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철의 연금술사 27
아라카와 히로무 지음 / 학산문화사(만화) / 2011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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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강철의 연금술사>는 비단 나에게만이 아니라 다른 모두에게 인생 작품이라 칭해지는 만화일 것이다. 오랜만에 다시 읽어봤는데 27권의 분량을 순식간에 읽어서 역시는 역시 역시구나 싶었다. 그도 그럴 것이 초반의 몇몇 부분을 제외하면 대부분의 전개며 결말까지 연재를 시작하기 전에 이미 구상이 완료된 작품이기에 몰입도가 높은 건 어떻게 보면 당연한 일일 것이다. 예전에 연재 속도에 맞춰 한 권씩 한 권씩 끊어서 읽기보단 지금 이렇게 1권부터 한 번에 다 읽으니까 진가가 제대로 느껴진 작품이었는데, 복선은 모두 회수하고 누구 하나 버릴 캐릭터 없고 쓸데없는 장면이나 대사도 없었고 무엇보다 물 흐르듯 이어지는 동선이 훌륭했다.

 가령 엘릭 형제가 리젠블로 돌아갈 때 마르코 박사를 만난 것이나 윈리가 오토메일 고쳐주러 센트럴로 온 전개가 나중에 있어 정말 커다란 파장을 불러일으켰음을 생각해보자. 전자는 형제가 본격적으로 '현자의 돌'의 어두운 진실을 마주하게 되고 이는 아메스트리스 이면에서 꿈틀거린 국가적 음모와 맞닥뜨리는 계기가 된다. 후자의 경우 윈리가 포지션상 결국에 '기다리는 여주인공'임에도 불구하고 능동적으로 형제와 여정을 함께 하며 형제의 정서적 성장이라는 작품의 테마에 크게 기여해준다. 특히 윈리가 부모의 원수를 앞에 두고도 복수의 고리를 끊는 장면은 작품 초반부터 언급된 '등가교환'의 원리로는 설명되지 않는 부분임을 생각하면 이래저래 모든 전개가 결말을 위해 절묘하게 맞아떨어진다는 것에 감탄하지 않을 수 없다.


 작중에서 하나의 물질로는 하나의 결과만을 내지 못하는 연금술의 원리를 들어 마찬가지로 하나의 행동엔 그에 합당한 결과밖에 얻지 못한다고 연금술사들은 역설한다. 작중 연금술사들이 작품 세계관에서 엄연한 과학자라는 걸 생각하면 만물의 이치를 그저 등가교환의 법칙에서만 바라보려는 이들의 사고방식은 과학만능주의의 일종이라 경계해야 할 것이다. 이처럼 <강철의 연금술사>는 연금술을 과학으로 치환해서 보면 생각 이상으로 곱씹어볼 점이 많은 작품이다. 대체로 우리네 세상이 과학만능주의에서 쉽사리 벗어나지 못한다는 걸 떠올렸을 때 작품의 결말은 퍽 의의가 있었다.

 막판에 동생을 구하기 위해 연금술을 쓸 수 있는 잠재력을 기꺼이 내바친 에드의 모습에선 - 심지어 동생의 진리의 문을 통해 원래는 돌아갈 수 없었을 현실로 돌아온 것에서 더더욱! - 과학이 만능은 아니거니와 오히려 인간으로 하여금 신에 가까워졌다는 착각에 빠지게 만들 뿐이라는 주제의식이 강하게 느껴졌다. 특히 1화에서부터 신의 존재를 부정하며 오히려 자기들 연금술사가 신에 가장 가깝다고 얘기한 에드였던 만큼 이 결말이 소년의 성장기라는 측면에서도 참 적합하기 이를 데 없었다.


 이 작품이 유독 비슷한 시기에 연재된 여느 소년 만화에 비해서도 암울한 세계관을 선보이긴 했지만 이런 어둡고 현실적인 세계관 속에서도 길을 잃지 않고 가능성을 추구한 끝에 결말에서 형제들은 자기들이 신봉하던 과학의 법칙을 넘어선 가치를 찾아 다시 여행길에 오른다. 첫인상과는 달리 상당히 휴머니즘이 넘쳐나는 작품으로 끝맺어졌는데 돌이켜보면 이렇게 암울하게 세계를 바라봤기에 보다 휴머니즘을 역설하기에 더 설득력이 있었던 건지 모르겠다. 세상이 얼마나 비참하게 생겨먹었건 외면하질 않으니까 밝은 이야기로 나아가기에도 하등 어색함이 없었던 것이다. 이것만으로도 정말 뜻깊은 독서였다.

 아무튼 참으로 강철과도 같은 완성도를 지닌 작품이었다. 주제의식부터 정교한 서사나 연출, 입체적인 캐릭터들, 유려한 그림, 박진감 넘치는 액션, 부족함이 없는 설정, 그리고 개그까지. 만약 이 작품에서 개그가 없었다면 이렇게 부드럽게 읽히지 못했을 것이다. 애초에 작품 자체가 좀 심오한 감이 있어서 사실 처음 읽었을 때는 작품의 내용을 온전히 이해하지 못했었는데 다시 각잡고 읽으니까 보면 볼수록 잘 만들어진 작품이더라. 어쩌면 나이가 들었을 때 읽어서 더 감상이 남다른지 모르겠다.


 이런 장편 연재 작품의 경우 뒬 갈수록 산으로 가는 경향이 있는데 이 작품은 결말까지 구상을 마치고 연재에 돌입해서 마치 소설을 읽을 때 주로 느끼는 작가의 절륜한 계획성을 엿볼 수 있었다. 예전엔 <아이실드21>, <데스노트>와 함께 이 작품을 인생 만화 BEST 3에 들곤 했는데 이젠 이 작품이 아예 독보적인 1등으로 자리잡게 됐다. 다른 연재 만화도 이만한 완성도를 지니면 더할 나위 없겠지만 그럼 내가 너무 많은 걸 바라는 것일 테지. 이런 만화는 평생에 한 번 만나는 것도 쉽지 않은 일이니까.

고통을 동반하지 않는 교훈에는 의의가 없다.

인간은 어떤 희생 없이는 아무것도 얻을 수 없으므로.

하지만 그것을 뛰어넘어 자기 것으로 만들었을 때...

사람은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강철 같은 마음을 갖게 될 것이다. - 제108화 ‘여로의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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