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인범 협박 시 주의사항 - JM북스
후지타 요시나가 지음, 이나라 옮김 / 제우미디어 / 2021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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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6



 스포일러 : 10%


 이 작품의 원제는 '그녀의 공갈'이며 우리나라에 들어온 제목보다 원제가 선입견을 만들지 않아서 더 좋다고 생각한다. 우리나라 제목은 마치 주인공이 겁도 없이 살인범을 협박했다가 피의 보복을 당하는 내용으로 연상되지만 실제로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는다. 협박을 결심하기까지 고뇌와 협박을 하고 난 다음에 갖는 뉘우침과 예상치 못한 방향으로 흘러가는 전개가 중요한 작품이기에 '살인범 협박 시 주의사항'은 작품 분위기와 미묘하게 따로 노는 감이 있는 제목이 아닌가 싶다.

 그래도 저 제목을 토대로 생각해보면, 살인범을 협박할 때 주의해야 할 점은 무엇일까. 이 작품의 내용에 의하면 살인범을 협박할 때 과연 그 사람이 정말 살인범인지 확인하는 것이 제일 중요한 것일 터다. 그런 점에서 주인공은 헛다리를 짚어도 제대로 짚은 셈인데, 아쉬운 점은 이 주인공의 오해가 사건의 커다란 변수를 주지 못했다는 점이다. 주인공의 심리를 따라가는 작가의 섬세한 묘사력은 흥미로웠지만 주인공에게 협박을 당한 쿠니에다의 시점을 생각하면 돈을 뜯긴 것을 제외하면 그의 신변에 당장엔 커다란 변화가 일지 않는다. 그로 인해 협박 피해자와 가해자가 가까워지는 계기가 생긴 걸 빼고 순수하게 범죄소설의 관점에서 주인공의 오해와 협박이 무슨 역할을 했는가, 그 점이 한 번에 와 닿지 않는 것이 단점이라면 단점이다.


 간단히 말해 심리 묘사를 제외하면 범죄소설이나 추리소설적인 짜임새와 결말의 의외성은 기대보다 부족한 작품이었다. 결말은 먼 길 돌아온 것치고 급작스럽고 여운과 동시에 허무함도 그에 못지않게 안겨져 약간 당혹스럽기까지 했다. 가련한 처지이면서 악녀에 가까운 면모도 보인 주인공 케이코의 캐릭터성은 많은 질문거리를 낳지만, 개인적으론 케이코는 절박함이나 악녀스러움이 내가 예상보단 2% 부족해 그녀의 선택이나 그녀의 자책 모두 과하게 느껴졌다. 만약 같은 플롯과 같은 인물을 가지고 기리노 나쓰오나 기시 유스케가 집필했다고 생각해보자. 훨씬 더 음습하고 악마적인 작품이 탄생했을지 모른다.

 20대 여성과 50대 남성의 플라토닉 러브도 독자들에게 어떻게 읽힐지 모르겠다. 30대 남성의 내 경우엔 그래도 서로가, 특히 남성 쪽이 선을 지키며 감정을 교류했다고 생각했는데 여성 독자들도 같은 생각일까? 일본 특유의 유흥 업소 종사자 여성을 부적절하게 묘사한 작품이라고 불쾌해하지 않을까. 내가 내 감상에 젖으면 그만이지, 굳이 여성 독자들의 시선을 염두에 둘 필요는 없으나 등장인물과 비슷한 연령대와 처지에 있는 독자들의 반응도 내심 궁금한 건 어쩔 수 없는 일이다. 나만 애잔함을 느끼는 건지, 아니면 남녀노소를 아우르는 필력을 겸비한 작품인 것인지... 나의 감상과 타인의 감상이 극히 다를 때가 많아서 어느 순간부터 내 감상을 함부로 밀어붙이지 못하겠더라. 더군다나 말 한 마디에도 검열을 해대는 시대가 됐으니 원;;


 안타깝게도 작가는 이미 고인이 됐다고 한다. 유명 작가인 것에 비해 국내에 출간작이 이 작품이랑 <텐텐>밖에 없던데 나오키상 수상작을 비롯해 여러 작품이 소개되길 바란다. 소개되는 일본 소설가들이 다 거기서 거기다 보니까 이젠 일본 소설이란 것만으로 식상하게 다가올 때가 있으니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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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네자와 호노부와 고전부 고전부 시리즈
요네자와 호노부 지음, 김선영 옮김 / 엘릭시르 / 2021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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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0


 요네자와 호노부를 대표하는 시리즈 '고전부'의 팬을 위한 책으로 미공개 단편소설과 작가의 인터뷰, 창작 노트 등 팬이라면 구미가 당길 수밖에 없는 요소들로 가득하다. 다른 추리소설가들과의 대담도 있고 소설가 지망생을 위한 강연 내용도 있고 시리즈 집필에 직간접적으로 영향을 준 고전 추리소설도 소개돼 여러모로 흥미로웠지만, 정작 가장 기대한 미공개 단편소설의 완성도는 다소 썰렁해 전반적인 만족도는 그닥이었다. 만약 이 책이 단편집이었다면 다른 수록작이 그 썰렁함을 만회해줬을 테지만, 딱 한 편만 수록된 지라 실망감이 이만저만 아니었다. 더군다나 이전에 나온 단편의 플롯을 반복해 참신함마저 떨어졌으니 내가 너무 박하게 평하는 건 아니리라.

 소설은 물론이거니와 만화와 애니로도 섭렵했으니 나는 이 시리즈의, 나아가선 작가의 팬이라고도 할 수 있겠으나, 읽다보니 내가 생각보다 작가의 팬을 자처하기엔 읽지 않은 작품도 많거니와 읽었으나 감동은커녕 실망한 작품도 상당해 작가의 팬이라 할 순 없을 것 같다. 심지어 모든 발언이나 창작관이 달갑게 들리지 않았는데... 히가시노 게이고를 비롯해 기시 유스케, 하라 료, 요 네스뵈 등 여러 작가들의 팬이 됐다가 실망을 거듭한 경우가 다반사이며 현재로선 이사카 코타로 정도가 아닌 이상 내게 있어 작가 이름만 맹신하고 작품을 고르는 경우는 아예 없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결국 개개의 작품을 평가해야지 작가의 이름에 현혹돼 평가가 흔들리면 그 즉시 인지부조화에 시달릴 확률이 크니까 말이다. 아닌 건 아닌 거고 좋은 건 좋은 거다. 한 작가의 세계관을 이해할 때 명심해야 할 태도가 아닌가 싶다.


 이 책을 다 읽으니 내가 작가의 열렬한 팬은 아닐지언정, 그럼에도 신작이 기대되는 작가라고 느끼게 됐다. 책에서의 작가의 말이 유달리 촌철살인이거나 감동적이서 그리 느낀 건 아니다. 작가라면 말 같은 건 얼마든지 멋들어지게 할 수 있잖은가. 중요한 건 작품이지. 그런 의미에서 과거에 읽은 요네자와 호노부의 몇몇 작품이 큰 울림을 줬으니 여전히 이 작가를 믿을 수밖에 없는 것이다. <추상오단장>, <바보의 엔드 크레디트>, <보틀넥>은 그야말로 작가에 대한 충성도가 솟아오를 만큼 짙은 여운을 자랑하는 작품들이었다.

 현재 일본 추리소설계에서 가장 주가가 높은 작가이지만 최근에 상을 받거나 높은 평가를 받은 작품은 아직 한 작품도 읽지 못했다. 큰 호평을 받았던 <야경>이 그냥 저냥이어서 최신작들이라고 무조건 봐야지 하는 생각까진 들지 않았다. 하지만 언젠간 읽을 것이다. 그 작품들을 읽을 때 이 책에서 읽은 이 작가의 이야기꾼으로서 갖고 있는 일종의 자긍심을 떠올려야지. 그럼 이야기가 더욱 묵직하게 읽힐 듯하다.

‘그냥 그런 이야기‘라고 받아들이는 것은 말하자면 독자가 이야기를 돕는 꼴이다. 양자는 협력 관계라고도, 공범 관계라고도 할 수 있다. 그런 타협은 드문 일이 아니다. 아니, 일반적이다. 뮤지컬 배우가 갑자기 길거리에서 노래하는 것도, 시대극 관리가 악독하기만 한 것도 이상하다면 이상하지만 그런 건 무의미한 비판이다. 공범 관계가 전혀 없는 이야기를 보고 싶으면 책을 버리고 거리로 나가야 한다. - 30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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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택섬
히가시가와 도쿠야 지음, 권일영 옮김 / 폴라북스(현대문학) / 2011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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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8.8


 한때는 완성도와 무관하게 정말 우후죽순 소개됐던 히가시가와 도쿠야의 작품을 오랜만에 읽었다. 많은 사람들이 모르지만 <저택섬>은 작가의 작품 중 국내에 처음 소개된 작품인데 나는 그 당시에 출간되지마자 읽었던 기억이 난다. 개인적으로 너무 시리즈화돼서 뒤로 갈수록 감흥이 떨어진 '수수께끼 풀이는 저녁식사 뒤에' 보다 이 작품이 더 좋았다. 호불호는 갈리지만 유머나 형사와 탐정인 두 주인공의 캐미도 나쁘지 않았고 무엇보다 작품의 진정한 주인공인 저택의 비밀이 10년이 지난 지금도 생생히 기억날 만큼 독특해 그 점이 가장 마음에 든다.

 굳이 단점이라고 할 만한 점을 얘기하자면 저택의 평면도를 봤을 때 비밀의 정체를 눈치챌 만큼 정말 단순한 아이디어라는 것인데, 그 아이디어를 300페이지가 넘는 분량 동안 무시할 수 없는 복선을 통해 서서히 드러나게 만들었던 연출도 아이디어 못지않게 재밌었다. 어떤 사람들은 복선을 위해 우연이 남발됐다고도 말하지만 난 그 정도 우연 없이 어떻게 추리소설이 가능할까 싶어 괜한 트집이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든다. 결국 추리소설의 매력이란 불가사의한 범죄였다고 생각한 현상이 범인의 빈틈, 혹은 하늘이 훼방을 놓은 듯 범인이 범한 각종 실수를 통해 내막이 밝혀지는 데에 있다고 생각하므로 작품의 연출이 특별히 이상하다고 여겨지지 않았다.


 작품의 배경은 일본의 혼슈와 시코쿠 섬 사이의 내해인 세토내해에 속한 가상의 섬이며 시간 배경은 세토내해를 오가는 대교를 막 건설하던 즈음이다. 섬과 섬을 잇는 다리가 아닌 섬 위에 기둥을 박고 그 위에 건설되는 다리인데, 난 2018년에 갔던 마츠야마 여행 때 이 다리를 보려고 했지만 일정상 짬이 나지 않아 포기해야 했다. 그때 왜 그렇게 그 다리가 보고 싶었을까 그 이유가 기억나지 않았는데 이 작품을 다시 읽으니 아마 그 여행 몇 년 전에 이 작품을 읽은 기억이 나서 실물을 꼭 보고 싶었기 때문이 아니었을까 싶다.

 실제로 세토내해의 대교를 보고 싶은 한편으로 작중에 묘사되는 건물도 실제로 있음 얼마나 좋을까 하는 생각도 해봤다. 건축적으로 가능한 형태의 건물일지는 차치하고, 그런 건물이 있다면 관광 측면에서 정말 대단한 물건일 테니까 말이다. 작품 후반부에 건물의 비밀이 드러나면서 생전에 이 건물을 건축한 건축가의 스케일 큰 면모를 짐작하게 되면서 묘한 여운을 안겨주는 것도 인상적이었다. 섬과 섬을 잇는 것이 아닌 섬 위를 지나는 다리는 당시 사람들의 상식을 뒤흔들었지만 작중 등장하는 저택은 그보다 더한 아이디어로 맞서는 격이라 왠지 읽고 있다가 가슴이 웅장해지는 느낌마저 받았다. 그림 없이 글로 묘사된 것만으로도 작중 스케일 큰 풍경이 머릿속에서 생생히 그려졌다. 어떻게 보면 생각보다 시시하고 뜬금없던 범인의 동기보다 결말부에서 묘사된 풍경이 훨씬 압도적이었다고 볼 수 있다.


 특이한 저택을 무대로 의외의 완성도을 선보인 작품으로 이젠 절판돼 더 이상 쉽게 찾아볼 수 없게 됐다. 중고서점이나 도서관을 통해서 찾아볼 수 있을 텐데, 호불호는 갈릴 수 있어도 가벼운 추리소설만 쓴다는 작가의 선입견을 어느 정도는 뒤집을 만한 스케일을 가진 작품이라 관심 있는 분들은 읽어보길 바란다. 작가의 신작이 무려 7년째 국내에 소개되지 않고 있는데 이런 숨은 수작을 읽으니 작가의 시든 인기가 못내 아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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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니시에이션 러브
이누이 구루미 지음, 서수지 옮김 / 북스피어 / 2009년 1월
평점 :
절판


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9.7


 스포일러 강함


 예전에 소설과 영화로도 후기를 남겼고, 영화가 제법 흥행하기도 했고 그 인기에 힘입어 우리나라에도 <새콤달콤>이란 이름으로 영화화됐으니 스포일러 없는 후기를 간단히 남기려고 한다. 다시 읽은 <이니시에이션 러브>는 '반드시 다시 읽고 싶어지는 소설'이란 평이 무색하게 막상 다시 읽으니 전보다 밋밋하게 읽히는 작품이었다. 반전를 연출하는 기술적인 정교함과 대담함은 여전히 놀랍고 그 반전이 작품의 주제의식과 톱니바퀴처럼 맞물려 질문을 던지는 것도 대단하지만 정작 그 주제의식이 처음 읽었을 때만큼의 감흥이 일지 못했다.

 아무래도 첫사랑의 환희와 좌절의 과정은 사람이 성장함에 있어 통과의례적인 것일 수도 있다는 통찰은 지금에 와선 새삼스럽기도 했고 반전을 의식하며 읽으니 결말에 이르는 모든 과정이 유치하거나 뜸들이는 것처럼 느껴지더라. 1, 2부의 스즈키 모두 어떤 의미에서건 호감형 인물이 아니었던 터라 그들의 깨달음과 후회가 감정 이입이 덜 된 것일 수 있다. 차라리 어장관리녀라 욕을 먹는 마유가 관점에 따라선 지혜롭게 느껴지기도 했고, 그렇기에 속을 알기 힘들어 상상하는 재미가 있어 내겐 더 흥미로운 캐릭터로 다가왔다. 물론 어디까지나 소설 속 캐릭터기에 흥미롭다는 것이지 현실에서 여자친구가 저런다고 생각하면 배신감에 식음을 전폐할 테지만...


 연출에 대해 아쉬운 부분이 아주 없는 것은 아니었다. 비호감이긴 해도 양다리를 걸치는 과정에서 겪는 내적 갈등을 알 수 있던 2부의 스즈키와 다르게 마유는 얼마나 내적 갈등을 했는지 여부는 반전을 극대화한 작가의 연출에 의해 전혀 알 수 없으므로 조금 혼란스럽기도 했다. 완성도 있는 작품이지만 두 번 읽다 보니 여러 질문이 떠오르는 건 어쩔 수 없는 일인 것 같다.

 아무튼 작중에서 마유가 당한 수모가 있기에 적어도 2부의 스즈키에겐 한 방 제대로 먹여줬다고 생각돼 혼란스럽긴 해도 여전히 통쾌하기 이를 데 없는 반전이었다. 우리나라 영화에서 마유 역할을 누가 연기했을지 모르겠지만 이 캐릭터가 좀 더 매력적으로 재해석됐다면 찾아볼 의향이 있다.


 끝으로 작품에서 나오는 '통과의례'란 단어를 읽고 떠오르는 질문을 간략하게 적어보도록 하겠다. 사랑이란 전부 통과의례적인 것일까, 아니면 통과의례적인 사랑도 있는 것일까? 전자는 사랑에 대한 환멸을, 후자는 그래도 희망을 가져봄직한 질문인데 난 어느 쪽으로도 결론을 내놓지 못하겠다. 내가 지금 얘기할 수 있는 것은 사랑에 크게 좌절하면 심신이 다 무너지는 것도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라는 것뿐이다...

 그렇다 보니 이 작품의 후일담이, 정확히는 마유와 1부의 스즈키의 행보가 궁금해졌다. 둘은 결실을 맺을 것인가, 아니면 마유는 또 양다리를 걸칠 것인가. 만약 그 여부에 따라 사랑에 대한 해석이 달라질 텐데 이 또한 사람마다 의견이 분분할 듯하다. 나는 그래도 마유가 2부의 스즈키에게 상심이 큰 나머지 1부의 스즈키로 갈아탄 것이었고 이번엔 그 둘이 잘 살아가기를 바라는데, 너무 낙관적이고 순진한 바람일까? 모르겠다. 이런 생각이 든 적은 처음인데 그냥 그렇게 믿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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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죽인 사람 나를 죽인 사람
히가시야마 아키라 지음, 민경욱 옮김 / 해피북스투유 / 2019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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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0



 <류>를 읽고 푹 빠진 작가 히가시야마 아키라의 다른 작품 <내가 죽인 사람 나를 죽인 사람>을 읽었다. 그것도 무려 작품의 주요 배경인 타이베이 여행 때 읽었다. 삼총사가 브레이크댄스를 연마했던 시먼과 셋이 중요한 일을 결정할 때 방문하곤 했던 룽산사 근처에 숙소를 잡아놨는데, 덕분에 소설의 내용이 더욱 실감나게 다가왔다. <류>와 비교하자니 아무래도 2% 부족했지만 현지에서 읽었기에 오래도록 기억에 남을 듯하다.

 작품에서 흥미로운 부분은 작가 스스로도 이 이야기가 독자들에게 연쇄살인범을 미화하는 것으로 읽힐 것을 알고 있다는 것이었다. 요즘 너무나 이해할 수 없는, 아니 이해해서도 안 되는 범죄 때문에 세상이 전보다 흉흉해졌구나 느끼는 와중이라 이와 같은 작품의 색채는 다소 거부감이 들기도 했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름다운 건 아름다운 것이다' 하고 밀고 나가는 작가의 태도에 결국은 수긍하게 되는 스스로를 발견할 수 있었다. 교훈을 준다기보단, 혹은 통쾌한 반전이나 인과가 딱 맞아떨어지는 스릴러도 아니지만, 삼총사의 우정과 그 우정이 뒤틀리게 되는 사건과 아이러니한 결말 등은 적잖은 여운을 안겨줬다. 다시 말하지만 <류>에 버금갈 정도는 아니나 두 작품을 다른 순서로 읽었다면 다른 인상을 받았을 수도 있다.


 정체성에 큰 혼란을 겪는 주인공이 일본과 중국으로 가서 스스로의 문제를 해결하던 <류>와 비슷한 듯 다른데, 이 작품에선 그 이상의 심각한 외상을 입은 주인공이 대만에서 미처 해소하지 못한 문제를 엉뚱하게 미국에서 풀어버리는 양상을 띄고 있다. 현실과 픽션을 막론하고 항상 이렇게 이해할 수 없는 범죄의 이면을 접할 때면 늘 범죄자들이 자신의 상처를 치유할 번지수를 잘못 찾았도 한참 잘못 찾았다는 인상을 지울 수 없다.

 특히 이 작품의 경우엔 특정 인물에게 과거의 어떤 사건의 인과나 책임을 따지기 까다로워 어떻게 하면 범인이 살인자로 전락할 수 없음을 방지할 수 있었을까 하는 질문에 뾰족한 답이 나오지 않아 더욱 답답하다. 작품을 다 읽은 지금도 이 작품이 아름답고 슬픈 이야기임은 부정하기 어렵고 살인범의 딱한 과거를 살펴보고 연민을 유발하는 것에 성공한 작품인 건 인정하겠으나, 딱 거기까지인 작품이었다. 여운은 있지만 교훈은 없는, 요즘처럼 이해 못할 살인이 범람하는 세상에선 약간은 공허하게 다가올 마무리였다.


 작가의 작품이 국내에 <류>와 함께 딱 두 작품만 소개됐는데 앞으로도 더 소개되길 바란다. 소개되는 텀이 길어 조금 불안하지만 문장력과 분위기가 압도적인 작가인 터라 앞으로 소개될 작품도 기대된다. 대만 여행을 계기로 아주 좋은 작가를 알게 돼 기쁘기 그지없고 다음에 대만에 여행갈 때 이 작가의 책을 또 가져갈 생각이다. 역시 소설의 실제 배경 속에서 읽으니 더 몰입이 잘 되더라. 흔치 않은 분위기와 배경, 그리고 작품 세계를 가진 작가이기에 간만에 여행 중임에도 호텔이나 비행기에서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읽었다.

지금 돌이켜보면 그것은 모든 실패와 모든 후회가 탄생한 빛나는 순간이었다. 어차피 우리는 열세 살로, 브레이크댄스와 도둑질의 연장선 위에는 살인도 있었다. - 179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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