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할 땐, 책 - 떠나기 전, 언제나처럼 그곳의 책을 읽는다
김남희 지음 / 수오서재 / 2019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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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0 






 "내 모든 여행은 배낭에 넣어갈 책을 고르는 일로 시작한다" 라는 문장만으로 읽을 수밖에 없던 책이다. 총 25권의 책과 그와 관련된 여행 이야길 풀어낸 이 책은 읽는 동안 정작 본문의 내용에 감탄한 적보다 내 지난 여행들을 추억한 적이 더 많았던 것 같다. 작가에게 미안한 얘기지만 일부 에세이를 제외하곤 대체로 전달하고자 하는 바가 장황하거나 혹은 소개되고 있는 책을 내가 읽질 않은 탓인지 잘 와 닿지 않았다. 물론 내가 읽었던 책이라고 이 작가가 아주 맛깔나게 소개해줬다는 뜻은 아니다. 개인적으로 <리스본행 야간열차>와 <페르세폴리스>, <카탈로니아 찬가>, <파타고니아 특급 열차>, 그리고 에필로그에서 소개된 <80일간의 세계일주>에 대해 작가가 풀어낸 감상이 기억에 남는다. <페르세폴리스> 빼고 아직 접해보지 못한 책들인데 언젠가 읽어볼 생각이다. 그 책들을 읽고 이 에세이들만 따로 읽어도 좋고. 

 이 책을 읽으면서 작가의 독서량보단 이 작가가 직접 가본 여행지들에 더 감탄했다. 보통 이란이나 부탄, 몽골, 아마존 같은 곳들은 가보고 싶다고 생각해볼 순 있어도 실제로 행동에 옮기기란 결코 쉽지 않다. 그것도 여자 혼자 몸으로. 아니나 다를까 여성이란 이유로 모종의 신변 위협을 느낀 경우도 있었던 모양이지만 그보단 에세이엔 여행지와 책과의 연결 고리나 복합적인 감상에 대한 기록이 우선으로 적혀있었다. 나도 여행을 좋아하지만 정말 대단한 역마살이 아닐 수 없다. 책을 읽었다고 그 배경에 직접 가보고 싶은 마음이야 잘 알지만... 솔직히 말해 시국이 시국이라 그런지 걱정보다 부러움이 훨씬 앞섰다. 역시 여행은 의지로 하여금 시간을 만들어서 가는 것이다. 


 내가 지금껏 갔던 여행 중 책과 관련된 여행은 어떤 것이 있었는지 떠올려봤다. <도련님>의 마츠야마, <신참자>의 도쿄, <레몬>의 하코다테, <침묵>의 나가사키, <말레이 철도의 비밀>의 말레이시아, 그리고 '해리 홀레' 시리즈의 노르웨이... 되돌아보니 나도 적잖은 성지순례를 실천해냈다는 성취감이 느껴졌다. 정말 하나같이 소중한 여행들이었다. 물론 이것만으론 부족하다. 가령 <내 이름은 망고>의 캄보디아나 <박쥐>의 호주, '밀레니엄' 시리즈의 스웨덴, '에를렌뒤르' 시리즈의 아이슬란드, <과테말라의 염소들>의 과테말라, <차일드44>와 <모스크바의 신사>의 모스크바, <13.7>의 홍콩, <남쪽으로 튀어!>의 이리오모테섬, <푸른 불꽃>의 가마쿠라, <보틀넥>의 가나자와, 그리고 이사카 코타로 대부분의 작품의 무대인 센다이는 내 버킷 리스트에 있는 여행지들이다. 특히 스웨덴은 코로나가 아니었으면 작년 3월에 여행갈 뻔했기에, 홍콩은 코로나가 아니더라도 다른 국제적인 상황 때문에 가기 힘들어져 더욱 아쉽다. 언젠가 갈 수 있는 날이 오긴 올는지... 

 여행할 때만큼 책이 잘 읽히는 경우도 없는 것 같다. 그렇기에 여행 가방을 쌀 때 가장 고심하는 것은 단연 책이다. 재미의 여부나 두께도 중요하지만 그래도 가급적 여행지와 어울릴 만한 책을 들고 가려고 한다. 꼭 그 여행지가 배경인 소설일 필요는 없다. 내가 나가사키에 갈 때 나가사키가 고향인 요시다 슈이치의 책을 들고 간 것처럼, 삿포로 여행을 갈 때 <맥주별장의 모험>을 들고 간 것처럼 어떤 식으로든 관련이 있는 책을 가져가려고 한다. 여행까지 가서 무슨 책이냐 싶겠지만 여행과 마찬가지로 독서도 의지로 하여금 시간을 만들어서 하는 것이다. 카페나 느리게 가는 기차, 잠들기 전 숙소에서 얼마든지 짬을 내 읽을 수 있다. 그리고 여행지의 지명이 책 속에서 언급되기라도 하면 어마어마한 반가움을 느끼는 동시에 내가 소설의 등장인물이라도 된 듯한 잘 설명하기 힘든 고양감에 휩싸이게 된다. 


 사람들은 성지순례를 위해 책의 배경 속 도시로 여행가는 것이라 생각한다. 맞는 말이다. 내 스스로 엄청난 팬임을 자처하는 작품일수록 실제 배경을 내 두 발로 걷는 것만큼 쾌감 넘치는 일도 없으니까. 그런데 성지순례란 대체 무엇일까? 단지 그 장소를 걷는 일로만 여기는 건 약간 부족한 설명인 듯하다. 내가 봤을 때 성지순례란 책 속의 배경으로 내가 실제로 걸어가는 것, 어떻게 보면 책과 나를 동일시하는 일이다. 한편으론 책 속의 무대가 실존하는 장소란 걸 확인하려는 궁금증을 충족하기 위해서도 크다. 실제 장소를 거닐다 보면 작품의 분위기가 온몸으로 스며들 때도 있고 기대한 것과 너무 달라 어리둥절할 때도 있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실망한 적이란 거의 없다. 오히려 현실은 이렇구나 하면서 나만의 좋은 추억으로 남았으므로 결과적으로 나쁜 여행이라 느낀 여행은 없었다. 

 반대로 그 여행지가 너무 감명 깊은 나머지 관련 책을 더 찾아보는 경우도 있었다. 히로시마나 뉴욕이 그랬다. 여행은 걸어서 읽는 책이고 책은 눈으로 하는 여행이랬나? 내 입장에선 더할 나위 없이 잘 맞아떨어지는 말이다. 여행과 책, 도저히 한쪽을 따로 놓고 생각하기 힘들다. 당장 이 책 <여행할 땐, 책>만 하더라도 읽으면서 리스본이나 모스크바, 바르셀로나, 아이슬란드 같은 곳이 더욱 가고 싶어졌다. 여행 다큐멘터리를 봐도 여행 욕구가 샘솟지만 글로 샘솟게 되는 여행 욕구는 정말 남다는 구석이 있다. 내가 머릿속으로 구성한 여행지에 대한 인상을 직접 경험하고 주변에 떠들고 싶어서일까? 어쩌면 나는 단지 부러워서 성지순례를 하고 싶어하는지도 모르겠다. 


 ......글을 쓰다 보니 누가 누굴 보고 장황하다느니 잘 와 닿지 않는다느니 할 자격이 내게 있을까 하고 반성하지 않을 수 없다. 비교하려니 쑥스럽지만 책과 여행을 연결 지어서 글을 쓰려니 필요 이상으로 감상에 젖게 돼 참으로 쉽지 않다는 걸 방금 확실히 깨달았다. 이 글을 쓰기 전까진 이런 생각이 안 들었지만 여행과 책에 대한 에세이를 25편 쓴 작가를 존경하게 됐다. 최소 25번은 넘게 여행한 작가의 인생은 더더욱 존경하게 됐고. 지금은 시국 때문에 국내 한정이긴 하지만 어쨌든 과연 나도 이 작가에 필적할 만큼 여행으로 점철된 삶을, 여행에 살고 여행에 죽는 인생을 살 수 있을까? 쉽지 않겠지만 감히 그 인생 못지않게 살아내고 싶단 생각밖엔 들지 않는다. 내 안의 여행 욕구를 이보다 적나라하게 확인할 수 있던 독서는 또 없었던 것 같다. 

 작가 이름을 검색해보니 코로나 시국 이후에 나온 책도 있던데, 그 책도 읽어보고 싶어졌다. 과연 그 작가는 이 시국에 어떤 감상을 할지 궁금하기 그지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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까마귀의 엄지 블랙펜 클럽 BLACK PEN CLUB 20
미치오 슈스케 지음, 유은정 옮김 / 문학동네 / 2011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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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5 







 <오징어 게임>에서 이런 대사가 있었다. 사람은 서로 믿을 만해서 믿는 게 아니라, 그렇지 않고선 기댈 대가 없으니까 믿는 거라고. 한편 이 소설 <까마귀의 엄지>에선 사기는 신사의 범죄라고 궤변이 나오다가 막판에 사기꾼은 인간쓰레기라는 결론이 나온다. 그 결론의 근거는 사람이 사람을 믿는 마음을 이용하기 때문이라고 한다. 엔터테인먼트에 치우친 작품치고 참으로 날카로운 메시지가 아닐 수 없다. 

 <까마귀의 엄지>는 미치오 슈스케의 다른 작품들에 비해 기본적으로 밝고 유쾌하고 엔터테인먼트적인 성격이 강하고 작위적인 측면이 적잖은 작품이다. 일본추리작가협회상을 수상한 대표작이기도 한데, 이 상이 이름에 비해 그다지 추리소설 같지 않은 작품도 수상이 되는 반면 <까마귀의 엄지>는 반전과 복선이 탁월한 추리소설이다. 뿐만 아니라 마술과도 같은 성격의 트릭이 작품 전반에 녹아든 동시에 인간애까지 겸비된 나머지 여운이 생각 이상으로 짙게 작렬하는 수작이다. 솔직히 이 반전이 없었다면 너무 그림으로 그린 듯한 힐링 일색의 소동극에 그치고 말았을 텐데, 급조된 반전이 아닌 철저히 계획된 반전이었던 터라 기분 좋게 속고 말았다고 감탄했다. 작위적인 부분까지 계산한 트릭은 신박하기 그지없었다. 덤으로 사기꾼과 조류와 손가락에 대한 메타포가 앞뒤 맞게 나열하며 주제의식을 강조한 것도 인상적이었다. 어쩌면 트릭보다 이렇게 내실을 더하는 게 더 까다롭다고도 보는데 작가가 너무 물 흐르는 듯 유려하게 풀어내 최후반부에 감탄하며 읽었던 기억이 난다. 


 난 이 작품을 두 번째로 읽었고 이 작품을 원작으로 한 영화 <크로즈 썸>도 올해 초에 봤다. 사실상 세 번째 접하는 셈이라 물릴 만도 했고 확실히 후반부 이전까진 뒤에 어떤 식으로 전개될지 알면서도 지루하게 읽히긴 했다. 아무튼, 소설과 영화가 다른 점은 초반도 아니고 결말도 아닌 후반부의 알바트로스 작전의 내용이다. 여기서 사기꾼들이 쓰는 수법의 시나리오는 똑같지만 이들이 맞게 된 결말이 디테일하게 다르다. 영화가 전형적인 권선징악의 성격을 가졌다면 소설은 정반대로 작전이 좌절됐음에도 기분은 후련해졌다는 근본적인 차이가 있다. 개인적으로 소설의 연출이 훨씬 좋고 세련됐다고 본다. 이후 과거에 얽매인 타케와 인생이 망가진 자매가 화해하는 전개는 똑같지만 소설의 연출이 보다 인간애가 강조됐고 무엇보다 사기라는 범죄에 대한 작가의 가치관이 느껴져 영화의 각색이 생각할수록 납득이 가지 않았다. 이대로 촬영해도 좋았을 것 같은데? 

 처음 이 글을 쓸 때만 해도 '사기꾼은 인간쓰레기다' 라는 어떤 캐릭터의 대사가 묘하게 작품 내용과 겉돈다고 생각했었다. 선의의 빅 픽처로 인해 어두운 과거로부터 해방된다는 트릭의 강렬함에 현혹돼 정작 그 직전의 알바트로스 작전에서 주인공 타케가 얻은 교훈을 잊고 있었던 탓이다. 사기는 반드시 성공할 수도 없고 한계가 있으며 무엇보다, 상대가 누구든 간에 사람의 믿음을 갖고 논 자는 큰 코 다칠 수 있으니 정말로 어지간한 상황 - 이 작품의 내용에 따르면 복수나 용서는 예외로 쳐도 될 듯하다. - 이 아닌 이상 사기는 치지 않는 것이 좋다는 교훈을, 남을 위해서든 자신을 위해서든 그 교훈을 말이다. 


 영화를 볼 때까진 이 작품이 선의의 사기로 인해 인생을 구원 받는 사람들의 이야기로 생각했는데, 소설을 다시 읽으니 선의가 없는 사기처럼 쓰레기 같은 행위도 없다는 작가 나름대로의 비판이 구현된 작품처럼 다가왔다. 어떻게 보면 사기를 중심 소재로 다룬 이상 사기의 위험성에 대해 한 번은 진지하게 얘기하는 것이 사기라는 소재를 다룬 소설의 본분일 것이다. 작품은 시종 유쾌하게 진행되느라 그 본분에 관심이 없는 것처럼 보였다. 그도 그럴 것이 주인공이 사기꾼이라 주인공의 사기가 성공하느냐 여부가 궁금한 터라 비판이 끼어들 여지가 적었던 것이다. 하지만 의외의 반전과 반전이 담은 주제의식 덕분에 예상치 못한 깨달음, 사기라는 행위의 위험성을 독특하게 전달해 이래저래 예상을 상회해 만족감이 배로 들었다. 

 제아무리 선의든 뭐든, 속는 사람이 알아차리든 못 알아차리든 사기는 위험한 범죄라는 것이 내가 이 소설을 읽으면서 느낀 점이다. 작가는 캐릭터의 입을 빌려 쓰레기 행위라고 하지만 그렇기엔 작중의 거대한 사기가 낳은 선한 영향력이 어마어마하게 효과적이라 그보단 위험하다고 표현을 바꾸고 싶다. 정말 작정하고 사기를 치면 당하는 사람은 속수무책일 수밖에 없으며 또 어찌 됐든 간에 인생이 바뀌기에 애당초 남을 속이겠다는 발상 자체가 가볍게 여기기엔 대단히 위험하지 않은가 하는 생각이 들고 말았던 것이다. 따지고 보면 추리소설도 마술이나 사기처럼 사람을 속이기 위해 존재한다고도 볼 수 있겠는데, 간혹 인간의 심리를 제대로 파악해 속여버리는 작품을 접했을 때 느낀 당혹감이 떠올라 사기는 위험하다는 발언이 그리 과장된 말이 아니겠단 일종의 확신이 들었다. 물론 사기와 추리소설을 동급으로 쳐선 안 되겠지만. 그 안에 담긴 목적이 매우 판이하니까 말이다. <까마귀의 엄지>는 어떠냐고? <까마귀의 엄지>는 한없이 선한 목적으로 집필된 수작 추리소설이다. 

하얀 마음보다는 넓은 마음이 좀 더 낫겠죠. 이 세상을 살아가기에는요.

사기꾼은 인간쓰레기예요.

사람이 사람을 믿는 마음을 이용해 생계를 유지하는 사기꾼은 인간쓰레기입니다. - 373~374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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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모두 별이야 시공 청소년 문학 34
웬디 매스 지음, 장현주 옮김 / 시공사 / 2009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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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8.3 






 이 작품의 원제는 'Every soul a star'이다. 한국 제목이나 원제나 큰 차이는 없는데 나는 개인적으로 원제를 좀 더 좋아한다. 우리 모두라고 칭하는 것보다 영혼이라고 개개인을 칭하는 게 더 존중하는 느낌이 들어서 말이다. 아무튼 이 소설은 <망고가 있던 자리>로 데뷔한 작가 웬디 매스의 작품으로 일식 캠프에서 벌어지는 세 주인공의 성장담을 그리고 있다. 아, 참고로 여기서 일식은 일본 요리가 아닌 천문학적 현상을 가리킨다. 혹시나 해서. 

 찾아보니까 일식을 볼 수 있는 장소를 몇 십 년 뒤, 멀게는 백 년 넘게 뒤라고 하더라도 꽤 정교하게 예측이 가능하다고 한다. 관심 있는 사람들은 검색해보시길. 천문학에 관심이 많은 사람들은 일식을 볼 수 있는 장소를 정확히 파악해 거의 십 년 전부터 미리 대기하기도 한다는데 이 작품의 주인공 중 한 명인 앨리의 부모님이 딱 그런 사람들이었다. 아무리 그래도 자식들까지 데리고 숲에 캠프장을 세워 기다린다는 게 좋게 말하면 대단한 거고 나쁘게 말하면 정상은 아닌 건데 앨리는 부모의 의도가 좋게 풀려 천문학 소녀로 구김살 없이 자라게 된다. 


 오지나 다름없는 일식 캠프장에 드디어 고대하던 일식을 보러 사람들이 몰려오면서 이야기는 본격적으로 시작된다. 개중에는 이 작품의 나머지 두 주인공도 포함됐는데 한 명은 과학자 부모를 둬서 선택의 여지 없이 캠프장으로 이사를 온 모델 지망생 브리와 다른 한 명은 과학 보충 수업을 캠프장 봉사로 대체하려는 자존감 낮은 남학생 잭이다. <우리 모두 별이야>에선 천문학을 사랑하는 사람을 제외한 모든 사람들에게 불편한 장소인 캠프장을 배경으로 그곳에서 거의 평생을 자랐기에 앞으로도 떠나고 싶지 않은 앨리, 앨리와 반대로 캠프장을 하루 빨리 떠나고 싶은 브리, 그리고 무사히 캠프장 봉사를 마치고 싶은 잭과 그밖에 여러 아이들이 얽혀서 일식을 기다리며 자기 자신에 솔직해지고 자신의 꿈과 미래를 보다 낙관적으로 그려나가는 성장담이 병렬식으로 펼쳐진다. 

 한 명의 주인공도 아닌 세 명의 주인공이라니까 산만하다 느껴질 수 있겠지만 실제로 읽다 보면 지루할 만하면 시점이 바뀌고 캐릭터간 캐미도 좋고 다들 개성적이라 오히려 괜찮은 선택이었다는 생각이 든다. 앨리 이야기에선 천문학적인 이야기와 함께 세상 물정에 어두워 캠프장 밖을 두려워하는 이야기, 브리 이야기에선 가족 중에서 유독 꾸미는 것이나 보여지는 것에 관심이 많은 사춘기 소녀가 캠프장에서 좀처럼 적응하지 못하다 자신이 줄곧 '너드'하다 여겨진 천문학의 매력에 빠져드는 이야기가, 잭 이야기에선 자존감이 낮은 아이가 친구도 사귀고 여러 사건을 겪으며 활동적인 아이로 변해가는 이야기가 주를 이루고 있다. 솔직히 이 작품에서 일식은 하나의 계기일 뿐 결국 그 계기 덕에 서로 다른 개성의 아이들이 모여 자신의 개성과 매력을 발견하는 것에 초점이 가있어 나처럼 천문학에 관심이 별로 없는 독자들도 흥미롭게 읽을 수 있는 요소가 많았다. 물론 일식의 웅장하고 신비로운 매력에 대해서도 충분히 어필하는 책인 만큼 읽으면서 언젠가 일식을 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긴 했지만, 그게 어디 쉬워야 말이지... 


 10년이 지나 이 작품을 다시 읽으니 주인공 세 명이 부모 의지대로 거주지가 바뀌거나 성격이 형성된 것 같아 내심 부모 자식 사이의 불합리한 관계란 것에 대해 생각해보게 됐다. 앨리와 브리의 부모들은 그저 자기 자식을 자신의 눈이 닿는 위치에서 최대한 보호하고 싶어했을 뿐이지만 문제는 경우에 따라 그것 또한 폭력일 수도 있는 것이, 앨리나 브리의 경우 잘 풀렸기에 망정이지 극단적인 환경 변화가 사람에게, 그것도 아이들에게 어떤 영향을 미칠지 미지수이기에 부모가 아이들과 상의 없이 자신들의 꿈을 위해 거주지를 척척 바꾸는 게 그리 바람직하게 여겨지진 않았다. 당연히 악의는 없었겠지만 말이다... 유일하게 잭은 이 경우에 해당이 안 되지만 이 아이가 자존감이 떨어지는 것도 부모가 형과 동생을 알게 모르게 비교하며 키운 탓도 있어서 이들 부모라고 더 낫다고 하진 못하겠다. 

 그렇다 보니 사람이 자기 자신의 개성을 인정하고 자존감을 세우는 건 본인의 힘으로 해결해야 하는 일이란 생각이 들지 않을 수 없었다. 때론 부모의 의도완 달리 그들이 전혀 도움이 안 되거나 역효과를 낼 때도 있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이들은 자라면서 타인의 도움 못지않게 본인들 스스로의 노력과 그 노력을 유발하는 계기가 어떤 형태로든 필요하다는 게 내가 이 소설을 읽으면서 얻은 교훈이다. 그렇게 자신이 처한 환경과 주어진 조건에도 불구하고 제대로 성장해나간다면 사람들이 이렇게 말해줄 것이다. 시작은 꼬였지만 그래도 잘 풀려서 다행이라고. 

인생은 짧아. 그렇지만 넓거든. - 233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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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래바람 진구 시리즈 4
도진기 지음 / 시공사 / 2017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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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5 






 도진기 작가의 작품 중 유일하게 완독하지 못할 뻔한 작품이다. 진구의 과거가 드러나는 작품이라기에 기대하고 책장을 펼쳤는데 도입부부터 중반부까지 지루하고 식상하기 이를 데 없어 결국 한 번 포기했었다. 하지만 아무리 그래도 도진기 작가인데 이대로 포기하기엔 뭔가 아쉬워 시간을 두고 다시 읽었는데... 여지없이 중반부까진 지루했지만 그 이후로 속도가 붙어 완독에 성공했다. 그리고 처음으로 작가의 작품 중 괜히 읽었다는 생각을 하고 있는 중이다. 

 진구와 그의 학창 시절 친구 연부의 묘한 관계와 둘 사이를 멀어지게 한 과거의 충격적인 비밀이 드러나는 작품인데 과연 작품의 설정이 모두 적절했는지는 난 잘 모르겠다. 적절한지 아닌지를 막론하고 일단 대기업 회장이 자기 아들의 여자친구한테 너희 집안과 우리 집안은 급이 안 맞다며 퇴짜를 놓는다는 전개부터 신선함과는 거리가 멀었고 진구의 과거가 드러나는 중국 사막 탐사 부분은 뜬금없을 뿐더러 지루한 나머지 작가의 팬이 아니라면 도저히 버티기가 힘들 정도였다. 솔직히 시리즈의 네 번째 작품인 만큼 이 책을 읽는 예상 독자들은 작가의 열렬한 팬일 가능성이 높을 텐데, 설마 팬들을 믿고서 이토록 안일하게 설정과 전개를 짠 건 아닌지 의심까지 했다. 


 사실 마냥 안일하다고 깎아내리긴 힘든 것이, 사막 탐사에 관한 공들인 묘사나 모래를 통해 작품의 분위기를 더하려는 건 작가에게 있어 새로운 시도였고 관련 자료를 참고하는 등 노력하며 집필했다는 것이 느껴졌기 때문이다. 지루하다고는 했지만 오히려 이 부분이 가장 흥미로웠다고 말할 독자도 있을 것이다. 그런데 문제는 이 부분의 뜬금없음이나 지루함 보단 이러한 진구와 연부의 과거가 후반부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가 하는 것이다. 후반부의 반전은 나름대로 충격적이지만 그 반전의 내용을 생각해보면 이 작품이 전체적으로 전혀 상관 없는 부분만 묘사하고 있다는 탄식이 나오지 않을 수 없었다. 

 작가의 이전 작품들이 어느 정도 공정한 추리소설이었던 것과 다르게 <모래바람>은 상당히 불공정했다. 일종의 서술트릭 때문이 아니라 - 말이 나와서 말인데 범인의 비중도 너무 아쉽다. 가장 많은 비중을 할애해야 하는 인물이 아니었는지... - 범죄를 공모하거나 가담하는 인물들의 행동의 개연성을 전부 '바로 그 사람다운 행동', '그 사람의 자존심이 허락하지 않아 그렇게 행동할 수밖에 없었던 것'이라고 말하며 설명을 퉁치니 독자가 상상을 발휘할 여지가 적었다. 그렇다 보니 진구나 연부 등 여러 캐릭터들이 무슨 정신 세계를 갖고 있지는 알겠는데 내가 머릿속에서 능동적으로 구상해가며 캐릭터성이 구축된 느낌이 아니라 작가가 필사적으로 주입한 느낌이라 이래저래 정이 가지 않았다. 


 다 떠나서 추리소설적으로 대단히 재미없는 소설인 것이 이 작품의 가장 실망스런 부분이었다. 까놓고 말해 반전은 놀랍기는커녕 황당할 뿐이고 진구가 어렸을 적에 발휘한 트릭이나 그로 인해 죄책감을 갖게 됐다는 것 등이 이론으로나 그럴싸하지 이야기의 처절함을 강조하기엔 사막이라는 배경이나 손 안 대고 살인하는 트릭이나 하는 것들이 너무 과한 측면이 있어 현실감이 떨어졌다. 가뜩이나 이야기의 중심이 되는 상 씨 일가가 너무 볼품없고 재미없는 캐릭터들인 나머지 몰입이 되지 않았고 또 연부도 생각보다 분위기가 있지도 않고 대단히 악랄하지도 않고 그렇다고 딱히 두뇌 플레이에 특출난 것도 아니라 이 캐릭터가 뭘 하든 딱히 관심이 가지 않는 것도 문제였다. 

 이 작가가 필력이 왜 이렇게 떨어졌지? 데뷔작만 해도 재기 넘쳤고 가독성도 대박이었고 결말까지 완벽했는데... 점점히 필력이 떨어진다는 느낌은 받았지만 이 작품은 뭐랄까, 쓰고 싶어서 썼다기 보다 빨리 뭔가 써야 하니까 꾸역꾸역 스토리를 토해낸 느낌이라 전반적으로 구성이나 마무리까지 깔끔하지 못했다. 개인적으로 이 시리즈는 '어둠의 변호사' 시리즈보다 좋아했는데 갑자기 네 번째 작품이 너무 수준 미달의 옥의 티라서 시리즈 전체에 대한 좋은 이미지까지 한 순간에 무너져버렸다. 다섯 번째 작품이 벌써 출간됐던데 그 작품도 별로 기대되지 않을 지경이다. 읽긴 읽을 텐데 그 작품도 별로일까봐 지금으로선 솔직히 불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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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곡은 들리지 않는다
마루야마 마사키 지음, 최은지 옮김 / 황금가지 / 2021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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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3 






 


 전편을 읽었을 때 후속작이 나오긴 나오겠구나 하고 생각은 했지만 정말 이렇게 빨리 출간될지 몰랐다. 소재의 특성상 일본 추리소설 팬들도 잘 모르는 시리즈일 텐데 이렇게 농인의 인권을 다루는 독특한 추리소설 시리즈의 후속작을 만나볼 수 있는 건 대단히 감격스러운 일이다. 그런데 우리나라가 언제부터 농인의 인권에 관심이 많았지? 웹툰 <나는 귀머거리다>를 접한 이후로 개인적으로 농인이 등장하는 소설이나 영화를 종종 찾아봤지만 그래도 결코 대중적인 이야기는 아니라고 생각했는데... 시대가 변하고 있는 중이긴 한가 보다. 그렇지 않아도 작가 후기에서 인권 단체 쪽으로부터 압도적인 지지를 받으며 집필 중임을 엿볼 수 있었다. 1편 <데프 보이스>를 쓸 때만 하더라도 아는 농인이 없었다는데 지금은 완전히 달라졌다고 한다. 

 그래서 그런 걸까, <통곡은 들리지 않는다>는 전편에 비해 인권에 대한 이야길 더 많이 해 추리소설이 아닌 다른 장르로 노선을 선회한 느낌이다. 아무래도 상관 없는 일인 것이 농인의 인권도 인권이지만 어쨌든 수화 통역사 아라이의 이야기가 궁금해 후속작을 읽는 것이기도 해 장르는 크게 중요치 않다. 아라이가 능동적이든 수동적이든 이야기 속에서 주도적인 역할을 하지 못하든 그의 독특한 배경에서 비롯된 시선이 있기에 이 시리즈는 얼마든지 특별하게 다가올 수 있기 때문이다. 



 '통곡은 들리지 않는다' 


 상당히 비극적이지만 농인에겐 무척 일상적인 일을 다루고 있다. 치료를 받아야 하는 농인들이 의료 전문 통역의 도움 없이는 제대로 된 진료를 받기 힘들어 벌어지는 일들, 의료계 종사자들이나 통역사를 알선하는 사람들이 직업 의식이나 장애인 인식이 결여돼 농인의 고충을 이해하며 그들과 소통하려는 노력을 하지 않는 무신경함을 날카롭게 지적한다. 특히 의료계 종사자들이 농인을 다른 환자와 지나치게 똑같이 대해 - 그들은 119 전화도 걸기 힘든데 - 지금 사회가 농인을 위한 배려가 있는 사회라 보기엔 인프라나 인식 등 여러 면에서 아직 부족하단 걸 아라이의 시선으로 적잖이 엿볼 수 있었다. 

 사회적인 문제 못지않게 아라이 개인적으로도 앞으로 힘든 일이 벌어질 것을 예견하는 요소가 이 첫 수록작에서만 두 가지 나온다. 첫 번째는 아라이의 조카인 쓰카사가 농인임에도 일반 학교에 들어가려다 현실적인 문제로 벽에 부딪쳐 엇나가게 된 이야기, 그리고 아라이와 미유키 사이에 딸이 태어나는데 그 아이가 농인이라는 것이다. 전편에서부터 자녀를 갖길 거부했던 것이 바로 태어날 아이가 농인일 것 같아서였는데 어떻게 보면 아라이의 우려가 현실이 된 것이다. 



 '쿨 사일런트' 


 이번 수록작에선 딸에게 어렸을 때부터 보청기를 끼울 것인지 아니면 농인으로서 관련 학교에 보낼 것인지 논의하는 아라이와 미유키의 부부의 고뇌와 아라이가 농인 모델 HAL과 일을 같이 하게 되면서 벌어지는 일들을 다루고 있다. 전자에선 전편에서 '농인이라도 자기 자식이라면 굴하지 않고 키울 것'이라고 아라이에게 말한 미유키가 정작 농인인 딸이 태어나자 부모로서 심각히 고민하는 모습을 통해 현실은 결코 녹록지 않음을, 특히 장애인 자녀를 둔 부모는 다른 부모보다 고민이 곱절로 든다는 걸 보고서 아라이가 결혼이나 아이 갖는 것을 그토록 망설였으며 왜 매사에 거릴 두며 살았는지 비로소 와 닿게 됐다. 확실히 현실은 만만하지 않다. 

 농인 모델 HAL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그가 인기를 얻은 것은 당연히 외모의 덕도 크지만 그가 농인이기 때문도 크다. 아이러니하게도 그의 장애 사실은 어렸을 땐 우울한 기억을 가져다줬지만 모델 일을 하자마자 대중은 값싼 관심으로 하여금 그가 농인이란 것이 '쿨'하다며 판타지를 부여하기에 이른다. 참 엄청난 통찰력이 아닐 수 없는 것이, 실제로 일본 연예게에 비슷한 사례가 있었는지 모르겠지만, 실화든 아니든 간에 실제로 충분히 벌어지고도 남을 일이라 가장 가독성이 높았던 이야기였다. 농인이라 쿨하다고 관심을 가지면서 그의 수화나 구화가 조금이라도 쿨하지 않다 싶으면 자중하라고 하고, 그가 어떤 드라마에 농인 역할로 출연함에도 정작 농인의 정서를 반영하지 않는 캐릭터 설정에 심한 혼란을 유도하는 점 등이 예사롭지 않게 현실적인 묘사였던 나머지 나 또한 그런 식으로 장애인에게 이상한 환상을 품지 않았는지 되돌아보게 됐다. 



 '조용한 남자' 


 아라이와 미유키 부부가 자신의 딸 히토미를 어떻게 키울 것인지 정한 다음에 등장하게 된 이 수록작은 특이하게 아라이가 아닌 이즈모리 형사의 시점에서 전개된다. 그의 시선을 통해 아라이가 득녀한 뒤에 얼마나 많이 달라졌는지 간략히 엿볼 수 있었는데, 농인 가정에서 자란 아라이지만 농인 딸을 키우는 건 전혀 다른 일인지 가정에서의 스트레스가 이만저만이 아님을 간접적으로 느낄 수 있었다. 추측에 불과하지만 그가 신원 불명의 농인의 출신지를 알아내기 위해 시간을 조정해 발품을 팔았다는 것이 어느 정도 일탈을 위해서가 아닌가 싶었다. 비틀린 시선일는지 모르지만 마냥 인간애가 발동한 것으로는 보여지지 않았다. 

 물론 단지 일탈을 위해서 능동적으로 움직인 것은 아닐 것이다. 자신도 모르는 수화를 사용하는 농인의 죽음에 남다르게 반응하는 아라이는 이윽고 TV 속에서 찍힌 수화의 내용과 농인의 고향까지 알아낸다. 그렇게 된 이상 가만히 있을 수 없게 됐을 것이다. 소설에선 명확하게 설명하지 않지만, 위에서 얘기한 일탈하기 위해서 말고도 아라이는 농인 자녀가 나이 들어가며 어떤 삶을 살아갈까 이 질문의 답을 얻기 위해 길을 떠난 것처럼 보였다. 부모로서 자기 자식을 사랑으로 키울 테지만 세상은 장애인인 자신의 딸을 어떻게 대할 것인가, 그 현실을 알고 있음에도 자신은 잘 키울 수 있을 것인가 하는 아라이의 불안함 내지는 모종의 각오가 느껴지기도 했던 이야기였다. 



 '법정의 웅성거림' 


 이 이야기에선 크게 두 가지 에피소드가 나오는데 모두 쌓아온 긴장감에 비해 싱겁게 해소돼 마지막 수록작치고 아쉽게 읽혔다. 쓰카사와의 해묵은 감정이 이런 식으로 해소돼도 되나, 좀 더 극적인 전개가 있어야 하지 않았을까 싶을 정도로 첫 수록작에서의 불길한 암시가 무색해지고 말았고, 회사에서 자신이 장애인이라고 직장 내 따돌림을 했다고 고소한 농인의 이야기는 말 그대로 현재 농인의 처우나 농인에 대한 사회의 부족한 인식을 지적했을 뿐 정작 해당 농인이 무슨 심정으로 회사를 다녔고 고소를 하기에 이르렀는지에 대한 과정은 피상적으로 그려진 감이 있어 묘하게 와 닿지 않았다. 반대로 고소를 당하는 입장도 좀 묘사했더라면 - 가령 그들이 고소 내용을 결코 받아들이지 못하겠다는 강경한 태도만 보여도 이야기는 훨씬 긴박감 넘쳤을 것이다. - 보다 현실감 있게 다가왔을 텐데... 마지막 수록작은 정보 전달의 성향이 강해서 만족도가 네 편의 수록작 중 가장 떨어졌다. 

 오히려 미유키가 자신의 농인 딸 히토미를 바라보는 시선이 여러모로 복합적으로 보이는 것이 - 혼자만 수화를 가장 못하니까... - 이 시리즈의 후속작을 기대하게 만드는 요소였다. 아마 후속작이 나올 듯한데 그렇다면 히토미와 언니 미와, 아라이와 미유키 부부 이렇게 4인 가족의 이야기가 주를 이루지 않을까 싶다. 히토미 입장에선 자신이 태어나기 전부터 가족 모두가 수화를 할 줄 알아 어떻게 보면 천운을 타고 났다고 해야겠지만, 그건 히토미의 입장일 뿐이고 현실을 같이 살아야 하는 가족들의 입장은 다를 수 있으니 이들 사이에 균열이 나면 어떻게 날 것이고 또 그 균열을 어떻게 잘 봉합할는지 역시 궁금하다. 전편을 읽을 때만 해도 후속작이 더 나올지 반신반의했었지만 이렇게 3편까지 읽으니 4편도 나오고도 남을 것 같다. 부디 내 기대가 빗나가지 않길 바란다. 

어떤 분야든, ‘들림‘과 ‘들리지 않음‘의 장벽을 넘어 세상을 향해 자신의 언어로 자기 생각을 남김없이 전하고 정당하게 평가받는, 그런 누군가가 언젠가는 반드시 나타난다. - 139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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