악스 킬러 시리즈
이사카 고타로 지음, 김해용 옮김 / 알에이치코리아(RHK) / 2018년 6월
평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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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5






 책을 고를 때 신작이라고 집는 경우는 거의 없는데, 이 책의 경우에는 출간 기념으로 작가가 방한해 작가 초청회까지 가진다기에 부리나케 산 작품이었다. 초청회 당첨 문자가 너무 늦게 와서 이 책을 한 글자도 읽지 못한 채 초청회에 가야 했지만 이 책 덕분에 작가가 한국까지 왔으니 불만이 생길 수가 없다. 다른 사람도 아니고 이사카 코타로라니, 나중에 직접 대면해 사인을 받을 때는 전에 없이 가슴이 콩닥거렸다. 학교를 째길 잘했지.

 이 작품의 전작이랄 수 있는 '킬러' 시리즈의 작품들은 한 권도 못 읽어서 알게 모르게 진입하기 부담스러웠는데 초청회 때 얘기길 들어보니까 딱히 시리즈 전체를 크게 관통하는 스토리는 없다 하니 부담없이 펼칠 수 있었다. 작품의 초반 에피소드의 주요한 위트나 문장들은 초청회에서 스포를 당하긴 했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미리 읽지 않은 내 잘못이 크다. 게다가 위트가 전부이거나 결정적인 작품은 또 아니라서 작품을 다 읽을 즈음엔 초청회가 스포일러를 조심하려고 최선을 다했다며 은근 감탄하기도 했다.


 솔직히 설정만 놓고 봤을 땐 이사카 코타로의 작품치곤 평범하단 생각이 딱 들었다. 킬러 주인공이 가족이 생기고 나이가 들면 으레 업계에서 발을 빼고 싶어하는 법인 것 같고 업계에서 전설적인 실력을 가진 킬러라지만 집에선 아내의 말에 긴장하며 살아간 나머지 아들의 동정도 받는 아이러니하고 코믹한 설정도 처음엔 그렇게 흥미롭진 않았다. 물론 작가가 내공이 탄탄해서 이런 아이러니함을 대놓고 우스꽝스럽거나 과장되게 그리지 않고 오히려 비슷한 처지의 사람이라면 격하게 고갤 끄덕일 정도로 현실적이고 적당히 웃프게 그려서 픽션의 형식을 취했지만 알고 보니 작가 본인의 이야기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초청회 때의 기억을 더듬자면 아마 자기 담당 편집자의 상사가 공처가인 것에 착안을 얻은 캐릭터 설정이라는데 어찌 됐든 새삼 작가의 내공이라는 게 자연스러운 묘사로써 드러난다는 것이 못내 인상적이었다.

 5개의 단편으로 이루어진 이 연작 소설집은 킬러가 일과 가족 사이에서 방황하다 고심 끝에 은퇴를 현실화시키려 하자 위협을 받는 이야기로 발전하게 된다. 으레 예상되는 수순이긴 하지만 디테일한 부분에 있어선 상술했듯 이사카 코타로가 보통 내공의 작가가 아님을 여실히 느낄 수 있었다. 특히 두 번째 소설 'BEE'에서 벌집을 제거하는 장면에서 자기가 그간 저지른 살인의 무게를 통감하는 심리 묘사는 잊혀지질 않는다. 그도 그럴 것이 작품 내에서 가장 일상적이고 스케일이 작은 사건이거늘 어떻게 보면 가장 박진감 넘치는 한편으로 감정 이입도 되면서 주인공의 용서 받을 수 없는 처지가 서글프게 다가왔기 때문이다. 자기 딴에는 무자비한 살인을 하지 않으려고 노력했겠지만 결국 살인을 업으로 살아온 사람이 가정도 이루고 어느 정도 화목하게 지내는 건 자칫 기만에 가까운 설정일 수도 있었다. 하지만 이런 논란을 인물의 다단한 심리를 들춰냄으로써 세상은 빛과 어둠으로 이분시켜 바라보기엔 복잡하다는 이치를 다시금 상기시켜 주인공과 작품의 매력을 어필하는 데 성공하지 않았나 싶다.


 작가의 작품을 생각보다 많이 읽어서 아무래도 이 작품과 비교할 수밖에 없었는데, 엄밀히 말하면 이전만큼 신선하거나 골 때리게 엉뚱하기 보단 차분함이 돋보였고 연출에 있어서도 마지막 단편인 'FINE'도 교차 서술을 이용하는 것에 비해 무언가 쾌감이 덜해 전체적으로 무난한 작품이란 생각이 들었다. 물론 스토리의 디테일이 뛰어나 큰 틀에서 보면 식상해 보이는 이야기도 마냥 식상하게 읽히지 않았고 오히려 휴머니즘이 지극해서 괜히 감동적이라 가슴이 먹먹하기까지 했다. 때문에 작가를 존경하는 나의 마음 역시 특별히 변화의 조짐은 없어 보인다. 하지만 그럼에도 아직 목이 마르다는 얘기는 한 번쯤 해둬야 할 것 같다. 작가에게 뭐라 그러는 게 아니라, 순전히 허튼 팬심으로 하여금 좋아하는 작가의 작품을 전부 미화하지 않으려는 나만의 다짐 같은 것이다. 그래서 요점이 뭐냐면, 삘이 꽂힌 김에 작가의 다른 작품도 읽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는 것이다. 그래야 갈증이 해결될 테니.

 

 

누군가를 비난할 때도 누군가를 옹호할 때도 공정하자고 생각하라고. - 48p




남편에게 잘못을 지적당하고 기뻐할 아내는 없다. - 88p




이 세상에서 벌어지는 불행 중 대다수는 가족이나 가까운 사람 사이에서 생긴다. - 93p




부모라는 사람들은 늘 아차, 하고 생각하는 법이야. - 94p




"튀는 일이라는 게 뭔가요. 여둡다는 건 그저 조용히 일상을 즐길 수 있다는 뜻이에요." 밝은 성격이라고 스스로를 평가하는 인간이 걸핏하면 다른 이를 끌어들이지 않고는 인생을 즐기지 못하는 경우를 풍뎅이는 알고 있었다. - 177p




온갖 무기나 흉기를 사용하고 또 상대해 온 풍뎅이 입장에서 보자면, 최종적으로 싸움을 방지하는 데 필요한 건 ‘신뢰‘라고 생각한다. - 199p




물든 안 물든 모기는 때려잡을 필요가 있다. 물리고 나서는 늦기 때문이다. - 224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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