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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무사리 숲의 느긋한 나날
미우라 시온 지음, 오세웅 옮김 / 알에이치코리아(RHK) / 2012년 4월
평점 :
구판절판


5.0


 


 일본은 특정 직업 분야를 체험하는 주인공이 무언가를 깨닫는다는 설정을 정말 좋아하는 것 같다. 하나의 경향으로 여겨질 만큼 비슷한 설정을 많이 봤는데 적당하게 살아가던 주인공이 느닷없이 새로운 직업군의 경험을 하면서 어쩌구 하는 얘기는 소재만 바꿔서 무진장 많이 나오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이 작품도 사실 미우라 시온이 아니었음 읽지 않았을, 그리고 미우라 시온은 색다르게 쓰지 않았을까 하는 기대에서 읽었는데 결과는 그저 그랬다.

 읽은지 오래 되지도 않았건만 기억이 흐릿한 것은 나의 잘못이 크겠지만 반면에 임업이라고 하는 소재에서 비롯된 이야기 줄기가 이목을 잡아 끌 뭔가가 없었기 때문이라고 항변하고 싶다. 자극이 이야기의 전부는 아니지만 차라리 영화로 봤으면 어땠을까 싶을 정도의 평이함만이 담겨 있을 뿐이었다. 아, 실제로 영화가 나왔으니 차라리 영화를 볼 걸 그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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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적의 인간
심포 유이치 지음, 김난주 옮김 / 들녘 / 2001년 10월
평점 :
품절


9.3



 

 요번에 여행 갔을 때 읽은 책이다. 큰 부담없이 읽힐 무난한 감성 소설인 줄로만 알고 읽은 책인데 생각 이상으로 빠져들었던 작품이다. 제목의 저 '기적의 인간'이란 수식어가 괜히 남사스러운, 묘하게 오글거림을 동반하면서도 작중에서 딱히 시사하는 바도 없었던 건 아쉬웠는데 그것만 빼면 전반적으로 빼어난 수작이었다.

 교통 사고로 인해 완전히 새로 태어난 가쓰미는 '기적의 인간'이란 수식어로 불린다. 뇌사 판정을 받은 그가 아무리 잘 돼도 식물인간으로 평생을 살아가야 했는데 수술 후 단기간에 회복되는 놀라운 생명력을 보였기 때문이다. 단, 이전의 기억은 완전히 사라진 채...


 이야기는 새로운 인격의 아들의 쾌유를 비는 어머니의 글로 서막을 연다. 병으로 어머닐 잃고 홀로 살아가는 처지에 놓인 주인공이 8년의 입원 생활을 마치고 사회에 나간다. 생물학적 나이로는 서른이 됐지만 교통사고로 인해 인생을 리셋해서 8살 정도의 경험밖에 없는데 무사히 살아갈 수 있을지에 대한 불안감을 안고서 말이다. 그 불안감을 과거라는 이름의 뿌리가 없는 자신에게 얽힌 미스터리를 풀어 떨쳐내고자 했던 주인공은 집안을 조사하던 중에 의문점이 하나 둘 등장하고 이야기는 겉잡을 수 없는 미궁 속으로 초대된다.

 기억을 잃은 인간의 방황은 그리 낯선 소재가 아니다. '본' 시리즈부터 해서 여러 이야기에서 앞다투어 다루는 소재인데 항상 비슷한 감정선을 다루는 것 같다. 나는 한 번도 그래본 적이 없어서 크게 와닿지 않지만 기억이 사라진 사람은 그 자체만으로도 심히 불안한지 그들이 주인공인 이야기에 강한 활기를 불어넣어준다. 비록 그들에게는 생사가 걸린 것처럼 중요한 사안이겠지만 지켜보는 우리 입장에선 이보다 더한 추적극이 또 없기 때문이다. 다른 누구도 아닌 자기 자신을 추적하는 것만큼 궁금증을 유발하는 것 또한 없는 것 같다.


 과연 그래서 특출난 이야기 구조이진 않았더라도 이 작품이 빠져들며 읽힌 것 같다. 후에 밝혀진 주인공의 과거는 여지없이 범상치 않은 것이었고 그에 얽힌 다양한 인물들의 반응도 예상 범위를 크게 벗어나지 않았다. 그러나 확실히 소재 자체가 그리 일상적인 소재가 아니다 보니까 작가의 개성에 따라 받아들여지는 깊이에는 확실히 차이가 있다.

 심포 유이치... <탈취>, <추신>, 그리고 이번에 3번째로 만나는데 그렇게 익숙한 작가는 아니다. 희한하게 대표작이라는 <탈취>는 그저 그랬는데 대표작까지는 아닌 것 같은 작품은 기가 막히게 재밌다. 인간의 서글프고 쓸쓸한 감정이 드러나는 드라마를 그리는 데엔 확실히 일가견이 있는 듯하다. 그 누구보다 잘 쓴다기 보단 그 누구에 비해서도 뒤지지 않는 흡입력을 자랑한다. 본 작품에서도 기억을 잃은 주인공의 처음엔 조심스러운 접근과 충동적이고 통제할 수 없는 후반부로의 진행이 결코 급작스럽지 않았으며 무엇보다 일련의 내면의 변화의 전개가 소름 끼치도록 자연스러웠던 것이 인상적이었다.


 뒤로 갈 수록 고조되는 서스펜스와 내막이 드러나면서 동반되는 쾌감도 안정적이었다. 무엇 때문인지 몰라도 그야말로 '묻혀진 수작' 외의 수식어는 떠오르지 않는데 캐릭터 조형에 20년 전의 작품 다운 옛날스러움이 있는 것을 제외한다면 하나 거슬림 없는 휴머니즘이 녹녹히 녹아있어 마지막까지 재밌게 읽을 수 있었다. 주인공의 마지막 방황과 뒤따르는 감정들이 아직도 눈에 선하기만 하다.


p.s 미야자키에 여행 가고 싶었는데 미야자키가 배경이라 깜짝 놀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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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리즈키 린타로의 모험
노리즈키 린타로 지음, 최고은 옮김 / 엘릭시르 / 2016년 4월
평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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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9



 

 꼭 저자 자신의 이름(필명이긴 해도)을 내걸어서 그런 건 아니겠지만 노리즈키 린타로의 작품은 하나 하나 남다르게 묵직하다. 자신의 필명과 동명의 탐정을 쓰는 저자로 엘러리 퀸, 아리스가와 아리스, 그리고 노리즈키 린타로가 꼽히는데, 엘러리 퀸은 솔직히 말하자면 아직 많이 읽지 않아서 그런지 그렇게 잘 쓴다는 느낌을 못 받았고 아리스가와 아리스의 경우에는 왕성한 작품 활동과 명성에 비해 작품별 재미의 편차가 극심한 편에 속한다. 어디까지나 국내에 소개된 작품에 한해서 하는 말인데, 말을 정정해서 미안하지만 그러고보니 아리스가와 아리스는 탐정이 아닌 조수역에 그쳐서 자기 이름을 내거는 느낌이 덜하기도 한다.

 반면 '고뇌하는 작가'로 불리는 노리즈키 린타로는 이명에 걸맞게 과작을 하는 작가군에 들어가고 꼭 과작이라서 그런 건 아니지만 여느 신본격파 추리소설가 중에서도 돋보이는 필력과 구성을 자랑한다. 한때 열광했었던 우타노 쇼고는 대표작이 다 출간됐는지 이제 좀 시들어지고 만 와중이었는데 참 다행이다. 우리에겐 아직 노리즈키 린타로가 있으니 말이다. 아직 출간되지 않은 작품이 많은데 기대가 안 될 수가 없다.


 이 책은 단편집이다. 제목은 셜혹 홈즈의 그것을 오마주한 것이다. 단편으로 정평이 났다는 얘기가 무색하게 국내에는 장편만 계속 출간되어 단편의 실체가 궁금하던 참이었다. 노리즈키 린타로의 단편이란 어떨까? 초판 한정으로 탐정 퀴즈 노트도 증정한다기에 재빠르게 사서 읽게 됐다.

 결론부터 말하면 정말 재밌게 읽었다. 원래도 팬이었지만 아주 광팬이 되고 말았다. 추리소설이 줄 수 있는 재미를 두루 갖춘 걸작 단편집으로 최고의 미덕을 꼽자면 재미의 빈부격차가 없다는 점이다. 물론, 이건 어디까지나 내 개인적인 기준에 한해서 말하는 것이지만 아무튼 너무나 매력적인 단편집이었다.


'사형수 퍼즐'

 사형수의 의문의 죽음을 다룬 중편이다. 잊을만 하면 거론되는 사형 제도의 딜레마에 대해 생각하게끔 하는 구조, 노리즈키 린타로의 재빠르면서 논리적인 추리와 추리소설에서 과연 어느 정도의 비극이 허용되는지를 시험하는 듯한 진상이 더없이 인상적이었다. 동기가 참 밑도 끝도 없다는 생각은 들지만 고풍스런 작가의 문체가 나의 당황을 달래주는 등 작가의 패기와 역량이 돋보인 수작이다.


'상복의 집'

 직전에 읽은 단편도 만만치 않았는데 그런 우리를 우롱하듯 한층 더 강력한 동기를 내거는 작품이다. 내성이 생겼다고 방심한 순간에 비집고 들어와 한껏 씁쓸함을 안겨준다.


'카니발리즘 소론'

 통상적인 추리소설과는 전혀 다른 양상을 띄는 작품으로 엽기적인 진상과 그를 추론하는 과정에 튀어나오는 현학적인 대화가 무엇보다 일품이었다. 세상엔 우리가 이해하기엔 너무 넓구나 하고 새삼 아연하게 만들기도 했다. 식인이 원체 역겨운 것이지만 이 작품에서보다 더 역겹(고도 엽기적이)게 다뤄질 수 있을까?


'도서관의 잭 더 리퍼'

 이 작품은 시리즈 속의 시리즈인 '도서관 탐정' 시리즈의 시발점이다. 본격과 하드보일드, SF, 사회파도 다룬 노리즈키 린타로의 일상 추리소설 연작으로 책 좋아하는 사람치곤 이 시리즈를 싫어할 수 없을 것이라는 생각이 강하게 들었다. 내가 지금 이 연작을 읽는 게 무척이나 고맙게 느껴질 정도로 즐거웠고 특히 이 단편같은 경우엔 책에 대한 애정과 예의범절을 지킨다면 폭풍 공감할 동기가 들어있어 아주 재밌었다.


'녹색 문은 위험'

 내용은 물론이거니와 트릭도 좋았지만 여주인공이 매력적이어서 더 인상적인 작품이다. 캐릭터의 매력이 얼마나 중요한지 잘 보여주지 않았나 싶다. 일상 추리소설의 기본기를 구사함에 조금의 어색함이 없다니 반칙 아닌가?


'토요일의 책'

 작가가 속한 일본 추리소설 출판계를 배경으로 한 수준급의 일상 추리소설이었다. 알 사람은 다 알 만한 각종 패러디가 난무해 한바탕 웃음을 유발하기도 하는 등 멀리 '비극 3부작'을 찾을 것도 없이 요 앞에 '사형수 퍼즐'을 쓴 그 작가가 맞나 싶을 만큼 놀라운 변화다. 특정 수식어로 한 명의 소설가를 예단하는 것만큼 의미없는 일도 없다고 절감했다.


'지난 날의 장미는....'

 마지막 작품이라 느껴지는 아쉬움을 완벽히 달래주는 작품. 일상 속 기묘한 수수께끼에 얽힌 감정선과 그 해석에 있어 이다지도 감탄을 금할 수 없는 작품도 또 없던 것 같다.


작가 후기

 30페이지 이상이 되는 작가 후기였는데 작품을 대하는 작가의 자세에 감탄해서 감상을 적고자 한다. 다소 사소하게 보일 수 있고 대충 끝맺을 수 있는 문제를 작중의 노리즈키 린타로처럼 끈질기게 추적하여 착실히 내면화하는 작가의 진지함을 읽노라면 어쩌면 이 작가의 작품을 동시대에 읽는 것은 축복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까지 들었다. 시대를 막론하고 되풀이되는 민감한 이슈를 알게 된 것도 고맙기도 했고 작가 개인의 양심도 느낄 수 있는 등(독자로선 아쉽지만) 정말 명품 해설이었다.


 다음에 출간될 노리즈키 린타로의 작품은 무엇일까? 작가 말마따나 '도서관 탐정' 연작은 다신 못 볼 것 같지만 이쯤 되니 뭐가 됐든 아무 작품이나 빨리 나오기나 하라는 심정이다.


p.s 탐정 퀴즈... 풀어봤는데, 내가 이렇게 재능이 없을 줄은 몰랐다. 결과는 절대 노코멘트할 것인데, 정말 만감이 다 교차했다.

이 이야기의 목적은 하나의 우화, 즉 `인간은 비극을 극복할 수 있을 것인가?`란 물음에 우화적인 고찰을 제시하는 것, 오직 그뿐이다. - 9p




국가는 `나`를 살인자로 만들지 않을 의무가 있다. - 77p




법이 힘의 논리에 지배된다는 말은 맞습니다. 하지만 이 비좁은 방에서는 국가나 법제도 같은 것은 어차피 하나의 픽션일 수밖에 없습니다. 국가는 사형수를 교수대에 매달 팔이 없고, 법은 집행 버튼을 누를 손가락이 없죠. 그러한 개념은 우리의 양심을 지킬 얇디얇은 방패 역할을 할 뿐입니다. 사형을 집행하는 건 늘 우리 몫이니까요. - 81p




출세해서 젋은 애들한테 설교나 늘어놓게 되면 끝장이지. - 162p




탐정소설 같은 건 뇌가 말캉한 기회주의자들이나 읽는 거야. 저급한 트로트하고 마찬가지지. 어디서 들어본 적 있는 멜로디와 가사를 꿰맞춰서 만든 거라고. 한없는 개정판과 끝없는 공급의 반복이지. - 211p




그레이엄 그린의 말대로 연민은 애정과 가장 거리가 먼 감정이지. 그리고 증오보다 훨씬 질이 나빠. - 240p




아니면 당신 장기인 비밀 통로를 꺼내려고?

허. 누가 들으면 오해하겠어. 그건 금기라고. - 316p




이것도 그냥 내 추측일 뿐이지만, 만일 자네가 어느 날 갑자기 시력을 잃어서 내일부터 책을 한 권도 읽지 못하는 처지가 됐다면 어쩔 텐가?

절망한 나머지 실성할지도 모르겠군요.

상상도 하기 싫어요. 사형 선고나 마찬가지예요.

나도 그렇네. 책을 못 읽는 인생은 살 가치가 없어. - 412~413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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