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리 dele 1
혼다 다카요시 지음, 박정임 옮김 / 살림 / 2021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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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6



 <디리>는 의뢰인의 사후에 데이터를 지워주는 '디지털 장의사'라는 직업을 다룬 작품이다. 의뢰인의 실제 사망 여부를 확인하는 것을 비롯한 현장 업무 전반은 유타로가, 유타로의 보고에 따라 상황을 판단하고 데이터를 삭제하는 업무는 사장인 케이시가 담당하고 있다. 케이시는 데이터를 지우고자 했던 의뢰인의 유지를 받들어, 설령 법의 테두리에 걸쳐진 사안이라 할 지라도 망설임 없이 데이터를 지우려 하는 반면 휠체어 신세인 케이시 대신에 현장 업무를 맡고 있는 유타로는 고인인 의뢰인이 남긴 데이터의 진의가 궁금해 데이터의 내용을 확인은 해보자는 것으로 둘은 시종 의견 차이를 보인다.

 의뢰인 입장에서야 당연히 케이시의 완고한 모습에 손을 들어주고 싶겠지만, 의외로 많은 사람들이 디지털 장의사라는 직종 자체에 의구심과 반감을 갖고 있다. 당장 업무의 한 축을 담당하는 유타로부터가 그렇잖은가. 그는 데이터의 내용을 확인했기에 오히려 의뢰인의 유지를 더욱 받들었다고 주장한다. 의뢰인의 유족들도 어떤 경로로든 디지털 장의사의 존재를 알고 찾아와 데이터를 지우지 말라며 시비를 걸거나 무엇이 고인을 위한 행동인지 이해해달라며 애걸복걸한다. 물론 케이시는 우직하게 거절하고, 유타로와 논쟁을 벌일 때도 굳이 데이터를 확인하지 않았더라도 바뀌는 일은 없었을 것이라 단정한다.


 유타로와 케이시의 주장은 각자 일리가 있어서 독자마다 달리 판단할 일일 테지만... 나로 말할 것 같으면 케이스 바이 케이스, 사안마다 다르므로 케이시의 태도는 답답하고 유치하기 그지없었다고 못을 박아두겠다. 그와 동시에 유타로가 엄청나게 오지랖이 넓어서 케이시와는 다른 느낌으로 답답했다. 뭐, 덕분에 밋밋하고 반복적일 수 있는 이야기가 윤택해졌지만 말이다.

 마지막 에피소드를 제외하면 전반적으로 신선함과 준수한 완성도, 그리고 여운을 잘 연출한 수록작들이었다. 개인적으로 첫 번째 에피소드와 '스토커 블루스', '인형의 꿈'이 기억나고 마지막 에피소드는 이야기와 세계관을 너무 싱겁게 갈무리하는 느낌이라 안 좋은 의미로 기억에 남았다. 앞선 세 작품은 혼다 다카요시의 감성이 디지털 장의사란 설정과 맞물려 대단한 시너지를 일으켰는데, 특히 '인형의 꿈'은 억지스러운 것 같으면서도 곰곰이 생각해보면 정교함이 돋보이는 반전과 감동이 있어 사뭇 감탄스러웠다. 무엇보다 오직 디지털 장의사란 설정을 통해서만 끌어낼 수 있는 감동이었기에 더욱 기억에 남을 듯하다.


 반대로 마지막 에피소드인 '그림자 추적'은 유타로의 전임자인 나쓰메처럼 그간 언급만 됐지 제대로 설명되지 않은 인물들이 등장하고 유타로의 과거를 풀어내는 대망의 에피소드였는데... 들인 분량에 비해 거둔 성과는 미미했다. 아니, 사실 떡밥 회수 여부는 별로 중요하지 않았고 케이시의 정체에 얽힌 반전이 도리어 케이시의 캐릭터성을 의심하게 만들었던 것, 그리고 이 에피소드에서 유타로의 분노가 다소 맥없이 해소되는 것이 불만스러웠다. 이 작품 하나만 놓고 보면 기승전결이며 완성도엔 문제가 없고 솔직히 수록작들 중 가장 몰입도가 있었지만, 금방 언급된 두 요소 때문에 뒷맛이 나빴다.

 이는 아마 마지막 에피소드의 내용이 미리 구상되지 않고 작품이 시작됐다가 후에 급조된 설정이 반영돼 벌어진 사달인지 모르겠다. 그렇지 않다면 의뢰인의 유지 운운하는 케이시의 태도가 지나치게 내로남불인 꼴이 되는데, 유타로 못지않게 나 역시 배신감이 이만저만이 아닌 터라 작가가 반전을 위해 무리수를 둔 것이란 삐딱한 생각밖엔 들지 않는다. 작품의 한 축을 담당하는 캐릭터의 캐릭터성 붕괴는 잘만 연출하면 호불호를 떠나 작품의 좋은 요소로 안착할 수도 있지만 이 작품엔 해당 사항 없는 얘기다. 의뢰인의 유지는 개뿔, 정말이지 자기기만이 따로 없잖은가.


 간혹 몇몇 수록작에서 억지 감동을 끌어내려 한 것, 어딘지 모르게 중2병스러웠던 인물들의 말투까지 눈에 밟히는 요소가 자잘하게 있었지만 상술했던 케이시의 캐릭터성 붕괴 하나로 쌓였던 불만이 일제히 터져버렸다. 개개의 수록작은 나쁘지 않았는데 참... 어쨌든 마지막이 이렇게나 중요하단 걸 깨닫게 해준 터라 좋든 싫든 반면교사로는 확실히 각인이 됐다.

 <디리>는 일본에선 드라마화까지 되는 등 제법 인기를 얻은 작품이다. 드라마가 잘 만들어졌나? 의뢰인의 유지를 받들어 데이터를 지우려는 케이시는 자주 '신뢰'라는 단어를 입에 올렸는데, 나에게 신뢰를 잃은 이 작품이 드라마로 각색된 버전이라고 해서 신뢰를 되찾을 수 있으리라곤 생각되지 않는다. 작가의 다른 작품도 읽지 않을 것 같은데 드라마를 볼 일은 결코 없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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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드 러브 메타포 8
엘렌 위트링거 지음, 김율희 옮김 / 메타포 / 2008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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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2



 부모님은 이혼했고 편모 가정에서 자란 주인공 존은 제법 냉소적인 성격의 소유자다. 일주일에 한 번 만나는 아빠는 향락적인 삶을 살고 있으며 함께 살고 있는 엄마는 자신의 몸에 손을 대지 않는 등 전반적으로 부모가 치명적인 결함은 없는데 자식으로서 기댈 만한 위인들이 아니다. 그나마 엄마는 아빠라는 나쁜 남자에 데여 아들에게도 마음의 벽을 느끼고 다른 남자와 재혼하는 것에 갈팡질팡하며 호들갑을 있는 대로 떠는 것이 이해는 가지만... 어쨌든 주인공의 나이대가 사춘기, 한마디로 중2병 걸리기 딱 좋은 즈음이라 이러한 자신의 성장 배경에 냉소를 넘어 환멸을 갖는 것이 당연하게 느껴졌다. 읽는 입장에서 청승 떠는 것 같은 느낌도 없잖았지만 글을 쓰는 캐릭터라 그런지 기본적으로 몰입을 유발하는 캐릭터였다.

 그런 냉소적인 성격의 존이 우연히 연상의 멋진 여자인 마리솔에게 반하게 되는데 하필 그 여자애가 레즈비언이란 것이 이 작품의 주요한 골자다. 어쩌다 보니 마리솔과 대화하게 되지만 자신의 성정체성으로 대놓고 철벽을 치니 존은 자신 또한 성정체성으로 고통을 받고 있다는 식으로 상대의 의심을 무마해 친분을 유지하게 된다. 이 과정에서 존은 자신의 성정체성을 시작으로 이름부터 세부적인 사항까지 거짓말을 하는 반면 마리솔은 자신이 레즈비언이며 그 사실 때문에 부모님과 사이가 틀어진 것 등 솔직하게 자신의 고충을 털어놓는다. 이런 태도의 차이가 예정대로 둘의 관계에 파장을 일으키고 존은 거짓말을 넘어 삶에 대한 자신의 태도를 되돌아보게 된다.


 자신의 글을 편집해 발간하는 1인 잡지라는 설정도 흥미로우며 1인 잡지를 계기로 만나는 두 남녀가 태생적으로 이뤄질 수 없는 관계인 것도 흥미롭기 그지없었다. 거기다 존이 들이댈수록 존 못지않게 냉소적으로 굴면서도 순순히 응해주는 마리솔의 모습도 인상적이었는데, 이는 성정체성이 칼로 나뉘듯 딱 정해지는 게 아님을 반영한 전개인 듯하다. 영화 <캐롤>에 나온 '여성이어서 좋아한 것이 아닌 좋아한 사람이 여성이었더라'는 대사처럼 마리솔 역시 처음엔 존에 대한 감정을 우정이라 느꼈지만 독자인 나는 우정과 사랑 그 중간 어디에 있는 감정으로 존을 대한 것으로 보였다. 그러거나 말거나 결국 존의 사랑은 그가 원하는 형태로 결실을 맺지 않아 참으로 안타까웠다.

 하지만 꼭 결실을 맺어야지 사랑인가. 때론 좌절도 사랑이고 성장이며, 짧은 시간이나마 마리솔이란 좋은 인연을 가졌으니 무의미한 일이라곤 볼 수 없다. 오히려 사랑을 냉소적으로 바라봤던 태도만큼은 자신이 몸소 사랑에 빠짐으로써 버리게 됐잖은가. 다소 가혹한 형태의 성장이긴 하나 자신이 이를 통해 성장을 했고 벽을 넘었다는 사실을 자각한다는 것으로도 박수를 칠 만한 일이다. 마리솔의 조언으로 부모나 친구와의 관계도 개선되고 자신이 환멸을 갖던 주변 사람의 소중함도 깨달았으니 비록 연인 관계로 발전하진 못했으나 마리솔의 등장이 존의 인생에 있어서 빼놓을 수 없는 인연임은 부정할 수 없겠다.


 글을 통해 맺어진 인연이라 둘의 대화 내용도 깊이 있고 30년 가까이 전에 출간된 작품치고 성정체성에 대한 통찰도 예리해 여러모로 곱씹으며 읽는 재미가 있는 작품이었다. 성장 소설은 다시 읽으면 내용을 떠나서 문체가 유치하고 사건의 규모나 깊이가 얕게 느껴지는 경우가 대부분인데 이 작품은 그렇지 않았다. 이야기의 규모 자체는 작지만 그 안에 담긴 사랑에 빠지는 이야기나 좌절하는 과정은 실로 보편적이고 진지한 주제인 터라 서른이 넘어 다시 읽어도 변함없이 몰입하고 음미하며 읽을 수 있었다. 오히려 존과 마리솔의 사유나 마리솔을 향한 존의 사랑이 워낙 진지해 십 년 뒤에 다시 읽어도 더 원숙한 맛이 느껴지리란 생각마저 들었다. 아마 진짜로 십 년 뒤에 찾아 읽게 될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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별을 담은 배 - 제129회 나오키상 수상작
무라야마 유카 지음, 김난주 옮김 / 예문사 / 2014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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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10


 국내에 번역된 일본 문학 중 남자는 양억관, 여자는 김난주가 번역을 도맡는다, 부부인 두 사람이 다 해먹는다는 등 우스겟소리가 있을 만큼 번역가 김난주 씨의 작업량은 실로 엄청난 편인데, <별을 담은 배>는 그 김난주 씨가 재번역을 하게 되면서 화제를 모았던 소설이다. 말인즉슨 이전에 한 번역이 성에 차지 않아 다시 번역했다는 것인데, 도대체 무슨 차이가 있을까 싶어 이 소설을 다시 펼쳐봤다.

 <별을 담은 배>는 나도 십여 년 전에 감명 깊게 읽은 작품이며 당시 후기를 쓸 때도 내가 구사할 수 있는 언어의 한계를 마주하기도 하는 등 감상을 남기기가 생각보다 까다로웠던 기억이 난다. 불행인지 다행인지 디테일한 내용은 거의 기억나지 않아 완전히 새로 읽는 기분으로 읽을 수 있었고, 그 탓에 김난주 씨가 이전의 번역에서 아쉬움을 느꼈고 다시 번역할 땐 어떻게 개선했는지는 하나도 파악할 수 없었다. 소기의 목적은 흐지부지됐지만 시작이 어쨌든 기억에 잊힌 멋진 작품 하나를 다시 읽게 된 것에 더없이 만족감을 느낀다. 점수를 보면 알겠지만 아마 올해 읽은 최고의 소설이 되지 않을까 싶다.


 이 소설에 대해 얘기할 때 김난주 씨의 재번역이라든가, 아니면 나오키상 수상작이라는 것도 부차적인 얘기에 지나지 않을 것이다. 이 책에 격찬을 아끼지 않는 상당수의 독자들 모두 책의 마지막 수록작 '별을 담은 배'에서 조선인 위안부 미주와 시게유키의 이야기에 전에 없는 울림을 받은 것이 한목했을 터다. 일본인 입장에서 왜곡 없이 바라본 조선인 위안부의 비극적인 처지는 작품의 완성도를 높여주는 핵심 요소였고, 그전까진 만악의 근원으로 여겨진 독불장군 시게유키의 반전 과거가 드러남으로써 사랑엔 한 사람을 살릴 수도 망칠 수도 있는 극단성이 있음을 독자들에게 인식시킴과 동시에, 이 작품이 캐치 프레이즈대로 '세속적인 행복보다 자유로운 불행을 택한 사람들의 이야기'임을 납득시켜주는 역할까지 겸해 압도적인 여운을 안겨주기까지 한다. 이는 한국인 독자라서 후하게 하는 말이 아닌 세계 어느 나라의 독자라도 비슷하게 얘기하리라 확신한다.

 이 작품은 불륜은 기본에 이복 남내의 금단의 사랑 등 자극적인 소재가 넘쳐나지만, 작중 시게유키의 말마따나 사랑과 성에 관한 문제는 만연한 것인데 꼭꼭 숨겨 얘기하지 않으려는 경향이 강해 괜히 더 비밀스럽고 더 음습해지는 것 같다. 책의 수록작 모든 이야기에 이 말이 해당되진 않지만 대체로 사랑에 죽고 사는 이들의 방황이란 점에서 이 작품이 울리는 바는 국경을 넘어 내 마음을 흔들기에 충분했다. 개인적으론 표제작 '별을 담은 배'와 더불어 미쓰구의 시점에서 전개되는 '왜 나는 나일까'도 인상적으로 읽었는데, 나이를 먹어감에 따라 열정도 존재감이 사라지는 심리와 그런 무력감을 극복해나가는 과정이 건전하든 불건전하든 어딘지 연민을 자아내 어딘지 가장 이입이 되는 이야기였다. 미쓰구의 딸인 사토미도 마찬가지였다. 얘는 사랑과 장래 모두 순탄치 못한 과정을 겪거니와 배신을 당하기도 배신을 하기도 하는 등 작중 인물 중 유일하게 과거가 아닌 현재 진행형으로 극적인 일을 겪기에 희로애락의 순간이 내 일처럼 가슴이 아렸다.


 작품의 등장인물 모두 미우나 고우나 응원하고픈 인물들이다. 마지막에 선을 넘을 듯 넘지 않은 아키라와 사에, 불륜 관계를 정리하고 새출발의 기미를 보이는 미키와 미쓰구, 할아버지인 시게유키를 통해 전쟁 이야기를 들음으로써 처음으로 하고 싶은 일을 계획했던 대로 이룬 사토미, 오랫동안 품고 있던 비밀을 털어놓은 뒤에 하늘의 별이 됐을 전처와 후처가 타고 있을 배를 상상해보게 된 시게유키 모두 여섯 편의 수록작에서 살아 숨쉬어 경멸하면서도 격려하게 되는 입체적인 인물들로 다가왔다. 절대선도 절대악도 없는 이야기가 좋은 이야기라 생각하는데 이 작품이 내가 생각하는 이상적인 소설에 완벽히 부합하지 않나 싶다. 그래서 책의 여운에서 못 벗어나는 것 같다.

 아... 이게 아닌데. 나름대로 분전했지만, 이번에도 책을 읽고 받은 감명을 완벽하게 풀어내지 못한 것 같다. 김난주 씨가 재번역을 했듯 나는 재재감상을 남겨야 할 듯하다. 세대를 아우르는 책의 내용의 특성상 여기서 십 년 뒤에 다시 읽어도 이번처럼 새로운 기분으로 다시 읽어내려갈 수 있을 테니 그날이 몹시 기대된다.

왜 이렇게 모든 것이 순조롭지 못한 것일까. 왜 나는 나일까. 대체 나는 어디로 가는 것일까.
(중략)‘뭐, 어때.‘
어디로 가든, 어차피 선로 위, 언젠가는 원치 않아도 어느 역에든 도착한다. - 288~289p

사과를 하고 마음이 편해져서 자신이 한 짓을 잊어버릴 정도라면, 차라리 사과하지 않고 후회를 껴안은 채 평생을 사는 것이 낫다는 얘기다. - 359p

행복이라 할 수 없는 행복도 있을 수 있지. - 453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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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리 포터와 저주받은 아이 1부 (무선) - 연극대본 해리 포터 시리즈
J.K. 롤링.잭 손.존 티퍼니 원작, 잭 손 각색, 박아람 옮김 / 문학수첩 / 2017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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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9.2



 '저주받은 아이'는 시리즈의 정식 후속작이지만 팬들 사이에선 외전도 아닌 별개의 작품, 잘 쳐봐야 서비스 작품 정도로 취급받는다고 들었다. 이미 잘 완결난 시리즈의 후광을 제대로 잇지 못한 전형적인 '박수칠 때 떠나지 못한' 작품으로 평가하던데 그건 너무 박한 평가가 아닌가 싶다. 세세하게 따지면 설정 오류라든가, 아니면 과거를 경솔하게 바꾸었다는 이유로 극단적인 변화가 일어난 작중의 몇몇 전개는 코웃음을 유발하기도 했다. 세드릭 디고리가 창피를 당했다는 이유로 죽음을 먹는 자가 됐다는 건 '불의 잔'의 내용이 가물가물한 내가 봐도 너무 작위적인 것 같은데?

 그래도 볼드모트가 승리했다는 가정 하에 펼쳐진 평행세계에서도 아직 스파이로서의 임무를 수행 중인 스네이프의 모습을 볼 수 있었던 것도 좋았고, 세상을 구한 영웅이 곧 좋은 가장이리란 법은 없다는 듯 아빠 노릇을 힘겨워하는 해리의 모습도 흥미로운 부분이었다. 물론 이 부분도 불만스러워하는 사람들도 많던데, '신비한 동물사전' 시리즈의 처참한 몰골을 떠올리면 해리가 실망스런 언행을 보이는 것쯤은 애교다. 시리즈의 팬층이 너무 두텁다 보니 사소한 요소에도 강한 비판이 가해지는 경향이 있는데 결국 뚜껑을 열어봐야 알 수 있듯 작품의 전체적인 완성도, 아니 이 작품이 의도한 바는 사뭇 괜찮아서 즐겁게 읽었다. 오랜만에 원작 생각도 나서 좋았고 말이다.


 롤링이 이 희곡을 집필한 의도야 뻔하지. '해리포터' 시리즈의 추억을 되새기고 미래 세대들이 우여곡절 끝에 부모 세대가 이룩한 평화를 지켜나가는 모습을 관객들에게 어필한 것이다. 포터 부자는 반목하고 해리의 7년 간의 고생은 수포로 돌아갈 뻔했으며 아이들을 기숙사별로 나눠 갈등을 조장하는 호그와트의 병폐는 아직도 개선되지 않았지만 이 난관을 극복하는 과정을 보여줌으로써 신파적이지만 의미 있는 결말을 자아냈다. 자신의 부모가 볼드모트에게 살해당하는 과거의 그 장면에서 이성을 잃은 해리가 아들 알버스를 비롯한 가족의 제지로 이성을 되찾는 장면은 특히 인상적이었다. 시간과 역사의 흐름을 함부로 건드려선 안 되는 인간의 무력함과 더불어 인간의 행복은 과거가 아닌 미래에 있다는 메시지도 엿볼 수 있어 이래저래 좋은 연출이었다고 생각한다.

 참고로 이 작품은 소설이 아닌 각본, 즉 실제 무대에 상연할 것을 상정하고 집필된 희곡인데 이렇게 현재와 과거를 넘나드는 내용이 어떻게 무대에서 구현됐는지 궁금하다. 무대 연출에 관한 지문은 극히 단촐해서 이건 직접 무대를 봐야 알 수 있겠다. 생각해보니 무대용으론 고난이도의 시나리오였던 것 같다. 알면 알수록 연극의 세계는 놀랍기 그지없군. 이거야말로 마법 아닌가?


 영화 '신비한 동물사전' 시리즈는 완전히 망했고, 몇 년 뒤엔 '해리포터' 드라마가 나온다는 소식엔 기대와 비관이 동시에 터져 나오는 등 시리즈의 미래는 정작 밝지 않다. 이미 성공적으로 끝낸 시리즈를 몇 번이고 재탕하려고 한 대가를 치르고 있는 중이란 생각밖에 안 드는데... 해리의 이야기가 이젠 단지 돈이 되는 콘텐츠로 전락한 것 같아 팬으로서 불편하기 그지없다. 이게 롤링이 돈맛을 알아버린 탓인지, 주변이 시리즈의 덕을 보고 싶어 작가한테 너무 우쭈쭈해댄 탓인지 잘 모르겠군.

 배고픈 시절의 감성과 절박함을 다시 되돌리긴 불가능한 일이겠지만 롤링이 이제라도 정신 차리길, 소설가로서 분수를 지키기 바란다. 소설가는 소설을, 각본가는 각본을 담당하고 소설가는 제발 소설 속 이야기만 말했으면 좋겠다. 정치적 의견은 이제 그만. 그 의견도 소설 속에서 소설의 어법에 따라 말하란 말이다. 그전까지 잘해놓고 요즘엔 왜 그러는지 원. 에효, 여기까지 말하겠다.

어느 시점이 되면 자신이 어떤 사람이 될지는 스스로 선택해야 한다고 생각해. - 1권 207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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슬럼독 밀리어네어 - Q & A
비카스 스와루프 지음, 강주헌 옮김 / 문학동네 / 2007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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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1



 이 작품은 <슬럼독 밀리어네어>의 원작 소설이자 현직 외교관인 비카스 스와루프의 데뷔작으로 영화 못지않은 매력을 갖춘 수작이다. 영화와는 기본 소재만 갖고 내용은 전혀 다르다고 해도 과언이 아닌데 영화나 소설이나 각기 다른 의미에서 매력적이라 영화가 마음에 들었다면 소설을, 반대로 소설을 재밌게 읽었다면 영화도 접해보길 추천한다. 영화가 굉장히 흥행해 아무래도 전자의 경우가 압도적으로 많겠지만 아무튼 영화는 소설의 단점이라고도 볼 수 있을 구성력을 보완하고 드라마틱한 측면이 강조됐던 것이 기억나 조만간 영화도 찾아볼 생각이다.

 소설은 이번에 두 번째로 읽었는데 다시 읽으니 단점이라 느껴지지 않았던 부분이 눈에 거슬렸다. 각각의 이야기가 너무 독립적이라 문제를 하나 풀 때마다 템포가 끊기는 느낌을 받았고 똑같은 패턴을 열두 번 접하다 보니 식상한 감이 없잖았다. 게다가 모든 이야기가 흡입력이 고르지 않고 편차가 있는 편이라 몇몇 작품은 속독으로 넘겨버리게 됐는데 이는 작가가 전문 소설가도 아니고 본업이 따로 있는 탓이리라 본다. 문장력이나 구성력은 평이했지만 외교관 업무를 수행하면서 틈틈이 집필한 것치곤 선방했단 생각도 드는데, 워낙에 소재와 주제의식이 좋아 필요이상으로 분량이 길지만 여운이나 만족도는 상당한 작품이었다.


 열두 개의 이야기를 통해 인도의 명과 암을 제대로 보여준 것이나 주인공의 파란만장한 삶, 그가 왜 퀴즈쇼에 참가했는지에 대한 이유가 밝혀지는 대목은 영화보다 좋았다. 영화가 이판사판이란 느낌이었다면 소설엔 주인공이 자신의 운과 인생을 건다는 비장미가 있어 행운과 기적이란 무엇인지 진지하게 생각해보게 됐다. 하늘은 스스로 돕는 자를 돕는다고 했는데 이 작품의 주인공은 오히려 타인을 돕다가 도움을 받게 됐다고 봐도 무방하다. 적당히 사기도 치고 길거리의 사고방식에 따라 살았기에 털어서 먼지 한 톨 안 나올 만큼 청렴결백한 인물은 아니지만 기본적으로 이타적이고 이타적인 일을 위한 행동력도 충만하기에 미워할 수가 없는 캐릭터다. 아니, 밉기는커녕 퀴즈쇼에서 주인공에게 그토록 많은 행운이 따라줬음에도 주인공 보정 같은 작위적 연출로 느껴지기보단 저 정도 행운도 부족하다고 여겨질 정도였고 후반부의 몇몇 티 나는 반전과 행운 역시 주인공에겐 당연한 것이며 자격이 있다는 생각마저 들었다.

 막연히 행운과 기적을 바라기보다 스스로 노력하며 쟁취해내야 한다는 말은 많이 들었지만 사실 그 말도 막연하기 짝이 없다. 그런데 어떻게 노력해야 할는지 모른다면 적어도 주변에 노력을 베푸는 것도 하나의 방법이 될 수 있다. 그 베풂이 이어져 훗날 언제 어떤 방식으로 도움이 될 것인지 모르기에 마냥 이기적인 것보다 오히려 이타적인 것이 장기적인 측면에서 더 도움되는 삶의 태도가 될 수 있다. 물론 그렇게 계산적으로 이타적이어서야 사람들이 눈치를 채서 역효과가 날 수도 있으나 세상일이란 건 또 모르는 일이라는 말도 있잖은가? 그런 면에서 이타적인 삶이야말로 행운과 기적으로 이어지는 지름길일 수도 있겠다. 세상은 잔인하고 내 편은 없다지만 나만큼은 그 말을 신봉하지 않으며 살 수도 있는 거니까.


 작중에 묘사된 인도를 보고 세상은 잔인하고 내 편은 없다, 는 생각을 하지 않을 독자는 없을 듯하다. 명색이 외교관인 작가가 이렇게 적나라하게 - 어쩌면 순화했을 수도 있지만 - 묘사해도 되나 싶을 정도인데, 작가는 이런 잔인한 세상 속에서도 행운이 따를 자격이 있는 주인공을 그리기 위해 더욱 가감없이 묘사를 했으리란 생각도 든다. 자격이 있는 사람이 합당한 대우를 받는다, 혹은 죽도록 고생하다가 행운을 거머쥐는 이야기보다 쾌감을 선사하는 이야기는 없기에 작가의 가감없는 인도 묘사는 제대로 멱혔다고 볼 수 있겠다. 동성애에 대한 다소 편향적인 묘사 정도를 제외하면 적어도 인도 묘사엔 타의 추종을 불허할 작가다.

 작가의 다른 작품 <6인의 용의자>도 그런대로 재밌게 읽었지만 역시 이 작품에 비할 바는 아니다. 작가의 수다스러움은 개인적으로 불호였지만 두 작품 모두 소재나 인도를 묘사한 방식이 끝내줘 다른 작품을 더 집필했고 국내에 출간된다면 찾아 읽을 용의는 있다. 안타깝게도 세 번째 작품 소식은 들려오지 않는데... 나중에라도 꼭 출간되길 바란다. 두 권만 내고 펜을 꺾기엔 너무 아까운 재능이다.

마누라를 때리고 딸을 강간하는 것은 뭄바이 집단주택 단지에서 흔히 있는 일이야. 그렇다고 말리는 사람은 아무도 없어. 우리 인도 사람은 주변의 고통과 불행을 보면서도 아무런 영향을 받지 않는 고매한 능력을 갖고 있단 말이다. - 103p

그게 아주머니가 맡은 최고의 역할이었나요?
물론 좋은 역할이기는 했지. 내 속에 감춰진 감정을 마음껏 표현했으니까. 하지만 내 삶에서 최고의 역할은 아직 해내지 못한 것 같구나. - 310p

왜 행운의 동전을 던져버렸나요?
이젠 더이상 필요하지 않으니까요. 행운은 내면에서 오는 것이니까요. - 449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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