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항하는 인간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383
알베르 카뮈 지음, 김화영 옮김 / 민음사 / 2021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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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항하는 인간]


프랑스령 알제리 출신인 알베르 카뮈(Albert Camus, 1913~1960, 이하 카뮈’) <이방인>과 같은 삶의 부조리에 대한 의식을 투영한 작품으로 부조리 문학의 대표 작가로, <시지프 신화> <반항하는 인간> 같은 철학적 에세이로 실존주의 문학의 대표 작가로 지칭되기도 한다.


그렇다면 그의 문학세계는 어떤 것일까? 번역자인 김화영에 의하면 카뮈는 부정(부조리), 긍정(반항), 사랑의 발전 단계를 전제로, 작품 세계의 체계적 청사진을 세웠다고 한다. 이를 보여주듯이 그는 1943년부터 약 15년 동안 두 번째 층위에 해당하는 반항과 테러리즘에 관한 글을 많이 남겼다. 소설 <페스트>(1947)와 이를 각색한 희곡 <계엄령>(1948), 희곡 <정의의 사람들>(1949), <반항하는 인간>(1951) 등이 이런 반항의 문학을 대표하는 작품이다.


이 책 <반항하는 인간>의 첫 장을 보면,


반항하는 인간이란 무엇인가? ‘(non, 부정)’이라고 말하는 사람이다. 그러나 그는 거부는 해도 포기는 하지 않는다. 그는 또한 반항의 첫 충동을 느끼는 순간부터 (oui, 긍정)’라고 말하는 사람이기도 하다. [p. 31]


아무리 봐도 막연하고 형이상학적인 얘기다. 그렇다면 구체적으로 실제 사례를 보면 보다 쉽게 알 수 있지 않을까? 그래서 인지 <반항하는 인간>에서는 반항을 극단으로 몰로 간 이들, 카인의 후예라고 부를 수 있는 이들을 먼저 살펴본다.



반항하는 인간들


<소돔의 120>, 아니 사디즘으로 유명한 사드 후작(Marquis de Sade, 1740~1814)는 세계의 질서와 자기 자신에 대한 반항을 통해 절대적인 (non, 부정)’을 이끌어 낸 최초의 이론가라고 한다.


잔혹함과 철학적 사색으로 가득 찬 그 10여 권의 저술은 불행한 고행을, 전적인 으로부터 절대적인 로의 환각에 사로잡힌 이행을, 그리고 마침내 죽음에의 동의 모든 것과 만인의 살해를 집단 자살로 탈바꿈시키는 를 요약한다. [p. 89]


어떻게 보면 사드의 후예라 할 수 있는, 샤를 보들레르(Charles Baudelaire, 1821~1867)와 같은 낭만주의적 반항인은 증오의 원리로서의 신()’과의 결별을 추구했다.


도전하고 거부하는 힘에 역점을 두다 보니 반항은 이 단계에서 그것이 지닌 긍정적 내용을 망각한다. 신이 인간 내면의 선을 요구하므로 그 선을 조롱하고 악을 선택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죽음과 불의에 대한 증오는, 악과 살인의 실천까지는 아니더라도 적어도 악과 살인의 옹호로 이어지게 된다. [p. 92]


표도르 도스토옙스키(Fyodor Dostoevsky, 1821~1881) <카라마조프의 형제들>을 보면,


이반 카라마조프는 인간들의 편을 들고 인간들의 무죄에 강조점을 둔다. 그는 인간들을 무겁게 짓누르는 죽음의 형벌은 부당하다고 잘라 말한다. 적어도 그 첫 충동에 있어서 그는 악을 변호하기는커녕 신성보다 더 위에 있다고 여기는 터인 정의를 옹호한다. 따라서 그는 절대적으로 신의 존재를 부정하는 것이 아니다. 그는 도덕적 가치의 이름으로 신을 공박한다.

~ 중략 ~

설령 신이 존재한다 할지라도, 설령 신비가 진리를 품고 있다 할지라도, 설령 조시마 장로가 옳다 할지라도, 죄 없는 이들에게 가해지는 악과 고통과 죽음이 그 진리의 대가로 치러지는 상황을 이반은 받아들일 수 없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반은 구원의 거부를 몸으로 구현한다. 신앙은 영생으로 가는 길이다. 그러나 신앙은 신비와 악을 받아들이고 불의를 감수하는 것을 전제로 한다. [pp. 106~107]


이반이 마침내 마음속으로 제기하는 질문, 즉 도스토옙스키가 이 반항인으로 하여금 이룩하게 만드는 참된 진보의 핵심인 질문, 그것이야말로 여기서 우리가 관심을 가지는 유일한 것이다. 즉 인간은 반항 속에서 살아갈 수 있는가, 또 반항 속에서 계속 버틸 수 있는가?

이반은 이에 대한 대답을 이렇게 내비친다. 인간은 오로지 반항을 궁극까지 밀고 나감으로써만 반항 속에서 살 수 있다는 것이다형이상학적 반항의 극단은 무엇인가? 형이상학적 혁명이다. 이 세계의 주인은 그의 정당성에 대한 이의가 제기된 이상, 타도되어야 마땅하다. 인간이 그 자리를 차지해야 한다. “신도 영생도 존재하지 않으므로 새로운 인간이 신이 될 수 있게 되었다.” 그러나 신이 된다는 것은 무엇인가? 바로 모든 것이 다 허용되어 있음을 인식하는 것, 자기 자신의 법 이외의 모든 법을 거부하는 것이다.  [pp. 111~112]


이처럼 인간이 신을 도덕적으로 심판하는 순간부터 인간은 자신의 내부에서부터 신을 죽이는 것이다. 따라서 우리는 흔히 생각하는 것처럼 프리드리히 니체(Friedrich Nietzsche, 1844~1900)가 신을 죽인 것이 아니라 그는 이미 죽어 있는 신을 발견한 것일 뿐이다.


니체와 더불어 반항은 신은 죽었다라는 명제에서 출발한다. 반항은 그 명제를 하나의 기정사실로 간주한다. 반항은 그리하여 사라져버린 신을 당치 않게 대신하려 드는 모든 것, 비록 정해진 방향은 없어도 여전히 제신들의 유일한 도가니인 한 세계를 욕되게 하는 모든 것에 대항하여 맞선다. 그에 대한 몇몇 기독교측 비판자들의 생각과는 반대로 니체는 신을 죽이려는 계획을 세운 바 없다. 그는 자기 시대의 영혼 속에서 이미 죽어 있는 신을 발견한 것이다.

~ 중략 ~

그러므로 니체는 하나의 반항 철학을 부르짖은 것이 아니라 반항이라는 기초 위에 하나의 철학을 구축했던 것이다. [p. 127]



반항이란 무엇인가


살인의 정당화를 거부하는, 반항과 폭력에 관한 연구서라고도 할 수 있는 <반항하는 인간> 서론에서 카뮈는 다음과 같이 말한다.


중요한 것은 사물의 근본에까지 거슬러 올라가 천착하는 일이 아니라, 그보다는 눈앞의 세계가 곧 현실이기에, 먼저 이 세계 속에서 어떻게 처신해야 하는가를 아는 일이다. [p. 15]


, 카뮈에게 중요한 것은 반항론이라는 추상적 개념이 아닌 어떻게 행동할 것인가와 같은 삶에 대한 구체적인 성찰이라는 것이다.


여기서 주의해야 할 것은 카뮈의 반항은 테러리즘이나 폭력 행사를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는 점이다.


반항 속에 폭력이 존재하는 것은 분명하다. 그러나 반항은 형이상학적 시각에서나 역사 속에서의 기능에 있어서나 폭력에 안주할 수는 없는 것이다. 반항이 본래의 순수함을 잃게 되어 온통 폭력에 쏠려 버릴 경우, 특히 그 폭력이 정당하다고 보게 될 경우 그 반항은 허무주의와 살인에 이른다. 있는 그대로의 것에 대한 전적인 거부, 즉 절대적 을 신격화할 때마다 반항은 살인을 한다. 있는 그대로의 것을 맹목적으로 받아들일 때, 즉 절대적인 를 외칠 때마다 반항은 살인을 한다.

~ 중략 ~

어쨌든 그 어느 경우에 있어서든 반항은 살인에 이르게 되어 반항이라 불릴 권리를 잃고 만다. [p. 565]


, 카뮈는 반항과 폭력에는 반드시 한계가 있으며, 어떤 대의(大義)로도 무고한 사람의 죽음을 정당화할 수 없다고 말하고 있는 것이다. 그에게 있어 진정한 반항은 폭력에 대한 부정이자 가치에 대한 긍정을 의미하는 것이 아닐까?


반항은 모든 인간들 위에 최초의 가치를 정립시키는 공통적 토대. 나는 반항한다, 그러므로 우리는 존재한다. [p. 47]


바야흐로 역사와 씨름하고 있는 반항은, ‘나는 반항한다, 고로 우리는 존재한다.’와 형이상학적 반항의 ‘그리고 우리는 외롭다.’에 추가하여, 우리 자신이 아닌 존재를 생산하기 위해 죽이고 죽을 것이 아니라 현재 있는 그대로의 우리 자신을 창조하기 위해 나도 살고 다른 사람들도 살게 해야 한다고 덧붙여 말해야 한다는 사실을 기억해 둘 필요가 있다. [p. 434]


반항에 있어서 정치란 이러한 진리에 복종하는 것이라야 한다. 결국 반항은 역사를 전진시키고 인간들의 고통을 덜어 주고자 할 때, 그 폭력 없이라고는 아니라 해도 테러를 동원하는 일은 없이, 그리고 가장 다양한 정치적 조건들 속에서 그 일을 수행한다. [p. 513]


앞에서 인용한 문구들을 살펴보면, <반항하는 인간>은 폭력이 폭력을 부르는 악순환이 이어지는 폭력의 세계에서 우리는 무엇을 선택할 것인지에 대한 질문과 이에 대한 나름의 해답을 제시한다고 생각한다. 이 책을 통해 그가 말하고자 하는 바 가운데 최소한 한 가지는 누구나 공감할 수 있을 것이다. 반항에 있어서 폭력은 불가피한 것일지라도 그 폭력이 정당화될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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