히틀러의 성공시대 1 히틀러의 성공시대 1
김태권 글.그림 / 한겨레출판 / 2012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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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7 





 이 만화는 특이하게 히틀러가 독일 정치판을 장악하거나 몰락하는, 우리가 아는 전성기나 말년이 아닌 시절의 히틀러의 모습을 그리고 있다. 작가는 막 이름을 알린 극우 정치인 히틀러가 어떻게 최고 통치자 '퓌러'의 위치에 오를 수 있었는지 그 '성공시대'의 비결을 엿보면서 오늘날에도 제2의 히틀러가 나올 수 있음을 경고하는 취지에서 이 작품을 그렸다고 한다. 

 히틀러와 나치가 정점에 오를 수 있던 비결을 두고 작가는 만화 속에서 크게 두 가지 해석을 제시한다. 하나는 시대의 흐름을 잘 탄 행운아라는 것, 또 하나는 시대가 원하는 강경한 극우파 논리를 히틀러와 나치가 적극 주장했다는 것. 그런데 표를 모으기 위해 너무 많은 음모론을 접하다 보니 본인들이 그 음모론을 더 믿고 세상에 전파하며 유대인을 비롯해 자신과 다른 모든 사람들을 학살하기에 이르렀다는 것이다. 


 '극우파의 표를 모으기 위해 극우파적인 발언을 했다'는 게 언뜻 앞뒤가 안 맞는 말처럼 들릴 수 있겠다. 이게 무슨 닭이 먼저냐 알이 먼저냐도 아니고... 하지만 히틀러는 선천적인 극우파였다기보단 일단은 타인과의 소통이 미숙하기 그지없는 '찌질이'이자 사회 구성원들끼리 소통하고 회의하는 민주주의에 반감이 들 뿐만 아니라 적응하지 못한 '찌질이'에 불과하다는 만화의 묘사를 보면 아주 말이 안 되는 것도 아니다. 그래, 히틀러는 찌질이다. 여타 창작물에서 히틀러가 악마의 화신이며 그에 걸맞는 카리스마를 내뿜는 것에 비해 이 만화에선 처음부터 끝까지 찌질한 모습을 보인다. 나치의 2인자인 괴벨스도 마찬가지고 기타 나치의 부역자들이나 당대 우파에 속하는 여럿 등장인물 모두가 말이다. 

 진보적인 스탠스를 취하는 작가의 성향이 합쳐져 우파 등장인물 일색인 이 만화에선 모두가 찌질하고 우스꽝스럽게 묘사된다. 이러한 희화화는 작가의 환장의 아재 개그와 맞물려 극강의 유치함과 가독성 저해라는 역효과를 낳는데, 거기에 아울러 주제의식 전달도 미흡해져 여러모로 아쉬운 연출이 아닐 수 없었다. 히틀러가 찌질이라는 견해는 흥미로웠지만 그토록 찌질하고 비전도 답도 없는 사람이 나라의 정점에 오를 수 있던 비결에 운이 엄청 작용했다는 해석은 나치가 이끈 광기 어린 독일의 모습을 잘 납득시켜주지 못했기 때문이다. 


 히틀러를 과소평가해 그에게 많은 기회를 제공한 기득권의 오판과 히틀러가 생각보다 무능하지 않고 다가온 기회를 교묘히 악용할 잔머리가 있었음을 이해하지 못하겠다는 말이 아니다. 대공황과 패전이 잇따르자 독일 국민들의 마음 속에 너그러움이 사라져 쉽게 분노를 표출할 대상이 필요했고 히틀러는 국민들의 등을 떠밀며 궤변과 학살을 자행했다는 것도 익히 알고 있는 내용이었다. 그런데 만화 속에선 히틀러의 교활함조차 찌질이의 운으로 잔뜩 희화화하니 당초 작가의 기획 의도였던 '제2의 히틀러가 오늘날에 나올 수 있음을 경계하자'는 경각심이 생기기는커녕, 이런 찌질이가 폭주할 때까지 안일하게 대처한 당대 독일 사람들은 바보들인가 하는 조소 어린 의문이 피어오를 수밖에 없었다. 물론 이런 의문을 낳게 하는 작품에도 의의는 있다고 생각하지만 작가의 진지한 기획 의도를 떠올린다면 지나친 희화화는 때로 독이 된다는 게 여실히 느껴졌다. 

 이 만화를 읽으니 히틀러와 나치를 그린 다른 창작물이 보고 싶어졌다. 희화화도 좋지만 그런 거 없는 진지한 창작물이 무척이나 땡겼다. 작가한테 미안한 얘기지만 이 작품 때문에 희화화나 아재 개그에 두드러기가 날 지경이라 뭐가 됐든 진지한 창작물이 보고 싶어졌다. 



 p.s 만화 내용 중에 '어쩌면 민주주의의 최대 수혜자는 바로 태극기 부대가 아닐까'라는 작가의 발언은 아주 공감했다. 그게 바로 민주주의의 어찌 손보기 힘든 단점이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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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도 편지하지 않다 - 제14회 문학동네작가상 수상작
장은진 지음 / 문학동네 / 2009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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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 






 <아무도 편지하지 않다>는 여행과 편지와 소설에 대한 관심이나 나름대로의 철학을 갖고 있는 독자라면 무지하게 취향에 맞을 작품이다. 설령 여행을 별로 해본 적이 없고 편지는 왜 쓰는지 모르겠고 소설 쓰는 일에도 관심이 없다 해도 상관없다. 이 작품의 주인공의 확고한 철학을 접하다 보면 나도 한 번 따라해보고 싶어질 테니까 말이다. 

 10년 전에 읽을 때도 느낀 거지만 아날로그적인 감성이 너무 풍만한 나머지 약간 미련하고 고집스럽게도 보이는 주인공의 여행은 그가 여행을 하게 된 계기나 여행을 끝마칠 조건 등 무엇 하나 밝혀지지 않고 선뜻 동의하지 못하겠어도 자꾸만 시선이 간다. 주인공의 성향이 대다수의 독자들의 심정을 대변하기엔 취향이 마이너한데... 이는 어쩌면 나의 편견일 수 있고 사실은 대부분의 사람들은 주인공처럼 미련할 순 있어도 자신만의 확실한 기준과 철학이 있는 무기한의 여행을 떠나고 싶은 로망이 있는지 모르겠다. 그래서 이 작품이 문학동네작가상을 수상한 것이 아닐까 싶다. 


 여행 중에 만난 사람들에게 자기 임의로 숫자를 붙여 기억하는 주인공, 숫자를 붙이는 조건은 서로 주소를 공유한 사람들로 주인공은 여행 내내 그들에게 편지를 보낸다. 매일밤 모텔에서 그날 떠오른 생각을 가족에게 편지로 써서 보내고 여행 중에 갑자기 떠오른 사람들에게도 보내고... 하지만 어찌된 일인지 친구에게 전화로 물어봐도 주인공의 집엔 편지가 온 적이 없다고 한다. 제목 그대로 아무도 주인공에게 편지하지 않는 것이다. 아무리 그래도 이건 좀 아니지 않나 하면서 오기로 딱 한 통이라도 편지가 올 때까지 무기한의 여행을 계속한다. 

 원래는 맹인안내견이었다가 사고로 시력을 잃게 된 반려견 와조와 함께 여행을 하던 주인공은 지하철에서 자신의 소설을 직접 홍보하며 팔고 있는 소설가 751을 만나게 된다. 아직 그녀와는 서로 주소를 공유하지 않았지만 모종의 사건으로 인해 동행을 하게 되면서 그녀에게도 일단은 숫자를 붙인다. 반대로 그녀는 주인공을 0이라 부른다. 이 골때리는 호칭으로 서로를 부르는 두 남녀는 흔히 기대하거나 예상해봄직한 성적인 긴장감 하나 없이 일종의 영혼의 교감 같은 것을 나누게 된다. 주인공은 751과 동행하는 초반에만 해도 누군가와 동행하는 걸 질색하지만 주인공의 말마따나 한 사람만 나오는 소설은 없듯이 751이 등장하고 그녀의 엉뚱하고 날카로운 시선으로 주인공의 삶이 참견당하면서 소설은 더욱 흥미로워진다. 남다른 필력과 개성으로 일찌감치 가독성을 확보했지만 역시 대화를 나눌 사람이 등장하니 소설에 본격적으로 혈색이 도는 걸 몸소 느낄 수 있었다. 


 동행인과 가치관의 차이로 다툼도 일고 서로의 아픔과 과거도 공유하고 부족한 점도 극복하게 되고... 전형적이지만 확실히 뒤가 궁금한 전개로 하여금 작품은 단조로움을 탈피하고 안정적으로 결말까지 독자의 손을 잡고 이끈다. 결국 이 여행은 끝이 날 것인지, 왜 주인공에게 편지 한 통 오지 않는지, 무사히 아무도 다치지 않고 각자 여행길에 기대했던 바를 얻게 될 것인지... 여행이란 왜 좋고 해야만 하는 것인지를 식상하지 않게 추상적이지 않게 어필하는 이 소설은 막판에 뭉클한 반전과 포용 가능한 아픔을 선사하며 끝을 맺는다. 주인공이 여행한 시간이 적지 않아서 그런지 그 과정을 막판에 잠깐 따라다녔을 뿐인 나도 형언하기 힘든 먹먹한 기분을 느꼈다. 

 혼자만 알고 지내기엔 참 아까운 작품으로 다 읽고 난 다음에 많은 사람들에게 강추하고 다녔다. 물론 미숙한 나의 말로는 매력을 어필하기 까다로운 작품이긴 하지만 다섯 페이지만 읽어도 결말까지 별다른 저항감 없이 읽히리란 기분 좋은 예감을 심어주기에 속는 셈 치고 인터넷 서점의 미리보기 기능을 이용해볼 것은 추천한다. 아니, '속는 셈 치고' 읽어보라기엔 이 작품한테 너무 실례되는 말이겠다. 대신 이렇게 말해보겠다. 비록 거창하고 강력한 주제의식을 겸비한 작품은 아니나, 절대 시간 낭비했다고 후회할 만한 작품도 결코 아니다. 나에게 명예라는 것이 있다면 어디 한 번 걸고 말하건대 삶이 지쳤을 때 읽기에 특히 좋은 작품이니 믿고 읽어볼 것을 강추한다. 


 여담이지만 아마 이 책은 앞으로도 종종 찾아 읽을 듯한데, 여행 갔을 때 한 번 읽어볼 생각이다. 주인공처럼 편지도 쓰고... 이 작품을 다시 읽기까지 10년이란 시간이 흘렀고 그 사이에 제법 여행을 떠난 편이지만 이 작품의 주인공처럼 나도 의미 있는 여행을 해보기는 했나 하는 생각이 든다. 나도 내 생각을 제대로 남기는 여행을 떠나고 싶어졌다. 

나는 사진이 절반을 차지하는 여행책을 좋아하지 않는다. 그것은 종종 여행을 위한 책인지 책을 위한 여행인지 헷갈리게 한다. 그보다 나는 여행을 과시하는 사람들을 좋아하지 않는다. 그것은 종종 자신을 위한 여행인지 타인을 위한 여행인지 헷갈리게 한다. 여행을 과시하는 사람은 진짜 가진 게 없어서다. - 13p



그러므로 평생을 살아도 해보지 못할 생각을 글로 남기지 않는다는 건 생의 손해이자 실수다. 사진은 다시 가서 찍을 수 있다. 기념품도 얼마든지 다시 살 수 있다. 그러나 여행중에 스쳤던 생각은 다시 돌아오지 않는다. 다시 갔을 때의 감정과 느낌은 이미 그때의 그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 13~14p



나는 가끔 말한다. 타인의 욕망이 궁금해지거든 여행가방을 싸보게 하라고. 아니면 타인의 여행가방을 훔쳐보라고. 가방 속에 이것저것 집어넣는 사람은, 자기가 집어넣은 물건의 양만큼 여행을 떠나서도 피곤과 스트레스에 시달리게 된다. 가방의 무게 때문에라도 그렇게 된다. 짐을 버리기 위한 여행은 졸지에 짐이 되는 여행이 되고 만다. - 27p



편지를 주고받는 사이에는 비밀 한 가지 정도는 공유하고 있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일기가 단독범이라면 편지는 공동정범이거나 방조범이다. - 34p



진정한 외로움은 혼자 있어서 외로운 게 아니라 둘이 있어서 외로운 것이다. - 62p



한 사람만 나오는 소설을 읽어본 적 있어요?

(중략)없으니까 없었겠죠. 혼자서는 아무것도 할 수 없으니까. 그런 소설도 없는 거라고요. - 139p



습관과의 이별이란 원래가 서운한 법이다. 그 습관이 내면과 일상의 평화에 기여했다면 더욱. 나의 여행이 그랬던 것처럼. 이제 나는 다른 습관에 적응해야 하고, 다른 일상에서 나를 찾아야 한다. 진정한 내면의 평화와 안정을 위해서. - 259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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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 만나는 라틴아메리카 이야기 41
이강혁 지음 / 지식프레임 / 2020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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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8 






 저자의 <처음 만나는 스페인 이야기 37>을 괜찮게 읽고 이 책도 읽어봐야지 하고 생각했다. 하나 걸리는 게 있다면 스페인 이야기는 300페이지 조금 넘는 분량이고 라틴아메리카 이야기는 거기서 100페이지 넘는 400페이지 정도의 분량이란 점이었다. 라틴아메리카란 대륙에 굉장히 다양한 나라가 있고, 비록 미국처럼 역사가 짧거나 원주민들의 이야기가 대외적으로 알려진 편이 아니지만 그럼에도 대륙을 이야기함에 있어서 저 정도 분량밖에 안 된다는 것이 유일하게 불안한 요소였다. 

 읽기 전에 불안했던 것치고 라틴아메리카의 이모저모를 잘 소개한 책이란 생각이 들었다. 저자가 소개한 영화나 음식, 도시들 모두 직접 보거나 먹거나 가보고 싶었다. 너무나 먼 곳이기에 언제 가볼 수 있을까 싶긴 하지만 그래도 이 책 덕분에 심리적으로 조금이라도 가까워지지 않았나 싶다. 특히 최근에 영화 <치코와 리타>를 보고 관심이 높아진 쿠바의 근대사를 다룬 부분이 흥미롭게 읽혔다. 그 부분을 보니 영화 속 혼란스런 시대상에 대한 묘사가 더욱 와 닿았다. 


 라틴아메리카는 원체 낯선 대륙이다 보니 저자 입장에서 이 책이 라틴아메리카에 관심이 가는 독자들을 위한 길라잡이로써 다가가도록 최대한 절제하며 핵심적인 부분만 담아냈던 듯하다. 다루고 있는 41가지 키워드가 그렇게 긴 분량이 할애되지 않은 채 거의 겉 핥기 식으로 기술됐는데, 필요하다면 추신의 형태로나마 책이 집필된 즈음인 2020년의 현황을 담아내거나 그 주제에 어지간히 관심이 있지 않은 이상 알기도 쉽지 않은 잡다한 정보도 소개해 깊이는 몰라라도 이야기의 다양성만큼은 특출났던 책이다. 

 위에서 잠깐 푸념했지만 내가 라틴아메리카에 가볼 일이 있을는가 싶다. 동남아나 유럽 등 가까우면서 가야 할 나라가 워낙 많아 멀고 치안도 불안하기로 악명 높은 라틴아메리카는 후순위에 놓일 수밖에 없다. 그래도 멕시코, 쿠바, 콜롬비아, 페루, 볼리비아, 브라질, 아르헨티나 같은 나라들은 문화적으로든 음식으로든 음악이든 자연 경관이든 뭐든 관심이 지대하거나 꼭 경험하고 싶은 것들이 있어 방문해보고 싶긴 한데 비행기 시간만 꼬박 하루가 넘게 걸리니 사람 심리상 기왕 간 거 여러 나라를 방문하는 걸로 여행 계획을 짤 것 같다. 


 어쩌면 스페인은 딱 스페인만 방문하고 귀국해도 아쉬움이 덜한 반면 라틴아메리카의 나라들은 사업 때문에 가는 것이 아닌 이상 딱 한 나라만 방문하는 게 오히려 흔치 않은 선택인 터라 저자도 그와 비슷한 감각으로 대륙 전체의 이야기를 한 권에 녹여낸 것인지도 모른다. 이 책이 독자에 따라선 완벽하게 라틴아메리카란 어떤 대륙인가 소개하고 매력을 어필해주는 책이 아닐 순 있어도 현실적으로 라틴아메리카에 대해 궁금히 여길 점이나 독자들이 모르고 넘어가면 안 되는 것들을 초심자의 눈높이에서 얘기해주는 것만으로도 높은 평가를 받을 만한 책이라고 본다. 

 이제 이 책에서 흥미롭게 읽은 주제를 심화해서 다룬 책들을 읽어가며 라틴아메리카에 대한 관심을 증폭시킬 차례겠다. 굉장히 여러 주제를 다뤘던 만큼 그 주제를 깊이 다룬 책들을 찾아 읽는 것은 굉장히 흥미로운 고구마 줄기 독서가 될 것으로 예상된다. 저자가 책을 쓸 때 참고한 책들이 책의 말미에 소개됐으니 그 책들을 참고해볼 생각이다. 처음 듣는 제목의 책이 많아 무슨 내용일까 상상하는 것만으로 재밌는 책이 많았다. 생각날 때 찾아 읽어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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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영
김이설 지음 / 자음과모음(이룸) / 2011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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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7 






 10년 전에 읽었을 때 꿈도 희망도 없는 소설이라 여겼는데 다시 읽으니 꿈은 없을지언정 일말의 희망은 느낄 수 있던 소설이었다. 주인공의 억척스런 생명력을 느꼈기 때문일까, 가족보다 웬수라 부르는 게 바람직할 비루한 인물들이 주인공을 끊임없이 매춘의 낭떠러지로 밀어 넣지만, 그 상황에서도 최악의 상황을 상상하며 이 정도면 최악까지는 아니라고 애써 힘을 내는 모습에서 적잖은 강인함을 느꼈다. 

 가난을 적나라하게 묘사하면서 음식 장사가 아닌 성매매로 큰 재미를 본 왕사장네 백숙집에 대한 역겨운 묘사, 인물들의 찰진 비속어 대사 등 이래저래 실감 나는 묘사 덕에 한없이 우울한 내용임에도 속도감 있게 읽혔다. 주인공한테 미안한 얘기지만 내가 이 정도 수준의 가난을 경험할 일이 어지간하면 거의 없을 것 같고, 내심 거액의 빚을 지고 안 좋은 선택을 할 수밖에 없는 사정엔 어느 정도는 자업자득의 측면도 있어서 어디까지나 '남의 일'이라 여기고서 읽었던 것 같다. 애써 그렇게라도 거리감을 두지 않으면 읽어나가는 게 불가능할 정도로 비참한 내용이기도 했고, 이야기의 생명력이 흘러 넘쳐 오히려 상상이나 여운을 가져볼 틈도 없이 완전히 남의 일로 받아들이기가 용이하지 않았나 싶다. 


 콩가루 가족 관계는 언제 파탄이 나도 이상하지 않은 상황이고 주인공의 원래 목표였던 아기와의 관계도 소원한 편이지만 그럼에도 나는 위에서도 말했듯 일말의 희망은 느끼면서 책장을 덮을 수 있었다. 왕사장네 백숙집을 잠시 그만뒀을 때 다른 가게에서 일을 어쩜 그리 잘하냐고 칭찬을 받았을 만큼 일머리나 생활력이 강하고 또 손가락질을 당해도 어쩔 수 없지만 매춘을 했음에도 정신줄을 잃지 않은 인물이니 가족이란 굴레를 벗어던지기만 하면 지금보다 곱절은 더 상황이 나아지리란 기대를 품을 수 있었다. 물론 가족이 아무리 웬수 같다지만 단칼에 잘라내는 것은 주인공이 진정 바라는 일은 아닐 것이다. 주인공이 가족한테 화를 내고 욕을 하는 이유도 어떻게든 이 상황을 같이 개선하려는 끈을 놓지 않았기에 취한 태도였으리라. 

 나쁘게 말하면 호구인 것인데, 그도 그럴 것이 돈을 빌려달라면 주고 보증을 서겠다면 서고... 언제가 돼야 정신을 차릴는지 몰라도 나는 어째선지 조만간이라 생각됐다. 소설 말미에 왕사장네 가게에 가서 얼마나 시간이 흐른 뒤에 한계에 직면할 것인지 모르겠으나 마음속 어딘가에서 이미 답을 내렸을 것이다. 설령 인륜을 끊는 한이 있더라도 자신의 딸과 함께 가족이란 굴레를 뛰쳐나와야 한다는 것을. 참 가슴 아픈 일이 아닐 수 없다. 가난하면 가족의 연도 져버린다는 선택지를 고려해야 한다니. 하지만 가난하고 말고를 떠나 현상 유지는커녕 상황 악화를 초래하는 사람들을 언제까지 가족이라며 보듬어줘야 하는가 생각하면 가슴 아픈 일일 순 있어도 그렇게 비난할 만한 일은 아니고 충분히 선택지로써 고려할 만한 일이지 않을까. 


 제목의 '환영'은 그런 의미가 아니었을까 내 멋대로 생각해봤다. 관계라는 것은 얽매일 수밖에 없는 환영이다. 우리도 마찬가지다. 때론 실체는 없고 환영에 불과한 관계가, 아니 그런 관계가 이 세상엔 은근히 많은 것 같다. 잡다하게 얽매였고 의무가 먼저 거론되는 관계는 가면 갈수록 환영처럼 사라지기 십상이다. 그렇기에 진리라면 진리일 수 있는 그 사실을 마음속 어딘가에서 분명히 인식하고 깨달을 대로 깨달은 주인공에게 희망이 있지 않으냐고, 읽는 내내 적잖이 느꼈던 것 같다. 

우리에게도 희망이 있다.
희망이 있다는 사실이 희망이었다. - 30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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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묘한 러브레터
야도노 카호루 지음, 김소연 옮김 / 다산북스 / 2019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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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판절판


9.7 






 '굉장한 반전'까지는 아니지만 몰입감이 엄청나고 잠시 동안 꿈쩍하기 힘든 결말이었던 것은 부정할 수 없다. 서간문체의 형식이 십분 발휘된 등골 서늘한 연출도 인상적이었다. SNS 상에서 이뤄지는 대화, 이 글을 쓰고 있을 때 상대방이 짓고 있을 표정이 보이지 않는 데에서 오는 불안함, 무엇이 거짓이고 진실인지 파악하기 힘들어지는 엎치락뒤치락하는 후반부... 특히 새로운 진실이 드러날 때마다 두 주인공의 답도 없는 자기긍정을 읽고 있노라면 제3자 입장에서 실소를 넘어서 식은땀이 날 정도였다. 자기긍정도 이 정도면 거의 병이다, 병. 

 말이 나와서 말이지만 범죄자들 중에 꼭 '세상을 살다가 이런 상처를 입어서 이런 죄를 저지른 거야' 하고 합리화하는 부류가 많은데, 그런 얘길 들을 때마다 내가 직접 그네들을 찾아가 해주고 싶은 말이 있다. 당신네들이 불만이 쌓인 건 알겠는데 그 불만을 당사자한테 가서 풀 것이지, 왜 같은 성별이나 계급, 인종의 사람에게 대신 풀려고 하느냐, 결국 아무것도 해소되지 않는 걸 본인이 가장 잘 알고 있지 않으냐 하고 말이다. 작중에서 어떤 인물이 '누구나 죄인으로 태어나지 않는다, 다만 죄인이 될 기회가 올 뿐'이라며 타인을 용서하는 대목이 있었는데, 그 말은 곧 자기 자신을 향한 말이기도 하단 것이 최후반부에 밝혀졌을 때 소름이 돋지 않을 수 없었다. 


 사람은 누구나 자기 자신에게 한없이 나약하고 관대해지는 법이다. 그런데 대놓고 그렇게 살자니 자기가 생각해도 좀 찔리므로 타인을 챙겨주는 척하면서 스스로에게도 멍석을 까는 심리가 누구에게나 조금이라도 있진 않은지 생각해봤다. <기묘한 러브레터>는 전자책 베스트셀러 1위를 차지했다는데 나는 그 비결로 바로 못났지만 현실적인 인물들의 심리를 들여다보며 독자들의 공감을 이끌어낸 것을 꼽겠다. 그에 비하면 가독성이나 반전은 덤에 가깝다. 오히려 반전은 복선이 부족해 약간 급작스런 감도 있어 놀랍다기보다 얼떨떨했다. 접혀진 채 봉인된 페이지, 절대 먼저 읽지 말라고 출판사에서 엄금한 페이지엔 그리 대단한 내용이 있지 않았지만, 제목이 주는 인상과는 완벽히 결이 다른 한 문장이 적혀 있어 나는 읽고서 웃음이 실실 나왔다. 

 그 대사를 한 당사자도 그놈의 당혹스런 자기 긍정 때문에 마냥 과거가 떳떳한 인물이라 할 수 없지만 그래도 충분히 해봄직한 말이었다고 생각한다. 결혼까지 생각했을 정도의 두 남녀가 삼십 몇 년 만에 대화를 나누며 애틋함을 느끼다가도 결정적인 순간에 정색하며 눈을 희번덕거리는 것이 눈앞에 선명이 그려져 통쾌한 동시에 오싹한 장면이기도 했다. 나도 비슷하다면 비슷하다고 해야 할까, 인터넷이나 SNS 상에서 생판 얼굴도 모르는 남과 친밀한 척 대화를 하다가 간혹 비슷한 순간을 경험한 적이 있어 후반부에서의 두 인물의 설전 아닌 설전이 괜히 내 일처럼 느껴지기도 했다. 그러고 보니 이 작품의 내용이 작가 지인의 이야길 각색한 것이라는데, 이런 일이 요새 은근히 비일비재한 모양이다. 얼굴이 보이지 않은 채로 거의 실시간으로 대화를 나눌 수 있는 SNS는 때론 우리에게 큰 공포로 다가오곤 한다. 그 감각을 구현한 작가의 솜씨가 대단했다. 작가의 다른 작품도 읽고 싶어졌다. 작가 소개란에 '복면작가'라고만 적혀 있어 더 궁금하다. 


 이 작품의 원제는 '기묘한 러브레터'가 아닌 두 인물이 대학 시절에 공연한 연극의 제목이라고 한다. 엄밀히 말해 뜬금없기로는 원제가 더한 편이지만, 그렇다고 기묘한 '러브레터'라고 바꾼 우리나라 버전의 제목이 더 좋다고 보기도 애매하다. 아~아주 넓은 의미에서 두 인물의 글이 러브레터의 범주에 들어간다고도 할 수 있겠지만, 일단 사랑이 완전히 진 뒤에 시작되는 이야기기도 하거니와 무엇보다 결말까지 읽으면 러브레터와는 정반대의 글이기도 해 다소 무성의한 제목이란 생각도 들 수 있다. 

 하지만 초반부의 애틋한 분위기나 흥미를 끌어내는 측면을 생각한다면 러브레터라는 단어와 그 단어를 수식하는 '기묘한' 이라는 형용사는 비록 최선은 아닐지언정 차선으로는 괜찮은 선택이었다고 여겨진다. 다시 말하지만 이 작품에서 두 인물이 SNS로 나누는 대화는 러브레터와는 근본적으로 결이 다르다. 서로에게 향했었던 감정을 고백한다는 점에서 러브레터라고도 볼 수 있겠으나 그 고백의 진의가 일반적인 러브레터하고 아주 달라서... 이 다음부터는 스포일러라 말하지 않겠다. 


 이 작품에 대해 얘기할 때 스포일러 신경 쓰지 말아야겠다고 생각했지만 막상 얘기하다 보니 본작의 내용을 최대한 숨길 대로 숨긴 채로 감상을 밝히고 추천도 그런대로 할 수 있지 않았나 싶다. 그만큼 아무런 선입견 없이 접하길 추천하는 작품이며, 출판사의 광고에 낚여 너무 기대하지 말고 가벼운 마음으로 즐기길 바라는 작품이다. 한 호흡 안에 독파할 수 있는 몰입도를 자랑하는 작품이니 여행 갈 때 비행기나 기차 안에서 읽기 이보다 적합한 작품은 없을 듯하다. 물론 어디서나 읽어도 괜찮을 작품이지만 얇은 책이고 페이지도 빨리 넘어가니 나처럼 여행 갈 때 기차 안에서 읽어보는 걸 강력히 추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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