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물어 가는 여름
아카이 미히로 지음, 박진세 옮김 / 피니스아프리카에 / 2013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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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8.0






 유괴, 공소 시효, 저널리즘... 삼박자가 두루 갖춰진 이 소설은 작가의 데뷔작이자 에도가와 란포상 수상작이기도 하다. 에도가와 란포상 수상작가들의 프로젝트 단편집을 읽은 게 기억나서 이렇게 작가의 대표작이자 데뷔작까지 읽게 됐다. 본래 기자로 활동한 전적을 활용한 전문성이 돋보인 작품이었다. 아마 기자로서의 경험이 이 작품을 구상하는 적잖은 동기를 제공했을 것이다. 기자라는 키워드가 이 작품과 그렇게 맞아떨여졌는지는 잘 모르겠지만.

 한 대형 신문사의 입사 예정자가 20년 전 유괴 사건의 범인의 딸이라는 잡지사의 기사가 세간에 나오게 된다. 기사의 해당 신문사는 자사의 기준에 아주 적합한 인재가 인권 침해는 물론이거니와 낙인 효과에 희생당해선 안 된다는 방침을 내세우며 20년 전 사건을 재조사하기에 이른다. 과거의 어느 사건 때문에 한직에 머물게 된 한 기자가 재조사를 하게 되는데 이면이랄 게 없어 보인 사건에 새로운 가능성이 발견되면서 결국 엄청난 반전이 드러나게 된다.


 상당히 인간미가 넘치는 작품이었다. 아무리 우수하다지만 아직 입사도 안 한 신입 사원을 위해 힘써주는 신문사 사장을 비롯해 악랄한 인간은 한 사람도 등장하지 않는다. 사건의 주범도 동정하게 되는 것 등 사람들이 일본 추리소설을 구가해온 이유를 집약적으로 보여주는, 그야말로 드라마가 강조된 이야기였다. 다만 작품의 주된 원동력이 의의는 좋지만 그 특성상 긴박감은 떨어져 가독성이 꽤나 떨어졌다. 괜히 긁어부스럼을 만들거나 없던 문제를 만드는 식의 성격은 아니지만 기본적으로 서사의 당위성은 아무래도 좀 약한 감이 있어 어쩔 수 없지만 아쉽지 않다고 할 수 없겠다.

 개인적으로 이 작품이 무척이나 뭉클한 특급 반전을 선보였다고 생각하는데 그와 동시에 느닷없지 않았나 하는 생각도 들었다. 그 반전을 위한 복선이 탁월했는가 아닌가 떠나서 너무 반전을 위한 반전이 아닌가 하는 의구심이 들었던 것이다. 이는 어쩌면 재독을 결심하게 만드는 요소가 될 순 있겠으나 분량에 비해 전개 자체가 상대적으로 길었던 것 같아 선뜻 재독하기엔 주저된다. 그래도 유괴란 소재를 잘 살렸으니 그 놀라움과 울컥함이 어디 가지 않는 거겠지.


 그 반전 때문에라도 기억에 남는 작품이었다. 내성이 없는 사람은 물론이거니와 그렇지 않은 사람도 관찰자적 서술 때문에 묘하게 울컥하는 느낌을 받을 것 같다. 신인 작가의 패기가 합쳐져 이것 저것 많이 들어간 작품인데 완벽하게 맞물리는 느낌은 덜하지만 그래도 작가가 의도했을 시너지 효과가 어느 정도 거둬지긴 했으니 유괴, 공소 시효, 저널리즘 중 하나라도 관심이 있는 분이라면 읽어도 무방할 것 같다. 물론 추리소설 데뷔작으로도 나쁘지 않다.


 p.s 여담이지만 차라리 유괴범의 딸이 주인공이면 어땠을까 싶다. 훨씬 괜찮았을 것 같은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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괜찮아, 보이는 게 전부는 아니야
잽 테르 하르 지음, 이미옥 옮김, 최수연 그림 / 궁리 / 2006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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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6






개인적으로 장애인이 나오는 소설을 좋아한다. 꼭 소설이 아니더라도 만화, 영화든 비중을 떠나 장애인 등장인물이 나오면 한번 더 눈길이 간다. 휠체어를 탄 장애인이 나온 일본 드라마 <뷰티풀 라이프>, 영화 <조제, 호랑이, 그리고 물고기>. 청각 장애인이 나오는 만화 <나는 귀머거리다>, 영화 <미라클 벨리에>, 소설 <데프 보이스>. 시각 장애인이 나오는 소설 <드래곤플라이>... 갑자기 시각 장애인이 나오는 작품이 더 안 떠오르는데, 이번에 읽은 이 작품 <괜찮아, 보이는 게 전부는 아니야>가 제목에서 알 수 있듯 이 세 번째 분류, 그러니까 시각 장애인 소설 중 가장 인상적인 작품이라 해도 과언이 아닐 것 같다.

 사고로 눈을 다쳐 시각을 상실한 주인공, 그의 눈 앞에 펼쳐진 건 다시는 볼 수 없는 현실과 막막한 앞날이다. 공부도 운동도 곧잘 해냈던 학급의 인기인이었는데 처지가 아주 딱하게 된 것이다. 소설은 이 후천적 시각 장애를 안게 된 소년을 통해 우리가 결코 상상할 수도 없고 상상하지도 않았던 재활하는 과정을 보여준다.


 누구도 겪고 싶지 않지만 누군가 겪을지 모를 일, 하필 그게 내가 된다면? 이 느닷없는 불행을 겪은 주인공은 환희와 절망 사이를 왔다 갔다 한다. 여기서 잠깐, 시각 장애를 무조건적으로 불행이라 치부하면 실례되는 말일 수 있다. 특히 선천적 시각 장애인들에게 말이다. 평생을 눈을 감았던 사람이 눈이 떠지자 집으로 가는 길을 잃고 다시 눈을 감으니 길을 잘 찾았더라는 얘기가 시사하는 바와 같이 장애가 곧 불행이라기 보다 한 사람의 개성일 수도 있으니 무작정 불행이라 말해선 안 될 것이다. 하지만 그 어떤 준비도 없이 시각 장애인이된 주인공에게는 어떨까? 이건 엄연히 불행이다. 점자 타이핑을 익힘에 있어 '한 번이라도 본다면 얼마나 좋을까!' 라던 주인공의 외침은 이 책을 '읽는' 우리에겐 상상도 할 수 없는 심연의 고통이 아닐 수 없다. 당장 책 읽는 것만 해도...

 제목에서 말하듯 이 작품은 본다는 게 우리가 생각하는 전부가 아님을 얘기한다. 물론 본다는 건 우리 삶에 있어 많은 부분을 차지하긴 한다. 소설가 김영하 씨가 방송에서 말하길 대부분의 사람들이 소설을 쓰면서 묘사를 할 때 주로 시각 정보에 많이 의존하고 - 예를 들어 어떻게 생겼고 무슨 색이고 어디로 움직인다, 이런 식으로. - 시각 장애인이자 재즈 하모니카 연주자인 전제덕 씨도 보이지 않아 처음 하모니카를 부를 때 어려움이 따랐다고 한다. 악보가 없이 청각만으론... 첫인상이라는 말도 보통 그 사람의 외양을 지칭하기도 하는 걸 생각하면 눈은 우리가 생각하는 그 이상의 역할을 한다고 볼 수 있다.


 만화 <나는 귀머거리다>에서 봤는데 작품 속에 장애인이 등장한다고 하면 청각 장애인은 주로 소통의 한계를 뛰어넘는 사랑을 강조하기 위해 로맨스물에 주로 등장 - 보진 않았지만 최근 아카데미 작품상을 받은 <셰이프 오브 워터>도 주인공이 비슷한 장애를 갖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 - 하고 시각 장애인은 보이지 않는 대신 다른 감각이 열려 만만찮은 전투력을 강조하기 위해 주로 배틀 만화에 - <은혼>의 니조, <원피스>의 후지토라가 대표적인 예다. - 등장한다고 한다. 감각에 대한 부분은 이 작품에서도 인상적으로 다뤄진다. 보지 못하는 대신 사람의 목소리를 통해 감정의 폭이 느껴지거나 전에 없는 상상력이 발휘되는 장면은 꽤나 감동적 - 일러스트레이터의 역할도 컸다. - 이었다.

 작가가 성장 소설에 일가견이 있는 분이던데 과연 피상적인 묘사는 커녕 오히려 전방위적인 통찰력이 있어 흥미롭기까지 했다. 시각 장애인의 불안한 심리와 더불어 가족 중에 시각 장애인이 생겼을 경우 가족 내에 부는 파장 또한 소홀히 다루지 않았다. 성장 소설의 수위에 맞게 좀 더 희망적이거나 혹은 갈등이 비교적 재빠르게 풀리는 경향은 있었지만 꽤 현실적인 묘사가 펼쳐졌다고 생각한다. 이런 묘사를 하기 위해선 상상력이나 통찰력을 넘는 소재에 대한 상당히 진지한 조사 정신도 요구될 텐데 작가는 문제 없이 잘 해내지 않았나 싶다.


 이 작품을 읽으면서 느낀 불만이 하나 있는데 그건 바로 주인공이 시각 장애인 학교에 들어가는 순간 이야기가 끝난 점이다. 여운 있는 엔딩이지만 어떻게 보면 시각 장애인 학교에 들어간 다음도 되게 중요한 만큼 딱 그 시점에서 끝난 건 너무 쌈빡하단 생각에 아쉬움을 감출 수 없었다... 그럼 너무 길었으려나. 너무 지리멸렬하거나.

 근래 읽은 소설 중 읽은 뒤 가장 가슴이 따뜻해지는 소설이었다. 좀처럼 겪을 수 없는 세계를 읽음으로써 공감 능력을 일깨워주는 역할로써도 훌륭한 책이었고 성장 소설로도 탁월했다. 성장 소설이라... 이 작품을 읽고서 어쩌면 우리가 성장 소설을 계속 읽어야 하는 이유는 우리가 어렸을 때 뭘 놓쳤는지 깨닫기 위함이 아닌가 싶었다. 책 하나로 인생이 크게 바뀌기는 쉽지 않으나 만약 이 작품을 더 어렸을 때 읽었더라면, 그런 생각을 하며 지금이라도 읽었음에 안도하며 책장을 덮었던 기억이 난다.


 p.s 여담이지만 생애 처음으로 읽은 네덜란드 소설이었다.

 p.s2 그나저나 인터넷 서점마다 저자 이름이 다르게 표기됐다. 잽 테르 하르, 얍 터르 하르... 나는 후자의 표기를 쓰기로 했다. 독일, 북유럽, 네덜란드는 j를 y발음으로 내는 걸 익히 봐온 터라. 예를 들면 '어서와, 한국은 처음이지?'에서도 심심찮게 봤지. 유세요, 얌실... ㅋ

그러니까 내 말은 죽음도 친구가 될 수 있으니까, 눈이 먼 것도 좋은 친구가 될 수 있다는 뜻이야. 나는 네가 살아가면서 실망하는 일이 있더라도 네 삶을 사랑하기 바라거든 - 62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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늑대와 향신료 9 - Extreme Novel
하세쿠라 이스나 지음, 박소영 옮김, 아야쿠라 쥬우 그림 / 학산문화사(라이트노벨) / 2009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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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판절판


7.1






 이번 권은 8권과 9권으로 분권된 '대립하는 도시' 에피소드였다. 작가가 말하길 대략의 틀은 잡았으나 도대체 분량이 어디까지 길어질지 몰라 일단 분권을 했다고 한다. 작가의 특성상 300쪽만으로도 꽉 채우는 느낌을 줬는데 이번엔 그 두 배 가까이 되니 읽기에 여간 힘든 게 아니었다. 이 작가를, 이 시리즈를 단순히 라이트light 노벨이라고만 보기엔 치밀한 구석이 있어 정말이지 만만히 볼 수가 없다.

 거두절미하고 말하면, 이야기가 산으로 가는 느낌을 지울 수가 없다. 처음 읽었을 때도 그랬는데 두 번째 읽을 때라고 별로 다르지 않더라. 호로의 고향 찾기라는 소기의 목적은 일단 코앞에 두고 굳이 먼 길을 돌아가는데 그 이유가 아주 생뚱맞진 않지만 그래도 자연스럽지 못하다는 느낌이 강했다.


 물론 이만큼 이야기를 늘리는 것도 재주다. 애초에 캐릭터 설정이며 세계관이 탄탄하게 설정돼서 다소의 억지스러운 전개는 용인할 수 있긴 하다. 여전히 앞으로 뻗어나갈 로렌스와 호로의 여정이 어찌 풀릴 것인지, 그리고 무엇보다 종착지에서의 풍경은 정말 궁금하니까. 그와 마찬가지로 목적지로 가는 과정도 궁금하긴 하지만.

 이번 에피소드는 어떻게 보면 '상인들의 이야기'를 주요 소재로 삼는 시리즈의 색깔이 가장 진하게 밴 에피소드라고 할 수 있다. 피도 눈물도 없이 자기 이익을 위해서라면 남의 뒤통수 치는 것도 불사하는 상인들의 세계가 잘 묘사됐고 그 사이에 끼어 고생을 사서 하는 꼴이 된 로렌스의 고난도 예사롭지 않았다. 그런데 컨셉에 제대로 충실했기 때문일까? 심리전이나 상인들 이야기 자체엔 크게 매력을 느끼지 않은 독자라면 이번 에피소드는 어쩌면 읽기에 가장 고역인 에피소드라는 생각이 들었다.


 중간중간 호로와 줄을 타는 듯한 장면과 호로의 뜻을 헤아리려는 로렌스의 발버둥을 보여주는 등 완급 조절을 시도하지만 그 타이밍이며 횟수 등이 너무 계산적이고 노골적이라 어딘지 타성에 젖은 게 아닌가 싶었다. 애초에 이 에피소드의 시작 자체가 그리 자연스럽지 못했으니 예견된 일이기도 한데 에피소드 자체는 은근히 완성도는 갖췄지만 - 에이브의 공이 컸다. - 시리즈의 1권이나 2권, 심지어 무척 답답했던 3권이랑 비교해도 몰입도나 이야기의 당위성이 좀 바래진 것 같아서 참 아쉬웠다.

 대략 이 시리즈를 반 정도 읽었는데 슬슬 내가 읽지 못한 내용들이 나올 차례가 됐다. 정확히 몇 권까지 읽었는진 기억이 안 나는데 아무튼 호기롭게 읽는 시리즈인 만큼 각 에피소드의 완성도가 제각각이어도 다음 권은 계속 기대된다. 10권은 언제 읽게 되려나?

어쨌든 나를 위해 화를 내 주는 타인은 귀한 재산이야. 소중히 하라고. - 8권 38p




남들의 호감을 사는 것은 일종의 운명과도 같은 것이지. - 8권 42p




돈은 어디까지나 물건을 사기 위한 도구일 뿐, 그 이외의 뭔가를 살 때 악이 되는 겁니다. 나무를 베기 위한 도끼로 사람을 베는 것처럼요. - 8권 47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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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랑 치타가 달려간다 - 2009 제3회 블루픽션상 수상작 블루픽션 (비룡소 청소년 문학선) 40
박선희 지음 / 비룡소 / 2009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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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5







 내 개인적으로 우리나라 최고의 청소년 문학 중 한 권으로 꼽는 <그놈>을 쓴 박선희 작가의 작품이다. 이 작품으로 청소년 문학상인 블루픽션상을 수상했다는데 여담이지만 상의 이름과 작품 제목이 잘 어울린다.

 한때 인상적인 작품을 읽으면 같은 작가의 책을 거의 의무적으로 찾아 읽곤 했는데 그러다 보니 뒤통수를 맞은 한두 번이 아니다. 물론 작가가 뛰어난 작품을 단 한 편만 써도 대단히 훌륭한 거지만 보통 그러리라 생각하며 작가를 바라보진 않으니까... 아무래도 '그걸 썼던 작가가 고작 이런 작품을 썼다니?!' 하고 탄식하게 되는 경우가 종종 있었다. 좋은 의미든 나쁜 의미든 선입견은 하여간 가져선 안 된다. 요는 작가 이름이 아닌 작품으로 판단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게 쉬웠으면 애당초 배신감을 느낄 일도 없겠지만.


 요즘 학교가 개강하고 알바도 더 정신없이 바빠져 블로그 포스팅에 소홀하게 됐는데 이 책을 다 읽은 게 벌써 2주 전 일이다... 가독성은 참 좋은데 완독하긴 되게 망설였던 기억이 난다. 실속이 없다고 깎아 내리고 싶진 않은데 상투적이긴 하다. 파랑 치타라는 이름을 가진 오토바이로 하여금 주인공이 자유 의지를 발산하는 것이나 밴드 활동으로 스트레스를 증발시키고 역시나 인생에 대한 당찬 의지를 드러내는 일련의 소재나 전개들이 다 어디선가 본 것들이지 않은가 해서 말이다. 캐릭터 설정도 <그놈>에서 선보인 뛰어난 캐릭터 설정이 연상되지도 않을 만큼 평범한 - 하지만 인물들 대사를 보니 과연 같은 작가구나 싶긴 했다. - 수준이라 이래저래 실망이 컸다.

 이 작품 때문에 작가의 다른 작품을 읽지 않겠다는 건 아니지만, 작가 이름만 보고 알라딘에서 충동적으로 샀던 책이라 지금 꽤나 반성하고 있다. 난 책을 사기 전 기본적으로 30페이지 정돈 읽고 판단하는데... 설마 안 읽고 샀나? 더 이상의 자세한 말은 생략하는 게 좋을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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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 번째 피해자
천지무한 지음, 최정숙 옮김 / 한즈미디어(한스미디어) / 2018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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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4







 중화권 추리소설은 찬호께이의 작품으로만 접했는데 이렇게 기회가 닿아 다른 작가도 접하게 됐다. 이번엔 대만 작가의 소설을 읽었다. 가까운 나라지만 일본에 비하면 나한텐 너무나 먼 나라라서 신선하기론 동남아시아나 아프리카 못지않다. 내용은 so so 지만.

 세 명의 여자를 납치 및 살해한 살인마 팡멍위가 유치소에서 건전지를 삼켜 자살을 시도한 사건이 발생한다. 자신의 범행에 일체 반성하는 기미가 없는 듯 혐의 인정은 고사하고 묵비권을 행사하며 침묵을 지키던 팡멍위가 불쑥 자살을 시도하니 좌중은 그저 당황스러울 뿐이다. 죄책감을 이기지 못해 자살을 한 건 아닌 것 같은데... 자신이 죽인 피해자들의 신체 일부분을 전시하듯 간직한 걸 보면 그럴 가능성은 낮다. 더구나 아직 시체가 나오지도 않은 '네 번째 피해자'에 대한 진술도 하지 않았으니 오히려 괘씸할 지경이라 할 수 있다.


 희대의 사건이 터졌을 때 가장 기뻐하는 건 매스컴이다. 그들이 사건을 바랄 리 만무하지만 보도할 사건이 많으면 많을수록 좋은 게 어쩌면 그 바닥의 시장 원리인지도 모른다. 이 소설은 그러한 매스컴의 이중성과 페해를 집중 조명하는 작품으로 작품 해설을 쓴 평론가의 말을 빌리자면 혁신적인 구석이 있는 추리소설이다. 살인자가 죽은 시점에서 피해자를 찾는 것하며 공권력이나 수사 권한이 없는 주인공이 사건을 탐색하는 것 등이 말이다. 내가 봤을 땐 그렇게 호들갑 떨면서 추켜세울 만큼의 특이점은 아닌 것 같지만. 당장 미야베 미유키의 <모방범>도 떠오르고 시즈쿠이 슈스케의 <범인에게 고한다>도 떠오른다. 시간만 주면 아마 더 떠오를 것이다.

 주제나 표현하는 재미 등 여러 요소가 나한텐 그렇게 신선하게 다가오진 못했다. 오히려 이 작품을 보면서 놀랐던 건 이 생소하지 않았던 점이었다. 익숙하지 않은 문화권의 소설엔 아무래도 낯설게 느껴질 법도 한데 그나마 비슷한 동아시아권에 속하기 때문이었는지 몰라도 작품 속 사람들의 사고나 심리가 어색하다거나 이질감이 느껴지는 게 전혀 없었다. 혹시 계실까 싶지만 대만 소설인 게 거부감이 느껴지는 분에게 조금도 걱정할 필요가 없다고 얘기해주고 싶다. 평범해서 탈이지 제법 읽을 만하다.


 지난 해 느꼈던 것 중 하나는 책은 절대로 공짜로, 의무적으로도 읽어선 안 된다는 것이다. 이는 도서관에서 책을 빌리는 것과는 다른 얘기다. 출판사의 호의는 무척이나 감사하지만 작년에 그런 식으로 12권을 읽고 감상평을 쓰려니 곤혹스러워 죽을 맛이었다. 애석하게도 이 책에도 해당이 된다. 물론 책은 적당히 가독성도 있고 후반부와 결말에 이르러선 꽤 과감한 전개를 선보여 일말의 여운도 확보하고 있다. 다만 이 작품의 홍보 문구나 해설에서 나온 '신선함'이나 '혁신적인' 이란 낱말엔 동의할 수 없다. 내겐 그저 대만 작가가 써서 인명과 지명이 특이한 소설일 뿐이었다.

 이미 다 말해서 새삼스럽긴 하지만 결론적으로 크게 감흥이 일진 않은 작품이다. 찬호께이의 감상평에 혹했는데 약간 배신감이 느껴질 정도다. 이 모든 걸 이벤트에 당첨됐기 때문이라 책임을 떠넘길 생각은 없지만 이거 참 미안한 한편으로 - 계속 말하지만 - 곤혹스러울 따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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