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위대한 도시, 파리 - 파리를 사랑한 작가 로제 그르니에의 파리 산책
로제 그르니에 지음, 백선희 옮김 / 뮤진트리 / 2018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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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쳐왔던 주소로 삶을 정리하기

 

1950년 이전에 태어난 부모 세대는 한국전쟁으로 인한 피난 외에도 이사를 많이 다녔다. 어떤 이는 재산 형성을 위해 자발적으로 이사하기도 했을 것이고, 어떤 이는 전세값 상승이나 아파트 단지 조성 등을 위한 토지 수용 등에 의해 강제적으로 삶의 터전을 옮겨야 했다. 물론 한 자리에서 계속 거주한 이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서울에서 10년 이상 이사를 하지 않고 거주했다면 원주민(原住民)’이라는 말이 있는 것으로 보아 한 곳에서만 산 이는 그리 많지 않았으리라 생각한다. 오히려 여러 차례 주소를 바꾸는 일이 흔했을 것이다.

 

그렇기에 누군가의 삶을 설명하기 위해 그가 그 동안 거쳤던 주소들을 정리하고, 그 주소들에 자신의 기억을 더해 회고록을 만드는 것도 가능하다. 사실 <나의 위대한 도시, 파리>를 읽지 않았다면, 나는 그런 방식으로 멋진 회고록을 만들 수 있다는 것을 떠올리지 못했을 것이다.

 

 

나는 어디 사람인가

 

낯선 이들과 만나면 서로간의 접점을 만들기 위해 소위 ‘호구조사’를 하게 된다. 그러다가 연결고리를 찾게 되면 갑자기 호감을 느끼고 친근하게 이야기를 이어가는 경우가 많다. 출신지 혹은 ** 사람 또한 마찬가지다. 누군가는 한국 사람만이 가진 저열한 특징인 것처럼 얘기하지만, 사실 세계 어디라도 그러한 지방색이 없는 곳은 자기 지역만의 문화가 없는 곳을 제외하고는 찾기 어렵지 않을까 생각한다. 삼국 시대의 장비(張飛)가 ‘연인(燕人)’임을 강조했던 것처럼, 자기 지역에 대한 자부심이 강한 이들이라면, 더욱 그렇지 않을까?

 

그래서 이 책의 첫머리는 의미심장하다.

 

내가 시골 사람인지 파리 사람인지 모르겠다. 어쩌다 보니 나는 노르망디에서 태어났다. 유년기와 청년기를 보낸 포(Pau)와 베아른(Bearn)이 내 책 대부분에 영감을 주었다. 그러나 나의 도시는 파리다. 내가 느끼기에 진짜 파리지엥들은 다른 곳에서 태어난 사람들이고, 그들에게는 파리에서 사는 것이 일종의 정복이다. 나는 센 강의 다리 위를 지나기만 해도 감탄한다. 한쪽에는 시테 섬과 노트르담 성당이 있고, 다른 쪽에는 그랑 팔레와 샤이요 언덕이 있다. 그리고 비할 데 없는 하늘이 있다! 꿈이 아닌데, 내가 파리에 있다니!” [p. 6]

 

파리’를 ‘서울’로, 프랑스의 지명을 한국의 지명으로 바꾸면, 지방에서 올라온 수많은 서울사람들의 얘기가 된다. 뿐만 아니라 해외교포나 화교(華僑) 등에게도 같은 방식으로 적용할 수 있다.

 

 

파리의 거리들

 

런던, 파리, 교토(京都) 등 고도(古都)들은 그들이 품고 있는 오랜 역사처럼 옛 모습을 가능하면 많이 유지하고 있다. 그렇기에 저자가 파리의 거리들을 지나며, 마주치는 거리, 건물, 공원 등을 바라보며 어떤 사건이나 만남을 회상하는 것이 가능하다.

 

예를 들면,

<좁은 문>으로 유명한 앙드레 지드(Andre Gide, 1869~1951)의 집인 [바노 길 1-2번지]에서는 그의 작품 낭송 녹음에 얽힌 기억을

지드의 아파트인 그 유명한 바노에 들어가는 특혜를 누렸다. 1947년 10월, <지상의 양식> 출간 50주년을 기념하는 날이었다. 지드의 오랜 친구인 마르크 베르나르와 함께 우리는 라디오 방송을 위해 지드에게 <지상의 양식> 도입부를 읽게 했다. 그렇게 나는 실내화 차림으로 조금 긴장한 지드의 모습을 보았다. 지드가 자신의 녹음 목소리를 듣고서 이런 놀라운 말을 했다.

“치음 발음을 연습해야겠군.” “ [p. 98]

 

소설가 겸 극작가인 앙리 드 몽테를랑(Henry de Montherlant, 1895~1972)의 집인 [볼테르 강변길 25번지]에서는 그의 증정본과 관련된 추억을

몽테를랑은 자기 책의 성공을 위한 모든 것에 세심히 마음을 썼다. 오랫동안 그는 언론용 증정본에 헌사를 쓸 때조차 초고를 작성했다. 생애 말엽에는 그런 습관이 피곤하다고 내게 말하기도 했다. 갈리마르 출판사 건물에는 도서관이라 불리는 방이 하나 있는데, 저자들이 그곳에서 증정본에 사인을 한다. 한 번은 몽테를랑이 점심식사를 하러 간 사이에 장 쥬네가 그곳에 들렀다. 그는 몽테를랑이 서명해놓은 책 더미를 발견하고는 헌사에 음란한 말을 덧붙였다. 아무도 알아차리지 못한 채 책들은 그렇게 떠나갔다. 그 책들은 틀림없이 오늘날 값나가는 희귀본이 되었을 것이다.” [p. 119]

 

알베르 카뮈(Albert Camus, 1913~1960)가 편집자로 있던 <콩바>가 위치한 [레오뮈르 길 100번지]에서는 그의 죽음과 얽힌 에피소드를

“1960년 1월 4일 월요일 오후, 내가 계단을 올라가고 있는데 한 여비서가 나를 멈춰 세웠다.

-어디 계셨어요? 사방으로 찾아다녔어요!

왜요?

피아의 주소를 알고 싶어서요.

피아의 주소는 왜요?

뭐라고요? 모르세요? 카뮈가 죽었어요.

그때 나는 기이한 반응을 보였다. 인쇄소로 간 것이다. 마치 그곳으로 피신하려는 듯이. 그곳에 가면 15년 전에 카뮈와 함께 조판대에서 숱한 밤을 보냈던 사람들을 만날 수 있다는 걸 나는 알았다. 그곳에는 모두가 베베르라고 불렀던 우리의 고참 식자실장 루아가 있었고, 카뮈와 <프랑스-수아르>에서 일했고 1940년 피난 때 클레르몽페랑에서 그와 방을 함께 썼던 늙은 편집자 다니엘 르니에프(Daniel Lenief)도 있었다. 우리는 할 말을 잃고 작업실 한쪽 구석에 모여 있었다. 나는 문 가까이에 있는 선반을 바라보았다. 그곳에서 카뮈는 자주 페이지 레이아웃을 검열하고, 마지막 교정쇄를 수정했다. 누군가 결국 내게 말했다.

“카뮈에 대해 기사를 쓰게 되면 우리가 그의 친구였다고 말해주게….”

얼마 지나지 않아 식자공들과 교정자들이 “책 친구들이 알베르 카뮈에게”라는 제목으로 공동저작을 펴냈다. 그들은 내게 그 책의 서문을 청하면서 함께할 영광을 누리게 해주었다.” [pp. 128~129]

 

이런 방식으로 <나의 위대한 도시, 파리> 내내 저자는 파리의 거리들을 거닐고 있다. 이렇게 글을 쓸 수 있는 것은 아마도 저자가 꼼꼼한 기억력의 소유자이기 때문에 가능한 일일 것이다. 아마도 그래서 “파리지엥이라면 누구나 자신이 알았고 사랑했으나 사라져버린 것을 찾는 데 일평생을 보낼 수 있다.” [p. 36]고 말할 수 있던 것이 아닐까?

 

저자가 평생 글과 책과 더불어 살아왔기에, 그 기억들의 대부분이 문학과 연관되고, 덕분에 파리는 문학적 자취가 가득한 도시로 그려진다. 그래서 이들을 번역한 백선희도 “이 글은 로제 그르니에라는 한 작가의 개인사이자 부침 많았던 한 세기에 대한 증언이며 문학적 자취를 가득 품은 파리에 대한 애정과 향수가 물씬 느껴지는 기행”[p. 166]이라고 한 것이 아닐까?

 

한 가지 아쉬운 것은 파리의 골목골목을 누비면서 이야기가 전개되다 보니, 파리 전도가 첨부되지 않은 것이 아쉬웠다. 옆에 지도를 펼쳐 저자가 이야기 하는 골목을 살피면서 읽으면 좀 더 실감나지 않을까?

 

만약 다시 파리를 가게 된다면, 저자의 기억을 좇아 파리의 골목을 한 번 걸어보고 싶다. 단순히 저자의 기억을 되새김하겠다는 얘기는 아니다. 오히려 그 골목골목마다 배낭여행 때의 기억에 더해 나만의 기억을 새로 덧씌워보고 싶다는 얘기다. 언제 그 날이 올지 모르지만, 그런 꿈을 꾸는 것만으로도 힘들거나 지칠 때 잠시 숨 돌릴 수 있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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