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뢰인은 죽었다 탐정 하무라 아키라 시리즈 2
와카타케 나나미 지음, 권영주 옮김 / 북폴리오 / 2009년 9월
평점 :
절판


8.2







 최근 하무라 아키라를 주인공으로 삼은 드라마를 봐서 내친 김에 원작 소설도 읽게 됐다. 시리즈 순서상 첫 번째 작품인 <네 탓이야>를 읽을까 했지만 특이하게도 난 이 책으로 '하무라 아키라' 시리즈를, 그리고 와카타케 나나미의 작품을 처음 접했다. 그래서 이 책을 정확히 10년만에 읽게 됐다. 가급적 어떤 책이건 다시 읽는다면 최소 5년 정도의 시간을 두려고 하지만 10년이라니, 아무래도 감회가 새로울 수밖에 없다. 이 책은 10년 전이나 지금이나 만족도에 큰 차이는 없지만 그 사이에 이 책을 원작으로 둔 드라마를 시청했더니 비교하는 재미가 쏠쏠했다. 지금 보니까 드라마가 확실히 드라마라는 장르에 맞춰 각색한 게 내 취향에는 좀 더 잘 맞았다. 원작은 영 건조해서...



 '짙은 감색의 악마'


 아마 드라마에서 가장 논란이 일었을 에피소드일 텐데 이 책의 처음과 끝을 장식하는 두 단편을 엮어낸 그 에피소드는 하무라 아키라의 적대자라고 할 수 있을 존재가 등장한다. 상당히 형이상학적인 존재감을 내뿜는 '짙은 감색의 악마'는 우연한 죽음은 따분하다고 말하면서 필연적인 죽음을 자기 임의대로 선사하는 괴악한 심성의 소유자인데 무슨 암시를 거는지 아무튼 최면의 대가라 상대를 정신적으로 궁지에 모는 일처리가 대단하다. 전편의 사건의 트라우마를 채 극복도 하기 전인 하무라가 또다시 지독한 시련과 마주한 셈인데 이 악마는 막판엔 대놓고 싸움을 거는 듯 정체를 숨기지도 않아 책의 시작을 장식하기에 괜찮은 에피소드가 아니었나 싶다. 제법 기대가 되잖은가.



 '시인의 죽음'


 내가 봤을 때 가장 와카타케 나나미스런 작품. 솔직히 시인의 죽음의 진상을 쫓는 전개는 좀 지루했지만 그가 자살한 이유를 납득할 수 있게, 그리고 엄청나게 서늘하게 묘사한 작가의 솜씨에 제법 충격을 받았던 기억이 난다. 이 단편은 드라마에선 다뤄지지 않았는데 시인의 약혼녀이자 하무라의 친구가 개성적이라서 이 캐릭터를 과감히 삭제한 드라마 제작진의 판단이 아쉽기만 하다. 혹시 모르지, 시즌 2에서 다뤄질는지.



 '아마, 더워서'


 이 단편도 드라마에서 다뤄지지 않았지만 범인의 심상과 비슷한 인물이 드라마에서도 등장한다. 도쿄의 더위는 살인적이기로 유명해서 소설이나 드라마나 그 묘사가 남달랐던 게 인상적이었는데 그렇다 해도 추리소설에선 약간 부적합한 요소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스포일러라 자세히 말하긴 그렇지만 분량이 길고 짧고를 떠나 적어도 탐정의 노력이 어느 정도 성과를 거두는 결말이 좋지, 이런 결말은 너무 허무하지 않나 싶었다. 나쁘게 말하면 좀 성의없는 거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들 정도였다. 한마디로 범인의 동기가 충격적이고 현실에서도 있을 법하지만 픽션으로는 좀 약했다.



 '내 조사에 봐주기는 없다'


 이 단편은 드라마가 좀 더 괜찮았다. 하무라 아키라의 시크함과 인간미를 드라마가 동시에 잘 담았던 듯하다. 그도 그럴 것이 원작의 결말에서 한 발자국 더 나아간 결말을 제시하니 말이다. 이미 몇 년 전에 자살한 여자의 주변인물을 더 추가해 꽤 그럴싸한 결말을 만들었다. 그 에피소드 말미에세 한 인물이 '세상은 자기네들이 원하는 답만 바라고 실제로 그쪽으로만 시선을 둔다'는 대사도 울림이 있어 원작에선 그를 못 듣는다는 게 내심 아쉬웠다.



 '편리한 지옥'


 반대로 이 단편은 끝까지 아리송했던 드라마보다 원작이 더 괜찮았다. '짙은 감색의 악마'가 드라마와 달리 좀 싸가지 없게 그려지는 게 흠이지만 - 드라마에선 제법 '간지'가 났다. - 그가 사람들에게 암시를 거는 교묘한 노하우가 납득이 가게 설명된 게 마음에 들었다. 그리고 하무라가 탐정으로서의 숙명을 자각하게 만들고 그 과정이 독자들이 추리소설을 읽는 이유와 맞닿은 지점이 있던 것도 흥미로웠다. 수수께끼의 해결을 탐닉하는 심리엔 저항하기 힘든 중독성이 있단 것에 무척 공감이 됐다. 드라마에선 하무라의 언니가 자살한 이유를 안다는 걸로 하무라를 낚는데 소설은 디테일한 부분에서 달랐다. 드라마나 소설이나 다른 에피소드까지 묶어주는 흥미로운 역할을 담당하고 있었다.



 내게 있어 처음 접하는 종류의 트릭을 선보여준 '여탐정의 여름 휴가'도 개인적으로 잊을 수 없는 작품이다. 처음 읽었을 때 이해가 안 가 몇 번이고 다시 읽은 기억이 난다. 지금 읽으니까 상대적으로 심심하게 읽혔지만 어쩔 수 없지. 그나저나 10년 전의 나와 지금의 나를 비교하는 재미는 역시 쏠쏠하구만.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