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험한 비너스
히가시노 게이고 지음, 양윤옥 옮김 / 현대문학 / 2017년 6월
평점 :
품절


7.0







 최근 다시 이 작가한테 빠졌는데 아무래도 연달아 좋은 작품만 접한 탓인 것 같다. 히가시노 게이고의 모든 작품이 퀄리티가 균등하지 않다는 걸 알고 있었는데... 이름 자체가 브랜드가 되면 독자 입장에선 마냥 기뻐할 수도 없는 노릇이다. 작가가 유명하지 않았으면 출간되지 못할 작품도 접하게 되니까.

 이 의미심장한 제목의 작품은 무난하게 읽을 만했다. 그러다가 마지막 역자의 후기에서 이 작품을 다시 봤는데 그게 아니었으면 평이 더 나빠졌을지 모르겠다. 경계 너머의 아름다움에 취한 사람들을 표현한 제목이 아닌가 하고 역자가 추측하던데 꽤 일리가 있는 이야기다. 이 작품은 이야길 많이 벌려 놓은 것치고 은근히 수습이 미흡한데 그래도 나름 꼽을 만한 요소가 두 가지 있긴 하다. 하나는 범인의 동기, 그리고 나머지 하나는 유독 밝히는 주인공의 내면 속 갈등이다.


 전자의 경우, 작가가 너무 본인이 쓰는 소재에 심취한 것 같다. 히가시노 게이고가 과학자와 수학자에 대해 얘기하는 것은 개인적으로 대단히 반갑지만 이번 작품처럼 결국 무엇을 얘기하고 싶은 건지 본질적으로 감이 안 잡힌 건 처음이었다. 너무나 초월적인 범죄 동기가 특히 그랬는데 이 부분은 아리스가와 아리스의 초기작 <월광게임>과 <46번째 밀실>과 유사했다. 이 두 작품은 그 작가가 완전 초짜일 때 썼으니까 그러려니 했지만 <위험한 비너스>는 히가시노 게이고가 이미 작가 데뷔 30주년 이후에 발표한 작품인데 끝마무리가 너무나 애매하게 처리돼 당황스러웠다. 인간의 뇌 영역에 대한 작가의 개인적인 상상은 흥미롭지만 그 이상의 영역을 뭔가 '느낌 있게' 표현하려고 하니 힘에 부치는 느낌이 들었다. 환상적인 느낌으로 당할 자가 없는 교고쿠 나츠히코의 <망량의 상자>를 최근에 읽어서 그랬을까, 히가시노 게이고가 어울리지 않는 옷을 입은 것 같아 다소 아쉬웠다.

 후자의 경우도 난감하다. 사실 나도 한 사람의 남자로서 이번 작품에서의 육감적인 묘사가 달갑지 않은 건 아니지만 문제는 그런 묘사가 너무 잦아 결국엔 나도 민망했다는 것이다. 주인공이 유독 밝히는데 어째 주변 여자의 스타일이나 몸매에 대해 빠지지 않고 품평을 해대니 말이다. 특히 같이 다니는 가에데의 경우엔 너무 '노렸다' 싶을 만큼 남성의 판타지에 부합하는 캐릭터라 주인공의 응큼한 심리 묘사가 꽤나 도드라졌다. 이 묘사가 자주, 그리고 진하게 나오다 보니 이 작가가 눈요깃거리(?)에 의존하는 잔재주를 보인다며 한숨이 나왔는데 역자의 추측을 보니까 이것도 나름 의도한 설정이 아닌가 싶기도 했다. 어쨌든 가에데는 동생의 아내고 주인공은 순간 이성을 잃을 만큼 그녀를 흠모하지만 선을 넘지 않는다. 이 부분이 범인의 일그러진 행동과 구분되는 점인데 결말에서 이 점이 또 좋게 작용 - 그 결말 역시 판타지지만. - 하니 좋은 게 좋을 거라 할 수 있지만...... 만약 정말로 의도했던 주제의식이라면 조금 더 티가 났어야 하지 않을까 싶다. 히가시노 게이고 작품의 매력은 숨기고 추측하는 게 아닌데. 이것도 변화라면 좋은 변화이려나?


 이 작품의 미스터리는 한두 개가 아니라는 게 당시 일본에서 출간할 때의 광고 문구였다는데 이건 별로 좋은 점은 아닌 것 같다. 설정이 너무 많으면 어지간히 잘 쓰지 않고서야 분량이나 분배 조절에 실패해 이도 저도 아닐 확률이 높은데 이 작품이라고 크게 다르지 않았기 때문이다. 야가미 가문의 흥망은 유마와 아키토의 의기투합에 맡겨지는 영 쌩뚱맞은 결말이 나왔고 하쿠로 어머니의 미스터리한 죽음과 아버지의 그림도 최후반부에 잠깐 설명되고 - 이해되는 게 아니라 - 끝나서 허무했다. 이쯤 되니 남는 거라곤 가에데를 두고 혼자 싱숭생숭하는 하쿠로의 고군분투 정도인데 위에서 숱하게 얘기했듯 의도에 비해 오해의 소지가 있게끔 자극적으로 다뤄진 감이 있어 아쉽기 그지없었다. 나 역시 가에대란 캐릭터가 매력적이란 건 부정하지 않겠다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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