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리 포터와 저주받은 아이 1부 (무선) - 연극대본 해리 포터 시리즈
J.K. 롤링.잭 손.존 티퍼니 원작, 잭 손 각색, 박아람 옮김 / 문학수첩 / 2017년 10월
평점 :
구판절판


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9.2



 '저주받은 아이'는 시리즈의 정식 후속작이지만 팬들 사이에선 외전도 아닌 별개의 작품, 잘 쳐봐야 서비스 작품 정도로 취급받는다고 들었다. 이미 잘 완결난 시리즈의 후광을 제대로 잇지 못한 전형적인 '박수칠 때 떠나지 못한' 작품으로 평가하던데 그건 너무 박한 평가가 아닌가 싶다. 세세하게 따지면 설정 오류라든가, 아니면 과거를 경솔하게 바꾸었다는 이유로 극단적인 변화가 일어난 작중의 몇몇 전개는 코웃음을 유발하기도 했다. 세드릭 디고리가 창피를 당했다는 이유로 죽음을 먹는 자가 됐다는 건 '불의 잔'의 내용이 가물가물한 내가 봐도 너무 작위적인 것 같은데?

 그래도 볼드모트가 승리했다는 가정 하에 펼쳐진 평행세계에서도 아직 스파이로서의 임무를 수행 중인 스네이프의 모습을 볼 수 있었던 것도 좋았고, 세상을 구한 영웅이 곧 좋은 가장이리란 법은 없다는 듯 아빠 노릇을 힘겨워하는 해리의 모습도 흥미로운 부분이었다. 물론 이 부분도 불만스러워하는 사람들도 많던데, '신비한 동물사전' 시리즈의 처참한 몰골을 떠올리면 해리가 실망스런 언행을 보이는 것쯤은 애교다. 시리즈의 팬층이 너무 두텁다 보니 사소한 요소에도 강한 비판이 가해지는 경향이 있는데 결국 뚜껑을 열어봐야 알 수 있듯 작품의 전체적인 완성도, 아니 이 작품이 의도한 바는 사뭇 괜찮아서 즐겁게 읽었다. 오랜만에 원작 생각도 나서 좋았고 말이다.


 롤링이 이 희곡을 집필한 의도야 뻔하지. '해리포터' 시리즈의 추억을 되새기고 미래 세대들이 우여곡절 끝에 부모 세대가 이룩한 평화를 지켜나가는 모습을 관객들에게 어필한 것이다. 포터 부자는 반목하고 해리의 7년 간의 고생은 수포로 돌아갈 뻔했으며 아이들을 기숙사별로 나눠 갈등을 조장하는 호그와트의 병폐는 아직도 개선되지 않았지만 이 난관을 극복하는 과정을 보여줌으로써 신파적이지만 의미 있는 결말을 자아냈다. 자신의 부모가 볼드모트에게 살해당하는 과거의 그 장면에서 이성을 잃은 해리가 아들 알버스를 비롯한 가족의 제지로 이성을 되찾는 장면은 특히 인상적이었다. 시간과 역사의 흐름을 함부로 건드려선 안 되는 인간의 무력함과 더불어 인간의 행복은 과거가 아닌 미래에 있다는 메시지도 엿볼 수 있어 이래저래 좋은 연출이었다고 생각한다.

 참고로 이 작품은 소설이 아닌 각본, 즉 실제 무대에 상연할 것을 상정하고 집필된 희곡인데 이렇게 현재와 과거를 넘나드는 내용이 어떻게 무대에서 구현됐는지 궁금하다. 무대 연출에 관한 지문은 극히 단촐해서 이건 직접 무대를 봐야 알 수 있겠다. 생각해보니 무대용으론 고난이도의 시나리오였던 것 같다. 알면 알수록 연극의 세계는 놀랍기 그지없군. 이거야말로 마법 아닌가?


 영화 '신비한 동물사전' 시리즈는 완전히 망했고, 몇 년 뒤엔 '해리포터' 드라마가 나온다는 소식엔 기대와 비관이 동시에 터져 나오는 등 시리즈의 미래는 정작 밝지 않다. 이미 성공적으로 끝낸 시리즈를 몇 번이고 재탕하려고 한 대가를 치르고 있는 중이란 생각밖에 안 드는데... 해리의 이야기가 이젠 단지 돈이 되는 콘텐츠로 전락한 것 같아 팬으로서 불편하기 그지없다. 이게 롤링이 돈맛을 알아버린 탓인지, 주변이 시리즈의 덕을 보고 싶어 작가한테 너무 우쭈쭈해댄 탓인지 잘 모르겠군.

 배고픈 시절의 감성과 절박함을 다시 되돌리긴 불가능한 일이겠지만 롤링이 이제라도 정신 차리길, 소설가로서 분수를 지키기 바란다. 소설가는 소설을, 각본가는 각본을 담당하고 소설가는 제발 소설 속 이야기만 말했으면 좋겠다. 정치적 의견은 이제 그만. 그 의견도 소설 속에서 소설의 어법에 따라 말하란 말이다. 그전까지 잘해놓고 요즘엔 왜 그러는지 원. 에효, 여기까지 말하겠다.

어느 시점이 되면 자신이 어떤 사람이 될지는 스스로 선택해야 한다고 생각해. - 1권 207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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