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운몽 문학동네 한국고전문학전집 16
김만중 지음, 정병설 옮김 / 문학동네 / 2013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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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운몽(九雲夢)], 어떻게 보아야 하는가


<구운몽>이라고 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단어가 있다. ‘일장춘몽(一場春夢) 인생무상(人生無常)이다. 그래서일까? ‘세상의 부귀영화가 한 순간의 꿈과 같이 허무하다는 것은 <구운몽>을 읽은 사람이라면 당연히 느껴야 할 암묵적인 약속처럼 되어 있다.


문학동네판 <구운몽>을 번역한 정병설 교수도 해설에서


대개 <구운몽>하면 가장 먼저 떠올리는 말이 일장춘몽(一場春夢)’이다. ‘인생은 일장춘몽이다라는 사실을 깨닫게 해주는 작품으로 보는 것이다. [p. 407]


라고 얘기하고 있다.


그런 생각을 가지게 된 것은 우리가 학창시절에 서포(西浦) 김만중(金萬重, 1637~1692)이 쓴 <구운몽>에 대해 배운 내용 때문일 아닐까? 인간 세상의 부귀영화가 한낱 꿈이었음을 깨달은, 육관대사(六觀大師)의 제자 '성진(性眞)'이 불법(佛法)에 정진(精進)하고 ‘8선녀가 불교(佛敎)에 귀의(歸依)하는 내용을 담고 있는 소설로 기억하고 있으니까. 그러니 <구운몽>을 인생무상(人生無常)을 얘기하는 소설로 이해하는 것도 어쩌면 당연한 일일지도 모른다.


여기에는 저자인 김만중이 예학(禮學)의 대가로 조선 중기 서인의 정신적 지주였던 사계(沙溪) 김장생(金長生, 1548~1631)의 증손자이자 왕비의 작은 아버지로서, 또 청요직(淸要職)의 우두머리 격인 사간원의 대사간(大司諫), 사헌부의 대사헌(大司憲)과 홍문관의 대제학(大提學)을 모두 역임한 관료였지만, 당쟁에 휘말려 떠난 유배지에서 이 작품을 썼다는 배경도 한 몫 한다. 유배지에서 그가 느꼈을 유가적(儒家的) 욕망의 허망함도 여기에 담겨있을 테니까.


그런데 생각해보면 이 책을 그렇게만 읽어야 하는가 하는 의문이 든다. 한용운의 <님의 침묵>을 간절한 연애시로 볼 수 있다면, 김만중의 <구운몽>도 다르게 볼 수 있지 않을까? 굳이 <구운몽>을 불교적인 제행무상관(諸行無常觀)에서 온 인생무상을 주제로 한 작품이라고 본 박성의(朴成義)1)<구운몽>의 환몽구조(幻夢構造)<금강경(金剛經)>의 공()사상이 강력하게 반영되었다고 주장하는 정규복(丁奎福)2) 등의 견해를 따를 필요가 있을까?


그래서 문학동네판 <구운몽>을 번역한 정병설 교수가


오랫동안 <구운몽>은 학교에서 잘못 교육되었다. 아니 학계에서 잘못 이해했다. 남녀의 사랑과 인생의 즐거움을 그린 작품을 허무주의적 깨달음을 주는 작품으로 잘못 이해했다. ‘일장춘몽인생무상의 연장선상에 있는 불교의 () 사상’, ‘금강경 사상등이 모두 작품의 주제라기보다 장치 또는 장식이라 할 수 있는데, 이를 주제로 보았으니 본말이 뒤바뀌어 작품을 제대로 읽을 수 없었던 것이다. [p. 408]


라고 얘기한 것에 공감하게 된다.


다만 나는 저자가 소설을 쓰게 된 배경 등을 다 치워버리고 순수하게 <구운몽>의 주인공 성진의 입장에서 살펴보면 조금 더 다르게 얘기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한다.

아무리 자신이 원해서 그 길을 선택하고 걸어간다고 해도, 살다 보면 이 길이 맞을까?’ 걱정하고 머뭇거릴 때가 있다. 성진이 8선녀를 만나 마음이 흔들렸던 것도 그런 순간이었을 것이다. 그런 순간 마음을 다시 잡고 자신이 선택한 길을 걸어가는 모습을 그린, 일종의 성장 소설로 볼 수도 있지 않을까?


가수 아이유의 노래 <분홍신>


내 운명을 고르자면,

눈을 감고 걸어도 맞는 길을 고르지


라는 구절이 있다. 이 노래의 작사가인 김이나는 이 가사에 ‘아이유에게 보내는 최선의 응원’을 담았다는 얘기를 했다. 아이유 본인도 힘들 때마다 이 구절을 떠올리며 버텨낸다고 한다. 우리도  <분홍신>의 가사처럼 내가 선택해서 걷는 길이 맞다는 확신을 늘 가질 수만 있다면, 살아가면서 만나는 인생의 굴곡을 보다 쉽게 버티고 지나갈 수 있지 않을까?


또 하나 더 얘기하자면, 이 소설을 장르소설에서 흔히 사용하는, 환생 등의 방법으로 이세계(異世界)를 여행했다가 귀환하는 이야기로도 볼 수 있지 않을까 한다. 현실과 꿈의 설정이 다소 역전적(逆轉的)이기는 하지만, 양소유(楊少游)로 환생한 성진(性眞)당시 사대부가 꿈꿔왔던 이상적인 삶을 누렸던 것은 명백하다. 이런 점으로 볼 때, 당시의 독자들은 <구운몽>의 주인공 양소유가 현실적인 욕망을 끝없이 누리며 즐기는 모습에서 대리만족 같은 것을 느끼지 않았을까? 어쩌면 양소유의 활약을 읽으면서 매일매일의 고단한 삶에서 벗어나 순간의 위안을 받았을지도 모른다.


사실 <논어> <맹자> 같은 인문고전도 아닌데 소설을 읽으면서 무엇을 배울까 혹은 어떤 교훈이 있을까 찾는 것도 이상한 일이다. 입시 혹은 시험을 위해서는 부득이하게 그렇게 할 수 있다. 하지만 입시 혹은 시험이 끝났다면 더 이상 평가를 위해 소설을 읽을 필요가 없다. 억지로 꿈을 가지라고 강요하는 것처럼, 소설을 읽고 무언가 배울 것이 없나 눈에 불을 키고 바라볼 필요가 있을까? 그저 소설을 읽으며 작품에 몰입하고 즐거움을 느꼈다면 그것으로 만족할 수 있지 않을까? 소설은 그저 소설일 뿐이고, 독자의 수만큼 그 소설에 대한 해석 혹은 감상도 존재할 테니까.



[구운몽(九雲夢)]은 어떤 영향을 끼쳤는가


<구운몽>은 흔히 현실--현실의 구조로 이루어진, 몽자류(夢字類) 소설의 대표적인 작품으로 알려져 있다. 이런 환몽구조(幻夢構造)의 작품은 <구운몽>이 최초는 아니다. 시간적으로 앞선 것만 해도, <삼국유사>에 실린 조신(調信)의 꿈’, 중국의 철학자 장자(莊子)호접몽(胡蝶夢)’ 이야기와 불경(佛經) 중 하나인 <잡보장경(雜寶藏經)>에 실린 사라나비구(娑羅那比丘)>’ 이야기 등이 존재한다. 또한 <구운몽>에 보다 직접적으로 영향을 주었다는, ()나라의 전기소설(傳奇小說)인 심기제(沈旣濟, 750~800) <침중기(枕中記)>도 있다.


그렇다고 <구운몽>이 일방적으로 영향을 받은 것만은 아니다. 우선 국내만 따져도 전체적인 구조가 남영로(南永魯, 1810~1857) <옥루몽(玉樓夢)>, 탕옹(宕翁) <옥선몽(玉僊夢 혹은 玉仙夢)> 등 몽자류(夢字類) 소설에, 양소유의 여장탄금(女裝彈琴)’ 에피소드는 <임호은전(林虎隱傳)>, <장국진전(張國振傳)>, <여자충효록(女子忠孝錄)> 혹은 <김희경전(金喜慶傳)> 등 영웅 소설 혹은 군담(軍談) 소설에 영향을 주었다고 한다.

뿐만 아니라 <구운몽>은 일본으로 건너가 고미야마 텐코[小宮山天香, 1855~1930]에 의해 <무겐[夢幻]>(1894)으로 번안(飜案)되기도 했다.


전통을 묵수(墨守)하지 않고 계승, 발전시키는 것이 전통을 제대로 지키는 것처럼, <구운몽>환몽구조에 영향을 받되, <구운몽>의 번안에 그친 고미야마 텐코의 <무겐>과 달리 자기 것으로 소화시켰다고 할 수 있다. 그런 의미에서 <구운몽>은 소설 자체로도, 영향력으로도 꽤나 독특한 지위 혹은 역할을 했다고 할 수 있다.



1) 박성의, “<구운몽>의 사상적 배경 연구 한국고전문학 배경론의 일환으로서 –”, <아세아연구> 12 4(1969), p. 51

2) 정규복, <구운몽 연구>, (고려대출판부, 1974), p. 2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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