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고 아무도 죽지 않았다
시라이 도모유키 지음, 구수영 옮김 / 내친구의서재 / 2020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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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6 






 작가의 데뷔작 <인간의 얼굴은 먹기 힘들다>를 보고 이 작가의 모든 작품을 챙겨보리라 다짐했다. 그 다짐은 다른 국내 출간작인 이 작품을 읽으면서 재고하게 됐다. 아가사 크리스티의 <그리고 아무도 없었다>를 작가 입맛대로 비틀어버린 이 작품은 소재 하나는 독특했지만 단순히 엔터테인먼트에만 치중해 오히려 흥미가 점점 반감되고 말았다. 자신의 클론을 먹는다는 데뷔작의 설정이 못지않게 이번 작품도 충격적이고 역겨운 설정과 전개가 즐비했는데, 이 부분은 호불호가 갈릴지언정 치명적인 단점이 아니었으나 충격적이고 역겨움 그 이상의 깊이가 부족해 정이 가지 않았다. 

 데뷔작과 닮은 점이라면 비호감 일색인 캐릭터들과 정상과는 거리가 먼 설정과 그럴싸한 추리들이 끊임없이 늘어놓고 뒤집어엎으면서 어렵사리 진실이 드러나는 복잡한 전개일 것이다. 성장 배경이며 성격, 직업, 진범의 경우엔 범행 동기마저 비정상이고 정말 별것 아니라 코웃음이 다 나왔다. 정상과는 거리가 먼 설정은 적어도 신선한 맛은 있었지만 묘사들이 엽기적이라 되려 정독하지 못하게 만드는 역효과를 낳았다. 직전에 <오징어 게임>을 봐서 이런 묘사에 내성이 생겼다고 볼 수 있을 텐데, 분위기는 발랄하면서 잔혹한 묘사가 잇달아 나와서 적응하기가 힘들었다. 


 추리의 향연 자체는 꽤 정교하고 완성도 높았지만 너무 그들만의 세계가 끝에 밝혀진 진실이 정작 그리 놀랍지 않아 허무하기만 할 뿐이었다. 범인이 미쳐도 단단히 미친 작자라 일단 공감도 안 가고 '기생충' 설정도 와 닿지 않고 그 설정을 설명하기 위한 세계관도 너무 소모적으로 다뤄진 감이 있어 배신감마저 느꼈다. 처음 분위기는 나카지마 라모의 <가다라의 돼지>가, 중반부부터는 야마구치 마사야의 <살아있는 시체의 죽음>와 기시 유스케의 <천사의 속삭임>이 떠올라 흥미롭게 읽혔으나 이 작품들이 모두 철학적인 깊이가 남달랐던 것과 달리 이 작품은 상술했듯 마치 작가가 자신의 두뇌를 과시하듯, 단순히 독특한 추리쇼의 재료에 불과한 듯 가볍게 다뤄서... 솔직히 <인간의 얼굴은 먹기 힘들다>의 작가가 아니었으면 끝까지 억지로 읽지 않았을 것이다. 

 데뷔작이 워낙 인상적이었기에 이 작품도 큰 망설임 없이 읽었는데... 역시 작가 이름만 보고 맹신하며 작품을 고르는 건 위험하단 걸 확신하게 됐다. 그럼에도 작가의 다른 작품이 궁금하긴 하지만, 그땐 좀 더 신중히 읽게 될 것 같다. 만약 이 작품을 처음 접했더라면 어땠을까? 그랬다면 <인간의 얼굴은 먹기 힘들다>를 외면했을지도 모르겠다. 그 작품을 먼저 접한 게 얼마나 다행인지 모른다. 

머리가 좋은 건지 나쁜 건지 알 수가 없군.

살인귀란 그런 거예요. - 214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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