히틀러의 성공시대 1 히틀러의 성공시대 1
김태권 글.그림 / 한겨레출판 / 2012년 11월
평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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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7 





 이 만화는 특이하게 히틀러가 독일 정치판을 장악하거나 몰락하는, 우리가 아는 전성기나 말년이 아닌 시절의 히틀러의 모습을 그리고 있다. 작가는 막 이름을 알린 극우 정치인 히틀러가 어떻게 최고 통치자 '퓌러'의 위치에 오를 수 있었는지 그 '성공시대'의 비결을 엿보면서 오늘날에도 제2의 히틀러가 나올 수 있음을 경고하는 취지에서 이 작품을 그렸다고 한다. 

 히틀러와 나치가 정점에 오를 수 있던 비결을 두고 작가는 만화 속에서 크게 두 가지 해석을 제시한다. 하나는 시대의 흐름을 잘 탄 행운아라는 것, 또 하나는 시대가 원하는 강경한 극우파 논리를 히틀러와 나치가 적극 주장했다는 것. 그런데 표를 모으기 위해 너무 많은 음모론을 접하다 보니 본인들이 그 음모론을 더 믿고 세상에 전파하며 유대인을 비롯해 자신과 다른 모든 사람들을 학살하기에 이르렀다는 것이다. 


 '극우파의 표를 모으기 위해 극우파적인 발언을 했다'는 게 언뜻 앞뒤가 안 맞는 말처럼 들릴 수 있겠다. 이게 무슨 닭이 먼저냐 알이 먼저냐도 아니고... 하지만 히틀러는 선천적인 극우파였다기보단 일단은 타인과의 소통이 미숙하기 그지없는 '찌질이'이자 사회 구성원들끼리 소통하고 회의하는 민주주의에 반감이 들 뿐만 아니라 적응하지 못한 '찌질이'에 불과하다는 만화의 묘사를 보면 아주 말이 안 되는 것도 아니다. 그래, 히틀러는 찌질이다. 여타 창작물에서 히틀러가 악마의 화신이며 그에 걸맞는 카리스마를 내뿜는 것에 비해 이 만화에선 처음부터 끝까지 찌질한 모습을 보인다. 나치의 2인자인 괴벨스도 마찬가지고 기타 나치의 부역자들이나 당대 우파에 속하는 여럿 등장인물 모두가 말이다. 

 진보적인 스탠스를 취하는 작가의 성향이 합쳐져 우파 등장인물 일색인 이 만화에선 모두가 찌질하고 우스꽝스럽게 묘사된다. 이러한 희화화는 작가의 환장의 아재 개그와 맞물려 극강의 유치함과 가독성 저해라는 역효과를 낳는데, 거기에 아울러 주제의식 전달도 미흡해져 여러모로 아쉬운 연출이 아닐 수 없었다. 히틀러가 찌질이라는 견해는 흥미로웠지만 그토록 찌질하고 비전도 답도 없는 사람이 나라의 정점에 오를 수 있던 비결에 운이 엄청 작용했다는 해석은 나치가 이끈 광기 어린 독일의 모습을 잘 납득시켜주지 못했기 때문이다. 


 히틀러를 과소평가해 그에게 많은 기회를 제공한 기득권의 오판과 히틀러가 생각보다 무능하지 않고 다가온 기회를 교묘히 악용할 잔머리가 있었음을 이해하지 못하겠다는 말이 아니다. 대공황과 패전이 잇따르자 독일 국민들의 마음 속에 너그러움이 사라져 쉽게 분노를 표출할 대상이 필요했고 히틀러는 국민들의 등을 떠밀며 궤변과 학살을 자행했다는 것도 익히 알고 있는 내용이었다. 그런데 만화 속에선 히틀러의 교활함조차 찌질이의 운으로 잔뜩 희화화하니 당초 작가의 기획 의도였던 '제2의 히틀러가 오늘날에 나올 수 있음을 경계하자'는 경각심이 생기기는커녕, 이런 찌질이가 폭주할 때까지 안일하게 대처한 당대 독일 사람들은 바보들인가 하는 조소 어린 의문이 피어오를 수밖에 없었다. 물론 이런 의문을 낳게 하는 작품에도 의의는 있다고 생각하지만 작가의 진지한 기획 의도를 떠올린다면 지나친 희화화는 때로 독이 된다는 게 여실히 느껴졌다. 

 이 만화를 읽으니 히틀러와 나치를 그린 다른 창작물이 보고 싶어졌다. 희화화도 좋지만 그런 거 없는 진지한 창작물이 무척이나 땡겼다. 작가한테 미안한 얘기지만 이 작품 때문에 희화화나 아재 개그에 두드러기가 날 지경이라 뭐가 됐든 진지한 창작물이 보고 싶어졌다. 



 p.s 만화 내용 중에 '어쩌면 민주주의의 최대 수혜자는 바로 태극기 부대가 아닐까'라는 작가의 발언은 아주 공감했다. 그게 바로 민주주의의 어찌 손보기 힘든 단점이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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