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 번째 피해자
천지무한 지음, 최정숙 옮김 / 한즈미디어(한스미디어) / 2018년 2월
평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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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4







 중화권 추리소설은 찬호께이의 작품으로만 접했는데 이렇게 기회가 닿아 다른 작가도 접하게 됐다. 이번엔 대만 작가의 소설을 읽었다. 가까운 나라지만 일본에 비하면 나한텐 너무나 먼 나라라서 신선하기론 동남아시아나 아프리카 못지않다. 내용은 so so 지만.

 세 명의 여자를 납치 및 살해한 살인마 팡멍위가 유치소에서 건전지를 삼켜 자살을 시도한 사건이 발생한다. 자신의 범행에 일체 반성하는 기미가 없는 듯 혐의 인정은 고사하고 묵비권을 행사하며 침묵을 지키던 팡멍위가 불쑥 자살을 시도하니 좌중은 그저 당황스러울 뿐이다. 죄책감을 이기지 못해 자살을 한 건 아닌 것 같은데... 자신이 죽인 피해자들의 신체 일부분을 전시하듯 간직한 걸 보면 그럴 가능성은 낮다. 더구나 아직 시체가 나오지도 않은 '네 번째 피해자'에 대한 진술도 하지 않았으니 오히려 괘씸할 지경이라 할 수 있다.


 희대의 사건이 터졌을 때 가장 기뻐하는 건 매스컴이다. 그들이 사건을 바랄 리 만무하지만 보도할 사건이 많으면 많을수록 좋은 게 어쩌면 그 바닥의 시장 원리인지도 모른다. 이 소설은 그러한 매스컴의 이중성과 페해를 집중 조명하는 작품으로 작품 해설을 쓴 평론가의 말을 빌리자면 혁신적인 구석이 있는 추리소설이다. 살인자가 죽은 시점에서 피해자를 찾는 것하며 공권력이나 수사 권한이 없는 주인공이 사건을 탐색하는 것 등이 말이다. 내가 봤을 땐 그렇게 호들갑 떨면서 추켜세울 만큼의 특이점은 아닌 것 같지만. 당장 미야베 미유키의 <모방범>도 떠오르고 시즈쿠이 슈스케의 <범인에게 고한다>도 떠오른다. 시간만 주면 아마 더 떠오를 것이다.

 주제나 표현하는 재미 등 여러 요소가 나한텐 그렇게 신선하게 다가오진 못했다. 오히려 이 작품을 보면서 놀랐던 건 이 생소하지 않았던 점이었다. 익숙하지 않은 문화권의 소설엔 아무래도 낯설게 느껴질 법도 한데 그나마 비슷한 동아시아권에 속하기 때문이었는지 몰라도 작품 속 사람들의 사고나 심리가 어색하다거나 이질감이 느껴지는 게 전혀 없었다. 혹시 계실까 싶지만 대만 소설인 게 거부감이 느껴지는 분에게 조금도 걱정할 필요가 없다고 얘기해주고 싶다. 평범해서 탈이지 제법 읽을 만하다.


 지난 해 느꼈던 것 중 하나는 책은 절대로 공짜로, 의무적으로도 읽어선 안 된다는 것이다. 이는 도서관에서 책을 빌리는 것과는 다른 얘기다. 출판사의 호의는 무척이나 감사하지만 작년에 그런 식으로 12권을 읽고 감상평을 쓰려니 곤혹스러워 죽을 맛이었다. 애석하게도 이 책에도 해당이 된다. 물론 책은 적당히 가독성도 있고 후반부와 결말에 이르러선 꽤 과감한 전개를 선보여 일말의 여운도 확보하고 있다. 다만 이 작품의 홍보 문구나 해설에서 나온 '신선함'이나 '혁신적인' 이란 낱말엔 동의할 수 없다. 내겐 그저 대만 작가가 써서 인명과 지명이 특이한 소설일 뿐이었다.

 이미 다 말해서 새삼스럽긴 하지만 결론적으로 크게 감흥이 일진 않은 작품이다. 찬호께이의 감상평에 혹했는데 약간 배신감이 느껴질 정도다. 이 모든 걸 이벤트에 당첨됐기 때문이라 책임을 떠넘길 생각은 없지만 이거 참 미안한 한편으로 - 계속 말하지만 - 곤혹스러울 따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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