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관의 살인 -하 - 완결
사사키 노리코 지음 / 삼양출판사(만화) / 2006년 11월
평점 :
품절


9.3







 아야츠지 유키토 원작, 사사키 노리코 작화의 만화 <월관의 살인>은 제목만 보면 원작자의 대표작인 '관' 시리즈의 작품인 것 같지만 이 작품은 엄밀히 말해 별개의 이야기를 다루고 있다. 등장하는 저택이 특이하긴 하지만 비밀 장치는 없고 무엇보다 시리즈의 탐정인 시마다 기요시 - 혹은 시시야 가도미 - 는 그림자조차 비추지 않는다. 그렇다곤 하지만, 이 작품은 짙은 블랙 유머가 녹아든 이색적인 추리 만화로써 제법 쏠쏠한 재미를 안겨주고 있다.

 추리 만화라... 사실 이 표현에 의아를 표할 분들이 있을 것 같다. 용의자를 좁혀가는 과정이 그렇게 논리적이진 않고 오히려 우스꽝스러우며 나중에 밝혀지는 진상은 논리적이지만 복선이 그렇게 치밀하진 않아서 놀랍지만서도 급한 감이 있었다. 이 작품의 정체성을 굳이 정의 내리자면 안티 추리/미스터리가 아닐까 싶다. 뭐, '굳이'라고 강조한 이유는 장르 구분 없이 그냥 보고 즐기기만 하면 되는 작품이기 때문이다.


 영문은 알 수 없지만 엄마의 반대로 인해 태어나서 줄곧 기차를 타본 적이 없는 주인공은 그 엄마마저 죽자 고아가 된다. 그때 유일한 혈육이라는 외할아버지에게서 재산 상속과 관련해 초대를 받는다. 오키나와에서 외할어버지의 저택이 있다는 홋카이도로 간 주인공은 생전 처음으로 기차를, 그것도 초호화 열차 탑승이 기다리고 있다. 기차를 타자 하나같이 신기한 것들 투성이인데 그중 탑승객들이 가장 가관이다. 저마다 종류는 다르지만 승객들은 모두 '철광'인데 이들 사이에서 수수께끼의 살인사건이 발생해 외할어버지의 저택 '월관'으로 가는 기차의 여정에 큰 장애가 생긴다.

 '철광'은 기차를 광적으로 사랑하는 기차 덕후를 가리키는 이 작품만의 용어다. 약간 옛스럽지만 은근히 잘 지은 용어인데... 아무튼 실제로 일본엔 우리가 상상할 수도 없을 정도로 철광들이 많다. 국토가 길쭉하니 기차가 이동 수단으로써 꽤나 존재감을 가지고 있고 그만큼 팬도 많은데 가끔 도가 지나친 사람도 있다. 기차가 출발하는 사진을 찍으려고 일반 탑승객들을 마구 밀치는 사진 철광이나 차내 물품을 멋대로 가져가는 철광도 있는 등 주변 사람들 피해를 생각 않는 몰상식한 철광 등 말이다. 얘기가 나왔으니 하는 말이지만 이런 사람들 때문에 괜히 충실한 취미 생활을 할 뿐인 모든 철광, 나아가 덕후들이 싸잡아 욕을 먹는 것이리라.


 기차라는 테마에 집중하긴 했지만 광적인 취미가 망쳐버린 한 사람의 비극을 살펴보는 취지에서 꽤나 괜찮은 작품이었다. 민폐 끼치는 취미 생활이 어떤 것인지 그 정수를 보여주는 작품이란 점에서도 훌륭하긴 마찬가지였다. 그걸 무척이나 코믹하게 묘사한 것도 압권이었고. 덕분에 막판에 밝혀진 진상의 오싹함이 더욱 배가됐는지 모르겠다.

 일본을 여행갈 때마다 일본인들의 기차 사랑이 어마어마하다는 걸 실감한다. 에키벤 등 그들의 일상 속에 자리잡은 여러 기차 문화를 보면 신기하면서도 부럽다. 그래서 일본을 여행하는 중에 그 문화를 기회가 될 때마다 접해보려고 노력하는데 그렇다 보니 철광이 되는 사람의 심리가 뭔지 알 것 - 탑승 철광은 제외. 장기간 기차를 타는 건 힘들다. - 같다. 이런 일본인들의 독특한 문화를 알자는 취지에 있어서도 참 재밌는 작품이었는데 로망과 디테일이 똘똘 뭉친 굉장히 이색적인 추리 만화니 관심이 있으면 읽어보길 추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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