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덩이 창비청소년문학 2
루이스 새커 지음, 김영선 옮김 / 창비 / 2007년 8월
평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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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2







 옛날에 재밌게 읽었던 청소년 소설을 다시 읽으면 실망하는 경우가 많다. 어쩔 때는 내가 도대체 어느 부분을 재밌게 느꼈는지 감도 안 잡히는 경우도 있다. 그때마다 괜히 '청소년' 문학이 아닌가 보다 라며 이제 나는 청소년 소설을 멀리해야 하는 것일까 씁쓸히 중얼거리곤 했다. 한때 청소년 문학을 꽤나 좋아했기에 저렇게 중얼거리는 게 못내 아쉬웠었다.

 <구덩이>는 내가 고등학생 때 도서관에서 빌려 읽은 책이다. 그땐 하라는 공부는 안 하고 독서에 빠져 지낸 시절이었는데 그래서 그랬는지 유독 재밌게 읽힌 작품 중 하나였다. 시간이 지나서 다시 읽으니 그때만큼은 아니더라도 재미가 건재해서 얼마나 다행이었는지 모른다. 고백을 하자면 이 책을 처음 다시 읽어내려갔을 땐 왜 내가 이 작품을 다시 읽으려 했는지 감이 잘 안 잡혔다. 내가 이렇게 재미없게 읽히는 책을 다시, 그것도 구입해서 읽으려 할 리가 없는데? 그래서 다시 한번 천천히 읽어내려가니 인상이 또 달라졌다. 여러 시점의 이야기와 복선이 넘치는 작품의 특성에 맞춰 빨리 읽어내려가선 안 됐던 건데... 속독이 결코 능사가 아님을 깨닫는 시간이었다.


 이 작품은 누명을 쓰고 초록 호수 캠프로 오게 된 스탠리의 이야기, 마을에서 제일 예쁜 여자에게 구애를 하려는 스탠리의 고조 할아버지의 이야기, 흑인 양파 장수와 사랑에 빠지는 시골의 교사 이야기, 이렇게 세 가지 이야기로 구성된 소설이다. 중심이 되는 인물은 누명을 쓰고 캠프에서 혹사당하는 스탠리로 말이 청소년 교화가 시설이지 실상 아동 학대가 자행되는 캠프를 스탠리가 어떻게 벗어날 수 있을 것인가, 그리고 캠프 소장은 왜 그렇게 아이들에게 구덩이를 파라고 하는 걸까 살펴보는 게 이 작품의 핵심이다.

 미국에서 최고의 청소년 문학에게 수여하는 뉴베리상 수상작인데 아마 정확히 기억나진 않아도 같은 상을 받은 작품을 몇 권 읽어봤을 것이다. 확실한 건 <구덩이>는 여타 수상작들에 비해서도 월등히 뛰어난 작품으로 특히 구성에 있어서는 가히 괄목할 만하다. 이는 저자에게 한 차원 더 높은 수준의 창작 능력을, 독자에겐 마찬가지로 한 차원 더 높은 수준의 독해력을 요구하는데 이것만 봐도 작풍이 청소년 소설일 뿐 흔히 말하는 일반 문학에 비견될 정도라는 생각이 든다. 이 작품의 구성이나 연출을 보면 아무리 국내에 청소년 문학으로 소개됐을지라도 그 틀 안에서만 살펴보는 건 퍽 아까운 일이지 않은가 싶으니 말이다. 오죽하면 내가 이 작품을 초반에 읽어서 다른 청소년 문학이 상대적으로 떨어져 보였던 걸까 생각했으니 아주 말 다했다.


 어떻게 보면 참 제자리 걸음하고 있는 것 같고 이래저래 모순된 행보를 보이기도 하는 미국에서 인종 차별이란 주제가 끊임없이 다뤄지는 건 그리 신기한 일도 아니다. 오히려 신기하기로는 그렇게 인종 차별에 대해 얘기하면서 개선되는 구석도 없이 퇴보하는 것 같은 게 더 신기하기 짝이 없다. 그런 와중에 <구덩이> 같은 작품은 그 퇴보를 조금이라도 늦춰주는 역할을 했으리라 생각한다. 인종 차별이란 제멋대로 열등한 인종을 만들어내 벽을 쌓는 심리가 기본으로 깔린 폭력인데 이런 심리는 비단 인종만 아니라 성별이나 국적, 장애, 나아가 개개인의 개성에까지도 확장될 수 있다는 점에서 아주 병적이지 않을 수 없다.

 <구덩이>에서 가장 좋았던 점은 바로 약자에 대한 사려 깊은 시선과 시간을 초월한 권선징악적인 결말이다. 이는 요즘 들어 자주 보이는 노골적인 PC와는 결이 다르다. 얼핏 상관없어 보이는 세 가지 이야기가 운명론적이고 환상적으로 엮인 덕분에 승리한 스탠리와 제로의 여정이 시사하는 것은 당장 우리 눈앞에서 매듭이 지어지지 않더라도 보답을 받을 사람은 어떻게든 보답을 받고 대가를 치러야 할 사람은 어떻게든 대가를 치르게 된다는 것이다. 거의 100년이 넘는 시간이 지나 결착이 난 <구덩이>의 서사는 오직 독자만이 그 흥망성쇠를 파악할 수 있어 완전히 속시원하진 않지만 그럼에도 마냥 아쉽지 않은 것 역시 당연한 일일 것이다.


 조상이니 후손이니 하는 설정을 별로 안 좋아하는 내가 설마 이런 한 가문의 여러 세대에 걸친 운명과 저주에 관한 이야기에 감탄하다니, 그것도 이 짧은 분량 안에서! 처음엔 중심 인물이 수시로 바뀌어서 당혹스러웠는데 결과적으로 작가의 빅픽처가 말 그대로 깔끔하게 실현돼 인상적이기 이를 데 없었다. 내가 어제 입은 상처가 당장은 아니더라도 나중에 치유되고 내게 상처를 입힌 자가 언젠가 반드시 화를 면치 못한다는 걸 이렇게 드라마틱하게 풀어놓으면 어깃장을 놓기가 힘들다. 더군다나 최근에 본 영화 <쉰들러 리스트>에서 재개봉 기념으로 본편 상영 전에 삽입된 스티븐 스필버그 감독의 코멘트처럼, 혐오가 급증하고 관용을 잃어가는 요즘에 있어서는 <구덩이>에서의 드넓은 시선은 참으로 고무적으로 다가왔다. 다시 읽으니까 이런 감상이 다 나오네.

 이 작품이 영화화됐다는데 그것도 한 번 찾아봐야겠다. 상대적으로 액션 묘사가 지루한 편인 원작의 부족한 점을 어떻게 보완했을지 궁금하다. 정말로 작중 세 가지 이야기를 다 영상으로 다뤘을지도 궁금하고. 혹시 그렇지 않았다 하더라도 어떻게 재해석했을지도 역시 궁금하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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