페소아의 리스본 - 작가들이 사랑하는 작가 페르난두 페소아가 안내하는 리스본 여행 가이드
페르난두 페소아 지음, 박소현 옮김, 최경화 감수 / 안그라픽스 / 2017년 7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100년이 지나도 유효한 리스본 여행 가이드북

 

이 책, <페소아의 리스본(Lisbon: What the Tourist Should See)>은 포르투갈의 국민작가인 페르난두 안토니우 노게이라 페소아(Fernando Antonio Nogueira Pessoa, 1888~1935, 이하 ‘페소아’)가 1925년에 쓴 것으로 추정되는 리스본 여행 가이드북이다. 매년 새로운 정보를 업데이트한 여행 가이드북이 쏟아져 나오는 것을 감안하면 이 책은 박물관에나 가야 할 골동품처럼 느껴질 지도 모른다.

그런데 이 책이 여전히 유효하다고 한다. 물론 20세기 초반 유럽을 여행했던 사람들의 시선을 따라 다시 여행해보는 것은 독특하고 신선할 것이다.

하지만 여행 가이드북으로써 유효할까? 한국으로 치면, 면암(勉庵) 최익현(崔益鉉, 1833~1906)이 1875년이 쓴 <유한라산기(遊漢拏山記)>를 가이드북 삼아 한라산 유람을 하는 셈이니 이런 의문이 드는 것도 당연하다. 다행히 이 책을 들고 직접 리스본을 다녀온 옮긴이와 현재 리스본에 거주하는 감수자에 의하면, 리스본은 페소아가 살던 시절과 지금이 그리 다르지 않다고 한다.

 

2017년 3월, 이 책을 들고 방문한 리스본은 다행히도 “스스로를 엉망으로 만드는 도시가 아닌”지라 페소아가 살던 시절의 모습을 거의 그대로 간직하고 있었다. 책에서 언급된 건축물은 대부분 그 자리에 그대로 있었고, 세월이 흐르면서 생긴 변화를 눈으로 확인하는 즐거움도 누릴 수 있었다. [p. 18]

 

아, 한 가지 더. 한국어판은 원서와 다소 다르게 편집되어 있다고 한다.

 

원서는 리스본 전체를 하루에 둘러보는 빠듯한 여정으로 구성되어 있지만, 한국어판에서는 본문에 등장하는 장소들을 구역별로 나누었다(마지막 두 장 ‘리스본의 신문들’과 ‘켈루스를 거쳐 신트라’를 제외한 장은 모두 편집 과정에서 임의로 넣은 것임을 밝혀둔다). 한 구역을 찬찬히 살펴보는 데 반나절 정도 걸리지만 도보 여행을 계획한다면 시간을 더 넉넉하게 잡기를 권한다. 또한 페소아는 자동차를 타고 리스본을 둘러보자고 제안하지만, 지금의 리스본은 그보다는 가끔 전차의 도움을 받아가며 도보로 둘러보는 편이 훨씬 자연스럽고 효율적이다. 또한 지금은 필요 없는 페소아 당대의 여행 정보를 모두 원문대로 수록했다. 대신 해당 장소에 주석을 달아 현재의 정보와 그 사이 달라진 내용을 일러두었다. [pp. 17~18]

 

 

페소아는 왜 리스본 여행 가이드북을 썼을까?

 

페소아가 그의 계부(繼父)를 따라 남아프리카공화국 더반으로 옮겨가서 살면서, 그곳 사람들, 아니 거의 모든 사람들이 포르투갈에 대해 무지(無知)하다는 것에 이 책을 기획했다고 한다.

 

보통의 영국인, 그뿐만 아니라 (스페인 사람을 제외하면) 어느 나라 사람이건 포르투갈을 유럽 어딘가에 있는 작은 나라로, 심지어는 스페인의 한 지방인 줄로만 안다.” 페소아는 남아프리카 시절 외국인, 특히 영국인이 포르투갈에 대해 아무것도 모른다는 사실에 상당히 충격을 받았다고 한다. 특히 그들이 유럽에서 아프리카 남쪽 해안을 거쳐 인도로 가는 항로를 개척한 바스쿠 다 가마조차 모른다는 사실에 절망했다. [pp. 12~13]

 

하지만 다른 사람과 달리 페소아는 자신의 모국 포르투갈과 자신이 사랑하는 도시 리스본을 외국인에게 알릴 방법을 고심했다.

 

페소아는 자신의 리스본을 이방인 앞에 가장 잘 내보일 방법을 고심하며 관광 코스를 구상했을 것이다. 이렇게 여행 안내서를 쓰는 것만큼 한 도시에 대한 사랑을 압축적으로 표현할 수 있는 방법이 또 있을까. 특히 그처럼 여행을 혐오하고 “정주적 삶을 향한 유기적이고 숙명적인 애정”으로 뭉쳐 있는 사람에게 리스본은 그가 속한 세계의 거의 모든 것이었을 테다. 덕분에 우리는 다른 안내서에서는 기대할 수 없는 방식으로 리스본의 과거와 현재, 북적이는 관광 명소와 인적 드문 거리 사이를 오갈 수 있게 된다. [p. 17]

 

예를 들어 본래 군사훈련장이었으나 리스본에서 가장 아름다운 공원이 되었다는 캄푸 그란드(Campo Grande)를 보자. 얼마나 넓은지[면적], 언제 공원이 되었는지, 어떤 시설이 있는지 등에 대해 설명하고 마지막에

 

캄푸 그란드 공원은 제일 인기 있는 일요일 나들이 장소 중 하나다. 일요일이면 공원 사이사이로 난 길을 따라 인파가 몰려들고 도로 왼쪽은 말과 마차로 분주하다. 공원 한쪽 끝에는 포르투갈 스포츠클럽의 축구장이 있고, 공원 뒤쪽으로 가면 왼쪽에 동 페드루 5세 구빈원과 보르달루 피녜이루 미술관이 나온다. 그리고 하울 사비에르가 제작한 이 유명한 국민 예술가 보르달루 피녜이루의 청동상이 보인다. [p. 54]

 

라는 말로 마무리 한다.

 

호시우(Rossio) 혹은 동 페드루 4세 광장

사진 출처: <페소아의 리스본>, p. 90

 

리스본의 중심지로 ‘호시우(Rossio)’라고 부르는 동 페드루 4세 광장은 거의 모든 대중교통이 지나가는 곳이라고 한다. 때문에 리스본에 머물 숙소를 구하려면, 이곳이 가장 적당한 곳이기도 하다.

 

대부분의 여행 가이드북이 그렇듯이 이 책도 리스본만 다루고 있는 것은 아니다.

 

지금까지 살펴봤듯이 리스본에는 예술적으로나 역사적으로나 감성을 자극하는 수많은 볼거리가 있지만, 포르투갈을 방문하는 여행자라면 수도 안에만 머물러서는 안 될 것이다. 리스본에 처음 왔다면 누구나 테주강 유역의 비할 수 없는 아름다움과 일곱 언덕 위에서 보이는 근사한 경치, 공원과 기념비, 오래된 거리와 새로 난 대로에 깊은 인상을 받는다. 그러나 교외 지역 또한 그 나름대로 볼만한 가치가 있다. 리스본 근교의 풍광은 말할 수 없이 아름답지만, 자연의 아름다움만이 아니라 그곳에서 볼 수 있는 여러 건물의 아름다움이 과거를 떠올리게 한다.

그러므로 이제는 리스본 근교로 나가보도록 하자. 함께 가는 이방인은 이 짧은 여행에 쓰는 시간을 잠시라도 낭비라 여기지 않을 것이다. [p. 162]

 

라는 말과 함께 리스본 교외의 ‘리스본 동물원’, 로코코 양식의 궁전인 ‘켈루스궁(Palacio de Queluz)’, ‘신트라 언덕(Serra de Sintra)’과 ‘무어인의 성(Castelo dos Mouros)’ 등이 간단히 소개되어 있거나 언급되어 있다.

 

 

여행 가이드북으로서의 아쉬움

 

대부분의 여행 가이드북과 달리 이 책은 대부분의 장소를 사진 없이 말로 소개하고 있다. 아마 원서에 사진이 없어 현재의 사진을 넣기도, 과거의 사진을 넣기도 애매하기 때문에 그런 것이 아닐까? 어쨌든 아쉬운 것은 사실이다.

 

또 하나는 지도다. 페소아가 제시한 경로를 꼼꼼하게 표시한 지도와 원문이 인터넷에 공개(http://lisbon.pessoa.free.fr/)되어 있다고 하지만 QR코드로 바로 접속할 수 있도록 하면 더 편리하지 않을까?

 

리스본 지도

사진 출처: <페소아의 리스본>, 책날개의 앞날개

 

위의 사진처럼 책 속에서 페소아가 소개한 리스본의 장소들이 지도상에 숫자로 표시되고 본문에서 언급될 때에는 지도상의 위치(숫자)가 함께 적혀 있는 형식으로 되어 있다. 이로 인해 어디가 어딘지 한 눈에 들어오지 않는다.

사진 출처: <페소아의 리스본>, p. 65

 

그럼에도 불구하고 위의 사진에서 보는 것처럼, 100여 년 전에 쓰여진 리스본의 여행기에 장소에 따라 현재의 운영시간과 입장료가 표기되어 있는 과거와 현재가 만나는 책이라는 점에서 리스본 여행을 시도하는 이에게 색다르고 재미있는 선택지가 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한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