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라진 명화들 - 뭉크에서 베르메르까지
에드워드 돌닉 지음, 최필원 옮김 / 마로니에북스 / 2007년 3월
평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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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0







 어쩌면 <절규>는 뭉크나 뭉크의 고향인 노르웨이만큼이나 유명한 그림일지 모르겠다. 그 유명세 때문인지 대부분의 명화가 그렇듯 <절규> 역시 도둑들의 표적이 됐는데 이 책은 <절규>가 첫 번째로 도둑맞은 사건을 다룬 논픽션이다. 런던 경찰청 '예술반'의 형사 찰리 힐을 주인공으로 삼은 일종의 전기물이라고도 볼 수 있는데 이 점이 여타 소설과는 다르게 읽혔다. 나는 개인적으로 뭉크를 좋아하는 사람으로서 뭉크 관련 얘기가 좀 나오리라 기대했지만 뭉크나 <절규> 얘긴 잠깐 나오고 대체로 <절규>를 되찾는 수사와 예술 범죄들을 중점적으로 다룬다. 중간중간 찰리 힐이 과거에 했던 수사나 비슷한 유형의 명화 도난 사건이 매우 많이 삽입돼서 집중이 잘 안 됐는데 아무래도 흡입력 있는 범죄물을 기대했던 나로선 약간 다른 형태의 전개라 내심 지루하게 읽혔다.

 사람들은 잘 모르지만 무기나 마약 못지않게 명화도 암시장에서 많이 거래된다는데 이 점은 우리에게 꽤나 시사하는 바가 크다. 이야기 초반에 <절규>를 비롯해 세계적인 명화들이 그렇게 쉽게 도둑맞을 수 있는 이유는 미술관의 무척이나 안일한 보안 체제 때문이 크다고 볼수밖에 없다. 미술관의 경비원들이 그렇게 홀대를 당하고 보안 시스템 설치에 그렇게 인색해한다는 게 정말 놀라울 지경이었는데 그로 인해 갖은 명화들이 도둑맞고 일부 작품은 지금도 행방이 묘연한 걸 보면 정말 '소 잃고 외양간 고치는 격'이라는 속담이 절로 나온다. 애초에 건사를 잘 했으면 심미안 없이 그저 명화의 금전적 가치에 끌린 도둑들의 표적이 될 일도 없었을 텐데. 명화들을 되찾기 위한 찰리 힐의 함정 수사는 분명 흥미롭지만 그가 속한 예술반이 여타 범죄 수사반에 비해 존재 의의가 저평가를 당하고 명화를 훔치는 일이 상대적으로 허들이 낮은 범죄란 걸 생각하면 참 한숨 나오는 일이 아닐 수 없다.


 사건의 배경은 1994년 노르웨이 릴레함메르 동계 올림픽이 개최되기 거의 직전에 벌어졌다. 나라가 올림픽의 열기로 들떴을 때 벌어진 희대의 과시형 범죄다. 고작 사다리 하나로 간단히 <절규>를 훔쳐낸 범인들은 '허술한 보안에 감사를 표합니다' 라고 적힌 엽서를 남긴 것으로도 유명하다. 노르웨이 경찰은 <절규>를 찾기 위해 동분서주했지만 범인들의 계획이 너무 절묘했고 미술관부터 시작해 노르웨이란 나라 자체가 범죄에 내성이 없어서 <절규>를 되찾기란 굉장히 요원해보였다. 그때 영국의 형사 찰리 힐이 나서게 되는데 이 부분이 나름 설득력 있게 그려진 게 좋았다. 책을 읽기 전엔 왜 영국인이 노르웨이 그림을 찾는 건가 싶었는데 명화란 그걸 그린 작가의 국적의 것이 아닌 - 뭉크는 죽기 직전 자신의 작품들이 나치에 의해 태워질 것을 두려워해 거의 전 작품을 오슬로에 기증했다. - 그 그림을 보고자 하는 전세계 모든 사람의 것이라는 맥락에서 본다면 영국이건 어디건 외국 수사관이 나서는 게 이상하게 느껴지진 않았다.

 여기까지만 했다면 좋았을 텐데, 상술했듯 이 책은 범죄물이면서 찰리 힐의 전기물이기도 한데 그래서 그런지 유독 그의 개인사가 많이 기술된 느낌이었다. 이 책의 제목을 보면 알 수 있듯 <절규>를 포함한 여러 명화를 둘러싼 함정 수사도 과거 회상식으로 다룬 건 좋았지만 그게 너무 잦았던 것, - 언급하는 그림들 중 대표적인 것만 그때그때마다 지면에 실었다면 어땠을까 싶다. - 게다가 찰리 힐의 인물 됨됨이나 성격을 지나치게 설명하려 든 것이 마이너스 요소였다. 찰리 힐이 어떤 인물인지는 설명하기 보단 에피소드로 묘사하는 식으로 했더라면 좋았을 텐데 이 책은 엄연히 소설이 아닌 비소설에 해당해서 이런 부분이 특히 달랐던 것 같다. 느낌적인 느낌에 불과할 수 있지만 그래도 소설 전공해본 사람이라고, 소설적인 것과 그렇지 않는 느낌이 유독 대비가 됐다.


 찰리 힐에 대해서 얘기하느라 정작 <절규> 수사가 묻힌 감이 있는데 실제로 본편에 해당하는 이야기의 분량은 생각보다 짧았다. 어쨌든 감격스럽게도 <절규>는 되찾았지만 그 10년 뒤에 이 책이 세상에 나올 즈음에 다시 <절규>가 도난당하는 사건이 발생한다. 뭉크는 생전에 많은 버전의 <절규>를 그렸는데 동계 올림픽 전에 도둑맞은 <절규>와 10년 뒤에 도둑맞은 <절규>는 다른 작품이다. 어쨌든 그만큼 뭉크의 작품이 도둑들 눈엔 매력적이고 그에 비해 미술관들의 태도는 안일하기 짝이 없단 얘긴데... 이런 낮은 수준의 보안 시스템, 그리고 마음가짐으론 도대체 남아날 명화가 없겠다 싶었다. 결국 그 <절규>도 되찾았는데, 지금 생각해보니까 2년 전에 내가 <절규>를 직관한 게 기적이 아닐 수 없었다. 나는 정말 운이 좋은 거였구만. 그 어떤 보안 설계사도 도둑은 못 이긴다지만 앞으로는 같은 일이 안 벌어지길 바란다. 두 번 일어났으니 세 번도 안 일어난단 보장은 없고, 그때도 되찾으리란 보장은 없으니까. 다음은 없을 거라 생각하고 마음 굳게 먹어야 더 많은 사람들이 <절규>를 볼 수 있을 테니까. 물론 나도 다시 보러 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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