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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내들의 학교
박민정 지음 / 문학동네 / 2017년 8월
평점 :
8.4
세계 역사상 가장 크고 역사가 오래된 식민지는 바로 여성이라는 말이 있는데, 말 그대로 국경을 가리지 않는다는 점에서 그보다 적합한 말은 또 없을 것 같다. 생각해보면 어느 문화권에서건 차별은 존재하고 성차별 또한 당연히 있는데 박민정 작가의 소설집 <아내들의 학교>를 읽으니까 유독 성차별이 비단 특정 국가나 시대의 문제가 아니라 전세계적으로 얘기해볼 문제라는 생각이 들었다.
전공 수업을 박민정 작가에게서 받은 적이 있는데, 몇몇 수업 자료로 이 책의 수록작들이 다뤄진 적이 있다. 그때는 약간 흘러가듯 언급된 작품들이라 별로 관심이 가지 않았는데 지금 생각하니 그 학기 동안에 읽었어야 하지 않았나 싶다. 강의 첫인상과는 달리 막판에 꽤 만족을 했던 터라 애초부터 수업 시간에 던져진 주제를 열심히 쫓아갔더라면 좋았을 텐데... 지금에 와선 그저 늦은 후회일 뿐이다.
'행복의 과학'과 'A코에게 보낸 유서'
처음에 배치된 두 작품은 화자와 세계관을 공유하는 연작이다. 가까우면서도 먼 나라 일본에 대해 우리는 잘 안다고도 생각하면서도 어쩌면 가장 낯선 나라라고도 할 수 있는데 이 연작에선 후자에 해당할 '먼 일본'이란 관점에서 이야기가 진행된다. 도서관에 가면 무라카미 하루키를 '촌상춘수', 히가시노 게이고를 '동야규오'라고 표기하는데 이는 다 작가 이름을 우리나라 한자로 치환한 발음을 그대로 옮긴 것들이다. 이 점은 소설 첫문단에서 짚고 넘어가는 부분인데 여기서 일본이 우리나라 사람에게 복합적으로 다가오는 나라라는 점을 엿볼 수 있었다. 이후 작중에서 등장하는 가상의 일본인들이나 그의 저술, 과거나 'A코에게 보낸 유서'에서 더 심화되는 우익의 혐오 활동을 통해 단순히 피상적인 묘사가 아닌 심층적인 묘사를 선보여준다.
우리나라 문학에서 일본 문화를 이렇게 심층적으로 묘사하는 경우는 드물다. 사실 처음 읽는 동안엔 이렇게 묘사에 공을 들이는 이유가 와 닿지 않아서 읽히기는 잘 읽히는 한편으로 아리송한 기분도 적잖이 들었다. 전부터 일본 문화에 관심이 많은 나한테 있어선 아주 새롭거나 충격적이진 않았으나 나말고 다수의 다른 독자들에겐 그렇지 않을 것이다. 한마디로 자신이 일본 혼혈이란 정체성을 어떻게 확립해나갈 것인가 하는 주인공의 자아 성장담이라고 넘기기엔 작품의 묘사 수준은 철저히 공부를 하고 녹여낸 흔적이 다분했던 것이다. 그 흔적이 사람에 따라선 흥미로운 일본 문화 탐방 정도로 치부할 정도로 말이다.
연작의 세계관 속 가상의 일본 저자의 체험 및 일기에는 우리나라 사람이라면 특히 민감하게 느낄 종류의 혐오 범죄가 등장한다. 그중 가장 대표적인 게 일본 조총련계 학교 여학생을 살해한 - 조총련이란 단어는 가네시로 가즈키의 소설을 읽은 독자라면 낯설지 않게 들릴 것이다. - 이야기일 것이다. 일본인도 아니고 한국인도 아니고 그렇다고 북한에 속하지도 않은 그들이 단지 옛날 한복을 연상시키는 교복을 입었다고 우익의 타겟이 된다는 건 참 혐오스러운 일이다. 사회의 성향에 따라 어디에나 강자가 있으면 약자도 있는 법이지만 저렇게 국적도 불분명하다시피 한 절대적 소수자들에게 행사하는 폭력이라니 끔찍한 일이지 않은가.
박민정 작가는 기본적으로 여성 서사를 쓰는 작가이긴 하나 거기서 비롯돼 확장되는 세계관이나 심층적인 설정은 단순히 '여성 서사'라는 단어만으로 수식하기엔 좀 모자란 감이 있다. 아니, 표현을 달리 하자면 여성 서사의 외연은 우리가 흔히 상상하는 그 범위를 아득히 초월할 수 있음을 증명했다고 봐야겠다. 단순히 자신의 정체성을 찾는 화자의 이야기일 줄 알았던 작품이 이웃나라 일본의 갖가지 혐오 양상을 담아내고 그 안에서 여성을 비롯한 여러 소수자들을 억압하기론 남말할 처지가 아닌 한국의 모습도 그려 상당히 복합적으로 읽혔다.
어느 나라에선 여성이 혐오의 대상으로, 어디에서는 여성을 전시의 대상으로 여긴다는 것엔 큰 차이가 없고 실제론 한국이나 일본이나 여기나 저기나 거기서 거기라는 생각에 다다르니 초반에 느꼈던 '왜 이토록 일본 문화를 심층적으로 묘사하는가' 하는 질문은 형체도 없이 사라졌다. 이토록 일본을 묘사해도 결국엔 우리 모두에게 공감을 끌어낼 이야기에 도달한 걸 보고 기실 무의미했던 걱정이었구나 싶기 때문이다. 아까 '성차별이 비단 특정 국가나 시대의 문제가 아니라 전세계적으로 얘기해볼 문제라는 생각이 들었다'고 했는데, 따지고 보면 외국 소설을 읽는 이유가 단지 외국 문화를 접할 수 있다는 이유로 읽는 것 아니잖은가. 해외 여행을 하는 이유도 이와 마찬가지겠는데, 외국 소설을 통해 우리나라도 돌아볼 수 있고 혹은 세계적이고 보편적인 이야기기에 읽는다는 걸 생각하면 이와 같은 깨달음이 사뭇 새삼스럽다는 생각까지 들었다.
'아내들의 학교'
표제작. 등장인물들의 이해관계나 작품의 세계관이 한 번에 와 닿지 않고 괜히 번거롭게 꼬아놓은 감은 들지만 그래도 흥미롭게 읽힌 작품이다. 지금 우리가 살고 있는 현재와 동떨어진 세계관을 묘사했지만 읽는 동안 그런 이질감은 잘 안 들었고 결국엔 지금 현재 우리가 공감할 만한 이야기로 돌아온다는 점에서 위의 연작과 일맥상통한 점도 있었다. 제아무리 동성끼리의 결혼이 법적으로 제도화된 미래라 해도 사회적인 인식은 물론이고 방송국이 이를 바라보는 시선은 시대를 못 쫓아갔다는 게 작품을 읽는 내내 상상이 됐는데 이 부분에선 비교적 최근에 읽은 SF 소설 <xx>가 연상되기도 했다.
굳이 성적 취향이고 아니고를 떠나서 동성끼리의 관계에서도 사람의 기질에 따라 각자 서열이 나뉘고 이해관계도 복잡해지는 법이다. 그런데 한때 레즈비언이 페미니스트 사이에서 가장 이상적인 관계로 여겨졌다는데 이는 여성은 무조건 선하고 폭력적이지 않은 존재라는 일종의 성차별적 견해에서 비롯된 것일 가능성이 크다. 레즈비언은 단순히 성적 취향일 뿐이고 여성이라고 무조건 천편일률적인 성격을 가지지 않는다는 건 너무나 자명함에도 불구하고. 이건 흔히 자신이 페미니스트임을 강하게 주창하는 여성들이 흔히 범하는 오류인데 현대의 페미니즘, 여성 서사는 더 이상 이런 오류도 범하지 않아야만 비로소 여성 서사로 불릴 자격이 있다고 내 개인적으로는 그렇게 생각한다.
구체적이진 않아도 아무튼 법에 비해 사람들 인식이 따라가지 못하는 가상의 미래를 배경으로도 레즈비언 커플의 인권이 가십거리에 불과하고 커플 개개인마다 견해가 다르다는 것, 여전히 서바이벌 프로그램들은 사회적 약자건 소수자건 그들의 자극적인 스토리로 하여금 감성팔이를 시도한다는 것 등 공감이 가는 통찰이 많은 작품이었다. 꽤 파격적인 시도가 많은 소설이었지만 그럼에도 보편성을 이끌어내는 게 소설가 지망생으로서 배울 점이 많았다. 이런 걸 보면 정말 보편성이란 건 단지 소재의 참신함으로만 함부로 예단할 수 있는 게 아니구나 하는 생각이 든다.
책의 다른 수록작은 지금 기준에선 평범하게 읽혔는데 책 자체는 소장 가치가 높아 나중에 다시 읽어볼 생각이다. 최근 5년에서 10년 안으로 다시 읽은 소설들이 처음 읽었을 때와는 판이한 감상을 안겨서 이 책도 기대가 된다. 그게 몇 년 뒤가 될는지 모르겠지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