완벽한 호모 사피엔스가 되는 법 - 미래 로봇이 알아야 할 인간의 모든 것, 2018년 행복한아침독서 선정
닉 켈먼 지음, 김소정 옮김 / 푸른지식 / 2017년 4월
평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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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9






 내가 알기론 호모 사피엔스란 생각하는 사람인 현재 인류를 지칭하는 말이다. 이 책은 완벽한 호모 사피엔스가 되기 위한 한 인공지능 로봇의 회고록과 호모 사피엔스의 행동 및 사고 양식을 분석한 파트가 병렬적으로 구성된 SF 소설이다. 제목이 너무 직접적이라 소설이란 게 한 번에 와 닿지 않았는데 책을 펼치니까 왜 이런 제목이 붙었는지 알 수 있었다. 화자가 인공지능 로봇이니까, 그렇다 보니 제목은 말할 것도 없고 문체 역시 매우 기계적이고 분석적이었다. 그나마 회고에선 그런 부분이 덜하지만 분석문 파트는 소설의 형식이라고 하기엔 거리가 있었다. 오늘의 작가상을 받은 <철수 사용 설명서>도 물건의 사용 설명서에 나올 법한 어투를 구사해 신선했는데 이 책은 그 이상이다. 내가 보기엔 문학적 시도가 아닌 순수하게 로봇의 시점에 입각해 과학적으로 기술된 것 같다. 그 탓에 묘하게 소설적 어투와 동떨어진 구석이 있어서 가독성은 떨어졌지만 우리가 어쩔 수 있는 사항은 아닌 듯하다. 내 기호와 맞느냐 맞지 않느냐 여부를 떠나서 작품이 컨셉에 충실한 건 좋은 일이므로.

 인공지능 로봇이 나오는 창작물을 좋아해서 비슷한 소재의 작품만 찾아본 적도 있을 정돈데 이 책은 그 중에서도 특출난 작품이었다. 직접적인 걸론 두말할 나위 없고 블랙 유머는 탁월했다. SF라는 장르는 간단히 말해 미래를 얘기함으로써 현재를 돌아보게 만드는 장르다. 나아가 인공지능으로 말할 것 같으면 누가 봐도 비인간인 존재를 등장시킴으로써 진정한 인간성이란 무엇인지 질문해보는 테마일 듯한데 이와 같은 소재의 의의에 아주 잘 부합하는 작품이 바로 <완벽한 호모 사피엔스가 되는 법>이 아닐 수 없었다. '생각하는 사람'이란 이명이 무색하게 예측불허에다 이성적이지 못한 사람들의 행동 및 사고 양식은 인공지능 로봇의 눈에는 아주 이상하게 비춰질 터인데 이를 시종 진지하게 분석하고 결론을 내려서 단순하지만 꼼꼼해 제대로 된 블랙 유머가 아닌가 싶었다.


 무슨 의미가 있을까 싶지만 개인적으로 이 작품의 형식은 살짝 불만스러웠다. 그래도 엄연히 스토리가 담긴 출판물인데 호모 사피엔스 분석문의 비중이 높아 정작 주인공에게 닥친 시련의 여정엔 몰입이 떨어졌던 것이다. 주인공의 여정이 분석문을 남기는 이유를 설명하므로 그 인과에 대해서도 보다 드라마틱하게 다뤄야 한다고 생각하는데 너무 블랙 유머에 집중하느라 본편이 소홀히 그려진 느낌이다. 물론 분석문도 픽션으로써의 기능을 제법 잘 수행하고 있지만 그럼에도 이 보고서는 새로운 문학적 시도가 아닌 어디까지나 픽션과의 퓨전이라는 느낌이 강해서 결과적으로 가독성을 떨어뜨리는 역효과를 낳지 않았나 싶다.

 쓰고자 하는 바와 더불어 접근 방식 또한 대담하고 능히 자연스러워서 - 진짜 로봇이라면 글을 이렇게 쓰겠구나 싶었다. - 취향에 맞지 않는다거나 가독성이 떨어지는 유무와 상관없이 무척 잘 만들어진 작품인 것은 부정할 수 없다. 분석문 파트엔 그 글을 읽을 가상의 로봇 독자의 이해를 돕기 위해 수록된 그래프나 일러스트도 있어 잔재미도 상당했다. 그래서 본편의 가독성이 더욱 아쉬웠다. 그만큼 본편에 힘을 실어줬다면 훨씬 감동적이었을 텐데. 가독성이 떨어진다 뭐다 해도 본편의 스토리 라인도 드라마틱하고 의미심장해 그 자체로도 충분히 이야깃거리가 됐을 텐데 잔재주라 해야 할 지 압도적인 리얼리티라 해야 할 지 아무튼 작가가 노력을 약간 색다른 방식으로 들인 탓에 아쉬움이 안 들 수가 없는 작품이었다. 하지만 분명한 건 이런 아쉬움에도 불구하고 재독의 여지를 남겼다는 것이다. 심지어 소장 가치도 높아서 나는 이 책을 다음엔 빌리지 않고 구매해서 읽을 것 같다.



인상 깊은 구절


 

사람이 스스로 안다고 믿는 정보의 양은 실제로 인지할 수 있는 정보의 양과 정확하게 반비례한다. 즉, 인지할 수 있는 정보의 양이 적을수록 더 많이 안다고 믿는다. - 18p


사람들이 석양을 볼 때마다 황홀해지는 건 그 모습을 예측할 수 없다는 점 때문일 거야. 사람들 대부분이 자기 인생이, 자기가 속한 사회가 사실은 자신만의 석양이라는 사실을 깨닫지 못한다는 건 참 신기한 일이야. 우리 안드로이드에게는 사람을 바라본다는 건 매일매일 저무는 석양을 보는 것과 같은데 말이야. - 27p


사람이 되는 시험에 통과하려면 평균적인 사람이 되어야지 너무 튀는 사람이나 새로운 사회 정책을 제일 먼저 따르는 사람이 되면 안 된다. - 53p


위선이란 사람이 한 가지 믿음을 말해놓고, 사실은 그 반대를 믿는다는 것을 보여주는 행동을 하는 것이다. 예를 들어, 다른 사람이 한 행동을 비난한 뒤에 자기도 똑같이 그런 행동을 하는 것이다. 그렇게만 행동한다면 우리는 사람이라고 인정받을 수 있다. - 240p


명심할 것: 어떤 목표를 성취할 수 있는 충분한 능력이 없다는 사실을 순순히 인정하거나 받아들이면 사람들은 분명히 우리가 사람이 아니라고 의심하게 될 것이다. - 242p


실제로 사람들은 이 우주를 통틀어 자기들을 만든 우주의 기본 법칙에 대항할 수 있는 유일한 구조물인지도 몰라. 그런데도 사람들은 너무나도 자주 우주의 법칙에 순응하는 길을 택한단 말이야. 내가 실망하는 이유는 본질적으로 이 때문이야. - 258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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