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아들이 죽었습니다 - 아들이 살해당한 후, 남은 가족의 끝나지 않은 고통을 추적한 충격 에세이
오쿠노 슈지 지음, 서영욱 옮김 / 웅진지식하우스 / 2008년 4월
평점 :
절판


8.9






 처음 이 책을 읽을 때 픽션인지 논픽션인지 구분이 안 갔다. 알게 모르게 잔인한 범죄를 다루는 소설을 많이 접했기 때문일까, 오히려 이 책에서 다뤄지는 사건이나 비극의 형질이 정말 현실에서 발생한 일이라곤 바로 와 닿지 않았다. 하지만 책 속의 사건은 엄연히 현실에서 벌어진 일이고 지금으로부터 무려 50년 전에 벌어졌음에도 당사자들의 상처가 치유될 길이 없어보여 가슴 한편이 답답했다. 10년 전에 출간된 책이지만 애석하게도 10년 뒤인 요즘이라고 크게 변한 게 없을 것 같기 때문이다.

 최근 일본에서 옴진리교 교주이자 사린가스의 주범이 사형당했다는 뉴스를 봤다. 진작 죽어야 했는데 너무 오래 살려뒀다는 말이 주위에서 들렸다. 사형제도는 이 책에서 중점적으로 다루는 내용과 약간 다른 개념의 주제이므로 나중에 기회가 있을 때 더 얘기할 텐데 어쨌든 우리네 현실엔 법이 종종 가해자나 피해자에게 대한 처우가 너무 불합리해 보이는 경우를 목격하곤 한다. 하나의 비극이 터졌을 때 국가적 차원에서 돈을 더 들여야 할 곳은 가해자의 인권이 아닌 피해자 유족에 대한 감정적 배려 쪽이 아닐까. 누구나 다 그렇게 생각함에도 '인권'을 내세운 법이란 가해자에게 온정적인 처우를 보이고 마는데 이는 결과적으로 인권주의자들에게 응석을 부리는 살인마들을 낳는 막장을 만들고 말았다.


 이 책은 저자가 1997년, 일본을 들썩거리게 한 사카키바라 사건 - 직접 찾아보길 바란다. 사건의 전말을 쫓다 보면 '일본엔 뭐 이런 미친 X이 많지?' 라는 편견이 생길지 모른다. - 을 접한 뒤 과거에도 유사한 사건이 있었음을 알고서 그 사건의 전말을 쫓는 논픽션이다. 소설이 아닌 본격적인 르포는 처음 읽는데 유가족 진술의 공백은 소설적 상상력으로 메꾸긴 했지만 그래도 전체적으로 의미가 남다른 내용이었다. 일본의 불합리한 사회 구조나 법에 대해 일침을 가하는 소설, 특히 사회파 추리소설이라는 장르를 통해 관련 이야기를 많이 접했지만 그래봤자 실제 사건을 모델로 한 가상의 사건일 뿐, 이렇게 실제 사건 자체를 다루는 책은 처음 읽었기 때문이다. 현실이 픽션보다 막장이란 것은 정치에 한정해서 말하면 씁쓸하지만 범죄에 대입시키면 참혹함과 처절함이 배가된다.

 아들이 동급생에게 살해당하고 심지어 진달래 꽃밭에서 참수된 채 발견돼 정신적 충격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유가족의 지난날, 그리고 아들을 살해한 소년 A가 미성년자란 이유로 소년원에 송치돼 교육을 받고 이후 3년만 있다 출소한 뒤 변호사가 되어 승승장구하는 잔인한 이야기가 담겨있는 책이다. 전자의 경우엔 정독하기에 가슴이 다 아플 정도로 처참하기 그지없었고 후자에선 괜히 누가 오해할까 헛웃음도 마음대로 짓지 못하는 아이러니한 충격이 가해졌다. '법적으로' 죄가 없어졌으며 심지어 법의 프로이기도 한 A에게 진정한 사죄를 요구할 수도, 기대할 수도 없는 울분이 적혀있는데......... 현실이란 왜 내가 생각하는 것보다 잔인하고 불합리한 것인가 하고 망연자실하지 않을 수 없었다.


 이 책은 출간 당시 일본 사횔 뒤흔들었고 '마음에 비수를 품고'라는 제목에 맞게 작가가 정말 비수를 품은 채 쓴 덕분에 문제의 소년 A는 네티즌들에 의해 신분이 까발려져 사무소는 문을 닫고 행방을 잠적한 등 사회적이고 도의적인 정의가 구현됐다고 한다. 이는 법을 따르지 않는 독선적인 정의가 폭주한 것이 아닌 정의를 대변하지 못하는 법의 잘못된 현재를 비꼬는 사건이라 할 수 있다.

 피해자에 대해 진중하고 사려 깊은 내용이었던 이 책이라고 사실 비판에서 자유로웠던 아니란다. 사건의 전말을 다룰 때 소년 A의 살의가 촉발된 계기를 소홀히 다룬 게 그 이유인데, 이지메에 대한 불만이 상대를 칼로 셀 수 없이 찌르고 끝내 참수시킨다는 비이성적이고 용서할 수 없는 형태로 터져버렸다지만 어떻게 보면 '가해자가 된 피해자'라고 볼 수 있어 그 부분에 대한 고민이 누락됐다는 게 아쉽다는 이유다. 1969년에 발생한 사건이라 추적하기 힘든 점도 있었겠지만 중립이야말로 르포에 가장 우선된다고 한다면 아쉬운 요소가 아닐 수 없겠다.


 하지만 감정이 있기에 그만큼 전달되는 것도 있었다. 시간이 해결할 것이라는 무책임한 말과 달리 아직도 아물지 못한 충격 속에 놓인 유가족들과 그런 유가족을 찾아뵙지도 않고 떳떳하게, 부끄러운 줄 모르고 법을 들먹이는 가해자의 관계를 제대로 역설하기 때문이다. 실로 전에 없는 울림을 전했다고 할 수 있었는데 위에서 말했듯 이 이야기가 과거가 아닌 현재에도 변함없을 것 같아서 남의 이야기라 생각하지 말고 가슴 속에 품고 살아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지 않다면 우린 언제까지고 불합리하게 살 수밖에 없을 것이다.

A는 히로시에게 물리적인 상처를 입혀 살해했지만, 그 가족에게도 정신적으로 깊은 상처를 입혔다. 그 상처는 30여 년이라는 세월이 흘러도 치유되지 않았다. A를 향한 원망이 사라진 것이 아니라 원망을 가슴에 품는 것조차 두려울 만큼 상처가 깊었던 것이다. - 229p




이를테면 범인 A와 만났을 때 내가 그보다 훨씬 인간답게, 또한 손가락질 받지 않는 삶을 살아왔다고 자부하면서 "뭐야, 이거. 상대할 만한 인간이 아니잖아?"라고 냉정하게 평할 수 있어야 비로소 결말이 나는 것이다. - 262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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