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택섬
히가시가와 도쿠야 지음, 권일영 옮김 / 폴라북스(현대문학) / 2011년 4월
평점 :
품절


8.8


 한때는 완성도와 무관하게 정말 우후죽순 소개됐던 히가시가와 도쿠야의 작품을 오랜만에 읽었다. 많은 사람들이 모르지만 <저택섬>은 작가의 작품 중 국내에 처음 소개된 작품인데 나는 그 당시에 출간되지마자 읽었던 기억이 난다. 개인적으로 너무 시리즈화돼서 뒤로 갈수록 감흥이 떨어진 '수수께끼 풀이는 저녁식사 뒤에' 보다 이 작품이 더 좋았다. 호불호는 갈리지만 유머나 형사와 탐정인 두 주인공의 캐미도 나쁘지 않았고 무엇보다 작품의 진정한 주인공인 저택의 비밀이 10년이 지난 지금도 생생히 기억날 만큼 독특해 그 점이 가장 마음에 든다.

 굳이 단점이라고 할 만한 점을 얘기하자면 저택의 평면도를 봤을 때 비밀의 정체를 눈치챌 만큼 정말 단순한 아이디어라는 것인데, 그 아이디어를 300페이지가 넘는 분량 동안 무시할 수 없는 복선을 통해 서서히 드러나게 만들었던 연출도 아이디어 못지않게 재밌었다. 어떤 사람들은 복선을 위해 우연이 남발됐다고도 말하지만 난 그 정도 우연 없이 어떻게 추리소설이 가능할까 싶어 괜한 트집이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든다. 결국 추리소설의 매력이란 불가사의한 범죄였다고 생각한 현상이 범인의 빈틈, 혹은 하늘이 훼방을 놓은 듯 범인이 범한 각종 실수를 통해 내막이 밝혀지는 데에 있다고 생각하므로 작품의 연출이 특별히 이상하다고 여겨지지 않았다.


 작품의 배경은 일본의 혼슈와 시코쿠 섬 사이의 내해인 세토내해에 속한 가상의 섬이며 시간 배경은 세토내해를 오가는 대교를 막 건설하던 즈음이다. 섬과 섬을 잇는 다리가 아닌 섬 위에 기둥을 박고 그 위에 건설되는 다리인데, 난 2018년에 갔던 마츠야마 여행 때 이 다리를 보려고 했지만 일정상 짬이 나지 않아 포기해야 했다. 그때 왜 그렇게 그 다리가 보고 싶었을까 그 이유가 기억나지 않았는데 이 작품을 다시 읽으니 아마 그 여행 몇 년 전에 이 작품을 읽은 기억이 나서 실물을 꼭 보고 싶었기 때문이 아니었을까 싶다.

 실제로 세토내해의 대교를 보고 싶은 한편으로 작중에 묘사되는 건물도 실제로 있음 얼마나 좋을까 하는 생각도 해봤다. 건축적으로 가능한 형태의 건물일지는 차치하고, 그런 건물이 있다면 관광 측면에서 정말 대단한 물건일 테니까 말이다. 작품 후반부에 건물의 비밀이 드러나면서 생전에 이 건물을 건축한 건축가의 스케일 큰 면모를 짐작하게 되면서 묘한 여운을 안겨주는 것도 인상적이었다. 섬과 섬을 잇는 것이 아닌 섬 위를 지나는 다리는 당시 사람들의 상식을 뒤흔들었지만 작중 등장하는 저택은 그보다 더한 아이디어로 맞서는 격이라 왠지 읽고 있다가 가슴이 웅장해지는 느낌마저 받았다. 그림 없이 글로 묘사된 것만으로도 작중 스케일 큰 풍경이 머릿속에서 생생히 그려졌다. 어떻게 보면 생각보다 시시하고 뜬금없던 범인의 동기보다 결말부에서 묘사된 풍경이 훨씬 압도적이었다고 볼 수 있다.


 특이한 저택을 무대로 의외의 완성도을 선보인 작품으로 이젠 절판돼 더 이상 쉽게 찾아볼 수 없게 됐다. 중고서점이나 도서관을 통해서 찾아볼 수 있을 텐데, 호불호는 갈릴 수 있어도 가벼운 추리소설만 쓴다는 작가의 선입견을 어느 정도는 뒤집을 만한 스케일을 가진 작품이라 관심 있는 분들은 읽어보길 바란다. 작가의 신작이 무려 7년째 국내에 소개되지 않고 있는데 이런 숨은 수작을 읽으니 작가의 시든 인기가 못내 아쉽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