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플란트 전쟁 - 본격치과담합리얼스릴러
고광욱 지음 / 지식너머 / 2018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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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9 







 치과를 배경으로 한 소설이란 점 때문에 흥미가 생기기도 했고 1년 전에 임플란트 치료를 받아서 한국 치과계의 부조리함을 고발했다는 이 소설의 내용에 관심이 가지 않을 수 없었다. <임플란트 전쟁>은 치과 의사들끼리 담합해서 임플란트 비용을 300만 원으로 정하고 그 가격을 지키지 않고 더 저렴하게 가격을 책정한 치과 의사를 블랙 리스트에 올려 왕따시키고, 거기서 멈추지 않고 자신들의 권위에 도전하거나 심기를 건드리는 환자들까지 블랙 리스트에 올려 자신들의 권위를 공고히 다지려는 치과 의사들의 찌질한 모습을 묘사하면서 독자로 하여금 분노를 유발하는 사회 고발 소설이다. 소설을 읽는 내내 우리 동네 치과에서 임플란트를 할 때 130만 원의 진료비만 내고 끝낸 내가 참으로 운이 좋다는 걸 깨달을 수 있었다. 

 이 작품의 내용은 어디까지가 진실일까? 난 평생 한 치과밖에 이용하지 않아서 소설에서 얘기하는 '너무 비싼 치과 진료비'에 실질적으로 공감이 가지 않았다. 다른 치과가 정말로 세 배 이상의 가격으로 임플란트를 해준다면 병원마다 가격 차이에 의문을 품지 않을 수 없다. 대체 임플란트의 적절한 가격은 무엇이며 그 적절한 기준이란 또 무엇인가. 이 소설은 현직 치과 의사가 실제로 목격하거나 경험한 이야기를 바탕으로 구성된 일종의 논픽션이자 작가의 직업이 직업인 만큼 내용이 아무리 소설적이어도 마냥 소설 속 이야기로만 치부하기가 쉽지 않았다. 속된 말로 배운 놈들이라고 더 나을 게 없다는 얘기다. 게다가 정말로 가관인 것은 그들의 선민의식이 너무도 견고한 나머지 비상식적이고 찌질한 조직 문화에 쉽게 물들고 오히려 자신들이 실로 합당하고 정의로운 일을 한다고 믿어 의심치 않는다는 것이다. 그 뻔뻔스러운 자기합리화는 업계 사정을 모르고 읽으면 논리적인 것 같아 읽으면서도 종종 헷갈렸다. 사실은 주인공이 혼자 고집을 부려가며 그래도 자신은 양심 있는 의사라고 일종의 자기만족에 취한 것은 아닌지 말이다. 


 작가의 분신일 작품의 주인공은 임플란트의 재료비며 수술 과정의 수고로움이 300만 원은 너무 과하다 생각해 더도 덜도 말고 합리적 가격인 100만 원으로 치료비를 책정한다. 그러자 바로 치과협회로부터 압박이 들어오는데 자신의 양심을 끝내 외면할 수 없던 주인공은 조직의 룰을 따르지 않는다. 가격을 올리지 않으면 가만두지 않겠다는 조직의 으름장은 단순한 협박이 아니라서 동료 의사들로부터 '자기 혼자만 치료비를 낮춰 환자들을 독식하려는 파렴치한 의사', '낮은 치료비의 단가를 맞추기 위해 저질 재료를 쓰는 의사 자격 없는 자', '동료 의사를 생각하는 마음이 없는 이기적인 불순분자라 척결 대상에 불과하다.'면서 온갖 악의적인 소문과 임플란트 재료 공급 업체에 압박 및 간호사나 치위생사도 주인공으로부터 등을 돌리게 만드는 등 주인공을 고뇌와 인내의 시간을 걷게 만든다. 

 비단 치과만의 문제가 아닌 의료계에 종사하는 모든 사람들의 공통된 심리, 자기는 남들보다 배로 공부하고 노력했으니 돈도 그만큼 많이 벌어야 한다, 그 정신에 위배하는 행동을 보인 동료는 동료도 아니고 바로 배척해야 한다는 심리는 이 작품에서만 묘사되는 것이 아니다. 각종 드라마, 영화에서 무수히 다뤘는데 이걸 단순한 설정이라 여길 사람은 그리 많지 않을 것이다. 우리나라에서 법조계와 의료계 종사자는 직업 윤리나 사명감을 위해서가 아닌 부와 명예를 거머쥐기 가장 좋은 직업으로 인식되고, 때문에 어렸을 때부터 자신의 적성을 고려하지 않은 채 오직 사회적 성공을 위해 해당 업계에 들어가려고 공부하는 사람이 우리나라엔 절대다수가 아닌가 싶다. 직업을 택한 목적이 목적이다 보니 도저히 도덕적 해이가 아니고선 저지를 수 없는 짓을 터무니 없이 손쉽게 저질러 많은 사람들을 아연실색하게 만드는 경우가 허다해 이 작품이라고 특별히 충격적이진 않았다. 치과라고 별반 다르지 않구나 하고 느꼈을 뿐이지. 


 작년에 갔던 동네 치과는 양심적인 치과인 것인지 아니면 이 소설 속 내용이 과장인지 몰라도 자기 양심을 지키는 의사가 생각보다 소수라는 건 우리나라에선 부정하기 힘든 사실이 아닐까 싶다. 물론 법조계든 의료계든 종사자들이 열심히 공부한 만큼 보상을 받는 것 자체는 틀렸다고 생각지 않지만 그 목적이 그릇된 수단을 낳는 것 같아 이 극단적인 현상을 어떻게 타계해야 할는지 모르겠어 답답하기 그지없다. 북유럽의 경우엔 버스 기사나 의사나 월급에 큰 차이가 없다고 한다. 그래서 의사의 수가 적긴 하나 그래도 낮은 보상에도 불구하고 의사 자격증을 딴 참된 의사만 있어 의료의 질이 꽤 좋다고 한다. 제법 고무적인 사례지만 이런 모습을 긍정적으로 여기고 우리나라에 적용하기엔 선민의식에 젖은 기득권이 그 꼴을 가만 두고 보리라 생각하지 않는다. 당장 나만 하더라도 모든 직업이 평등하다고 생각하면서도 위와 같은 북유럽의 풍경은 어떤 의미에서 극단적이라고 생각하니까. 

 이 소설이 내놓는 구체적인 대안은 사실상 없다. 일부 책임자, 불건전한 조직 문화를 선동한 우두머리와 그 일파 정도가 고발당했을 뿐 주인공은 여러 페이크 뉴스가 낳은 후폭풍을 다 해결하지 못한 채로 소설은 끝났다. 변호사와 기자인 친구들의 도움으로 인해 치과계의 어두운 부분이 만천하에 공개됐고 주인공도 이 책과 동명의 소설을 써 낱낱이 퍼뜨릴 것이라 다짐할 뿐, 이 작가가 사회 고발 소설이자 권선징악의 이야기 구조를 시원하고 일사천리로 따르는 일종의 판타지를 썼다는 게 나의 감상이다. 현실이 이처럼 순순히 풀리리라 기대하긴 쉽지 않아서 어쩔 수 없이 그렇게 느껴진다. 


 대신 이 책의 진정한 교훈은, 세상은 그래도 힘이 없는 소수의 양심적인 사람이 희생을 감수하고 버티기에 조금씩이라도 좋아진다는 걸 간과하면 안 된다가 아닐까? 아주 고통스럽고 막연하지만 그들의 희생의 가치는 결코 가볍게 여겨져선 안 될 것 같다. 이런 사람들이 판타지적으로 느껴질 만큼 현실이 개판이긴 하지만, 때론 그런 비현실적인 사람들이 현실을 더 좋게 만든다. 세상은 튀어나온 못을 다시 망치로 박지만 여기서 정말로 문제인 건 튀어나온 못인지, 아니면 튀어나온 못을 향해 망치를 드는 세상이 아닌지 생각해보게 됐다. 

벤츠 타고 출근하면 잘되던 진료가 그랜저 타고 출근하면 잘 안 됩니까? - 233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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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아무도 죽지 않았다
시라이 도모유키 지음, 구수영 옮김 / 내친구의서재 / 2020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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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6 






 작가의 데뷔작 <인간의 얼굴은 먹기 힘들다>를 보고 이 작가의 모든 작품을 챙겨보리라 다짐했다. 그 다짐은 다른 국내 출간작인 이 작품을 읽으면서 재고하게 됐다. 아가사 크리스티의 <그리고 아무도 없었다>를 작가 입맛대로 비틀어버린 이 작품은 소재 하나는 독특했지만 단순히 엔터테인먼트에만 치중해 오히려 흥미가 점점 반감되고 말았다. 자신의 클론을 먹는다는 데뷔작의 설정이 못지않게 이번 작품도 충격적이고 역겨운 설정과 전개가 즐비했는데, 이 부분은 호불호가 갈릴지언정 치명적인 단점이 아니었으나 충격적이고 역겨움 그 이상의 깊이가 부족해 정이 가지 않았다. 

 데뷔작과 닮은 점이라면 비호감 일색인 캐릭터들과 정상과는 거리가 먼 설정과 그럴싸한 추리들이 끊임없이 늘어놓고 뒤집어엎으면서 어렵사리 진실이 드러나는 복잡한 전개일 것이다. 성장 배경이며 성격, 직업, 진범의 경우엔 범행 동기마저 비정상이고 정말 별것 아니라 코웃음이 다 나왔다. 정상과는 거리가 먼 설정은 적어도 신선한 맛은 있었지만 묘사들이 엽기적이라 되려 정독하지 못하게 만드는 역효과를 낳았다. 직전에 <오징어 게임>을 봐서 이런 묘사에 내성이 생겼다고 볼 수 있을 텐데, 분위기는 발랄하면서 잔혹한 묘사가 잇달아 나와서 적응하기가 힘들었다. 


 추리의 향연 자체는 꽤 정교하고 완성도 높았지만 너무 그들만의 세계가 끝에 밝혀진 진실이 정작 그리 놀랍지 않아 허무하기만 할 뿐이었다. 범인이 미쳐도 단단히 미친 작자라 일단 공감도 안 가고 '기생충' 설정도 와 닿지 않고 그 설정을 설명하기 위한 세계관도 너무 소모적으로 다뤄진 감이 있어 배신감마저 느꼈다. 처음 분위기는 나카지마 라모의 <가다라의 돼지>가, 중반부부터는 야마구치 마사야의 <살아있는 시체의 죽음>와 기시 유스케의 <천사의 속삭임>이 떠올라 흥미롭게 읽혔으나 이 작품들이 모두 철학적인 깊이가 남달랐던 것과 달리 이 작품은 상술했듯 마치 작가가 자신의 두뇌를 과시하듯, 단순히 독특한 추리쇼의 재료에 불과한 듯 가볍게 다뤄서... 솔직히 <인간의 얼굴은 먹기 힘들다>의 작가가 아니었으면 끝까지 억지로 읽지 않았을 것이다. 

 데뷔작이 워낙 인상적이었기에 이 작품도 큰 망설임 없이 읽었는데... 역시 작가 이름만 보고 맹신하며 작품을 고르는 건 위험하단 걸 확신하게 됐다. 그럼에도 작가의 다른 작품이 궁금하긴 하지만, 그땐 좀 더 신중히 읽게 될 것 같다. 만약 이 작품을 처음 접했더라면 어땠을까? 그랬다면 <인간의 얼굴은 먹기 힘들다>를 외면했을지도 모르겠다. 그 작품을 먼저 접한 게 얼마나 다행인지 모른다. 

머리가 좋은 건지 나쁜 건지 알 수가 없군.

살인귀란 그런 거예요. - 214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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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상 속의 덴마크 - 오해와 과장으로 뒤섞인 ‘행복 사회’의 진짜 모습
에밀 라우센.이세아 지음 / 틈새책방 / 2018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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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8.0 







 지난 번에 읽은 오헬리엉의 <지극히 사적인 프랑스>와 같은 '지구 여행자를 위한 안내서' 시리즈라기에 관심이 가 읽게 된 책이다. 덴마크는 <덴마크 사람들처럼>이란 책을 읽은 이후로 언젠가 꼭 가보고 싶은 나라 중 하나인데, 재한 덴마크인인 저자가 썼다기에 관심이 가지 않을 수 없었다. <덴마크 사람들처럼>은 덴마크인 저자가 덴마크에 대해 쓴 책을 번역한 것이라면 <상상 속의 덴마크>는 한국에 사는 덴마크인 저자가 보다 한국 문화와 비교하며 썼다는 차이가 있어 어떤 얘길 펼쳐줄지 기대됐다. 

 기대보다 매우 디테일하게 프랑스의 이모저모를 내게 깊이 있게 전달해준 오헬리엉의 <지극히 사적인 프랑스>에 비해 <상상 속의 덴마크>는 다루는 이야기가 그리 다양한 편이 아니었다. <덴마크 사람들처럼>과 비교한다면 그 책은 보다 전문적인 시각을 겸비해 자국의 문화를 분석했다면 이 책은 보다 저자의 개인적인 경험에 의존해 어딘지 전문성에서 비교가 된다. 한국 문화와의 비교 같은 경우엔 저자의 아내가 덴마크 시댁에서 문화 충격을 받는 장면 등 한국인 독자로서 체감할 만한 사례를 소개해 덴마크가 우리와 다르긴 하고 보다 천국이란 선망이 생기긴 했다. 오해와 과장이 섞였어도 덴마크는 역시 행복 사회였다. 


 하지만 '오해와 과장으로 뒤섞인 행복 사회의 진짜 모습'에 대해 쓴다고 포문을 연 것치곤 내가 익히 들어왔고 예상한 덴마크의 모습에서 크게 벗어난 내용은 없어서 그다지 흥미 있게 읽히진 않았다. 가령 뉴욕에서 카페 밖에 유모차를 뒀다가 고소를 당한 여자 이야기나 휘게 이야기, 얀테의 법칙, 사치를 부리는 것과 영 동떨어진 덴마크인들의 모습과 수평적인 조직 문화, 생각보다 가벼운 종교의 위상이나 상대적으로 천재를 방치하는 듯한 평등 지향의 교육 제도, 아이들에게 너무 일찍 독립적이길 강요하는 듯한 아이러니함 등은 내겐 너무 뻔했다. 이건 내가 그동안 북유럽이나 덴마크 관련 책을 많이 읽었단 뜻이기도 하겠지만 그걸 감안해도 너무 들어본 얘기들과 사례인 감이 있었다. 

 이 책의 진짜 재밌는 부분은 저자 자신의 이야기를 할 때였다. 이민자 친구가 체스 세계 선수권에 출전하자 느낀 감정이나 수술 때문에 좋아하던 농구도 포기하거나 덴마크 사회도 의외로 성별에 따른 직업 고정 관념이 강한 나머지 저자가 사회 복지사 자격증을 얻으려고 할 때 사람들이 의아하게 여겼던 것, 시댁에서 주인공의 아내가 겪은 문화 충격과 반대로 저자가 한국에서 격은 문화 충격, 예를 들어 사람들이 자신이 대학도 나오지 않았다고 하자 신기하게 여기는 장면이나 한국어 잘한다고 칭찬할 때 칭찬 자체가 어색한 문화권에서 자라온 탓에 어떻게 반응해야 할지 난감해 하던 속마음 같은 게 인상적이었다. 


 덴마크 문화에 관심이 많거나 저자의 이름을 어디선가 접해본 사람이라면 이 책이 굉장히 흥미로울 것이다. 반대로 이미 덴마크와 관련된 책을 어느 정도 읽었다면 이 책의 내용이 다소 가볍게 다가올 것이다. 이 책이 마냥 비전문적이란 건 아니지만 그래도 정말 전문적인 자료를 원한다면 시시할 수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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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킹 온 록트 도어
아오사키 유고 지음, 김은모 옮김 / 엘릭시르 / 2021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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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0 






 이 작가의 '우라조메 덴마' 시리즈, <체육관의 살인>부터 접한 독자라면 신작을 읽지 않을 도리가 없을 것이다. 하지만 <도서관의 살인> 이후부터 점점 재미가 떨어지는 것도 사실인데 전에 읽은 <가제가오카 50엔 동전 축제의 미스터리>에서도 느낀 거지만 이 작가는 단편에 약한 편인 것 같다. 새로운 시리즈물이 될 듯한 <노킹 온 록트 도어>의 경우엔 표제작이자 일본추리작가협회상 후보에도 올랐다는 '노킹 온 록트 도어'만이 재밌었고 나머지 수록작은 그냥저냥이었다. 그래서 아마 후속작이 나와도 안 찾아볼 것이고 다만 '우라조메 덴마' 시리즈의 후속작이나 새로운 작품이 나오면 그 책은 읽을 것이다. 

 트릭과 동기 전문 탐정, 이렇게 2인조로 구성된 탐정 사무소 '노킹 온 록트 도어'를 배경으로 한 추리소설집은 바로 위에서 말했듯 첫 번째 수록작이자 표제작이면서 일본추리작가협회상 후보에도 오를 만한 가치가 있던 '노킹 온 록트 도어'가 가장 재밌었다. 초인종도 뭣도 없는 탐정 사무소의 컨셉도 재밌었고 - 노크 소리로 상대가 누구인지 추리하는 건 사소하지만 기발한 컨셉이었다. - 제목이 사건 본편과도 어느 정도 아귀가 맞는 것도 인상적이었다. 처음 제목을 접했을 땐 유명 팝송을 패러디한 것 같아 어째 호감이 가않았는데도 불구하고 이 첫 번째 수록작은 나머지 수록작을 꽤 기대하게 만들기에 아주 적격인 작품이었다. 특히 작가의 <수족관의 살인>에 견줄 만한 살인범의 독특한 동기가 정말 마음에 들었다. 


 하지만 이후 수록작의 내용은 별로 기억이 나는 게 없다. 바로 다음 수록작 '머리카락이 짧아진 시체'는 트릭도 뻔했거니와 굳이 트릭과 동기로 전문 분야가 나뉜 두 탐정이란 설정도 재미도 없어지고 잘 와 닿지도 않아 흥미가 떨어지기 시작했다. 아니나 다를까 뒤에 수록된 작품들의 트릭이나 동기는 더 기억에 남는 것이 없고 탐정들의 숙적으로 등장하는 범죄 컨설턴트 미카게도 묘하게 인상이 흐릿해 전반적으로 뒤로 갈수록 인상이 흐릿해지는 책이었다. 전형적인 용두사미였달까. 

 '우라조메 덴마' 시리즈는 대놓고 라이트 노벨스럽게 전개해 개성적으로 느껴진 반면 이 작품은 어디서 본 듯한 추리소설 설정이며 캐릭터가 적당히 혼합된 느낌이라 그리 애착이 가지 않았다. 작가에 대한 애정이 없었다면 끝까지 읽지 않았으리라. 그리고 무엇보다 전문 분야가 다른 두 탐정이란 설정도 깊이가 없이 다소 흥미 위주로 만들어진 설정 같아 불만이었다. 왜 트릭을 잘 풀지만 동기 알아맞히는 건 쥐약이고 반대의 경우는 어째서인가. 그리고 그 둘이 힘을 합쳐야 비로소 제대로 된 탐정으로 거듭날 수 있다는 웃픈 신세가 뭔가 제대로 그려질 듯 그려지지 않아 결국 끝까지 그저 그런 작품으로 남고 말았다. 이 작가가 <체육관의 살인>과 <수족관의 살인>보다 더 좋은 작품을 써주길 바랐는데... 역시 쉽지 않은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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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그를 죽였다 현대문학 가가 형사 시리즈 개정판
히가시노 게이고 지음, 양윤옥 옮김 / 현대문학 / 2019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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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7 







 전편보다 늘어난 용의자, 용의자 모두 '내가 그를 죽였다'고 믿는 복잡하고 골때리는 상황 설정, 죽여 마땅한 피해자, 끝날 때까지 범인이 밝혀지지 않는 획기적인 마무리, 마지막에 마지막까지 의심의 끈을 놓을 수 없는 추리의 향연... 이렇게 보면 꽤 괜찮은 추리소설로 기억될 만했지만 사실상 범인이 밝혀지지 않아 독자가 직접 추리해야 하는 부분과 히가시노 게이고의 작품답게 가독성이 좋단 점을 제외하면 <내가 그를 죽였다>는 매력이나 흡입력은 떨어지는 작품이다. 다른 걸 떠나서 두 번째 요소, 세 명의 용의자에게 피해자를 죽일 동기가 있고 모두 저마다 자신이 죽였다고 믿는 점 때문에 결말이 별로 궁금해지지 않았다. 작중 인물인 미와코의 말을 빌리자면 누가 범인이어도 상관없었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가독성이 좋은 건 어찌 된 일인지 모르겠다. 다른 건 몰라도 가독성을 놓고 봤을 때 히가시노 게이고의 필력을 따라올 작가는 그리 많지 않은 것 같다. 

 전에 읽었을 땐 다카히로와 미와코 남매의 관계가 가슴 아프게 다가왔는데 10년이 지나 다시 읽으니 미와코는 속내를 알기 힘들어 어딘지 매력이 잘 와 닿지 않는 재미없는 캐릭터였고 다카히로는 다른 두 명의 용의자에 비해 동기가 약하고 또 좀스러워 비호감이었다. 반면 강력한 동기를 갖고 있던 스루가와 유키자사의 이야기, 그들이 호다카한테 살의를 품게 된 계기는 아주 흥미로웠다. 피해자 호다카가 - 묘하게 <악의>의 피해자와 비슷한 면이 있었다. 직업이나 됨됨이나... 근본적으로 다른 부분이 있지만 말이다. - 얼마나 죽여 마땅한 인물인지를 묘사하는 것은 이 작품 최고의 동력으로 작용했다. 어쩔 수 없이 살인범을 응원하게 되는 이 소설은 냉정하게 말하자면 딱 호다카가 죽기 전까지가 제일 재밌었다. 


 엄연히 '가가 형사' 시리즈에 속했음에도 가가 형사의 매력이나 활약이 극히 적은 것도 아쉬웠고 후반부를 제외하면 전개 속도도 느리고 최후반부에 추리 장면을 집약시킨 것도 불만스런 부분이었다. 전편 <둘 중 누군가 그녀를 죽였다>는 형사가 범인을 추적하는 전개였던 것과 달리 이 작품은 범인이 주인공인 도서 추리물이자 세 명 모두 자신이 죽였다고 믿는 복잡한 서술트릭이 있어 읽는 입장에서 - 그래서 가가의 비중이 적은 것과 최후반부에 추리 장면을 집약시킨 게 납득은 갔다. - 참으로 까다로웠다. 뭐, 쓰는 사람은 더 까다로웠을 테지만 문제는 그런 보람도 없이 이야기 자체가 상술했듯 누가 범인이어도 상관없는 터라 가가의 추리로 사건의 전말이 이리 바뀌고 저리 바뀌어도 아무래도 상관없었던 것이다. 잔인한 말이지만 추리를 통해 사건의 전말이 더 상세히 드러날수록 결국 모든 용의자에게 책임이 있다 해도 과언이 아니었으니까. 누가 범인이어도 이 점은 변하지 않으니 과정이 아무리 정교한들 당최 능동적으로 추리하고 싶은 마음이 들지 않았다. 

 정작 작중에선 '누가 범인이어도 상관없다'는 말이 조금 다르게 해석되는데, 그 해석이 이 작품의 매력을 더 높여주진 못했다. '미와코가 근친상간을 한 자신의 과거를 외면하고 미래의 신랑이 살해당한 비련한 여인이 되고 싶어한다', '그래서 누가 범인인지는 근본적으로 그리 중요하지 않다' 는 유키자사의 해석은 흥미롭지만 문제는 그 해석이 정말 막판에 나왔다는 것이다. 거기서 더 파고들면 재밌는 묘사나 해석이 됐을 테지만 이렇게 겉만 핥아서야 막판까지 까먹고 있다가 급하게 추가한 것 같은 꼴이라 도리어 작품의 깊이가 죽는 느낌까지 받았다. 


 히가시노 게이고의 글의 매력은 극한의 가독성과 대중성이 있는 한편으로 간혹 무시할 수 없는 날카로움과 깊이 또한 있다는 것이었는데 이 작품에선 그 매력이 잘 발휘되지 못했다. 시리즈 작품으로는 말할 것도 없고. 초중반부만 놓고 보면 정말 괜찮았는데... 시리즈의 최고 작품인 <악의>, <붉은 손가락>, 그리고 <신참자>에 견주어도 손색없는 도입부였으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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