엠마 10
모리 카오루 지음 / 대원씨아이(만화) / 2013년 12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7.8






 이 만화는 알라딘 중고서점에서 대원씨아이가 아닌 북박스에서 출판한 버전의 1권을 싸게 구입한 걸 계기로 읽게 된 작품이다. 북박스란 출판사가 지금은 없는지 같은 판형과 가격의 후속권들이 모조리 절판된 상태라 알라딘 중고서점에 재고가 언제 들어오는가 유심히 살펴볼 수밖에 없었다. 사실 그냥 대원씨아이에서 나온 신형을 구매했으면 그만이었지만 구형에 대한 나의 고집 때문에 완독하는데 제법 시간이 걸렸는데... 왜 그토록 이 만화를 끝까지 읽으려 했는가 물어본다면 당연히 결말이 궁금했기 때문이라고 대답할 수밖에 없다. 막상 다 읽으니까 신분 차이의 갈등과 비극을 차용한 전형적인 신데렐라 스토리인데다 흔히 말하는 사건의 위기 또한 너무 싱겁게 그려지고 끝나서 김새긴 했지만.

 사람들은 모리 카오루의 데뷔작인 이 작품을 두고 경지에 오른 작화라며 데뷔작이라기엔 지나치게 뛰어난 성과를 보였다고 말한다. 일반적으로 말하는 화려하고 예쁘기만 한 그림체와는 결이 달랐는데 매번 그림을 볼 때마다 장인 정신과 더불어 정말이지, 메이드와 당시 영국의 시대를 거의 흠모하다시피 빠져든 작가가 자기 로망을 제대로 실현하는구나 싶어 헛웃음이 나다가도 부럽기도 했다. 좋아하는 걸 하는 사람은 부럽기 마련이다.


 처음엔 스토리가 정말 흥미진진해서 다음 권을 꼭 봐야겠다고 생각했다. 단순한 이야기긴 한데, 사랑에 빠진 두 남녀 사이엔 일개 메이드와 존슨 가문의 장남이라는 신분의 격차가 있어 초장부터 이 둘의 사랑은 부정당한다. 그도 그럴 것이 배경이 무려 20세기도 안 된 영국이다. 시대는 산업화의 일로를 걷고 있지만 아직 신분의 차이에 따른 사람들의 사고는 크게 달라지지 않았던 것이다. 그래서 당시 귀족의 모습은 지금 우리가 보기엔 우스꽝스러울 정도로 전근대적인 구석이 있는데, 가령 사교를 위해 여자는 치장을 하고 사랑의 여부를 떠나서 신랑감을 찾아 결혼을 하고, 그 과정에서 부모나 가문 간의 합의가 중요하고...... 물론 요즘에도 이런 사람들이 있긴 하지만 이와 같은 과정이 당연하게 받아들여지는 사회냐 아니냐에는 큰 차이가 있다. 아니, 다른 걸 다 떠나서 사실상 말이 귀족이지 가문의 체면과 가문 간 결속을 위해 살아간다고 해도 할 말이 없는 당시 여성들의 모습이 참 웃기고 안쓰러웠다. 작품은 작가의 로망을 위해 시대 비판적인 요소보단 단순히 사랑의 실현과 외면, 그리고 비극에 초점을 맞췄지만 나는 작중 귀족 여인들이 일을 한다거나 주체적으로 살아가는 모습 하나 없이 하인들이 떠받들어줘 그저 예쁘게 존재하기만 하는 가축에 불과한 게 아닌가 생각이 들었다. 말이 좀 심했는데, 그게 그 여성들의 잘못이 아닌 당시 사회와 시대가 조장한 여성의 모습이란 것에 참담함을 느끼지 않을 수 없었다.

 작가의 스토리 텔링이 그렇게 나쁘진 않았고 디테일 면에서는 사뭇 훌륭했지만 깊이 파고들면 흥미롭게 논의가 오갈 만한 요소들이 작가의 로망에 가려 미묘하게 묻혔던 게 다소 아쉬웠다. 위에서 내가 했던 딱딱한 얘기 말고 또 다른 얘길 하자면, 엠마와 윌리엄의 사랑도 좋았지만 한편으론 그 사이에 끼어 '윌리엄을 짝사랑한 죄'로 상처만 받은 엘레노어가 너무 가여웠다. 어떻게 보면 작품에서 큰 시련을 안겨주는 핵심적인 인물이긴 하나 이 캐릭터에겐 악의도 없고 엄밀히 말하면 엠마 못지않은 피해자다. 약혼까지 해놓고 그걸 다시 무른 윌리엄은 남자인 내가 봐도 결과적으로 책임질 수 없으면서 상대의 마음만 가지고 논 추태를 보인 것이나 다름없어 작품의 결말이 내심 마음에 들지 않았다. 작가도 이게 좀 심하다고 생각했는지 외전의 한 에피소드에서 엘레노어에게 새로운 사랑이 시작되리란 암시를 주지만 그 에피소드가 재밌는 것과는 별개로 본편의 스토리가 어딘가 전체적으로 특정 감정선에 편협했다는 느낌은 지울 수가 없다. 로맨가 원래 이런 건가? 정통 로맨스를 언제 마지막으로 봤는지 기억도 안 날 정도로 당최 내성이 없어서 잘 모르겠다.


 총 10권으로 완결되는 이 작품은 7권에서 본편이 끝나고 나머지 3권은 외전인데 말 그대로 외전이라 큰 재미를 안겨주지 않는다. 단편 하나하나가 나름 완결성이나 완성도를 자랑하지만 외전이 3권 분량인 건 아무래도 과한 감이 있어 은근히 다 읽기 질렸다. ...쓰다 보니 작품을 엄청 비판하고 말았는데 작가의 로망 실현이 부러운 한편으로 그 로망 자체엔 생각보다 마음이 동하지 않아 말이 차갑게 나오는 것 같다. 다만 작가가 여성이라 그런지 메이드를 일체의 성적 대상화 없이 우아하고 고풍스럽게 묘사한 건 꽤 인상적이었다. 메이드에 환장한 적이 없지만 환장하는 사람들은 어떻게 느낄지 궁금한데 들리는 바로는 많은 메이드에 환장했다는  사람들을 '감화';;시켜서 그런 측면에서라도 의의가 있는 작품이라고 한다. 글쎄;; 그 정도인지는 잘 모르겠지만 아무튼 한 명의 독자로서 작가의 로망은 인정한다. 다시 말하지만 부럽기도 하고.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