찬란하게 47년 - 아름다운 게이, 홍석천 지랄발광 에세이
홍석천 지음 / 스노우폭스북스 / 2017년 5월
평점 :
품절


5.0






 가장 존경하는 사람이라고 하면 몇 명 있긴 한데 그 중 한 명이 바로 홍석천이다. 인정하건 인정하기 싫건 그는 분명 태생적인 다름이 있음에도 사회적으로 성공할 수 있다는 걸 몸소 보여준 사람이기 때문이다. 그의 사업 감각이나 미적 감각이 그 태생적인 다름에서 기인한 것일 수도 있겠으나 그의 노력, 삶에 대한 믿음과 실천이 없었더라면 이렇게 독보적인 행보를 걸을 순 없었을 것이다. 때문에 개인적으로 방송에 나오면 괜히 반갑고 그의 유머나 맨트에 꽤 귀를 기울이기도 한다.

 <찬란하게 47년>은 홍석천 스스로가 스스로의 삶에 대해 적은 책인데 다른 나라도 아니고 우리나라에선 홍석천이 누군지 모르고 이 책을 집을 독자는 없을 것이다. 하지만 우리는 누구나 그를 안다고 생각해도 어디서도 말하지 않은 그만의 이야기가 또 있을 거라 생각해 한 번 큰 마음 먹고 찾아봤다. 그렇게 생각하고 읽은 것치곤 어딘가 방송에서 다 한 번씩 얘기했던 내용들이 테마에 맞게 열거돼서 읽기 지루했고 또 전문 작가가 아닌 터라 문체의 흡입력이 약했는데 - 고스트 라이터를 안 썼던 걸까. - 어찌 됐든 저찌 됐든 무난한 수준이라 어느 정도 감안할 순 있었다.


 군대 있을 때 군인들 읽으라고 병영 도서가 많이 들어와 종종 읽었는데 - 소설도 있지만 자기계발서가 훨씬 많다. - 개중 연예인이 쓴 책도 몇 권 읽긴 했다. 기억하기론 김병만, 손미나, 배두나의 책을 읽었었는데 특별한 테마가 없고 그냥 인생 이야기를 풀어놓은 책이라면 방송의 연장 선상이라 읽는 맛이 덜했던 기억이 난다. 그런데 왜 난 이번에도 같은 우를 범한 걸까. '우'라고 표현할 만큼 후회되는 독서는 아니었지만 책에서 저자가 말하는 내용이 나쁘진 않음에도 생각보다 실속이나 특이점이 없는 글귀가 많아서 가독성만 있었지 실은 지루한 글이 아닐 수 없었다. 단적으로 말해 책 안 봐도 홍석천이 출연했던 방송을 찾아보는 게 더 재밌고 유익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던 것이다.

 아무래도 내가 작가를 존경하는 마음에 기대가 지나치게 컸던 것 같다. 연예인이 쓴 책은 각별히 주의를 해야겠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그로테스크
기리노 나쓰오 지음, 윤성원 옮김 / 문학사상사 / 2005년 11월
평점 :
구판절판


9.3







 우린 흔히 남자와 여자 사이엔 신체 말고도 또 다른 근본적인 차이가 있다고 생각한다. 성격에 국한해서 말할 것 같으면 남자는 폭력적이고 여자는 상냥하다는 것, 보통 우린 폭력성 역시 성별의 구분에 따라 정도가 달라진다는 이미지를 별로 의심없이 공유한다. 그런데 과연 그럴까? 오랜만에 기리노 나쓰오의 소설을 읽은 나는 간만에 여자의 하드함을 맛봤다.

 기리노 나쓰오의 작품을 오랜만에 집었다 보니 너무 긴장 않고 가볍게 펼쳐든 것 같다. 제목이 무려 그로테스크인데. 일반 명사 하나로만 이뤄져 있는 제목은 조심해야 한다. 이 작품의 경우엔 정말이지 그로테스크의 정수를 보여주니까 말이다. 기리노 나쓰오는 내가 아는 여성 작가 중 가장 하드한 작가인데 이건 그 중에서도, 작가의 대표작인 <아웃>보다 하드했다.


 하드하면 그냥 하드한 것이지, 여자의 하드함은 또 무엇이냐고 생각할 사람도 있을 것 같다. 내가 강조하고 싶은 건 작중에서의 모든 강렬한 묘사는 분명 여자가 아니면 쓰기 힘들다는 것이다. 가족에서부터 시작해 학교, 직장으로 환경이 변해가면서 발전하고 변해가는 인물들의 심리 묘사는 하나같이 폭력적이고 읽는 이로 하여금 짙은 스트레스를 느끼게 한다. 작가의 스타일이 성별에 구애될 리 없다고 생각한 사람은 한 번 이 작품을 읽어보길 권한다. 놀랍게도 엄청나게 하드하지만 틀림없이 여자가 아니면 쓸 수 없으리란 확신을 갖고야 말 것이다.

 낮에는 대기업에 출근하지만 밤에는 매춘을 해 일본 전국을 놀라게 했던 '도쿄전력 여사원 매춘 살인사건'을 기리노 나쓰오만의 예리함으로 묘파해낸 이 작품은 어중간한 각오로 읽을 만한 소설은 아니었다. 주요 인물 전부가 제정신이 박혔다곤 볼 수 없으며 특히 주된 화자인 '나'가 신뢰할 수 없는 화자이기 때문에 소설이 전체적으로 의심에 의심을 거듭하며 읽어나갈 수밖에 없었다. 이렇게 매스꺼운 내용에 매스꺼운 진행으로 이루어진 작품이지만 신기하게도 다음이 너무나도 잘 읽힌다. 사건의 인과나 향후 전개가 비교적 명확하고 여기서 더 어떻게 전개해나감에 따라 사건이 해결된다거나 반전될 기미는 없어보이지만 독자들의 궁금증은 해결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이들은 어쩌다 이 모양 이 꼴로 망가졌단 말인가?


 괴물 같이 아름다운 여동생에게 악의를 품는 '나'와 그런 언니의 질투와 더불어 주변의 환심과 남자들의 성욕까지 한 몸에 받았던 첫 번째 피해자 유리코, 이지메를 공부로 극복하는 '나'의 동급생 미쓰루와 아버지의 세뇌에 의해 노력하는 삶에 집중하느라 현실 인지 능력은 결여된 비웃음 어린 삶을 사는 또 다른 '나'의 동급생이자 두 번째 피해자 가즈에. 소설은 거기에 유리코와 가즈에를 살해한 중국인 불법 체류자 장제중의 사연까지 꽤나 폭넓은 심리 묘사를 선보인다. 이중 다섯 번째 인물인 장제중의 회한은 좀 쌩뚱맞았는데 개별적인 스토리의 완성도를 논하기에 앞서 중국이라는 배경이 뜬금없는 데다 - 작가의 취향인 듯. 누가 하드보일드 작가 아니랄까봐. - 과거 이야기도 다른 등장인물에 비해 다소 동떨어진 상처를 얘기하고 있는 터라 옥의 티가 아니었나 싶다. 에필로그에 해당하는 '나'의 결말과 마찬가지로.

 이 작품의 음습하고 첨예한 인물 심리 묘사의 대단함에 대해선 아무리 떠들어봤자 직접 읽기 전엔 실감도 제대로 안 날 것 같아 찬사는 이쯤 해두고, 대신 바로 윗문단에서처럼 아쉬운 점을 들고 글을 마치면 될 것 같다. 이 작품의 결말은 사족은 아니지만 막장이라 뒷맛이 크게 찝찝했다. 사실 처음부터 거북했어도 다음이 궁금해 계속 읽어나갔지만 이러다간 결말이 제대로 된 꼴로 날 리가 없겠다는 짐작이 들긴 했다. 문체도 꼭 '나'가 뭔 일 저질러서 진술하는 듯한 투라서 더욱 그렇게 예상됐다. 더구나 매춘에 상처를 받기는 커녕 오히려 매춘을 일탈이자 모험이라는 둥 마치 쾌락처럼 여기는 캐릭터가 적어도 둘 씩이나 있어서 익숙해진다 싶다가도 얼굴이 많이 일그러졌다.


 소설이 절대적인 선이나 희망만을 얘기해야 된다는 법도 없고 오히려 우리가 일반적이라고 생각하고 무비판적으로 수용하는 가치에 대해 의문을 제기하고 특정 인물의 개성에 기대 다양한 가치관에 대해 얘기하는 게 오히려 더 의미있고 재밌다고 생각해 그런 소설을 찾아 읽는 편이었다. 어떻게 보면 기리노 나쓰오의 소설도 그런 이유에서 찾아 읽는 것이었다. 하지만 이 소설의 결말은 그런 나를 비웃기라도 하듯 나에게 감당할 수 없는 당혹스러움과 찝찝함을 안겨줬다. 설마 이 정도일 줄은.........

 기리노 나쓰오가 쓴 작품이고 '이 미스터리가 대단하다 best 10' 랭킹에도 올라가 추리소설이나 범죄소설일 것 같지만 실상 전개 양상이나 관점은 전혀 다르다. 외모, 가정, 부모, 성격 등 각기 선천적으로나 혹은 후천적으로도 다른 환경에 처한 여성들이 어떻게 망가지고 설령 환경이 달라도 어떻게 같은 비극을 맞이하는가에 대해 묘파하는 소설이다. 묘파는 소설의 표지에 적힌 출판사의 코멘트에 들어간 단어인데 그렇게 어울릴 수 없다. 이 작품은 여자의 어두운 면을 남김없이 밝혀버리기 때문이다. 그래서 힘들지만 한편으론 대단히 인상적일 수밖에 없었다.

그렇다면, 여자로서는 남자라는 우군밖에 만들 수 없는 것일까? - 488p




어째서 여자만 이 세상에서 제대로 살아나갈 수 없는지 모르겠어.

간단해. 망상을 가질 수 없으니까. - 554p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자유로운 삶 2
하 진 지음, 왕은철 옮김 / 시공사 / 2014년 4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8.3








 아직 작가의 전 작품을 읽지 못했지만 가장 좋아하고 존경하는 작가로 하진을 꼽곤 한다. 중국에서 태어나 영문학을 공부하기 위해 미국에 갔다가 자국의 천안문 사태 소식을 듣고 절망해 그대로 미국에 살게 됐다는 하진은 이민자로서 외국어로 글을 쓰게 된다. 그런 그에게는 천부적인 감각이 있는지, 아니면 부던히 노력한 덕분인지 짧고 간결하고 쉽고도 쉽고도 쉬우면서 품위 있는 문장을 구사해 읽을 때마다 감탄하고 만다. 외국어로 소설을 쓴다는 건 정말 말로만 쉬운 일이다. 난 소설을 읽을 때 문장 하나하나까지 세심하게 읽는 편은 아니고 하진의 문장이 정독이 요구될 만큼 미학적이진 않지만 읽을 때마다 참 본받고 싶은 문장이란 생각이 절로 든다. 영미권, 특히 미국 문학의 투박함과 중국 문학의 우아함이 혼합됐기 때문일까? 일전에 난 작가의 단편집 <멋진 추락>을 읽고 '외국에서 먹는 한식'이란 비유를 했는데 이 작가의 경우에는 정말 맛있는 '외국에서 먹는 한식'이 아닐 수 없다.

 하진은 그간 영어로 하여금 중국의 이야기를 썼는데 <자유로운 삶>이란 작품을 기점으로 미국에도 시선을 돌렸다고 한다. 미국, 그 중에서 자신과 떼려야 뗄 수 없는 이민자들의 사회에 말이다. 다른 사람도 아닌 하진이라면 이민자 사회에 대한 남다른 통찰이 있을 터다. 그래서 이 1,000페이지 가량의 소설을 읽는 게 그렇게 두렵지 않았다. 아니나 다를까 작가의 작품답게 금방 읽히고 실제로 적잖은 생각과 감동을 안겨줬다. 하지만 이렇게 길 필요가 있었나 하는 생각도 지울 수 없었다.


 작가는 서문에서 아니라고 했지만 어쩔 수 없이 이 작품은 작가의 자전적인 이야기로 읽힐 수밖에 없다. 주인공 난 우도 마찬가지로 작가의 분신이란 생각이 안 들 수 없고. 이에 대해 작가는 자신은 난 우에 비하면 운이 꽤 편이라고 했는데 역자 후기에 적힌 내용을 보면 마냥 그렇지도 않은 것 같다. 중국 정부가 입국을 허락하지 않아 친모의 장례식에도 참석하지 못한 작가의 처지에 주목하면 난 우와는 우열을 가릴 수 없는 아픔의 결이 있는 것 같다. 이렇게 역자 후기를 읽고나선 작가와 주인공이 별개의 인물임을 알 수 있었는데, 그 전엔 딱히 그런 생각이 들지 않았다. 왜냐하면 이 소설은 너무나도 디테일하기 때문이다.

 작품은 극적이면서도 일상적이다. 난 우가 아내와 아들과 함께 미국에서 힘겹게, 때론 도움도 받아가고 차근차근 안정을 찾아가지만 마음 어딘가가 허전한 이야기를 담고 있다. 이야기와 인물의 행복에 깊이 관여한 키워드는 바로 자유다. 주인공이 고국을 등지고 미국에 살게 된 건 자유 때문이나 다름없다. 국가에 종속되지 않은 채 부패하지 않은 국가에서 개인이란 주체로서 살아가는 것, 이 작품을 읽으면서 작가가 주창하는 자유란 그런 게 아닐까 싶다. 난 우는 그런 자유를 손에 넣기 위해 열심히 살지만 아무리 절망하고 또 아무리 안정적인 삶을 살고 있어도 생각만큼 자유롭지 못하다는 느낌을 받는다. 왜 그런 걸까? 그 이유는 그가 중국인임에도 타지에서 자유를 찾으려는 아이러니에서 발견할 수 있다.


 중국에 대해서 무지하긴 하지만 그 나라 사람들이 자뻑이 심한 한편으로 자국에 대해 비판적인 사람도 많다는 건 알고 있다. 하지만 체제 때문에 비판적인 목소리는 강제로 수그러지는 사회인 것도 어렴풋이 들어서 알고 있었다. 작중에선 타국에 살면서도 여전히 자의로든 타의로든 중국의 그늘에 가려진 이민자들이 많이 등장한다. 난 우도 별반 다르지 않다. 그는 중국어로 글을 쓰는 것에 더 이상 미련도 없을 정도라 시를 쓰는 것을 포기했고 나중에 시간이 오래 지나 펜을 다시 잡을 때도 영어로 글을 쓰는 사람이다. 이렇게 중국을 등지려는 그의 모습에 미국내 중국인 이민자 사회의 사람들은 비웃고 경멸하길 서슴지 않는다. 난 우도 강단이 있는 인물이지만 자신의 출신과 현재 살고 있는 미국이란 장소 사이의 괴리 때문에 그 고립이 반갑지만은 않다. 이는 타인에 대한 고립이자 자기 스스로의 본심을 고립시키는 것이기 때문이다. 틈만 나면 자학적인 언행을 보이는 그를 보면 그 내면의 고통이란 게 충격적인 수준이란 것을 짐작할 수 있다.

 작중의 중국과 미국에 대한 인식은 전적으로 작가가 가지고 있던 정치적 견해에 기반한 것이므로 약간 불편함을 느낄 사람이 있을지도 모르겠다. 나로 말할 것 같으면 작가나 난 우의 의견에 적잖이 공감했는데, 국가가 국가를 위해 개인에게 자유를 우선하지 못하게끔 한다면 무구한 역사가 있건 국민의 수가 얼마나 되건 어딘가 잘못 돌아가고 있는 것이라고 나 역시 동감했다. 지금 이 자리에서 특정 나라를 부정할 생각은 없지만 난 우의 고통을 무려 1,000페이지 동안 접했기에 내 의견을 감히 얘기하지 않을 수 없다.


 작가의 자전적인 얘기이자 가장 잘 쓸 수 있는 얘기일 것 같아 읽기 전에 기대를 좀 했는데 생각보다 너무 디테일해 깜짝 놀랐다. 중간엔 비슷비슷한 내용이 반복된다고 느껴질 정도로. 책의 뒷표지에 '두 걸음 나아갔다 다시 한 걸음 물러서는'이란 표현이 정확히 들어맞는 전개였다. 길고 디테일한 전개 덕분에 주인공 내면에 대한 이해는 넘칠 정도로 가능했는데 일상적이고 게다가 쉽고도 쉬운 문체도 계속 이어졌기 때문인지 어느 순간부턴 집중력이 점점 떨어지기도 했다. 위에서도 말했지만 아무래도 분량이 너무 길었다는 생각이 들지 않을 수 없었다. 하지만 동병상련의 원리에 따른다면 이 부분엔 그다지 동의 못할 사람도 있을 것 같다. 사람에 따라선 짧다고 느낄 사람도 있지 않을까 싶다.

 내가 생각하는 자유란 국가에 지배되지 않는 삶이다. 그런 측면에서 제아무리 길고 지루했어도 일단 이 작품은 좋은 이야길 담고 있었고 아직은 다소 생소한 중국과 중국인에 대해 진지하게 얘기하고 있다는 점에서 큰 의의를 가진 작품이라 할 수 있다. 어떻게 보면 하진의 작품 중 가장 중국을 많이 얘기하는 작품이었는데 덕분에 이웃 나라에 보다 관심이 생기기도 했다. 기회가 닿는 즉시 작가의 작품은 물론이고 다른 중국 문학도 읽어봐야겠구나 싶었다. 사실 개인적으로 중국이란 나라를 그렇게 좋아하지 않았지만 말이다. 작품의 어떤 인물의 말을 빌리자면 국가와 인민을 따로 본다는 것이다. 나라와 사람은 많이 다른 것이지 않은가. 문화도 마찬가지다.

애국에 관한 헛소리는 작작해요. 애국주의는 당국이 휘두르는 마지막 회초리니까. 그들은 자기들이 좋아하지 않는 사람들을 그걸로 때리죠. - 1권 161p




자유란 그것을 활용하는 법을 모르면 의미가 없는 거죠. - 1권 214p




내 인생이 엉망이 될지도 몰라요.

그건 흔한 일이죠. - 2권 144p




그래요, 독불장군이 되겠다는 거겠죠.

맞아요!

제가 말하고자 하는 건 무엇보다 우리가 품위 있는 인간이 되어 다른 사람들과 우리 자신에게 공정하고 정직해야 한다는 것뿐입니다. - 2권 253p




그는 아무것도 이루지 못하고 삶을 허비하고 다른 사람들의 눈에 조롱거리가 되는 위험을 감수해야 했다. 궁극적으로 그는 돈을 버는 것이 아니라 실패할 각오를 하고 시를 쓰는 데 전념할 정도로 용감해져야 했다. - 2권 436p




시인의 작품은 늘 시인보다 좋아야 한다. 그것이 글을 쓰는 이유다. - 2권 449p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악스 킬러 시리즈
이사카 고타로 지음, 김해용 옮김 / 알에이치코리아(RHK) / 2018년 6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8.5






 책을 고를 때 신작이라고 집는 경우는 거의 없는데, 이 책의 경우에는 출간 기념으로 작가가 방한해 작가 초청회까지 가진다기에 부리나케 산 작품이었다. 초청회 당첨 문자가 너무 늦게 와서 이 책을 한 글자도 읽지 못한 채 초청회에 가야 했지만 이 책 덕분에 작가가 한국까지 왔으니 불만이 생길 수가 없다. 다른 사람도 아니고 이사카 코타로라니, 나중에 직접 대면해 사인을 받을 때는 전에 없이 가슴이 콩닥거렸다. 학교를 째길 잘했지.

 이 작품의 전작이랄 수 있는 '킬러' 시리즈의 작품들은 한 권도 못 읽어서 알게 모르게 진입하기 부담스러웠는데 초청회 때 얘기길 들어보니까 딱히 시리즈 전체를 크게 관통하는 스토리는 없다 하니 부담없이 펼칠 수 있었다. 작품의 초반 에피소드의 주요한 위트나 문장들은 초청회에서 스포를 당하긴 했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미리 읽지 않은 내 잘못이 크다. 게다가 위트가 전부이거나 결정적인 작품은 또 아니라서 작품을 다 읽을 즈음엔 초청회가 스포일러를 조심하려고 최선을 다했다며 은근 감탄하기도 했다.


 솔직히 설정만 놓고 봤을 땐 이사카 코타로의 작품치곤 평범하단 생각이 딱 들었다. 킬러 주인공이 가족이 생기고 나이가 들면 으레 업계에서 발을 빼고 싶어하는 법인 것 같고 업계에서 전설적인 실력을 가진 킬러라지만 집에선 아내의 말에 긴장하며 살아간 나머지 아들의 동정도 받는 아이러니하고 코믹한 설정도 처음엔 그렇게 흥미롭진 않았다. 물론 작가가 내공이 탄탄해서 이런 아이러니함을 대놓고 우스꽝스럽거나 과장되게 그리지 않고 오히려 비슷한 처지의 사람이라면 격하게 고갤 끄덕일 정도로 현실적이고 적당히 웃프게 그려서 픽션의 형식을 취했지만 알고 보니 작가 본인의 이야기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초청회 때의 기억을 더듬자면 아마 자기 담당 편집자의 상사가 공처가인 것에 착안을 얻은 캐릭터 설정이라는데 어찌 됐든 새삼 작가의 내공이라는 게 자연스러운 묘사로써 드러난다는 것이 못내 인상적이었다.

 5개의 단편으로 이루어진 이 연작 소설집은 킬러가 일과 가족 사이에서 방황하다 고심 끝에 은퇴를 현실화시키려 하자 위협을 받는 이야기로 발전하게 된다. 으레 예상되는 수순이긴 하지만 디테일한 부분에 있어선 상술했듯 이사카 코타로가 보통 내공의 작가가 아님을 여실히 느낄 수 있었다. 특히 두 번째 소설 'BEE'에서 벌집을 제거하는 장면에서 자기가 그간 저지른 살인의 무게를 통감하는 심리 묘사는 잊혀지질 않는다. 그도 그럴 것이 작품 내에서 가장 일상적이고 스케일이 작은 사건이거늘 어떻게 보면 가장 박진감 넘치는 한편으로 감정 이입도 되면서 주인공의 용서 받을 수 없는 처지가 서글프게 다가왔기 때문이다. 자기 딴에는 무자비한 살인을 하지 않으려고 노력했겠지만 결국 살인을 업으로 살아온 사람이 가정도 이루고 어느 정도 화목하게 지내는 건 자칫 기만에 가까운 설정일 수도 있었다. 하지만 이런 논란을 인물의 다단한 심리를 들춰냄으로써 세상은 빛과 어둠으로 이분시켜 바라보기엔 복잡하다는 이치를 다시금 상기시켜 주인공과 작품의 매력을 어필하는 데 성공하지 않았나 싶다.


 작가의 작품을 생각보다 많이 읽어서 아무래도 이 작품과 비교할 수밖에 없었는데, 엄밀히 말하면 이전만큼 신선하거나 골 때리게 엉뚱하기 보단 차분함이 돋보였고 연출에 있어서도 마지막 단편인 'FINE'도 교차 서술을 이용하는 것에 비해 무언가 쾌감이 덜해 전체적으로 무난한 작품이란 생각이 들었다. 물론 스토리의 디테일이 뛰어나 큰 틀에서 보면 식상해 보이는 이야기도 마냥 식상하게 읽히지 않았고 오히려 휴머니즘이 지극해서 괜히 감동적이라 가슴이 먹먹하기까지 했다. 때문에 작가를 존경하는 나의 마음 역시 특별히 변화의 조짐은 없어 보인다. 하지만 그럼에도 아직 목이 마르다는 얘기는 한 번쯤 해둬야 할 것 같다. 작가에게 뭐라 그러는 게 아니라, 순전히 허튼 팬심으로 하여금 좋아하는 작가의 작품을 전부 미화하지 않으려는 나만의 다짐 같은 것이다. 그래서 요점이 뭐냐면, 삘이 꽂힌 김에 작가의 다른 작품도 읽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는 것이다. 그래야 갈증이 해결될 테니.

 

 

누군가를 비난할 때도 누군가를 옹호할 때도 공정하자고 생각하라고. - 48p




남편에게 잘못을 지적당하고 기뻐할 아내는 없다. - 88p




이 세상에서 벌어지는 불행 중 대다수는 가족이나 가까운 사람 사이에서 생긴다. - 93p




부모라는 사람들은 늘 아차, 하고 생각하는 법이야. - 94p




"튀는 일이라는 게 뭔가요. 여둡다는 건 그저 조용히 일상을 즐길 수 있다는 뜻이에요." 밝은 성격이라고 스스로를 평가하는 인간이 걸핏하면 다른 이를 끌어들이지 않고는 인생을 즐기지 못하는 경우를 풍뎅이는 알고 있었다. - 177p




온갖 무기나 흉기를 사용하고 또 상대해 온 풍뎅이 입장에서 보자면, 최종적으로 싸움을 방지하는 데 필요한 건 ‘신뢰‘라고 생각한다. - 199p




물든 안 물든 모기는 때려잡을 필요가 있다. 물리고 나서는 늦기 때문이다. - 224p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엠마 10
모리 카오루 지음 / 대원씨아이(만화) / 2013년 12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7.8






 이 만화는 알라딘 중고서점에서 대원씨아이가 아닌 북박스에서 출판한 버전의 1권을 싸게 구입한 걸 계기로 읽게 된 작품이다. 북박스란 출판사가 지금은 없는지 같은 판형과 가격의 후속권들이 모조리 절판된 상태라 알라딘 중고서점에 재고가 언제 들어오는가 유심히 살펴볼 수밖에 없었다. 사실 그냥 대원씨아이에서 나온 신형을 구매했으면 그만이었지만 구형에 대한 나의 고집 때문에 완독하는데 제법 시간이 걸렸는데... 왜 그토록 이 만화를 끝까지 읽으려 했는가 물어본다면 당연히 결말이 궁금했기 때문이라고 대답할 수밖에 없다. 막상 다 읽으니까 신분 차이의 갈등과 비극을 차용한 전형적인 신데렐라 스토리인데다 흔히 말하는 사건의 위기 또한 너무 싱겁게 그려지고 끝나서 김새긴 했지만.

 사람들은 모리 카오루의 데뷔작인 이 작품을 두고 경지에 오른 작화라며 데뷔작이라기엔 지나치게 뛰어난 성과를 보였다고 말한다. 일반적으로 말하는 화려하고 예쁘기만 한 그림체와는 결이 달랐는데 매번 그림을 볼 때마다 장인 정신과 더불어 정말이지, 메이드와 당시 영국의 시대를 거의 흠모하다시피 빠져든 작가가 자기 로망을 제대로 실현하는구나 싶어 헛웃음이 나다가도 부럽기도 했다. 좋아하는 걸 하는 사람은 부럽기 마련이다.


 처음엔 스토리가 정말 흥미진진해서 다음 권을 꼭 봐야겠다고 생각했다. 단순한 이야기긴 한데, 사랑에 빠진 두 남녀 사이엔 일개 메이드와 존슨 가문의 장남이라는 신분의 격차가 있어 초장부터 이 둘의 사랑은 부정당한다. 그도 그럴 것이 배경이 무려 20세기도 안 된 영국이다. 시대는 산업화의 일로를 걷고 있지만 아직 신분의 차이에 따른 사람들의 사고는 크게 달라지지 않았던 것이다. 그래서 당시 귀족의 모습은 지금 우리가 보기엔 우스꽝스러울 정도로 전근대적인 구석이 있는데, 가령 사교를 위해 여자는 치장을 하고 사랑의 여부를 떠나서 신랑감을 찾아 결혼을 하고, 그 과정에서 부모나 가문 간의 합의가 중요하고...... 물론 요즘에도 이런 사람들이 있긴 하지만 이와 같은 과정이 당연하게 받아들여지는 사회냐 아니냐에는 큰 차이가 있다. 아니, 다른 걸 다 떠나서 사실상 말이 귀족이지 가문의 체면과 가문 간 결속을 위해 살아간다고 해도 할 말이 없는 당시 여성들의 모습이 참 웃기고 안쓰러웠다. 작품은 작가의 로망을 위해 시대 비판적인 요소보단 단순히 사랑의 실현과 외면, 그리고 비극에 초점을 맞췄지만 나는 작중 귀족 여인들이 일을 한다거나 주체적으로 살아가는 모습 하나 없이 하인들이 떠받들어줘 그저 예쁘게 존재하기만 하는 가축에 불과한 게 아닌가 생각이 들었다. 말이 좀 심했는데, 그게 그 여성들의 잘못이 아닌 당시 사회와 시대가 조장한 여성의 모습이란 것에 참담함을 느끼지 않을 수 없었다.

 작가의 스토리 텔링이 그렇게 나쁘진 않았고 디테일 면에서는 사뭇 훌륭했지만 깊이 파고들면 흥미롭게 논의가 오갈 만한 요소들이 작가의 로망에 가려 미묘하게 묻혔던 게 다소 아쉬웠다. 위에서 내가 했던 딱딱한 얘기 말고 또 다른 얘길 하자면, 엠마와 윌리엄의 사랑도 좋았지만 한편으론 그 사이에 끼어 '윌리엄을 짝사랑한 죄'로 상처만 받은 엘레노어가 너무 가여웠다. 어떻게 보면 작품에서 큰 시련을 안겨주는 핵심적인 인물이긴 하나 이 캐릭터에겐 악의도 없고 엄밀히 말하면 엠마 못지않은 피해자다. 약혼까지 해놓고 그걸 다시 무른 윌리엄은 남자인 내가 봐도 결과적으로 책임질 수 없으면서 상대의 마음만 가지고 논 추태를 보인 것이나 다름없어 작품의 결말이 내심 마음에 들지 않았다. 작가도 이게 좀 심하다고 생각했는지 외전의 한 에피소드에서 엘레노어에게 새로운 사랑이 시작되리란 암시를 주지만 그 에피소드가 재밌는 것과는 별개로 본편의 스토리가 어딘가 전체적으로 특정 감정선에 편협했다는 느낌은 지울 수가 없다. 로맨가 원래 이런 건가? 정통 로맨스를 언제 마지막으로 봤는지 기억도 안 날 정도로 당최 내성이 없어서 잘 모르겠다.


 총 10권으로 완결되는 이 작품은 7권에서 본편이 끝나고 나머지 3권은 외전인데 말 그대로 외전이라 큰 재미를 안겨주지 않는다. 단편 하나하나가 나름 완결성이나 완성도를 자랑하지만 외전이 3권 분량인 건 아무래도 과한 감이 있어 은근히 다 읽기 질렸다. ...쓰다 보니 작품을 엄청 비판하고 말았는데 작가의 로망 실현이 부러운 한편으로 그 로망 자체엔 생각보다 마음이 동하지 않아 말이 차갑게 나오는 것 같다. 다만 작가가 여성이라 그런지 메이드를 일체의 성적 대상화 없이 우아하고 고풍스럽게 묘사한 건 꽤 인상적이었다. 메이드에 환장한 적이 없지만 환장하는 사람들은 어떻게 느낄지 궁금한데 들리는 바로는 많은 메이드에 환장했다는  사람들을 '감화';;시켜서 그런 측면에서라도 의의가 있는 작품이라고 한다. 글쎄;; 그 정도인지는 잘 모르겠지만 아무튼 한 명의 독자로서 작가의 로망은 인정한다. 다시 말하지만 부럽기도 하고.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