춤추는 조커 명탐정 오토노 준의 사건 수첩
기타야마 다케쿠니 지음, 김은모 옮김 / 한즈미디어(한스미디어) / 2016년 8월
평점 :
절판


9.0







 명탐정을 내세우는 본격 추리소설을 읽다보면 가끔 탐정이라는 주인공에 크게 의존하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조금 더 삐딱하게 말하자면 그래서 어쩔 때는 탐정만 보이고 막상 사건의 반전이나 트릭의 깊이는 떨어지는 경우도 있는데 이는 특히 단편집에서 크게 부각되는 것 같다. 이 책도 명탐정 오토노 준의 사건 수첩이라는 이름이 붙여진 단편집으로 표제작인 '춤추는 조커'를 비롯해 총 5편의 단편이 수록됐는데 읽기 전 가장 크게 걱정한 게 바로 그 부분이었다. 혹시나 탐정의 매력에만 의존하지 않을까.

 신기하게도 걱정과는 정반대로 탐정은 소심할 뿐이지 캐릭터가 그렇게 눈길을 끌지 않았고 오히려 트릭이 기상천외한 게 많아서 재밌었다. 최근 본격 추리소설을 잘 안 읽어서 상대적으로 눈이 뜨인 건지 모르겠는데 새삼 추리소설의 가장 원초적인 재미가 어떤 것인지 느낄 수 있었다. 이게 정말 기대 이상이었다.


 캐릭터 얘기를 더 하자면 탐정은 소심하기론 역대급으로 소심하지만 근본은 사건을 해결함으로써 범인을 지목하고 여러 사람들의 운명에 개입하는 것에 부담을 느끼는 설정이라 요즘의 추세에 맞았다고 본다. 대표적으로 요네자와 호노부의 '소시민' 시리즈와 '고전부' 시리즈의 두 주인공처럼 지금 시점이라면 등장해도 될 법한 종류의 탐정이었던 것이다. 그래서 소심한 탐정이건 비교적 수다스런 왓슨 역이건 캐릭터적인 부분은 걱정에 비해, 어쩌면 기대에 비해 두드러지진 않았다. 위에서도 말했지만 사건의 양상이나 트릭, 동기가 더 빛이 났는데 개인적으로 인상적인 동기가 많아서 재밌었다. 알게 모르게 죽어가고 있던 추리 세포가 활성화된 느낌도 받아서 상당히 고무적인 작품이었다.



 '춤추는 조커'


 표제작이지만 가장 무난했던 작품. 그래도 '물리의 기타야마'라고 불리는 작가의 이명에 어울리긴 하니 나쁘진 않았다. 하긴, 탐정이 첫 등장해 활약하는 작품에는 그에 걸맞는 화려한 물리 트릭이 걸맞긴 하다.  그런데 이 작가가 물리 트릭에 매료된 이유가 어떤 작가의 어떤 작품을 읽고 나서라는데 그 얘길 듣고 이 작품의 트릭을 떠올리니까 확실히 영향을 받긴 했구나... 싶다.



 '시간 도둑'


 공교롭게도 이 책 바로 직전에 읽은 게 발 타일러의 판타지 소설 <시간도둑>이라서 괜히 반갑게 읽었던 작품이다. 이 작품에선 제목에는 나름의 메타포가 가미됐는데 시계만 훔치는 범인의 동기를 밝히는 것과 거기에 왓슨 역이 해석을 다는 게 인상적이었다. 하지만 추리 과정은 좀 지루했다. 마지막 결말은 흐뭇했지만.



 '보이지 않는 다잉메시지'


 다잉메시지는 본격 추리소설 중에서도 취급이 썩 좋지 않은 테마인데 이 작품에선 꽤 괜찮게 활용됐다. 특이하게도 명탐정 오노토 준이 아닌 다른 사람이 해결하는데 통상적인 추리소설의 클리셰를 비튼 것 같아 신선했다. 김새기도 했지만... 그래도 오토노 준이 괜히 명탐정은 아닌 듯 날카로운 면을 보여준다.



 '밸런타인데이의 독 초콜릿'


 심리, 혹은 물리 트릭의 정체나 오토노 준의 라이벌 캐릭터는 그냥 그랬는데 동기가 신선했던 작품. 범인의 끈질김과 광기의 스케일이 소소한 편이었지만 그래서 어떻게 보면 더 소름이 돋은 것 같다. 이런 발칙한 놈이 다 있나.



 '눈사람이 죽이러 온다'


 몇 가지 잔가지를 제외하면 이 작품도 트릭이나 동기가 우수했는데 특히 명탐정의 존재 의의나 비애가 전해져서 뒷맛이 묵직했다. 범인은 미치긴 했지만 사정이 딱했고 - 딱한 것치곤 코믹하게 연출됐지만 - 오토노 준도 너무 떠밀리 듯이 추리하고 범인을 지목하는 것 같아서 소심한 탐정의 의의가 살아나는 듯했다. 시리즈엔 장편도 있다는데 그 작품도 읽어봐야지.

인생을 건 트릭으로 남을 살해하여 운명을 바꾸려는 사람들. 탐정은 그 운명을 교정하는 힘을 지녔다. 그러니 망설여질 만도 하다. 명탐정은 남의 운명을 파괴할 만한 힘을 지니고 있다. - 363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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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 도둑 1
발 타일러 지음, 김난령 옮김 / 주니어파랑새(파랑새어린이) / 2007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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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6







 완전 허황된 세계관 속에서 보편적이고 공감 가능한 이야기를 펼치는 게 바로 판타지라는 장르의 매력일 것이다. 이 작품의 제목인 '시간도둑'은 메타포가 아니라 작중에서 시간을 관장하는 가디언족의 시계인 째깍이를 훔친 뤠카족들을 일컫는다. 가디언족과 뤠카족, 이 두 종족은 빛과 어둠, 고결함과 역겨움, 현명함과 어리석음으로 이분되는데 이 이분의 근거를 어디까지나 환경적 요인, 혹은 이전 세대 때부터 전해진 교육에 의한 것으로 추정할 수 있어 퍽 괜찮은 작품이었다. 판타지 소설이자 성장 소설이라니, 이보다 더 완벽한 조합이 있을 수 있을까 싶은데 - 심지어 영국 소설이다! - 작품은 아주 의외이면서도 작품 주제에 어울리는 주인공을 내세워 감동을 극대화시킨다.

 작가 소개란에서 저술된 창작 동기와는 약간 겉돌긴 하지만 - 2부는 겉돌지 않는다. - 이야기는 이야기 자체로써 흥미진진했다. 아이들 특유의 순진함과 나약함은 이 소설에서 유난히 이용당하거나 혹은 사건 해결의 열쇠, 혹은 변수로 작용하게 되는데 전직 교사였다는 작가의 시선이 잘 가미된 부분이 아닌가 싶다. 착한 아이, 나쁜 아이라고 흔히 단정 지어 말하곤 하나 그들 스스로가 착함과 나쁨을 의도할 리 만무하거니와 특히 나쁨의 경우 그를 제대로 가르칠 어른이 주변에 없었다면 필연적으로 빠져들게 될 요소라고 할 수 있다. 불행히도 이런 이해가 면죄가 될 정도로 작은 사건이 작중에서 터지지 않지만 어른들은 엄연히 아이들이 잘못했음에도 나무라지 않고 반성하고 책임을 다하려는 용기와 행동에 경의를 표한다. 이런 태도야말로 아이들을 어른으로 성장시킬 수 있는 게 아닐까.


 이 소설은 상황마다 변수도 터지는 등 몰입감이나 속도감도 뛰어나고 엉성한 듯 보이는 뤠카족들과 그들의 세계에 대한 설정도 주인공 일행의 대척점으로써 끝까지 긴장감을 늦출 수 없도록 존재감을 뿜어내서 꽤 땀을 쥐어가며 읽어내려갔다. 무엇보다 작중에 나온 떡밥을 회수함과 동시에 후속작에 대한 떡밥도 뿌려놔 다음을 기대하지 않을 수가 없게 됐다. 은근히 재밌고 중독성 넘치는 말투를 사용하는 뤠카족들이 다음엔 또 어떤 무지막지한 사고를 일으킬 것인지, 유례없는 사건을 해결한 다음의 가디언족들은 막 지켜낸 평화와 행복을 어떻게 만끽할 것인지 기대되고 또 기대된다. 정말 어렸을 때 읽어서 걱정했는데 지금 읽어도 재밌어서 반갑고 설레기 그지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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헤드 Heads 4 - 완결
히가시노 게이고 지음 / 서울미디어코믹스(서울문화사) / 2005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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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4







 히가시노 게이고 작품을 장르 가리지 않고 몰아보는 와중에 그의 소설 원작의 만화가 눈에 띄었다. 옛날에 만화대여점이 폐업할 때 전권을 싸게 샀는데 이렇게 다시 읽으니 감회가 새로웠다. 어떻게 보면 히가시노 게이고가 가장 잘 쓸 수 있는 이야기인데 지금 시점에선 그렇게 충격적인 내용은 아니지만 아무튼 무겁게 잘 그렸다는 생각이 든다.

 소심한 예스맨인 주인공 나루세가 강도 사건에 휘말려 머리에 총을 맞는다. 이후 그는 몇 억 분의 일의 기적의 확률로 뇌 수술에 성공하는데 나루세는 자신이 살아났다는 것에 어리둥절해 하다가 차츰 익숙해지며 좋아하는 그림과 여자친구를 위해 재활에 힘을 쓴다. 하지만 그때마다 불길한 그림자가 드리우게 되는데, 꼭 자기 자신이 아닌 듯한 언동을 보여 스스로를 당혹스럽게 하는 것이다. 그에 대한 의사들의 해명은 미심쩍지만 큰일로 치부하지 않고 넘기려 하지만...


 말했듯이 지금 보면 설정이 그렇게 참신한 건 아니다. 만화화와 영화화도 이뤄졌을 만큼 드라마틱하긴 하지만 만약 이 만화의 작화를 담당한 마세 모토로의 그림체와 연출이 아니었으면 초반에 나루세가 느낀 공포며 이후 변신해가는 혼돈의 과정이 이만큼 강렬했을까 싶다.  <헤드> 4권에도 실린 작가의 오리지널 단편도 보면 비슷한 작풍의 SF에 확실히 일가견이 있는 듯하다. 히가시노 게이고의 SF, 특히 과학적이고 윤리적 화두를 던지는 본편의 매력을 정말 잘 그린 것 같다. 뭐랄까, 어둡고 끈적한 화풍이 정말 잘 어울렸달까.

 이미 두 번째인가 세 번째인가 본 만화라서 사실 감흥은 이전보다 덜했다. 최근 작가의 <레몬>을 읽어서 비슷한 계열의 작품을 읽고 싶었던 거지만 의도는 반은 맞아들었고 반은 비껴갔다고 할 수 있겠다. 이것도 작가만의 클리셰인지... 이번에도 인간을 상대로 한 비인도적 과학 실험에는 높은 분의 입김이 닿아 있어 주인공의 처지나 심리는 더욱 망가지는데 이때 주인공이 취하는 태도가 아주 폭력적이고 극단적이라서 속이 시원한 한편으로 씁쓸했다. 이 정도면 사실 화두를 던진 게 아니라 답이 거의 던져진 것이나 다름없는 단순한 윤리적 문제지만 그 사이에 낀 탓에 폭주하는 - 하필 뇌 수술이... 아니 애당초 사고를 당해서... - 주인공의 모습이 몰입은 되지만 그 몰입감 때문에 뒷맛이 개운치 못한 그런 작품이었다.


 이번에 만화를 보면서 알게 된 건데 마세 모토로가 그 유명한 <이키가미>의 작가란 사실에 상당한 전율을 느꼈다. 이 작품을 끝으로 역사의 뒤안길에 사라진 건가 하고 혼자 슬퍼했는데 정말 괜한 걱정이었다. 이제 그 작품을 읽어봐야겠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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낙원의 캔버스
하라다 마하 지음, 권영주 옮김 / 검은숲 / 2015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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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5







 미술에 대해선 정말 일자무식이나 다름없어 화가의 이름을 들어봤어도 화풍은 어떻고 대표작은 무엇인지 바로 떠오르지 않는다. 이 작품의 주요 소재이자 등장인물이기도 한 루소는 그런 내게 있어 생소한 화가에 속했는데 덕분에 좋은 화가를 알게 됐다. 다카하시 가츠히코의 <샤라쿠 살인사건>보단 흥미롭진 않았지만 이 작품도 참 전문성에 충실한 아트 미스터리였다. 유럽 미술에 관심 좀 있다 하는 사람들한테 바로 추천하고 싶어 입이 근질거릴 정도다.

 소설이 무릇 소재만 좋다고 다 되는 게 아니다. 문체나 스토리도 봐야 할 텐데 이 작품으로 말할 것 같으면 소재의 호불호는 좀 갈릴 순 있어도 문체나 스토리에 트집을 잡기는 애매할 것 같다. 루소의 숨겨진 그림이라고 작중에 등장하는 '꿈을 꾸었다'가 진품인가, 아니면 터무니없는 위작인가를 두고 두 루소 전문가의 경쟁을 그린 작품인데 경쟁의 방식이 특이하게도 루소가 등장하는 이야길 읽고 강평을 내리는 것으로 진행된다. 한마디로 이중 구조, 삼중 구조로 이뤄진 작품인데 잦은 시점 교차와 루소 이야기 부분이 생각만큼 매혹적으로 그려지지 않은 게 단점이라면 단점이다. 어쩌면 소재 자체가 개인적으로 그렇게 흥미롭지 않아 나한테만 빚어진 불협화음일지 모르겠는데 그래도 중요한 건 작품 내에선 꽤나 진중하게 반드시 풀어내야 할 사건으로 다뤄지고 전개됨에 있다는 거이다. 미술품 애호가들의 다양한 종류의 욕심, 명화와 예술가들을 순수하게 존경하는 마음과 열정을 엿보기엔 정말 최적의 작품이었다.


 추리소설의 종류는 정말 다양하고 소재는 말할 것도 없는데 소재가 단순히 특이한 걸 넘어서 특별하고 보다 지적이면 또 그것대로 즐길 수 있는 법이다. 루소라는 화가의 일생에 담긴 열정은 내 개인 기호가 무색하게 여겨질 정도로 인상적이었다. 사후에도 꽤 오랫동안이나 세관원 출신의 일요화가라고 평단의 비웃음을 면치 못했던 그가 시간의 흐름에 따라 고지식하기 짝이 없는 미술계의 인정을 받는 건 무척이나 드라마틱한데 그 점을 잘 캐치해 픽션으로 감쪽같이 탈바꿈시켰다. 솔직히 오리에나 팀이 이야길 이끌어나가는 주체로서 그리 매력적인 이야기를 품지 않았다고 보는데 그 역할을 전부 루소의 이야기가 감당하고 있으니 상대적으로 여운이 좋았던 것에 비해 만족도는 덜했던 게 아닌가 싶다. 그래도 일단은 시간을 좀 두고 나중에 견문이 더 넓어졌을 때 속는 셈치고 다시 읽어보고 싶다는 생각은 들었는데 그 사이에 비슷한 컨셉의 작품을, 그것도 추리소설을 접할 수 있을까 걱정이 된다. 그래야 견문이 넓어질 텐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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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험한 비너스
히가시노 게이고 지음, 양윤옥 옮김 / 현대문학 / 2017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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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7.0







 최근 다시 이 작가한테 빠졌는데 아무래도 연달아 좋은 작품만 접한 탓인 것 같다. 히가시노 게이고의 모든 작품이 퀄리티가 균등하지 않다는 걸 알고 있었는데... 이름 자체가 브랜드가 되면 독자 입장에선 마냥 기뻐할 수도 없는 노릇이다. 작가가 유명하지 않았으면 출간되지 못할 작품도 접하게 되니까.

 이 의미심장한 제목의 작품은 무난하게 읽을 만했다. 그러다가 마지막 역자의 후기에서 이 작품을 다시 봤는데 그게 아니었으면 평이 더 나빠졌을지 모르겠다. 경계 너머의 아름다움에 취한 사람들을 표현한 제목이 아닌가 하고 역자가 추측하던데 꽤 일리가 있는 이야기다. 이 작품은 이야길 많이 벌려 놓은 것치고 은근히 수습이 미흡한데 그래도 나름 꼽을 만한 요소가 두 가지 있긴 하다. 하나는 범인의 동기, 그리고 나머지 하나는 유독 밝히는 주인공의 내면 속 갈등이다.


 전자의 경우, 작가가 너무 본인이 쓰는 소재에 심취한 것 같다. 히가시노 게이고가 과학자와 수학자에 대해 얘기하는 것은 개인적으로 대단히 반갑지만 이번 작품처럼 결국 무엇을 얘기하고 싶은 건지 본질적으로 감이 안 잡힌 건 처음이었다. 너무나 초월적인 범죄 동기가 특히 그랬는데 이 부분은 아리스가와 아리스의 초기작 <월광게임>과 <46번째 밀실>과 유사했다. 이 두 작품은 그 작가가 완전 초짜일 때 썼으니까 그러려니 했지만 <위험한 비너스>는 히가시노 게이고가 이미 작가 데뷔 30주년 이후에 발표한 작품인데 끝마무리가 너무나 애매하게 처리돼 당황스러웠다. 인간의 뇌 영역에 대한 작가의 개인적인 상상은 흥미롭지만 그 이상의 영역을 뭔가 '느낌 있게' 표현하려고 하니 힘에 부치는 느낌이 들었다. 환상적인 느낌으로 당할 자가 없는 교고쿠 나츠히코의 <망량의 상자>를 최근에 읽어서 그랬을까, 히가시노 게이고가 어울리지 않는 옷을 입은 것 같아 다소 아쉬웠다.

 후자의 경우도 난감하다. 사실 나도 한 사람의 남자로서 이번 작품에서의 육감적인 묘사가 달갑지 않은 건 아니지만 문제는 그런 묘사가 너무 잦아 결국엔 나도 민망했다는 것이다. 주인공이 유독 밝히는데 어째 주변 여자의 스타일이나 몸매에 대해 빠지지 않고 품평을 해대니 말이다. 특히 같이 다니는 가에데의 경우엔 너무 '노렸다' 싶을 만큼 남성의 판타지에 부합하는 캐릭터라 주인공의 응큼한 심리 묘사가 꽤나 도드라졌다. 이 묘사가 자주, 그리고 진하게 나오다 보니 이 작가가 눈요깃거리(?)에 의존하는 잔재주를 보인다며 한숨이 나왔는데 역자의 추측을 보니까 이것도 나름 의도한 설정이 아닌가 싶기도 했다. 어쨌든 가에데는 동생의 아내고 주인공은 순간 이성을 잃을 만큼 그녀를 흠모하지만 선을 넘지 않는다. 이 부분이 범인의 일그러진 행동과 구분되는 점인데 결말에서 이 점이 또 좋게 작용 - 그 결말 역시 판타지지만. - 하니 좋은 게 좋을 거라 할 수 있지만...... 만약 정말로 의도했던 주제의식이라면 조금 더 티가 났어야 하지 않을까 싶다. 히가시노 게이고 작품의 매력은 숨기고 추측하는 게 아닌데. 이것도 변화라면 좋은 변화이려나?


 이 작품의 미스터리는 한두 개가 아니라는 게 당시 일본에서 출간할 때의 광고 문구였다는데 이건 별로 좋은 점은 아닌 것 같다. 설정이 너무 많으면 어지간히 잘 쓰지 않고서야 분량이나 분배 조절에 실패해 이도 저도 아닐 확률이 높은데 이 작품이라고 크게 다르지 않았기 때문이다. 야가미 가문의 흥망은 유마와 아키토의 의기투합에 맡겨지는 영 쌩뚱맞은 결말이 나왔고 하쿠로 어머니의 미스터리한 죽음과 아버지의 그림도 최후반부에 잠깐 설명되고 - 이해되는 게 아니라 - 끝나서 허무했다. 이쯤 되니 남는 거라곤 가에데를 두고 혼자 싱숭생숭하는 하쿠로의 고군분투 정도인데 위에서 숱하게 얘기했듯 의도에 비해 오해의 소지가 있게끔 자극적으로 다뤄진 감이 있어 아쉽기 그지없었다. 나 역시 가에대란 캐릭터가 매력적이란 건 부정하지 않겠다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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