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탐정의 탄생 바다로 간 달팽이 17
정명섭 지음 / 북멘토(도서출판) / 2015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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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1






 청소년 소설을 펴내는 문학 레이블에서 발간한 책인데 표지에 '연작탐정소설'이라 적혀있는 게 퍽 호기심을 자극했다. 아니나 다를까 탐정소설의 탈을 쓴 성장 소설 같은 게 아니라 내용 또한 정말로 탐정소설 그 자체였다. 탐정소설이 추리소설로 이름이 바뀐 지 오래된 것으로 알고 있다. 추리소설 초창기 땐 탐정이 주인공으로서 활약하는 소설이라 탐정소설로 불렸다는데 이 작품의 수록작들도 그 틀 안에서 움직이고 있었다. 자칭 탐정이 등장하고 조수를 대동해 동네에서 벌어진 사건을 멋대로 추리하고 진상을 밝힌다. 이때 강조하고 싶은 건 스케일이 작을 거라 생각하고 봤다간 처음부터 피가 튀는 사건이 다뤄짐에 놀랄 수 있다는 것이다.

 추리소설 좀 봤다고 하는 사람들한테는 사실 그렇게 특별할 것 없는 소설이다. 셜록 홈즈를 오마주하는 소설이 한두 개도 아닌데 이 작품은 너무 '개봉동 홈즈'니 뭐니 하면서 대놓고 티를 내서 민망한 걸 넘어 신선할 지경이었다. 추리소설가 지망생에 미스터리를 사랑하는 모임 소속이자 자칭 개봉동 홈즈로서 사건을 쫓는 주인공은 말은 번지르르하지만 실상은 초라한 백수에 불과하다. 하지만 이런 의외성을 가진 캐릭터야말로 사건의 진상에 가까이 다가갈 수 있는 법인데 이 작품은 언뜻 허술해 보이는 탐정을 내세워 나름 정석적인 추리소설의 전개를 펼쳐 장르 자체의 장벽을 상당히 낮추는 효과를 가져온다. 그래, 추리소설을 처음 읽는 초심자들이 읽으면 괜찮은 책이다.


 성인이 읽는 소설, 청소년이 읽는 소설, 아동이 읽는 소설... 이렇게 독자 연령층에 따라 작품의 완성도로 구분하고 싶진 않지만 최근 청소년 대상의 소설을 연달아 읽다 보니 아무래도 작가가 작품을 쓸 때 상정하는 독자 연령층을 간과하면 안 될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명탐정의 탄생>은 좀처럼 국어로 된 추리소설이 많이 없는 우리나라 청소년들에게 권장할 만한 도서긴 하나 그렇다고 해서 성인 독자한테도 추천하기엔 주저된다. 기대 이상으로 본격적인 추리소설이고 내가 홈즈를 그렇게 좋아하지 않아서 그렇지 사실 홈즈를 좋아한다면 그렇게 나쁜 작품도 아닐 것이다. 하지만 엄밀히 말해 추리소설의 매력이란 어떤 것인가 하고 맛보기에 가까운 수준이라 너무 큰 기대를 하면 안 된다.

 총 4개의 단편이 수록됐는데 뒤의 두 작품은 그래도 꽤 괜찮았다. 탈모를 예방하기 위해 섬에 모인 사람들을 대상으로 머리털을 연쇄적으로 뜯어내는 범인을 추적하는 내용의 에피소드(;;)는 소재도 신선했고 결말도 나쁘지 않았으며 마지막 에피소드 같은 경우엔 끔찍한 비극이 발생했을 때 보호받지 못하는 피해자와 죗값을 치루지 않는 가해자를 통해 사회의 병폐를 지적하는 등 뼈가 담긴 내용이 아닐 수 없었다. 그리고 후속작에 대한 암시도 남기면서 제법 인상적인 결말을 냈으나... 개인적으로 그 암시가 너무 과한 암시가 아니었나 싶다. 오마주한 티를 덜 냈더라면 오그라들지 않고 좋았을 텐데, 이것 때문에라도 추천하기 망설여진다.

과연 그런 게 인생일까? 진짜? 어른이 된다는 건 시시하고 어이없는 세계로 기꺼이 들어가는 일인 건가? - 94p




온통 무성한 소문들뿐이었다. 다들 알고 있고, 입에 올리지만 정작 진실관느 거리가 멀었던 셈이다. 그리고 그 간격 어딘가에서 죄인처럼 숨어 지내는 피해자와 삶을 송두리째 망쳤다고 믿는 가해자가 있었다. - 201p




꼰대 소리 듣기 싫어서 안 하고는 있는데 요즘 애들 왜 이러냐? 우리 때는 아니었는데 말이야.

어른들이 만든 지옥이 학교 안으로 옮겨 가서 그래요. - 217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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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럼, 소녀 & 위험한 파이 시공 청소년 문학 15
조단 소넨블릭 지음, 김영선 옮김 / 시공사 / 2007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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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1






 이 산만한 제목의 소설은 내가 좀처럼 체험할 수 없는 감정선을 중점적으로 얘기하는 작품이다. 형제가 없는 외동이라 형제애를 그린 작품을 보면 크건 작건 와 닿지 않았는데 흔히 '현실 형제', '현실 남매' 등의 표현이 있는 걸 보면 형제가 있는 다른 사람도 형제애란 게 어색하긴 마찬가지일 듯하다. 내 주변만 해도 서로 못 잡아먹어 안달이 났거나 나중엔 아예 얼굴도 안 보고 살 계획인 사람이 적잖아 보이니.

 외동인 내가 보기에 형제 관계란 애증의 관계인 것 같다. 온전히 사랑할 수도 없고 온전히 미워하기도 힘든 관계일까. 자기 동생 욕하는 친구에 합승해 나도 한마디 거들었더니 너무 막말하지 말라고 표정이 굳어졌던 한 녀석이 떠오른다. 결과적으로 미워하곤 있지만 본질적으로 가족이기에 사랑할 수도 있는 관계라니, 이렇게 말하는 중에도 감이 안 잡히지만 - 얼마 전에 기리노 나쓰오의 <그로테스크>를 봤더니 더욱 그런 것 같다... - 이 작품에서처럼 백혈병 환자인 동생이 있다면 형제애란 것도 제법 일리 있게 다가오는 것 같다.


 형을 따르는 사랑스러운 동생과 그런 동생이 귀찮고 얄밉기만 한 형, 이 둘의 관계는 동생의 병이 발발하면서 변화를 맞이한다. 물론 다른 가족들도 마찬가지다. 엄마는 하루라도 눈물이 마를 일 없이 동생을 저 멀리 있는 병원에 같이 가느라 몸을 혹사시키는 지경에 이르렀고 아빠는 그런 가족의 변화에 주인공인 형한테는 신경도 못 쓰고 자기만의 슬픔에 빠져있다. 그런 상황에서 학교 친구들이나 선생님의 관심이 적응 안 되고 집안의 상황에도 안주할 수 없는 주인공은 커다란 혼란과 슬픔을 겪는데 그 과정을 아주 직접적으로 표현한 게 바로 이 작품이라 할 수 있다.

 1인칭 서술이 일반적인 청소년 성장 소설 중에서도 이 소설은 유난히 문체나 표현을 특기할 만한 작품이었다. 우리나라 나이로 치면 중학교 3학년생 정도 되는 주인공이 학교 작문 시간에 제출하는 과제를 독자가 엿보는 형태로 소설이 진행되는데 확실히 특유의 연령대를 제대로 표현하는 문체긴 했다. 격의 없고 폼 잡고 오버해서 호불호가 은근히 갈릴 것 같은데 - 난 좀 부담스러웠다. - 실감나는 묘사가 많아서 가볍지 않은 소재의 이야기임에도 유쾌하게 읽혀졌다. 작가가 실제로 학교 선생님이라서 이만한 문체를 구사할 수 있는 걸까? 아이들한테 관심 없는 교사도 있는 걸 생각하면 이 작가는 아이들을 정말 사랑하는 선생님이겠구나 싶었다.


 작가의 작품을 보면 음악이나 악기를 연주하는 주인공이라는 요소가 꼭 들어가던데 이 작품에선 드럼이 제법 나온다. 하지만 하도 오랜만에 읽고 또 그 사이에 여러 창작물을 많이 접해서 이런 요소들에 대한 묘사가 그리 흡입력 있진 않았는데 - 드럼하니 <위플래쉬>가 바로 떠오른다. 그 작품은 알다시피... - 이 작품을 내가 중학생 때 읽었던 걸 생각하면 이런 감상의 변화는 당연할 수밖에 없겠다. 성장 소설만큼 다시 읽으면 실망스러운 소설도 없는 게 아닐까.

 다시 읽으니 첫인상과 판이한 감상이 나왔는데 소재에 대한 취향이 갈렸기 때문이 아니라 다시 읽는 그 10년 사이에 내가 여러 문학을 접했기 때문이 클 것이다. 아이러니하지만 어쩔 수 없다. 동생의 병이 발발함으로써 동생을 솔직하게 사랑하게 된 주인공처럼 사람은 누구나 아이러니하게 스스로를 돌아볼 수 있는 법이니까.

주제는 ‘만약 세상을 묘사할 수 있는 단어를 하나만 고르라면 어떤 단어를 고르겠는가. 그리고 그 이유는?‘ 이었다.

내 대답은 이랬다.

불공평. - 203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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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관의 살인 -하 - 완결
사사키 노리코 지음 / 삼양출판사(만화) / 2006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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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3







 아야츠지 유키토 원작, 사사키 노리코 작화의 만화 <월관의 살인>은 제목만 보면 원작자의 대표작인 '관' 시리즈의 작품인 것 같지만 이 작품은 엄밀히 말해 별개의 이야기를 다루고 있다. 등장하는 저택이 특이하긴 하지만 비밀 장치는 없고 무엇보다 시리즈의 탐정인 시마다 기요시 - 혹은 시시야 가도미 - 는 그림자조차 비추지 않는다. 그렇다곤 하지만, 이 작품은 짙은 블랙 유머가 녹아든 이색적인 추리 만화로써 제법 쏠쏠한 재미를 안겨주고 있다.

 추리 만화라... 사실 이 표현에 의아를 표할 분들이 있을 것 같다. 용의자를 좁혀가는 과정이 그렇게 논리적이진 않고 오히려 우스꽝스러우며 나중에 밝혀지는 진상은 논리적이지만 복선이 그렇게 치밀하진 않아서 놀랍지만서도 급한 감이 있었다. 이 작품의 정체성을 굳이 정의 내리자면 안티 추리/미스터리가 아닐까 싶다. 뭐, '굳이'라고 강조한 이유는 장르 구분 없이 그냥 보고 즐기기만 하면 되는 작품이기 때문이다.


 영문은 알 수 없지만 엄마의 반대로 인해 태어나서 줄곧 기차를 타본 적이 없는 주인공은 그 엄마마저 죽자 고아가 된다. 그때 유일한 혈육이라는 외할아버지에게서 재산 상속과 관련해 초대를 받는다. 오키나와에서 외할어버지의 저택이 있다는 홋카이도로 간 주인공은 생전 처음으로 기차를, 그것도 초호화 열차 탑승이 기다리고 있다. 기차를 타자 하나같이 신기한 것들 투성이인데 그중 탑승객들이 가장 가관이다. 저마다 종류는 다르지만 승객들은 모두 '철광'인데 이들 사이에서 수수께끼의 살인사건이 발생해 외할어버지의 저택 '월관'으로 가는 기차의 여정에 큰 장애가 생긴다.

 '철광'은 기차를 광적으로 사랑하는 기차 덕후를 가리키는 이 작품만의 용어다. 약간 옛스럽지만 은근히 잘 지은 용어인데... 아무튼 실제로 일본엔 우리가 상상할 수도 없을 정도로 철광들이 많다. 국토가 길쭉하니 기차가 이동 수단으로써 꽤나 존재감을 가지고 있고 그만큼 팬도 많은데 가끔 도가 지나친 사람도 있다. 기차가 출발하는 사진을 찍으려고 일반 탑승객들을 마구 밀치는 사진 철광이나 차내 물품을 멋대로 가져가는 철광도 있는 등 주변 사람들 피해를 생각 않는 몰상식한 철광 등 말이다. 얘기가 나왔으니 하는 말이지만 이런 사람들 때문에 괜히 충실한 취미 생활을 할 뿐인 모든 철광, 나아가 덕후들이 싸잡아 욕을 먹는 것이리라.


 기차라는 테마에 집중하긴 했지만 광적인 취미가 망쳐버린 한 사람의 비극을 살펴보는 취지에서 꽤나 괜찮은 작품이었다. 민폐 끼치는 취미 생활이 어떤 것인지 그 정수를 보여주는 작품이란 점에서도 훌륭하긴 마찬가지였다. 그걸 무척이나 코믹하게 묘사한 것도 압권이었고. 덕분에 막판에 밝혀진 진상의 오싹함이 더욱 배가됐는지 모르겠다.

 일본을 여행갈 때마다 일본인들의 기차 사랑이 어마어마하다는 걸 실감한다. 에키벤 등 그들의 일상 속에 자리잡은 여러 기차 문화를 보면 신기하면서도 부럽다. 그래서 일본을 여행하는 중에 그 문화를 기회가 될 때마다 접해보려고 노력하는데 그렇다 보니 철광이 되는 사람의 심리가 뭔지 알 것 - 탑승 철광은 제외. 장기간 기차를 타는 건 힘들다. - 같다. 이런 일본인들의 독특한 문화를 알자는 취지에 있어서도 참 재밌는 작품이었는데 로망과 디테일이 똘똘 뭉친 굉장히 이색적인 추리 만화니 관심이 있으면 읽어보길 추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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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국에서 한 걸음 미래인 청소년 걸작선 11
안나 지음, 박윤정 옮김 / 미래인(미래M&B,미래엠앤비) / 2010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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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9






 이민자 이야기라, 최근 하 진의 <자유로운 삶>을 읽어서 그랬는지 새로진 없지만 퍽 반가운 작품이었다. 아무래도 한국계 작가라니 반갑지 않을 수가 없었다. <자유로운 삶>과는 비교할 수 없는 작품이긴 했지만 한국이라는 키워드가 있어 마냥 동떨어진 얘기처럼 읽히진 않았다. 작가의 국적이 작품을 이해함에 있어 본질적으로 중요하진 않긴 하나 이렇게 주인공의 국적이 한 번 바뀌는 작품에선 얘기가 다르니 절절하게 다가왔다.

 <자유로운 삶>은 천 페이지라는 분량이 버거웠던 반면 이 작품은 너무 짧아서 못내 아쉬웠던 작품이다. 주인공 영주가 어린 나이에 미국으로 이민을 와서 대학에 입학할 나이에 접어들며 끝이 나는데 그게 250 페이지에 못 미친다. 전개가 무척 빠르고 나이도 빨리 먹는데 디테일한 묘사보다 주인공 영주의 삶 전반에 걸쳐진 감정선에 대한 가닥을 잡는 작품이라 비슷한 소재라도 느낌은 많이 달랐다. 솔직히 말하면 둘 다 일장일단이지만 둘 다 아쉽고 내 기호와도 맞지 않았다. 비겁하고 폭력을 일삼는 영주의 아빠나 그에 휘둘리는 엄마가 똑같이 자기 딸한테는 한국인처럼 살기를 강요하는 우스운 아이러니가 핵심이라면 핵심인데 어딘가 깊이 있게 묘사되지 않았던 게 불만이었다. 미국에서 한국인처럼 살라니, 상투적인 말이지만 로마에 가면 로마의 법을 따르라는 말이 괜히 있는 게 아닌데 저렇게 인지 능력이 떨어질 수 있나 싶어 읽는 내가 다 답답했다.


 등장하는 인물도 많지 않고 주인공도 나이를 빨리 먹어 가독성은 있었으나 어딘가 내밀하게 읽히지는 않았다. 만약 영주가 한국인 이민자가 아니었으면 어쩔 뻔했을까? 어떻게 보면 작가의 자전적인 이야기일 텐데...... 아, 그래서 은연중에 몰입하기 꺼려졌던 탓일까? 너무 디테일해도 문제지만 디테일하지 않게 윤곽만 짚는 식으로 전개되면 자칫 작품이 공허하게 비춰질 공산이 크다. 이 작품만 해도 주인공 영주 말고도 엄마, 아빠, 남동생까지 각각의 내면에 대해 이야기할 요소가 제법 있었는데 오로지 영주의 시선만 다루니 갈수록 지루하고 평면적으로 읽히지 않았나 싶다. 성장 소설의 갈래에 있어서 영주의 시선을 중점적으로 다루는 것은 나쁘지 않은 연출이지만 이 작품의 또 하나의 테마인 이민자들의 삶과 우여곡절을 생각하면 단순히 한 개인의 삶과 성장이 나아가서 이민자의 삶과 맞물려 모종의 감동을 낳는 데엔 미치지 못했던 건 아무래도 아쉽지 않을 수 없었다. 그래도 한국 출신임에도 미국 문단에 데뷔한 작가라니까 내심 하 진 같은 작가인 걸까 기대했는데... 기대와 관심이 너무 컸나 보다.



 https://blog.naver.com/jimesking/221312559076

 이건 하 진의 <자유로운 삶>의 포스팅.

저는 반쯤 완성된 이야기 속으로 들어가, 등장인물들에게 "다음은 어떻게 되지?" 하고 묻는 순간에 가장 큰 기쁨을 맛봅니다. 이보다 더 나은 삶의 방식은 상상할 수도 없습니다. - 252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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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벽한 호모 사피엔스가 되는 법 - 미래 로봇이 알아야 할 인간의 모든 것, 2018년 행복한아침독서 선정
닉 켈먼 지음, 김소정 옮김 / 푸른지식 / 2017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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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9






 내가 알기론 호모 사피엔스란 생각하는 사람인 현재 인류를 지칭하는 말이다. 이 책은 완벽한 호모 사피엔스가 되기 위한 한 인공지능 로봇의 회고록과 호모 사피엔스의 행동 및 사고 양식을 분석한 파트가 병렬적으로 구성된 SF 소설이다. 제목이 너무 직접적이라 소설이란 게 한 번에 와 닿지 않았는데 책을 펼치니까 왜 이런 제목이 붙었는지 알 수 있었다. 화자가 인공지능 로봇이니까, 그렇다 보니 제목은 말할 것도 없고 문체 역시 매우 기계적이고 분석적이었다. 그나마 회고에선 그런 부분이 덜하지만 분석문 파트는 소설의 형식이라고 하기엔 거리가 있었다. 오늘의 작가상을 받은 <철수 사용 설명서>도 물건의 사용 설명서에 나올 법한 어투를 구사해 신선했는데 이 책은 그 이상이다. 내가 보기엔 문학적 시도가 아닌 순수하게 로봇의 시점에 입각해 과학적으로 기술된 것 같다. 그 탓에 묘하게 소설적 어투와 동떨어진 구석이 있어서 가독성은 떨어졌지만 우리가 어쩔 수 있는 사항은 아닌 듯하다. 내 기호와 맞느냐 맞지 않느냐 여부를 떠나서 작품이 컨셉에 충실한 건 좋은 일이므로.

 인공지능 로봇이 나오는 창작물을 좋아해서 비슷한 소재의 작품만 찾아본 적도 있을 정돈데 이 책은 그 중에서도 특출난 작품이었다. 직접적인 걸론 두말할 나위 없고 블랙 유머는 탁월했다. SF라는 장르는 간단히 말해 미래를 얘기함으로써 현재를 돌아보게 만드는 장르다. 나아가 인공지능으로 말할 것 같으면 누가 봐도 비인간인 존재를 등장시킴으로써 진정한 인간성이란 무엇인지 질문해보는 테마일 듯한데 이와 같은 소재의 의의에 아주 잘 부합하는 작품이 바로 <완벽한 호모 사피엔스가 되는 법>이 아닐 수 없었다. '생각하는 사람'이란 이명이 무색하게 예측불허에다 이성적이지 못한 사람들의 행동 및 사고 양식은 인공지능 로봇의 눈에는 아주 이상하게 비춰질 터인데 이를 시종 진지하게 분석하고 결론을 내려서 단순하지만 꼼꼼해 제대로 된 블랙 유머가 아닌가 싶었다.


 무슨 의미가 있을까 싶지만 개인적으로 이 작품의 형식은 살짝 불만스러웠다. 그래도 엄연히 스토리가 담긴 출판물인데 호모 사피엔스 분석문의 비중이 높아 정작 주인공에게 닥친 시련의 여정엔 몰입이 떨어졌던 것이다. 주인공의 여정이 분석문을 남기는 이유를 설명하므로 그 인과에 대해서도 보다 드라마틱하게 다뤄야 한다고 생각하는데 너무 블랙 유머에 집중하느라 본편이 소홀히 그려진 느낌이다. 물론 분석문도 픽션으로써의 기능을 제법 잘 수행하고 있지만 그럼에도 이 보고서는 새로운 문학적 시도가 아닌 어디까지나 픽션과의 퓨전이라는 느낌이 강해서 결과적으로 가독성을 떨어뜨리는 역효과를 낳지 않았나 싶다.

 쓰고자 하는 바와 더불어 접근 방식 또한 대담하고 능히 자연스러워서 - 진짜 로봇이라면 글을 이렇게 쓰겠구나 싶었다. - 취향에 맞지 않는다거나 가독성이 떨어지는 유무와 상관없이 무척 잘 만들어진 작품인 것은 부정할 수 없다. 분석문 파트엔 그 글을 읽을 가상의 로봇 독자의 이해를 돕기 위해 수록된 그래프나 일러스트도 있어 잔재미도 상당했다. 그래서 본편의 가독성이 더욱 아쉬웠다. 그만큼 본편에 힘을 실어줬다면 훨씬 감동적이었을 텐데. 가독성이 떨어진다 뭐다 해도 본편의 스토리 라인도 드라마틱하고 의미심장해 그 자체로도 충분히 이야깃거리가 됐을 텐데 잔재주라 해야 할 지 압도적인 리얼리티라 해야 할 지 아무튼 작가가 노력을 약간 색다른 방식으로 들인 탓에 아쉬움이 안 들 수가 없는 작품이었다. 하지만 분명한 건 이런 아쉬움에도 불구하고 재독의 여지를 남겼다는 것이다. 심지어 소장 가치도 높아서 나는 이 책을 다음엔 빌리지 않고 구매해서 읽을 것 같다.



인상 깊은 구절


 

사람이 스스로 안다고 믿는 정보의 양은 실제로 인지할 수 있는 정보의 양과 정확하게 반비례한다. 즉, 인지할 수 있는 정보의 양이 적을수록 더 많이 안다고 믿는다. - 18p


사람들이 석양을 볼 때마다 황홀해지는 건 그 모습을 예측할 수 없다는 점 때문일 거야. 사람들 대부분이 자기 인생이, 자기가 속한 사회가 사실은 자신만의 석양이라는 사실을 깨닫지 못한다는 건 참 신기한 일이야. 우리 안드로이드에게는 사람을 바라본다는 건 매일매일 저무는 석양을 보는 것과 같은데 말이야. - 27p


사람이 되는 시험에 통과하려면 평균적인 사람이 되어야지 너무 튀는 사람이나 새로운 사회 정책을 제일 먼저 따르는 사람이 되면 안 된다. - 53p


위선이란 사람이 한 가지 믿음을 말해놓고, 사실은 그 반대를 믿는다는 것을 보여주는 행동을 하는 것이다. 예를 들어, 다른 사람이 한 행동을 비난한 뒤에 자기도 똑같이 그런 행동을 하는 것이다. 그렇게만 행동한다면 우리는 사람이라고 인정받을 수 있다. - 240p


명심할 것: 어떤 목표를 성취할 수 있는 충분한 능력이 없다는 사실을 순순히 인정하거나 받아들이면 사람들은 분명히 우리가 사람이 아니라고 의심하게 될 것이다. - 242p


실제로 사람들은 이 우주를 통틀어 자기들을 만든 우주의 기본 법칙에 대항할 수 있는 유일한 구조물인지도 몰라. 그런데도 사람들은 너무나도 자주 우주의 법칙에 순응하는 길을 택한단 말이야. 내가 실망하는 이유는 본질적으로 이 때문이야. - 258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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