주인공으로서 활약하는 소설이라 탐정소설로 불렸다는데 이 작품의 수록작들도 그 틀 안에서 움직이고 있었다. 자칭 탐정이 등장하고 조수를 대동해 동네에서 벌어진 사건을 멋대로 추리하고 진상을 밝힌다. 이때 강조하고 싶은 건 스케일이 작을 거라 생각하고 봤다간 처음부터 피가 튀는 사건이 다뤄짐에 놀랄 수 있다는 것이다.

 추리소설 좀 봤다고 하는 사람들한테는 사실 그렇게 특별할 것 없는 소설이다. 셜록 홈즈를 오마주하는 소설이 한두 개도 아닌데 이 작품은 너무 '개봉동 홈즈'니 뭐니 하면서 대놓고 티를 내서 민망한 걸 넘어 신선할 지경이었다. 추리소설가 지망생에 미스터리를 사랑하는 모임 소속이자 자칭 개봉동 홈즈로서 사건을 쫓는 주인공은 말은 번지르르하지만 실상은 초라한 백수에 불과하다. 하지만 이런 의외성을 가진 캐릭터야말로 사건의 진상에 가까이 다가갈 수 있는 법인데 이 작품은 언뜻 허술해 보이는 탐정을 내세워 나름 정석적인 추리소설의 전개를 펼쳐 장르 자체의 장벽을 상당히 낮추는 효과를 가져온다. 그래, 추리소설을 처음 읽는 초심자들이 읽으면 괜찮은 책이다.


 성인이 읽는 소설, 청소년이 읽는 소설, 아동이 읽는 소설... 이렇게 독자 연령층에 따라 작품의 완성도로 구분하고 싶진 않지만 최근 청소년 대상의 소설을 연달아 읽다 보니 아무래도 작가가 작품을 쓸 때 상정하는 독자 연령층을 간과하면 안 될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명탐정의 탄생>은 좀처럼 국어로 된 추리소설이 많이 없는 우리나라 청소년들에게 권장할 만한 도서긴 하나 그렇다고 해서 성인 독자한테도 추천하기엔 주저된다. 기대 이상으로 본격적인 추리소설이고 내가 홈즈를 그렇게 좋아하지 않아서 그렇지 사실 홈즈를 좋아한다면 그렇게 나쁜 작품도 아닐 것이다. 하지만 엄밀히 말해 추리소설의 매력이란 어떤 것인가 하고 맛보기에 가까운 수준이라 너무 큰 기대를 하면 안 된다.

 총 4개의 단편이 수록됐는데 뒤의 두 작품은 그래도 꽤 괜찮았다. 탈모를 예방하기 위해 섬에 모인 사람들을 대상으로 머리털을 연쇄적으로 뜯어내는 범인을 추적하는 내용의 에피소드(;;)는 소재도 신선했고 결말도 나쁘지 않았으며 마지막 에피소드 같은 경우엔 끔찍한 비극이 발생했을 때 보호받지 못하는 피해자와 죗값을 치루지 않는 가해자를 통해 사회의 병폐를 지적하는 등 뼈가 담긴 내용이 아닐 수 없었다. 그리고 후속작에 대한 암시도 남기면서 제법 인상적인 결말을 냈으나... 개인적으로 그 암시가 너무 과한 암시가 아니었나 싶다. 오마주한 티를 덜 냈더라면 오그라들지 않고 좋았을 텐데, 이것 때문에라도 추천하기 망설여진다.

과연 그런 게 인생일까? 진짜? 어른이 된다는 건 시시하고 어이없는 세계로 기꺼이 들어가는 일인 건가? - 94p




온통 무성한 소문들뿐이었다. 다들 알고 있고, 입에 올리지만 정작 진실관느 거리가 멀었던 셈이다. 그리고 그 간격 어딘가에서 죄인처럼 숨어 지내는 피해자와 삶을 송두리째 망쳤다고 믿는 가해자가 있었다. - 201p




꼰대 소리 듣기 싫어서 안 하고는 있는데 요즘 애들 왜 이러냐? 우리 때는 아니었는데 말이야.

어른들이 만든 지옥이 학교 안으로 옮겨 가서 그래요. - 217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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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럼, 소녀 & 위험한 파이 ㅣ 시공 청소년 문학 15
조단 소넨블릭 지음, 김영선 옮김 / 시공사 / 2007년 4월
평점 :
품절


7.1






 이 산만한 제목의 소설은 내가 좀처럼 체험할 수 없는 감정선을 중점적으로 얘기하는 작품이다. 형제가 없는 외동이라 형제애를 그린 작품을 보면 크건 작건 와 닿지 않았는데 흔히 '현실 형제', '현실 남매' 등의 표현이 있는 걸 보면 형제가 있는 다른 사람도 형제애란 게 어색하긴 마찬가지일 듯하다. 내 주변만 해도 서로 못 잡아먹어 안달이 났거나 나중엔 아예 얼굴도 안 보고 살 계획인 사람이 적잖아 보이니.

 외동인 내가 보기에 형제 관계란 애증의 관계인 것 같다. 온전히 사랑할 수도 없고 온전히 미워하기도 힘든 관계일까. 자기 동생 욕하는 친구에 합승해 나도 한마디 거들었더니 너무 막말하지 말라고 표정이 굳어졌던 한 녀석이 떠오른다. 결과적으로 미워하곤 있지만 본질적으로 가족이기에 사랑할 수도 있는 관계라니, 이렇게 말하는 중에도 감이 안 잡히지만 - 얼마 전에 기리노 나쓰오의 <그로테스크>를 봤더니 더욱 그런 것 같다... - 이 작품에서처럼 백혈병 환자인 동생이 있다면 형제애란 것도 제법 일리 있게 다가오는 것 같다.


 형을 따르는 사랑스러운 동생과 그런 동생이 귀찮고 얄밉기만 한 형, 이 둘의 관계는 동생의 병이 발발하면서 변화를 맞이한다. 물론 다른 가족들도 마찬가지다. 엄마는 하루라도 눈물이 마를 일 없이 동생을 저 멀리 있는 병원에 같이 가느라 몸을 혹사시키는 지경에 이르렀고 아빠는 그런 가족의 변화에 주인공인 형한테는 신경도 못 쓰고 자기만의 슬픔에 빠져있다. 그런 상황에서 학교 친구들이나 선생님의 관심이 적응 안 되고 집안의 상황에도 안주할 수 없는 주인공은 커다란 혼란과 슬픔을 겪는데 그 과정을 아주 직접적으로 표현한 게 바로 이 작품이라 할 수 있다.

 1인칭 서술이 일반적인 청소년 성장 소설 중에서도 이 소설은 유난히 문체나 표현을 특기할 만한 작품이었다. 우리나라 나이로 치면 중학교 3학년생 정도 되는 주인공이 학교 작문 시간에 제출하는 과제를 독자가 엿보는 형태로 소설이 진행되는데 확실히 특유의 연령대를 제대로 표현하는 문체긴 했다. 격의 없고 폼 잡고 오버해서 호불호가 은근히 갈릴 것 같은데 - 난 좀 부담스러웠다. - 실감나는 묘사가 많아서 가볍지 않은 소재의 이야기임에도 유쾌하게 읽혀졌다. 작가가 실제로 학교 선생님이라서 이만한 문체를 구사할 수 있는 걸까? 아이들한테 관심 없는 교사도 있는 걸 생각하면 이 작가는 아이들을 정말 사랑하는 선생님이겠구나 싶었다.


 작가의 작품을 보면 음악이나 악기를 연주하는 주인공이라는 요소가 꼭 들어가던데 이 작품에선 드럼이 제법 나온다. 하지만 하도 오랜만에 읽고 또 그 사이에 여러 창작물을 많이 접해서 이런 요소들에 대한 묘사가 그리 흡입력 있진 않았는데 - 드럼하니 <위플래쉬>가 바로 떠오른다. 그 작품은 알다시피... - 이 작품을 내가 중학생 때 읽었던 걸 생각하면 이런 감상의 변화는 당연할 수밖에 없겠다. 성장 소설만큼 다시 읽으면 실망스러운 소설도 없는 게 아닐까.

 다시 읽으니 첫인상과 판이한 감상이 나왔는데 소재에 대한 취향이 갈렸기 때문이 아니라 다시 읽는 그 10년 사이에 내가 여러 문학을 접했기 때문이 클 것이다. 아이러니하지만 어쩔 수 없다. 동생의 병이 발발함으로써 동생을 솔직하게 사랑하게 된 주인공처럼 사람은 누구나 아이러니하게 스스로를 돌아볼 수 있는 법이니까.

주제는 ‘만약 세상을 묘사할 수 있는 단어를 하나만 고르라면 어떤 단어를 고르겠는가. 그리고 그 이유는?‘ 이었다.

내 대답은 이랬다.

불공평. - 203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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