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양이 제트 1
변기현 글.그림 / 길찾기 / 2007년 6월
평점 :
절판


7.8







 이렇게 동심에서 벗어나지 못한 인물의 모습을 그린 작품을 이전에도 접해본 것 같은데... 어렸을 적 우상이었던 히어로 만화의 주인공에 자기자신을 대입시킨 주인공의 모습은 그로테스크하면서도 짠했는데 상당히 수려한 화풍 덕에 만화보다 동화를, 좀 뻔한 표현이긴 하지만 어른을 위한 동화 한 편을 본 것 같다.

 그림체가 제법 명쾌하고 캐릭터들의 성격도 알기 쉬운 것치곤 생각보다 심오하고 난해한 작품이었다. 놀이공원에서 아이들이 연쇄적으로 폭행당하는 사건이 발생해 범인을 찾는다는 게 기본 줄거리인 줄 알았는데 초점이 맞춰지는 쪽은 언제나 고양이 Z 인형옷을 입고 있는 인물이다. 한여름에도 무더운 인형옷을 입고 휴식을 취하거나 밥을 먹거나 할 때도 인형옷을 벗지 않는 남자, 자신을 원래 이름으로가 아닌 고양이 Z로 부를 것을 바라는 남자, 한시도 쉬지 않고 자신이 고양이 Z로서 악당을 물리치는 상상의 나래를 펼치는 남자... 어떻게 보면 미스터리하고 문제적인 이 인물을 객관적이고 거리를 둬서 묘사하는 이 작품은 중반부를 넘어가면서 격정적으로 움직이기 시작한다.


 세상에 적응하지 못하고 동심 속으로 기어 들어간 사람이 저렇게 추하고 연민이 느껴질 수 있구나 싶어 보는 내내 답답함이 가시질 않았다. 다소 남다른 가치관의 소유자였던 주인공이 - 다르게 말하면 유리 멘탈인 - 스스로 납득할 수 없으면서 자괴감이 드는 사건과 마주하고 나서 옛날에 좋아했던 히어로 인형옷 속으로 도망치는 건 거리감이 느껴졌지만 꽤 그럴싸하게 다가왔다. 동료나 고용주한테 갖은 무시와 모욕을 당하는 게 안타까웠는데 한편으로 그럴 만도 하다고 여겨질 만큼 자기 내면의 세계에만 집중하는 주인공이라서 일련의 아동 폭행 사건의 중요 참고인으로 경찰의 주목을 받는 건 참 당연한 일로 느껴졌다.

 놀이공원이나 히어로를 소재로 다뤘음에도 실로 암울한 스토리를 자랑하는데 정작 중간에 잊을 만하면 펼쳐지는 주인공의 초현실적인 상상의 나래 때문에 빠르고 유쾌하게 읽혔다. 솔직히 말해 이야기나 인물에 감정 이입하기 그리 도움이 되는 연출은 아니었지만 작가의 작화나 상상력을 엿볼 수 있어 감상하는 맛은 있었다. 물론 이야기가 전체적으로 거북하고 막판엔 연쇄 아동 폭행 사건의 전말도 싱겁게 결말이 난 것도 허탈해서 뒷맛은 그닥이었지만 어떻게 보면 이런 시원스럽지 못한 결말이 작품의 분위기와는 잘 맞아떨어져 그런대로 납득하고 책장을 덮을 수 있었다. 왠지 작품의 주제의식이 알다가도 모르겠고 단지 희미하게 잡힌다는 건 좀 걸리지만.


 변기현이란 만화가는 그 유명한 <완득이>의 표제 일러스트를 그린 사람으로만 알고 있었는데 그의 그림을 이렇게 만화로 접하니까 느낌이 색달랐다. 그림체만큼이나 이렇게 색깔 있는 이야길 써내리는 사람이었다니, 꼭 유럽의 만화를 보는 느낌이라서 작가의 명성이나 평판이 이해가 됐다. 찾아보니까 내가 모르고 있었지 꽤나 활발하게 활동하는 작가던데 다른 작품도 읽어봐야겠다. 모든 작품이 다 <고양이 제트>처럼 그로테스크한 것 같진 않던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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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짝이는 박수 소리 - 또 다른 언어, 수어로 말하는 사람들
이길보라 지음 / 한겨레출판 / 2015년 11월
평점 :
절판


8.9







 코다CODA, Child Of Deaf Adult의 약자는 한마디로 농인 부모의 청인 자녀를 가리키며 이들은 날 때부터 들리지 않는 세계와 들리는 세계를 동시에 경험한다고 한다. 이러한 코다가 주인공으로 등장하는 작품인 프랑스 영화 <미라클 벨리에>나 일본 소설 <데프 보이스> 등을 접한 뒤 적잖이 관심이 생겨 검색을 해보니까 자주 눈에 띄는 이름이 있었다. 바로 이 책의 저자인 이길보라였다. 일전에 <그건 혐오예요>라는 책에서도 접했던 저자는 이 책과 동명의 다큐멘터리 영화를 연출한 것으로 유명한 감독이기도 했다. 아마 추측하기론 우리나라에서 농인에 대해 얘기하는 창작자로서 독보적인 위치를 점하고 있는 듯해 이렇게 책까지 읽게 됐다.  

 영화랑 책의 내용이 어디까지 똑같은지 잘 모르겠지만 대체로 책은 영화의 비하인드 스토리나 영화가 개봉한 이후에 느꼈던 관객들의 감상에 대해 더 자주 얘기하는 것 같다. 영화를 보고 '나 자신의 얘길 듣는 것 같았다'며 저자에게 감상을 들려준 전국의 코다 관객의 이야기에다가 저자의 자전적인 얘기도 곁들여져 코다라는 존재가 상당히 현실감 있게 다가왔다. 초반에 언급했던 영화나 소설은 아무래도 픽션이라서 - 개중에는 실화 바탕의 작품도 있지만 - 코다라는 정체성이 주인공 개개인의 개성으로만 느껴져던 것에 비해 이 책 <반짝이는 박수 소리>에선 순전히 이 세상에 존재하는 사람들이란 생각됐던 것이다.


 지금까지 코다를 만나본 적이 없어서 그런 걸까, 아니면 만났는데 내가 모르고 지나쳤던 걸까. 여타 장애인과 비교해도 유독 눈에 잘 띄지 않는다는 청각장애인처럼 그들도 단지 내 눈에 잘 안 보였던 걸까? 아무튼 그렇다 보니 책에 적혀진 저자의 자전적인 내용들이 적잖이 신기했다. 귀가 들리지 않아 경제 활동에 제약이 있었던 부모님과 그런 부모님 밑에서 청인으로 태어나 어렸을 때부터 부모님의 통역사를 도맡았던 것, 그렇게 통역을 위해 부모님과 함께 은행을 비롯해 이곳저곳을 다니느라 집안의 경제적인 문제를 모를 수가 없게 된 것, 그래서 세상 물정을 일찍부터 알게 된 것 등이 생각보다 현실적으로 읽혔다. 자전적인 얘기를 해서 그런지 가독성과는 별개로 퍽 진실되게 다가왔던 것이다. 이건 그야말로 저자가 코다이기에 자연스럽게 할 수 있는 이야기라 나도 모르게 상상이 자극되는 측면도 있었다. 이를테면 공항에서 아버지와 직원 사이에서 통역을 하느라 진땀을 빼고 있는 작가의 모습이나 드라마 장면을 일일이 설명하느라 어머니한테 시달리는 장면 등이... 이런 일상적인 장면에 대한 묘사도 다 좋았다.

 이 책을 다 읽으면 아무래도 우리나라의 농인들의 현주소에 대해 궁금해하지 않을 수 없게 된다. 작중에서 저자와 아버지와 함께 미국으로 갔던 이야기가 인상적이었는데 공항 직원들부터 간단한 수어가 가능해 주인공이 통역할 필요가 없었던 것에서 시작해 아예 농인 전문 대학까지 있었다는 내용들은 주인공과 마찬가지로 독자인 나 역시 문화 충격을 느낄 만한 부분이었다. <그건 혐오예요>에서 이길보라 작가가 한 말이 떠올랐는데, 외국에 나가면 우리나라완 달리 장애인들이 그렇게 많이 보인다는 게 바로 이런 이유 때문이구나 싶었다. 우리나라에선 장애인은 없는 사람, 혹은 보이지 않았으면 하는 사람으로 배척하지만 외국에선 그들을 위한 인프라를 구축해놓는다고. 왜냐하면 그들도 우리 곁에 엄연히 존재하는 사람이니까. 이는 작가와 부모 사이의 관계를 떠올리면 더욱 명확히 다가온다.


 이길보라 작가의 자전적인 책인 <반짝이는 박수 소리>는 내가 생각하는 그 이상으로 보편적인 부모 자식의 관계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었다. 돌이켜 보면 읽기 전에 코다인 작가라서 엄청 특이한 부모 자식 관계가 그려질 거라고 생각했던 것 같은데 내가 뭘 잘못 생각한 것 같다. 어렸을 때부터 부모의 말을 통역하느라 창피하고 곤혹스러운 경험이 없지 않았다고 할 수 없지만 그게 또 나와 당신들과의 끊을 수 없는 유대의 일부라고 저자는 술회했다. 이걸 보니 청각장애인이나 코다처럼 사회에서 구분 짓는 용어같은 건 진실로 그들의 정체성을 규정하는 단어가 될 수 없고 결국에 남는 것은 사람과 사람 사이의 유대라는 생각이 들었다. 우리와 다르지 않은 사람, 들리지 않지만 그게 뭐 어쨌다는 말인가, 불편하긴 하지만 문제될 것 없다고 거듭 강조하는 저자와 저자의 영화를 보고 감상을 남겨준 여러 관객의 이야기 덕에 나와 타인 사이의 다름에 대해서도 생각해보게 됐다. 나와 다른 타인의 모습을 나는 어디까지 재단할 수 있을 것인가, 그런데 그렇게 재보는 것 자체가 실례고 어리석은 건 아닌가 하고...

 아까도 말했지만 이 책과 동명의 영화가 있다. 지금까지 글로만 접했던 저자의 연출 실력은 또 어떨지 기대하면서 찾아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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존재하나 존재하지 않는 - 소실형 레드 문 클럽 Red Moon Club
가지오 신지 지음, 안소현 옮김 / 살림 / 2014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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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0






 군대에 있을 때 병사들 사이에서 선임이 후임에게 가할 수 있는 가장 잔인한 벌이 뭐였느냐고 누가 묻는다면 나는 단연 '개통'을 먼저 댈 것이다. '개인정비 통제'의 줄임말인데 선임이 개통을 걸어버리면, 당사자는 개통이 풀릴 때까지 TV도 못 보고 책도 못 읽고 잠도 못 자고 전화도 하면 안 되고 사지방에도 못 가고 노래방도 못 가고 운동도 하면 안 되고 PX도 가면 안 되고... 한마디로 자유 시간에 할 수 있는 모든 여가 활동을 금지당하게 된다. 이 벌이 단순히 맞고 욕을 먹는 것보다 고통스러웠던 이유는 주변 사람들은 여가 활동이 가능한데 나 혼자만 그렇지 못한다는 고독과 답답함에 있다. 그야말로 인간의 기본권이 침해당한다는 느낌에 지금 생각해도 간담이 서늘할 정돈데 이 책을 읽으면서 비슷한 느낌을 받았다.

 도입함에 있어 아직 실험 단계에 있다는 '소실형'이란 형벌을 주인공이 받게 되면서 시작하는 작품이다. 배니싱 링을 목에 차면서 주인공은 누구의 눈에도 띄지 않게 된다. 존재 자체를 부정당하는 형벌이라서 다른 사람들에게 보이지 않을 뿐만 아니라 사람들에게 말도 걸 수 없고 일정한 거리보다 가까이 다가가는 것조차 허락되지 않는다. 그랬다간 배니싱 링이 목을 조여 몸을 가눌 수 없게 된다. 이는 존재를 증명하는 다른 활동, 글을 쓴다거나 영화를 보는 모든 인간적인 행위에도 마찬가지로 해당돼 소실형을 받는 당사자는 말 그대로 자신의 존재 자체가 소실되는 것을 체감하고 만다.


 사실 이야기가 초반부를 넘어가자 약간 걱정이 들기 시작했다. 소실형이란 설정 자체는 신선하면서 딱히 구멍이랄 게 없어 기대가 되지만 설정의 특성상 타인과 관계를 맺을 수 없으니 전개시키기 굉장히 까다롭지 않을까 싶었던 것이다. 읽기 전에 들었던 모습이 보이지 않으면 범죄를 저지르기 용이해지지 않는가 라는 의문은 배니싱 링의 자체적인 구속과 더불어 주인공처럼 비교적 온건한 성미의 범죄자만 처해지는 형벌인 것이란 단서가 있어 어느 정도 납득할 수 있었는데 그래서 그런지 전개가 따분하진 않을지 더더욱 걱정됐다. 아니나 다를까, 마냥 관념적이지 않음에도 주인공의 처지가 처지인 만큼 이야기가 자꾸 안으로 기어들어가려는 듯이 전개돼 생각보다 시원시원하게 읽히지 않았다. 덕분에 소실형의 잔인한 면모가 부각된 것도 있지만 개인적으로 이야기가 설정의 한계를 벗어나지 못했다는 인상을 더 강하게 받았다. 솔직히 말해 중반부까진 익히 예상이 갔고 후반부의 전개는 극적이긴 했지만 무리수가 있어서 당혹스러웠다.

 내가 군대에 있을 때 경험한 개통과 일맥상통하면서도 비교를 불허하는 소실형은 경험하는 이로 하여금 심각한 우울증을 초래할 것이 자명하단 점만으로도 일반적인 감옥살이와는 차원이 다르게 폭력적이다. 그래서 작중의 주인공인 가쓰노리가 아무리 실험이더라도 이 소실형에 처한다는 게 매우 잔인하게 느껴졌는데 이에 대해 설명을 하다 만 것 같아 찜찜하기 그지없었다. 또 가쓰노리가 죄를 범하는 계기에 대한 설명도 다소 뜬금없는 구석이 있는 등 주인공에게 불쌍함 이상의 입체적인 묘사가 이뤄지지 않았던 것도 아쉬웠다.


 사회적 동물인 사람에겐 존재를 부정당하는 것만큼 잔인한 벌은 없다는 작품의 메시지는 잘 와 닿았고 설정도 괜찮았지만 이야기와 주인공이 매력적이지 못한 건 자꾸 걸린다. 주인공이 착하디 착한 나머지 소실형의 허점이나 존재 의의 같은 건 다뤄지지 않아서 작품이 분량에 비해 다양한 이야기를 담아내지 못하지 않았나 싶다. 아까도 말했듯 익히 예상한 것을 넘어선 재미는 없어서 역시 소재가 독특할수록 써내려가기가 힘들다는 게 느낄 수 있었다. 쓰기에 따라선 한없이 철학적이고 진실할 수 있는 소재라 생각했는데... 이번에도 내 기대가 너무 컸던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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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덩이 창비청소년문학 2
루이스 새커 지음, 김영선 옮김 / 창비 / 2007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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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2







 옛날에 재밌게 읽었던 청소년 소설을 다시 읽으면 실망하는 경우가 많다. 어쩔 때는 내가 도대체 어느 부분을 재밌게 느꼈는지 감도 안 잡히는 경우도 있다. 그때마다 괜히 '청소년' 문학이 아닌가 보다 라며 이제 나는 청소년 소설을 멀리해야 하는 것일까 씁쓸히 중얼거리곤 했다. 한때 청소년 문학을 꽤나 좋아했기에 저렇게 중얼거리는 게 못내 아쉬웠었다.

 <구덩이>는 내가 고등학생 때 도서관에서 빌려 읽은 책이다. 그땐 하라는 공부는 안 하고 독서에 빠져 지낸 시절이었는데 그래서 그랬는지 유독 재밌게 읽힌 작품 중 하나였다. 시간이 지나서 다시 읽으니 그때만큼은 아니더라도 재미가 건재해서 얼마나 다행이었는지 모른다. 고백을 하자면 이 책을 처음 다시 읽어내려갔을 땐 왜 내가 이 작품을 다시 읽으려 했는지 감이 잘 안 잡혔다. 내가 이렇게 재미없게 읽히는 책을 다시, 그것도 구입해서 읽으려 할 리가 없는데? 그래서 다시 한번 천천히 읽어내려가니 인상이 또 달라졌다. 여러 시점의 이야기와 복선이 넘치는 작품의 특성에 맞춰 빨리 읽어내려가선 안 됐던 건데... 속독이 결코 능사가 아님을 깨닫는 시간이었다.


 이 작품은 누명을 쓰고 초록 호수 캠프로 오게 된 스탠리의 이야기, 마을에서 제일 예쁜 여자에게 구애를 하려는 스탠리의 고조 할아버지의 이야기, 흑인 양파 장수와 사랑에 빠지는 시골의 교사 이야기, 이렇게 세 가지 이야기로 구성된 소설이다. 중심이 되는 인물은 누명을 쓰고 캠프에서 혹사당하는 스탠리로 말이 청소년 교화가 시설이지 실상 아동 학대가 자행되는 캠프를 스탠리가 어떻게 벗어날 수 있을 것인가, 그리고 캠프 소장은 왜 그렇게 아이들에게 구덩이를 파라고 하는 걸까 살펴보는 게 이 작품의 핵심이다.

 미국에서 최고의 청소년 문학에게 수여하는 뉴베리상 수상작인데 아마 정확히 기억나진 않아도 같은 상을 받은 작품을 몇 권 읽어봤을 것이다. 확실한 건 <구덩이>는 여타 수상작들에 비해서도 월등히 뛰어난 작품으로 특히 구성에 있어서는 가히 괄목할 만하다. 이는 저자에게 한 차원 더 높은 수준의 창작 능력을, 독자에겐 마찬가지로 한 차원 더 높은 수준의 독해력을 요구하는데 이것만 봐도 작풍이 청소년 소설일 뿐 흔히 말하는 일반 문학에 비견될 정도라는 생각이 든다. 이 작품의 구성이나 연출을 보면 아무리 국내에 청소년 문학으로 소개됐을지라도 그 틀 안에서만 살펴보는 건 퍽 아까운 일이지 않은가 싶으니 말이다. 오죽하면 내가 이 작품을 초반에 읽어서 다른 청소년 문학이 상대적으로 떨어져 보였던 걸까 생각했으니 아주 말 다했다.


 어떻게 보면 참 제자리 걸음하고 있는 것 같고 이래저래 모순된 행보를 보이기도 하는 미국에서 인종 차별이란 주제가 끊임없이 다뤄지는 건 그리 신기한 일도 아니다. 오히려 신기하기로는 그렇게 인종 차별에 대해 얘기하면서 개선되는 구석도 없이 퇴보하는 것 같은 게 더 신기하기 짝이 없다. 그런 와중에 <구덩이> 같은 작품은 그 퇴보를 조금이라도 늦춰주는 역할을 했으리라 생각한다. 인종 차별이란 제멋대로 열등한 인종을 만들어내 벽을 쌓는 심리가 기본으로 깔린 폭력인데 이런 심리는 비단 인종만 아니라 성별이나 국적, 장애, 나아가 개개인의 개성에까지도 확장될 수 있다는 점에서 아주 병적이지 않을 수 없다.

 <구덩이>에서 가장 좋았던 점은 바로 약자에 대한 사려 깊은 시선과 시간을 초월한 권선징악적인 결말이다. 이는 요즘 들어 자주 보이는 노골적인 PC와는 결이 다르다. 얼핏 상관없어 보이는 세 가지 이야기가 운명론적이고 환상적으로 엮인 덕분에 승리한 스탠리와 제로의 여정이 시사하는 것은 당장 우리 눈앞에서 매듭이 지어지지 않더라도 보답을 받을 사람은 어떻게든 보답을 받고 대가를 치러야 할 사람은 어떻게든 대가를 치르게 된다는 것이다. 거의 100년이 넘는 시간이 지나 결착이 난 <구덩이>의 서사는 오직 독자만이 그 흥망성쇠를 파악할 수 있어 완전히 속시원하진 않지만 그럼에도 마냥 아쉽지 않은 것 역시 당연한 일일 것이다.


 조상이니 후손이니 하는 설정을 별로 안 좋아하는 내가 설마 이런 한 가문의 여러 세대에 걸친 운명과 저주에 관한 이야기에 감탄하다니, 그것도 이 짧은 분량 안에서! 처음엔 중심 인물이 수시로 바뀌어서 당혹스러웠는데 결과적으로 작가의 빅픽처가 말 그대로 깔끔하게 실현돼 인상적이기 이를 데 없었다. 내가 어제 입은 상처가 당장은 아니더라도 나중에 치유되고 내게 상처를 입힌 자가 언젠가 반드시 화를 면치 못한다는 걸 이렇게 드라마틱하게 풀어놓으면 어깃장을 놓기가 힘들다. 더군다나 최근에 본 영화 <쉰들러 리스트>에서 재개봉 기념으로 본편 상영 전에 삽입된 스티븐 스필버그 감독의 코멘트처럼, 혐오가 급증하고 관용을 잃어가는 요즘에 있어서는 <구덩이>에서의 드넓은 시선은 참으로 고무적으로 다가왔다. 다시 읽으니까 이런 감상이 다 나오네.

 이 작품이 영화화됐다는데 그것도 한 번 찾아봐야겠다. 상대적으로 액션 묘사가 지루한 편인 원작의 부족한 점을 어떻게 보완했을지 궁금하다. 정말로 작중 세 가지 이야기를 다 영상으로 다뤘을지도 궁금하고. 혹시 그렇지 않았다 하더라도 어떻게 재해석했을지도 역시 궁금하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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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 헬싱키 안그라픽스의 ‘A’ 시리즈
김소은 지음 / 안그라픽스 / 2015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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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8







 사진 하나 없는 여행책인 것 같아 호기심이 동해 읽어봤는데 작가의 아기자기하고 유려한 일러스트 덕에 읽는 내내 눈이 즐거웠다. 핀란드 국기 색깔인 흰색과 파란색 - 이 두 색은 각각 눈과 호수를 상징한다. 한국이 영어로 코리아인 것처럼 핀란드는 핀란드어로 호수의 나라라는 뜻의 '수오미'라는데 이런 이름이 붙을 정도로 핀란드엔 호수가 많다고 한다. - 으로만 채색된 일러스트는 예쁜 걸 넘어 상쾌했다. 단순하지만 희로애락이 분명히 표시되는 명쾌한 화풍도 순진무구한 분위기와 잘 어울려 보는 맛이 있었다.

 최근에 읽은 장 자끄 상뻬의 <뉴욕 스케치>보다 모든 면에서 괜찮은 책이었다. 일단 내가 한국인이라 같은 한국인의 이야기가 더 와 닿았던 것도 있고, 그림도 만만찮게 예쁘면서 양도 많고 텍스트 또한 나름 빠짐없이 빼곡히 들어찬 것도 괜찮았다. 내용의 심오함에 있어서는 상뻬의 책보단 비등비등하거나 조금 떨어지지만 이 책 자체가 소소함을 지향하는 만큼 단순 비교는 좀 힘드리라 본다. 정말이지 소소한 일기를 읽는 기분이 들었는데 그림이 너무 예뻐 이 정도면 꽤 엿볼 만한 일기가 아닌가 싶었다. 적어도 만듦새에 있어서 페이지 넘버가 없었던 것만 빼면 더 바랄 나위 없을 정도였다.


 신혼 부부가 1달 동안 핀란드 헬싱키에 여행을 갔다는 일기 같은 형식의 이 책은 내용에 있어서 특기할 요소가 부족하긴 하다. 특히 헬싱키 여행 정보를 얻으려고 하면 다소 두서 없고 기분 따라 흘러가는 듯한 전개나 정보의 나열 때문에 별로 정리가 되지 않을 수 있다. 한편으론 염장질에 가까운 자기 자랑으로 비춰질 법도 해 별로 몰입이 되지 않을 수도 있다. 중요한 건 이 작가가 해외에서 긴 시간 동안 살아본다는 로망을 실현하는 것에 있으므로 이 책을 통해 뭔가 대단한 것을 얻으려는 과도한 목적의식을 띄고 접근해선 곤란할 것이다. 그렇기에 일러스트에 감탄하는 동시에 머릿속으로 나만의 헬싱키를 그려보거나, 혹은 내가 좋아하는 다른 도시에서의 삶을 상상할 때 참고만 한다는 식으로 읽는다면 제법 행복한 시간과 여운을 만끽할 수 있게 될 것이다. 이것만 해도 대단한 거지, 그 이상은 욕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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